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선거 쓰레기

치열했던 대통령 선거가 끝났고, 어마어마한 쓰레기가 남았다. 길거리에 내걸린 현수막과 후보 알림용 벽보, 후보와 정당을 알리는 공보물, 투표용지, 거기에 올해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일회용 비닐장갑까지 사용해 쓰레기양이 엄청나다. 제20대 대통령선거에서 발생한 선거 쓰레기가 수천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2017년 19대 대선에서 후보자 종이 공보물은 약 4억부 제작됐고, 현수막은 5만2천545장 나왔다. 올해 대선에선 5년 전의 두 배 이상 허용됐다. 이에 추정되는 현수막은 10만5천90장, 벽보 및 공보물은 5천t에 이른다. 이를 감안하면 이번 대선 홍보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이 7천312톤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30년 된 소나무 80만3천522그루가 1년 내내 흡수해야 하는 양이다. 또 유권자 모두가 비닐장갑을 사용했다고 가정할 경우 최대 8천800만장이 소요됐다. 대선 후보와 정당을 알리는 종이 공보물, 현수막 등은 친환경과 거리가 멀다. 현수막은 플라스틱 합성섬유가 주성분이라 매립해도 거의 썩지 않는다. 다이옥신 등 유해물질 배출 때문에 소각도 쉽지 않다. 다른 현수막에 비해 제작 시 잉크가 많이 들어가 재활용도 썩 좋지는 않다. 2020년 415 총선에서의 폐현수막 재활용률은 25% 수준이다. 행정안전부가 사용을 마친 현수막을 재활용하는 폐현수막 재활용 지원사업을 펴고 있다. 대상으로 오산시 등 전국 기초지자체 22곳을 선정했다. 지자체 1곳당 최대 1천만원을 지원한다. 이들 지자체는 폐현수막을 에코백, 장바구니, 우산, 농사용 천막 등을 만드는 데 활용하거나 시멘트 소성용 연료로 이용한다.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홍보물 쓰레기가 엄청 쏟아질 것이다. 전자 공보물 도입이나 재생종이 활용, 재생 현수막 사용, 현수막 수 줄이기 등 환경오염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대안을 찾아야 한다. 홍보물을 게시한 후보나 정당이 수거와 재활용을 책임지게 하는 선거법 개정도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홧김에 ‘방화’

지난 5일 강릉 옥계와 동해 일대를 불바다로 만든 산불 원인은 60세 남성 A씨의 방화였다. 그는 새벽에 토치로 자신의 집과 빈집, 창고에 불을 낸 데 이어 산에도 불을 질러 대형산불로 번지게 했다. A씨는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현행범으로 체포됐고, 이후 검찰에 송치됐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주민들이 수년 동안 나를 무시해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했다. A씨의 방화로 인한 산불은 89시간 52분 만에 꺼졌다. 피해 규모는 산림 4천㏊와 건물 100여채 등이다. A씨 어머니(86)도 화재 대피 중 넘어져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일부러 불을 지르는 방화(放火) 사건이 적지 않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방화는 2018년 1천478건, 2019년 1천345건, 2020년 1천210건 등 해마다 1천건 넘게 발생했다. 통계상 방화범은 중장년층남성보복이 많다. 2021 범죄분석을 보면, 2020년 검거된 방화범 10명 중 8명(83.9%)이 남성이었다. 연령별로는 5160세(29.7%), 4150세(21.8%), 61세 이상(15.9%) 등의 순이다. 범행 동기는 우발적(44.6%)이 가장 많고 기타(20.8%), 미상(15.6%), 현실불만(7.0%), 가정불화(5.3%) 등의 순이다. 방화범 대상 연구에선 보복과 범죄은닉, 스트레스 해소 등 구체적 동기가 거론됐다. 지난 2011년 울산 등지에서 연쇄적으로 산불을 낸 이른바 봉대산 불다람쥐 김씨는 경찰조사에서 산불을 내면 마음이 후련하고 편안하다고 진술했다. 그는 1994년~2011년 96차례 방화를 저질렀다. 불을 지른 사람이 또 불을 낸다. 2020년 자료에 따르면 방화 전과 9범 이상이 235명이다. 방화는 살인, 강도, 강간 등과 함께 강력범죄로 분류된다. 특히 방화는 특정인뿐 아니라 다른사람에게도 피해를 주는 묻지마 범죄의 특징을 갖고 있다. 때문에 강력범죄 중에서도 악질범죄다. 사회에 대한 불만, 자신의 처지상황에 대한 불만을 방화로 해소하는 일, 더이상 있어선 안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코로나 핑계는 끝나야 한다

