지난해 11월말 주포르투갈 대사로 부임한 이후, 줄곧 포르투갈에 대한 한결같은 인상은 ‘참으로 복받은 나라이구나’ 하는 마음이다. 기후, 공기, 바람, 해변, 음식, 석양 그 모두가 나도 모르게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특히, 포르투갈 사람들은 참으로 구수하고 좋아서, 기분이 울적할 때면 일부러 면담 일정을 잡아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얘기를 나누고 나면, 다시 편안한 일상으로 돌아온다. 리스본에 상주하고 있는 120여 명의 각국 대사들이 모두 공감하는 이야기다. 한국과 포르투갈은 1961년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지만, 한국 대사관은 1975년 리스본에 개설되었고, 필자는 17번째 대한민국 상주대사인데, 이곳에 주재하셨던 선배 대사 한 분이 왜 포르투갈을 999당으로 소개하셨는지를 부임 직후 실감할 수 있었다. 사람 살기에 천당 못지않지만 하늘나라는 아니기 때문에 천당 하나 밑자락 동네, 포르투갈은 바로 그런 곳이다. 포르투갈은 15~16세기에 걸쳐 글로벌 빌리지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개척했던 위대한 선조들을 가진 나라이지만, 스페인영국프랑스 등 주변 열강의 틈바구니 속에서 끊임없는 거센 도전을 겪어왔다. 1910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뀐 이후부터 1986년 EU에 가입하기 이전까지는 공산주의, 독재정치, 식민지 유지 전쟁 등을 다채롭게 경험하면서 국제사회와는 오랜 기간 단절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포르투갈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우리에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감이 있다. 그런 포르투갈 사람들이 최근 오랜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활짝 펴고 있다. 소위 3F-파두(Fado), 축구(Football), 파티마 성지(Fatima)-로만 알려진 포르투갈은 최근 들어 EU 및 과거 식민지국가에 편향된 사고에서 벗어나 다방면으로 경제협력 동반자국가들을 찾고 있다. 그래서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 저 멀리에 위치하고 있는 우리나라를 이상적인 경제협력 파트너로 인식하여 바쁘게 다가오고 있다. 금년 들어 외교차관, 관광차관, 통상차관 등 포르투갈 정부 고위인사들의 방한이 잦아지고 있고, 지난해 이미 10만명을 넘어선 한국 관광객 유치 확대, 양국 도시간 직항로 개설, IT 기술협력 및 재생에너지 시장 개척, 교역 및 투자 증진, 아프리카와 남미를 겨냥한 제3국 공동진출 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양국 간에는 정책협의회, 경제공동위, 문화공동위 등 정례적인 협의채널이 잘 가동되고 있는데, 이와 별도로 최근 방통위, 해외건설협회, 국회, 부산시 등에서 고위급 대표단이 리스본을 다녀갔다. 포르투갈은 범정부 차원에서 금년 11월6일부터 9일간 리스본에서 개최되는 IT 분야 테크 포럼이자 스타트업 기업들의 산실인 2017년 Websummit에 IT분야의 모범적인 선진국인 한국의 많은 기업들이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다.금년도 Websummit에는 전 세계 160개국에서 6만명 이상의 청중, 천명 이상의 연설자, 200여 명의 스타트업 기업 발표자들이 참여할 예정이고, 우리나라도 30여 개 기업들이 참석하여 한국의 스타트업 기업들의 잠재력을 적극 알릴 예정이다. 그중 6개 회사가 우수기업으로 선정되어 잠재적 투자자들 앞에서 자기 기업을 소개하는 ‘피칭’ 기회도 부여받았다. 한반도에 도착한 최초의 서양인이 주앙 멘데스라는 포르투갈 사람이었다는 인연 외에도, 리스본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에 위치한 카부다호카 곶은 땅끝 마을 해남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로서는 꼭 가봐야 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최근 포르투갈이 정치, 경제, 사회 제 측면에서 긴 동면기를 벗어나 활기를 띠고 있는 시점에 대한민국 대사로 부임한 필자로서는 유라시아 대륙의 서쪽 끝과 동쪽 끝에 각각 위치한 두 나라가 서로 다른 시작과 끝이 아닌 하나로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히 뛸 것이다. 박철민 주 포르투갈 대사
오피니언
박철민
2017-11-07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