코로나19가 3년째 기승이다. 이제 가까운 주변을 넘어 턱 밑까지 코로나19가 엄습한다. 최근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이틀째 30만명을 넘어섰다.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확진자 수가 2만명을 넘었다. 끝나가는 것 같으면 다시 시작하고, 이것이 정점인가 하면 어느새 더 높은 정점이 있었다 말하며 역대 기록을 갈아치운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속에 우리는 많이 지쳐가고 있다. 점점 피로감은 늘어가고, 곳곳에선 피로감이 경각심으로 발전하지 않고, 오히려 반 포기 상태인 될대로 돼라식으로 번지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곳곳에서 문제가 생긴다. 몸이 아파 간 병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돌아오는 시민들이 한둘이 아니다. 확진자가, 비확진자인 아픈 환자가 몇 시간동안 병원을 전전하다 안타까운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교육현장은 어떤가. 개학을 했는데 교사 확진자가 늘어 수업할 사람이 없는 상황까지 생긴다. 이러한 공백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자 원한다면 확진 교사가 수업을 해도 된다는 방안을 내놓는다. 코로나19와 싸워 이겨야하는 교사들에게 수업이란 짐을 더하는 발언 아닌가. 이 뿐이 아니다. 계속해 변화하는 방역지침 아래에서 방역공무원은 연장에 연장을 더한 격무를 하다가 혹자는 조직을 떠나고, 혹자는 건강을 잃기도 한다. 코로나19라는 상황이 특수한 상황이며,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코로나19 3년째를 맞고 있는 지금이라면 이제는 사회를 안정화시킬 방안들이 보다 내실있게 마련돼야 한다. 그동안 드러났던 문제점들을 주먹구구식으로, 땜질식으로 일단 막아놓고 볼 것이 아니라 기약없는 이 싸움이 계속될 것을 대비한 방법이 필요하다. 3년이다. 더이상은 곳곳서 드러나는 문제에 코로나19 때문에라고 핑계대는 일은 끝나야 한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중년 남성들의 로망 ‘자연인’

지난 2012년 한 종편채널에서 방영을 시작한 이후 10년 가까이 장수하고 있는 TV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이다가 어느덧 500회를 앞두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각박한 도시생활과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가장(家長)으로서의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온 중년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예능이 아닌 교양 프로그램임에도 평균 시청률 4%대 중후반의 꾸준한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 힐링과 치유의 삶을 살고 싶어하는 이 시대 아버지들의 마음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시끌벅적한 도심을 벗어나 대자연을 벗 삼아 심신의 안정과 여유를 찾고 싶은 이유 때문이다. 중년들의 사랑 덕에 이 프로그램은 주 1회 본방송 외에도 20여개의 케이블채널을 통해 하루 50회가 넘게 방영되고 있다. ▶출연자들의 면모도 다양하다. 30~40대 총각에서부터 80대 어르신, 가끔씩 등장하는 여성 자연인까지. 이들이 자연의 품에서 살아가는 이유도 다양하다. 도시생활에 적응 못 해 고향으로 돌아온 때도 있지만, 불치 또는 난치의 판정을 받고 자연을 찾은 병자(病者)들도 많다. 또한 사업 실패와 이혼, 은퇴 후 휴식의 삶을 살려는 중장년도 상당수다. ▶중년 남성들의 로망인 자연인 생활에 대해 대체적으로 여성들은 비판적인 시각이 높다. 출연자들 대부분이 가족을 도시에 남겨둔 채 혼자만 여유를 즐기는 무책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일부는 자녀 교육과 살림살이, 생계를 배우자 혼자 떠맡아야 하는 데 따른 비난도 있다. 이들을 무책임한 도피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년 남성들이 자연인 생활을 동경하는 것은 팍팍한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자연 속의 나홀로 삶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학창시절엔 입시 지옥, 그리고 치열한 취업 전쟁과 사회에서의 생존경쟁, 그리고 가족 부양의 책임감에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중년들. 그들에게 자연인 생활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자 실현하고 싶은 이상이다. 힘내라 우리 중년들이여. 그대들이 꿈꾸는 자연인 생활은 오늘도 열심히 살아가는 당신 곁에 파랑새처럼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한 표의 ‘거룩한’ 무게

찰스 1세는 가장 비참하게 왕관을 내려 놓은 영국 군주였다. 왕권(王權)은 신성하다며 의회와 맞섰다. 하지만 표결 결과는 찬성 361표, 반대 360표 등으로 나왔다. 바야흐로 왕권(王權)이 퇴조하고, 신권(臣權)이 강해지기 시작하던 1649년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란 도도한 물결이 영국을 바꿨다. 의회와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 빌럼이 연합해 제임스 2세를 퇴위 시키고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가 왕위에 올랐다. 오늘날 민주주의에 버금가는 시스템의 시발점이다. 어떠한 왕조도 의회를 무시하는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당시 작성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20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신대륙으로 넘어가 보자. 당시의 쟁점은 노예해방 문제였다. 이미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선언했지만, 그 후유증은 끊이질 않았다. 북부는 전통적으로 상공업이 발달한 반면, 남부는 농업이 주를 이뤘다. 이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건이기도 했다. 미국 의회에선 이 문제로 늘 격론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공화당과 민주당이 결정적으로 부딪쳤다.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였다. ▶당시 공화당의 루더포드 해이스(Rutherford Birchard Hayes) 후보는 노예해방을 정착시키겠다는 공약으로 선거에 나섰다. 민주당은 새뮤얼 틸던 후보(Samuel Jones Tilden)가 출마했다. 전쟁을 방불케 했던 선거전을 치루고 루더포드 해이스 후보는 선거인단 수 19명을 확보, 18명에 그친 새뮤얼 틸던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1876년이었다. ▶200년이란 시간 차를 두고 벌어진 두 사안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 표 차이였다는 점이다. 명예혁명과 권리장전이란 역사적인 대물결을 불러온 찰스 1세의 퇴위가 그랬다. 노예해방을 정착시킨 루더포드 해이스 후보의 대통령당선도 그랬다. 한 표의 거룩한 무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전국에서 진행된다. 지난 4~5일의 사전투표율이 36.9%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내가 행사한 한 표가 대한민국을 바꾼다. 그래서 복기(復棋)해 본 역사의 편린(片鱗)들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우크라이나 국제의용군

전쟁 때면 의용군이 등장한다. 국가 명령이나 징발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민군(民軍)이다. 우리나라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외침을 받았을 때 의병들이 나섰다. 조선말기의 의병은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됐다. 스페인 내전(1936~1939년)에는 국제의용군이 참여했다. 자유와 평등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 50여개국에서 3만5천명의 국제여단 병사가 나섰다. 조지 오웰, 어니스트 헤밍웨이,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앙드레 말로, 파블로 네루다, 시몬 베유 등 국적과 인종을 초월해 수많은 지식인과 젊은이들이 참전했다. 스페인 내전은 이념과 계급과 종교가 뒤엉켜 폭발한 전쟁으로 사회주의공산주의아나키즘파시즘 등 온갖 정치 이념들의 격전장이었다. 작가들의 참전으로 스페인 내전은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카탈로니아 찬가> 등 많은 걸작의 배경이 됐다. 러시아의 침공으로 우크라이나가 초토화되고,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국제의용군들이 우크라이나로 가고 있다. 러시아군에 맞서 싸우겠다고 나선 의용군이 2만여명에 달한다는 CNN 보도다. 미국과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가 군사 지원을 하지 않자 세계의 의용군이 나선 것이다. 미국에선 전역 군인 3천여명이 자원했다. 영국에서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 경력을 쌓은 공수부대 출신 전직 군인 150여명이 우크라이나로 갔고, 일본에서도 70여명이 참전 뜻을 밝혔다. 우리나라에선 해군특수전단(UDT) 출신 이근 전 대위 등이 출국했다. 현재 우크라이나는 정부가 지정한 여행금지 지역이다. 방문 및 체류 허가를 받지않고 그곳에 가면 1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이근 전 대위는 처벌을 받는다고 도와주지 않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면서 살아서 돌아간다면 그때 책임지고 (법에 따른) 처벌을 받겠다고 했다. 용기있는 행동이라는 의견과, 위험한 행동으로 국익을 저해할 것이라는 비판이 엇갈린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주권과 영토를 무력으로 짓밟은 비인도적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머리카락 기부

어머나하면, 장윤정의 노래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겠지만 어린 암환자를 위한 머리카락 나눔의 줄임말이다. 소아암은 아동 질병 사망원인 1위로, 10만명당 16명꼴로 발생한다. 국내 소아암 발병 환자는 연간 1천600여명에 이른다. 소아암 환자들은 통원치료와 재입원을 반복하며 완치까지 몇년씩 걸린다. 물론 완치가 어려운 경우도 있다. 어린 암환자들은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충격과 정서적 불안, 경제적 문제 등 여러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인기피증 및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항암치료를 하면 대부분의 머리카락이 빠진다. 항암치료를 받는 환아는 항균처리된 인모 100% 가발을 착용하는 게 좋지만, 몇백만원이나 돼 구입이 어려운 가족이 많다. 어머나 운동은 일반인들로부터 25cm 이상 머리카락 30가닥 이상을 기부받아 항암치료로 탈모가 심한 소아암 환아에게 특수가발을 제작, 기부하는 것이다. 소아용 가발 하나를 만들려면 1만5천~2만 가닥의 건강한 머리카락이 필요하다. 한 사람당 30개 머리카락을 기부할 경우 500명 이상이 참여해야 가발 하나가 만들어진다. 병원비 부담이 큰 소아암 환자들에게 머리카락 기부를 통해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다. 금전적 부담 없이 따뜻한 마음과 정성만 있으면 참여할 수 있다. 본보에 소개된 안양동안경찰서 범계지구대 소속 김선경 경사도 14년 동안 머리카락을 기부해왔다. 2009년 TV 다큐멘터리에서 소아암에 걸린 아이들이 항암치료 과정에서 머리카락이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 김 경사는 일부러 머리를 기르기 시작했다. 때로는 파마도 해보고 싶고, 염색도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신 가발을 필요로 할 아이들을 떠올리며 머릿결을 관리했다. 김 경사는 그동안 6번의 기부를 했다. 그의 선행은 동료 경찰과 주변에 알려져 머리카락을 기부하는 이들이 10명으로 늘었다. 병마와 싸우고있는 아이들에게 행복을 주고 응원도 하는 따뜻한 마음이 모아진 것이다. 아름다운 기부가 더욱 확산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2022년, 빵과 장미

1908년 2월28일 미국 뉴욕, 세계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1만5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가 거리로 나와 임금 인상, 노동환경 개선, 여성 투표권 쟁취를 외쳤다. 당시 전 세계는 산업혁명으로 많은 여성이 현장에서 일했으나 남성보다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다. 이들은 우리에게 빵(생존권)과 장미(참정권)를 달라고 외쳤다.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여성들의 삶이 나아졌다 할 수 있을까. 코로나19를 반영한 각종 통계지표에는 팬데믹 속 여성의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전업주부는 노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사일과 육아로 24시간 시달렸다.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코로나19 기간엔 35~39세 여성고용률이 계속 하락했다. 돌봄 부담으로 일터에 다시 복귀하지 못한 결과다. 경기여성연대 등 도내 여성단체들이 3일 <제18회 경기여성대회>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경기도 31개 시군의 여성 고위공무원 비율은 15%이며, 경기도의회 여성의원 비율은 22.9%, 국회의원 여성 비율은 19.7%에 그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은 이뤄졌다고 하지만 유리천장은 지금도 여전한 셈이다. ▶오는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구조적 여성 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라고 어느 대통령 후보가 말한 것처럼 요즘 시대에 웬 여성 평등이냐며 반문하는 이도 있을 테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OECD 주요회원국 중 남녀임금격차가 가장 크다. 여성은 남성보다 34.1% 정도 임금을 덜 받는다. 팬데믹 시대엔 가중된 가사노동과 생계의 위협을 떠안고 있다. 상황이 이렇지만, 여성 정책은 대선 정국에서 후보자들의 득표 손익계산으로 활용되며 젠더 이슈 프레임에 갇히는 데 그쳤다. 그러니 2022년을 사는 지금도, 책에서나 봐야 할 법한 진부한 이 말을 외칠 수밖에. 여성에게 빵과 장미를!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지지대] 국민의 뜻을 알고 있나요?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이 시구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동방규가 후한 시대 원제의 명으로 북쪽 흉노족에 시집간 궁녀 왕소군의 비운한 운명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지은 소군원(昭君怨)에서 나온다. 앞 구결은 이렇다.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궁녀 신분에서 왕의 애첩이 됐으나 아는 이 하나 없는 척박한 타향살이의 기구한 삶을 슬퍼하고 원망할 왕소군의 마음을 담았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이 시구를 인용한 이가 있다. 충청권의 맹주 김종필(JP) 당시 민주공화당 총재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장기집권이 무너진다. 국민은 유신의 어둡고 긴 터널이 끝났다고 환호했다. 이 상황에 JP는 봄이 왔으나 진짜 봄이 온 건 아니다며 극히 불안한 정국을 표현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국민의 민주주의 염원을 군사 쿠데타로 짓밟고 정권을 잡았다. 국민이 그토록 바라던 서울의 봄은 그렇게 얼어붙었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신군부에 대한 6월 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직선제로 시행됐다. 재야를 이끄는 거물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신군부의 권력 장악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여론에도 각자 단독 출마한다. 결국 유신정권에 저항하며 얻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훗날 자서전에서 단일화 실패의 소회를 밝혔다. 선거가 끝나자 국민은 큰 상실감에 빠졌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어찌 됐든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라도 (김영삼 후보에게) 양보를 해야 했었다. 지난 일이지만 너무도 후회스럽다. 20대 대선이 엿새 남았다. 여당과 제1야당 후보와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초박빙이다. 안갯속 정국이지만 정권교체 여론은 50% 이상으로 여전히 꺾일 줄 모른다. 그러기에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단일화 협상 결렬은 국민에게 실망 그 자체다. 요기 베라가 말했듯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가능성이 낮지만 후보 간 담판이 마지막 기회다. 분명한 사실은 단일화 실패에 따른 대선결과에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흔히 인용하는 정치는 생물이다는 말로 국민의 뜻을 농락해서는 안 된다. 김창학 정치부 부국장

[지지대] 실종성인법

어느 날 밤이었다/하늘에서 별들이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다/옆집 남자들이 우루루 떠났다. 조르주 무스타키(Georges Moustaki)의 나의 고독(Ma Solitude) 첫 구절이다. 씁쓸하다. ▶1960년대를 풍미했던 곡이다. 대중가요지만 가수 최희준의 하숙생 반열이다. 당시 프랑스는 68학생혁명이 휩쓸고 있었다. 서양의 젊은이들은 저항과 해방의 열망으로 들끓었다. 노조와의 대립 심화로 생산력 저하가 두드러졌다. 미국과 일본과 서독 등은 제조업 강세를 보이며 지구촌을 장악해 나갔다. ▶그 때 충격으로 기성세대들이 타격을 입었다. 집을 떠나는 가장들이 숱했다. 해변가에서 차디찬 주검으로 발견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 이집트 출신 샹송 가수는 이처럼 어수선한 현실을 어쿠스틱 선율에 실었다. ▶정말일까. 그럴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연기처럼 훌쩍 없어진다는 게 말이다. 그것도 어느 날 갑자기 말이다.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바람과 함께 사라진다의 주인공들도 아닌데 말이다. 특별한 천재지변이 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어제까지 인사를 나눴던 이웃들이 그런다면 어떨까. ▶코로나19 여파로 옆집 속내까지 알 수 없다. 그래도 이웃은 소중하다. 언젠가는 회복할 거라는 희망을 붙들고 산다. 어른들의 실종은 60여년을 훌쩍 뛰어 지금도 계속된다. ▶국내 어른 실종신고가 연평균 7만건에 이른다. 지난해 접수된 신고는 6만6천259건이다. 이 중 931명은 찾지 못했다. 같은 해 접수된 18세 미만 실종신고는 2만1천379건이다. 이 중 79명 소재가 파악되지 않았다. 성인 실종신고가 약 3배, 미발견 사례는 12배가량 많다. ▶정치권이 이를 타개하기 위해 법률 제정에 나섰다. 실종성인의 소재발견 및 지원에 관한 법률안이다. 국민의힘 이명수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성인 실종은 가출인으로 분류된다. 법적 근거가 미비, 체계적인 수사와 적시 대응이 어렵다. ▶법이 공포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사생활 침해논란과 채권자에 악용될 우려도 있다. 그래도 실종된 어른들은 꼭 찾아야 한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허리이기 때문이다. 대선 후에는 이 문제도 꼭 짚어봐야 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선거 유세송

대통령 선거에서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선거송이다.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선거송은 후보자와 유권자의 거리감을 좁혀주고 유대감을 더해준다. 후보자 이미지를 각인 시켜주는 홍보 역할도 톡톡히 해, 잘 만든 선거송 하나 열 공약 안 부럽다는 말도 있다. 선거송은 누구나 쉽게 즐기도록 간단하고, 재밌어야 하고, 후보와 잘 어울리도록 각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익숙한 노래, 입에 착착 붙는 가사, 흥겨운 멜로디가 포인트다. 선거송으로 가장 사랑받은 곡은 박상철의 트로트 무조건이다. 짜라짜라짠짜짜/ 무조건 무조건이야/ 내가 필요할 때 나를 불러줘/ 언제든지 달려갈게라는 노랫말은 정치인들의 마음을 대변한다. 많은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선거송으로 1997년 제15대 대선 때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 후보의 DJ와 춤을(원곡 DOC와 춤을)을 꼽는다. 김 전 대통령은 고령에 민주투사 이미지가 강했는데 노래 포인트인 관광버스 춤을 추는 파격적 연출로 젊은층과 가까워졌고 호감도를 높였다. 제20대 대선에서도 로고송을 통해 표심을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측 로고송은 10곡이다. 김연자의 아모르파티, 이찬원의 진또배기 등 트로트를 포함해 모모랜드의 뿜뿜 등 다양한 세대와 호흡할 수 있는 곡으로 꾸렸다. 이 후보 측은 아모르파티를 말해 뭐해 이재명뿐야/ 내 삶을 바꿔줄 사람/ 잘 생각해 단 한 번 선택이야/ 이재명 1번뿐야로 가사를 바꿨다. 진또배기도 이재명은 진짜배기/ 국민 일꾼/ 국민 머슴 등으로 개사했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영탁의 찐이야, 임영웅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 등 15곡으로 응수했다. 찐이야는 중독성 강한 원곡 가사를 거의 그대로 살려 찐찐찐찐 윤석열/ 찐하게 찍어주세요를 반복한다.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새 바람 불어오는 곳/ 그곳으로 가네/ 공정과 상식이 있는/ 편안한 나라로/ 기호 2번 윤석열 선택해로 가사를 바꿨다. 이번 선거에선 어떤 선거송이 유권자 마음을 공략해 당선을 이끌지 궁금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코미디냐, 스릴러냐

22일 저녁 11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토론회가 열렸다. 기호 1번부터 4번까지는 제외한 군소후보들을 대상으로. 아무리 군소후보라지만,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1박2일 토론회를 국민들에게 시청하라고 하는 선거관리위원회도 황당하지만, 토론회 내용은 더 황당하다. 먼저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가 포문을 연다. 지지율이 5%가 넘는 자신을 군소후보 토론회에 초청한 것이 말이 되느냐고 호통치던 허 후보는 공약 발표 시간에 돌연 박정희 대통령에게 받은 것이라며 혁대와 지휘봉을 꺼내 보였다. 이어 그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4개월 안에 민주당이 탄핵 시킬 것이고, 그러면 내가 또 4개월 만에 대통령 후보에 나와야 하니, 그냥 이번에 당선 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 누구보다 심각한 표정은 덤이다. 노동당 이백윤 후보는 원전에 찬성하는 윤석열 후보 집 지하에 핵폐기물을 예쁘게 저장해 놓겠다고 말했다. 늦은 밤 오랜만에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한 토론회다. 군소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을 보자.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는 전국민 기본소득 월 65만원을,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는 성인 국민 1인당 1억원 지급, 새누리당 옥은호 후보는 부정선거의 진실을 밝히겠다 한다. 통일한국당 이경희 후보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남북정상회담을 한단다. 이러한 공약은 국민이 가볍게 웃어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당장 1억원이 생긴다고 상상하니 흐뭇하기까지 하다. 군소후보란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선거 입후보자를 뜻한다. 이들의 토론회를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이유다. 만약 이들 중 차기 대통령이 나온다고 생각해 보자. 갑자기 토론회의 장르가 스릴러로 변한다. 등골이 오싹하다. 가장 무서운건, 기호 1번부터 4번까지의 토론회도 장르가 범죄스릴러 장르라는 점이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지지대] 코로나, 예방이 최고

코로나19 PCR 검사결과 양성입니다. 이 같은 내용으로 시작하는 보건소의 문자메시지로 시작한 7일간의 코로나19 재택치료. 처음 문자메시지를 받았을 땐 어리둥절했다. 이 상황이 진짜인가 싶을 정도로. 지난 2년 동안 주변에 수많은 코로나19 확진자를 봐왔고, 각종 방역 수칙 등에 대해서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해왔지만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생각만 머리에 맴돌았다. 우선 회사에 연락해 확진 사실을 알린 뒤, 큰 죄책감이 밀려왔다. 당장 내가 일을 하지 못해 선후배들이 고생할테고, 확진 전에 날 만난 사람들은 혹시 모를 불안감에 검사를 해야 할 테니. 앞서 가족들이 확진 판정을 받았을 때 이렇게 해 걱정하지마라고 했던 것들이 정작 내게 닥치자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 수록 몸에선 열이 나고 몸살과 기침 증세가 심해졌지만, 여전히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생각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결론은 그냥 집에서 나가지 않는 것 뿐. 그냥 집에서 약먹고 얌전히 누워있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확진 판정 후 4일째 보건소에서 온 또다른 문자메시지. 역학조사 대상이란다. 몸살 때문에 힘들지만 셀프로 역학조사서를 작성하며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5일째 저녁에야 드디어 보건소의 전화가 걸려왔다. 목 놓아 기다리던 전화다. 격리는 언제까지인지,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등 궁금한게 잔뜩이다. 이미 알고 있지만, 재차 확인하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어쨌건 결론은 7일 동안 집콕이다. 다행히 특별한 문제 없이 일주일여가 지나 스스로 완치 판정을 내리고 집 밖으로 나왔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방역 수칙을 잘 지켜서 코로나19에 감염을 예방하자. 막상 경험해보니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들다. 최선은 코로나19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일촉즉발’ 우크라이나

찬란한 푸른빛의 바닷물을 보면 가슴이 설렌다. 우크라이나 농민 시인 타라스 세프첸코의 흑해, 나의 고향의 첫 귀절이다. 이 나라의 앞 바다인 흑해(黑海)는 크림반도 앞으로 펼쳐졌다. 바닷물이 검다고 붙여진 이름은 아니었다. ▶바닷물 색깔이 푸른데도 어떤 이유로 검은 바다로 불리웠을까. 크림반도 북쪽에 있다는 뜻에서 그렇다고 한다. 크림반도 남쪽에는 실제로 백해(白海)가 있다. 흥미로운 반전이다. ▶이곳의 기후는 동유럽보다는 되레 지중해와 비슷하다. 한번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그 아련한 아름다움에 평생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흑해는 유럽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휴양지다. 그만큼 절경(絕景)이다. 첫사랑을 만난 것 같은 설렘이 가득한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의 문호 막심 고리키의 표현이다. ▶키예프는 풍광이 빼어난 크림반도 한복판에 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다. 도시 한복판으로는 드네프르강이 흐른다. 시내를 거닐다 보면 중세 유럽으로 날아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고 한다. 성 소피아 교회나 페체르스카야 대수도원 등 역사적인 건축물도 수두룩하다.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그만큼 아름답다. ▶이곳에는 교과서에서 배웠던 낯익은 지명(地名)들도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기 위해 강대국 정상들이 모였던 얄타가 그렇다. 이 도시도 흑해에 둘러싸인 크림반도 남해안의 전형적인 휴양 도시다. 자작나무 숲으로 유명한 오뎃사라는 도시도 이곳에 있다. ▶최근 크림반도에 전운(戰雲)이 잔뜩 드리워져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가입을 놓고 서방과 갈등을 빚고 있으면서다. 키예프를 넘어 다수의 주요 도시가 표적으로 포함됐다. 얄타와 오뎃사 등도 공격 받을 수 있을 수 있다고 외신은 전하고 있다. 러시아가 침공한다면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이 있는 돈바스는 어떨까. 외신은 러시아가 이미 돈바스 분리주의 공화국 독립을 승인했다고 타전하고 있다. ▶이곳에서 전쟁이 발생하면 크림반도의 빼어난 풍광들도 송두리째 사라진다. 제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 독감 대유행이 불과 100여년 전 동유럽에서 비롯됐다. 특별한 노력이 없이는 역사는 되풀이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일촉즉발의 사태를 지켜보는 마음이 편하지 않는 까닭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4050 중년남의 고독사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돈이 많든 적든, 많이 배웠든 못배웠든 누구나 죽는다라는 명제를 보면, 죽음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떻게 죽었느냐를 보면, 평등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홀로 고독하게 맞는 죽음이 그렇다.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네번째로 높다. OECD 국가 중엔 1위다.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도 OECD 국가 중 1위다. 매년 고독사무연고사가 증가하고 있다. 고독사는 사망 시점에서 홀로 죽는 것이고, 무연고사는 장례 시점에서 시신을 인도받을 이가 없는 것이다. 고독사나 무연고사 모두 노인 인구가 많다. 최근엔 중년 남성의 고독사도 늘었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실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 6월까지 무연고 사망한 4050대 중장년층 남성의 수가 2천735명에 이른다. 중장년 남성은 가족해체 과정에서 고립되는 경우가 많아 고독사 비율이 높다. 10년 이상 고독사 현장, 강력범죄 현장 등의 특수청소를 해온 바이오해저드 대표는 지난 1년간 청소한 고독사 현장의 90% 정도가 4050대 남성 고독사 현장이었다며 코로나19 이후 그 수가 20% 이상 늘었다고 했다. 중장년 남성의 경우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좌절감 등을 느낀다. 그런 상황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질병이 겹치면 자살 등 고독사가 발생한다. 안타깝고 씁쓸한 죽음이다. 중년 남성의 고독사에 대해 사회적 안전망과 대책이 사실상 없다. 일용직으로 겨우 살아가는 이도 많은데, 기본적으로 사회활동이 가능한 연령으로 인식돼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에 대한 취업 지원과 심리정신적 치료 같은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 한국의 빈부 양극화는 심각하다. 세계가 주목한 오징어게임이나 기생충은 우리 사회의 단면일 수 있다. 지난해 유엔무역개발회의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했지만, 많은 국민이 불평등 선진국으로 생각한다. 3월9일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이 온갖 공약을 쏟아낸다. 아무말 대잔치라도 하는 듯하다. 사회를 따뜻한 시선으로 보며 중장년노년층의 고독사와 자살에 관심을 갖고 대책을 강구하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좀도둑 조세형

제가 훔친 물건은 공소장에 적힌 5억이 아니라 10억입니다. 훔친 액수를 줄이고 선처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더 훔쳤다고 주장한 간 큰 도둑, 대도(大盜)라 불린 조세형이다. 1970~80년대 조씨는 부유층과 유력인사의 집을 터는 등 전대미문의 절도행각을 벌여 유명세를 탔다. 당시 피해자들은 현직 부총리, 전 청와대 경호실장, 전 국회의원, 재벌그룹 2세까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한민국 상위 0.01%였다. 조세형이 훔친 물건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시계, 5.75캐럿 물방울 다이아몬드 등 신문 한 면을 빼곡히 채울 정도였다. 서민들은 허탈감에 빠졌고 비난의 화살은 절도범이 아닌 피해자들에게 쏠렸다. 그는 훔친 금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도둑은 영웅이 됐고, 대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2년 구속돼 15년의 수감생활을 마친 조세형은 1998년 출소했다. 꽃다발까지 받으며 나타난 그에게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이후 선교활동을 하며 종교인으로서 새 삶을 사는 듯 했다. 개과천선의 아이콘으로 신앙간증과 강의 요청이 이어졌고, TV토크쇼에도 출연했다. 결혼도 해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조씨의 도둑질은 다시 시작됐다. 2001년 선교 차 방문한 일본에서 고급주택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고,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최근에는 2019년 3월부터 6월까지 6차례에 걸쳐 서울 일대에서 1천200만원대 금품을 훔쳐 그해 6월 구속됐다. 2년6개월 복역 후 지난해 12월 출소한 그는 두달도 안돼 다시 구속됐다. 조씨는 이달 초까지 용인의 고급 전원주택 등 3곳에서 귀금속과 현금, 명품가방 등 3천300여 만원 상당 물건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전과 20여범으로, 인생의 절반인 40년 이상을 감옥에서 살았다. 한때 대도로 불렸으나 초라한 좀도둑 신세로 전락한 조세형씨(84), 왜 범행을 저질렀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색에 갇힐 필요는 없다

색(色)이라는 단어는 다양한 뜻을 품고 있다. 빛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결과로 나타나는 사물의 밝고 어두움의 물리적현상, 빨간색 파란색 같은 것을 말하는 뜻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색이 곧 순위인, 색에 따라 울고 웃는, 누군가의 피땀이 색으로 표출되는 2022년 베이징동계올림픽이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다. 우리 대표팀은 당초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 종합순위 15위를 목표로 했다. 17일 현재 우리는 목표를 이뤘다. 정확히는 금 2개, 은 4개, 동 1개로 14위니, 목표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중이다. 동계스포츠에서 각종 어려운 상황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는 선수들이 죽을 각오를 다해 이뤄낸 성과일 것이다. 선수들은 자신이 준비한 그동안의 상황이 있으니 색이 중요할지 모르지만, 이들의 노력 앞에 관객까지 색에 갇힐 필요는 없다. 어떤 색이건 간에 메달을 목에 건 선수에게는 축하를, 메달을 놓친 선수에게는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응원을 보내면 그 뿐이다. 그런데 금메달이 아닌 다른 색은 중요치 않다는 듯 곳곳에서 겨우 은메달이라니, 전에는 잘했는데 같은 반응들이 나온다. 이를 의식한 듯 중계진들도 금이 아닌 메달이 나오면 이것도 대단한 겁니다라는 말을 부연한다. 어제 쇼트트랙에서 12년 만에 남자계주 5천m로 은메달을 목에 건 선수단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기도 했다. 올림픽을 세계인의 축제라고들 한다. 이번 올림픽을 둘러싼 각종 논란은 논외로 하고, 축제에서까지 순위를 가르는 색에 갇힐 필요가 있을까. 그저 우리 선수들의 경기에 응원으로나마 힘을 더하고, 좋은 성적을 낸 선수에게는 축하의 박수를, 안타깝게 제 기량을 발휘 못 한 선수에게는 위로의 박수를 치면 그 뿐 아닐까. 분명한 것은 우리 선수들 모두, 색에 상관없이, 그리고 그 색을 지녔느냐에 상관없이 코로나19에 지친 국민들에게 최고의 위로와 선물을 했다는 사실이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옥죄어 오는 인플레이션의 공포

물가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화두다. ▶주부들은 장을 볼 때마다 높아진 밥상 물가로 애환을 토로한다. 식자재, 농축산물, 과일 등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서민을 대표하는 술인 소주까지 가격이 인상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소시민들은 물론 자영업자까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한주정판매가 소주의 주원료인 주정(에탄올)을 7.8% 올리면서 10년 만에 가격이 인상한 탓이다. 물가 상승이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의 힘겨운 삶을 옥죄고 있다. ▶밖으로 눈을 돌려도 상황이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코로나19로 인한 급격한 유동성 증가와 소비 수요 증가가 수요와 공급 간의 불균형을 심화시켰고, 이로 인한 글로벌 공급망의 병목현상은 물가 인상에 영향을 끼쳤다. 최근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 가능성이 커지며 휘발유, 원자재 가격 등이 치솟았다. 실제 전쟁이 발발한다면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유연탄(연료탄) 등 원자재 가격 상승세도 심상치 않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방법 중 하나가 금리인상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인상하는 기조는 확정한 듯하지만, 정작 문제는 금리 인상 범위와 시기, 빈도 등이다. 전해지는 뉴스의 방향은 매일매일 바뀐다. 며칠 전 미국의 1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40년 만에 최고치인 7.5% 오른 것으로 나타났을 때,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연준이 당초 예상보다 더 빈번하게 기준 금리를 올리고 인상 폭도 확대할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다만 중앙은행들의 인플레이션 방지 기본정책이라 할 수 있는 금리인상이 만능열쇠는 아니다. 자칫 코로나19로 가뜩이나 취약해진 경제를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어야만 한다. ▶대내외적인 상황으로 인플레이션 문제는 세계 각국마다 고민이 깊다. 급기야 경제활동이 침체하고 있음에도 지속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공포까지 드리우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 정부의 적절한 대응은 물론 개개인의 현명한 선택이 요구되는, 변동과 불확실성의 시대다. 이명관 경제부장

[지지대] 회색 코뿔소의 경고?

머리 꼭대기에 뿔이 난 동물 이름은? 너무 막연한가. 피부가 두껍고 딱딱하다. 그래도 헷갈리면 이건 어떨까. 꼬리에 굳은 털이 있다. 눈치가 빠르다면 코뿔소가 그려질 터이다. 그런데 녀석의 사촌은 소가 아니라, 말이다. 반전이다. ▶코뿔소에 대한 오해는 이 뿐만이 아니다. 흰 코뿔소(White Rhino)와 검은 코뿔소(Black Rhino), 회색 코뿔소(Gray Rhino).... 하지만 모든 코뿔소 뿔의 색깔은 회색이다. 좀 더 엷은 회색이면 회색 코뿔소, 짙은 회색이면 검은 코뿔소라고 부를 따름이다. 두 번째 반전이다. ▶서양인들은 음흉하고 두루뭉술한 존재를 가리킬 때 회색 코뿔소라고 부른다. 그 걷잡을 수 없는 뿔의 색깔 탓이다. 영어로 회색 코뿔소 같다(Like a Gray Rhino)는 표현은 상대방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회의 석상에서 상대방이 이렇게 말한다면 그 협상은 포기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경제를 두고 회색 코뿔소가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경보음이 들린다. 미국의 긴축정책 가속과 중국의 급격한 경기둔화 등이 우리 경제와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내 부동산 거품 붕괴와 가계 부채 부실 표면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경제용어로 회색 코뿔소는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 요인을 뜻한다. ▶처음 이 표현을 사용한 이는 경제분석가 미셸 부커다. 지난 2013년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다. 예상하기 어렵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주는 블랙 스완(Black Swan)과 대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긴축에 대비하라고 신흥국에 주문했다. 연준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낸다면? 수요와 교역 둔화를 동반하면서 신흥시장 자본 유출과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높아진 금리를 쫓아 돈이 빠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각국 환율이 급등할 수도 있다. ▶연준의 긴축 속도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은은 최근 기준금리를 0.25%p 올리며 물가급등 억제를 위한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내 금리 상승은 가계 부채, 주택 가격 등과 맞물려 경제 불안 요인으로 작용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선정국이지만, 경제당국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고령층 계속고용제도

정부가 만 60세 정년 이후에도 계속 일할 수 있도록 고령자 계속고용제도를 추진한다. 정년 이후 일정 연령까지 고용 연장 의무를 부과하되 재고용, 정년 연장, 정년 폐지 등 연장 방식은 기업이 선택하도록 하는 제도다. 고령층에게 일할 기회를 연장시켜 주고, 기업의 일손 부족도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인구 재난 상황에서 정부가 꺼내 든 고육지책이다. 정부는 2019년에도 이 제도를 추진한 바 있다. 당시 경영계는 이는 정년연장 추진과 같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인 고령자의 계속고용은 기업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반대했다. 실제 기업 10곳 중 6곳은 근로자 정년 연장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총이 지난해 고령자 고용정책을 조사한 결과, 응답 기업 중 58.2%가 60세를 초과하는 정년 연장에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이들 중 50.3%는 인건비를 가장 큰 부담으로 꼽았다.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를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2020년 발표한 정년 연장이 고령층과 청년층 고용에 미치는 효과에서 10~999인 규모의 사업체에서 10명의 정년을 연장하면 15~29세 고용이 약 2명 감소한다고 분석했다. 경영계가 고임금 고령자의 계속 고용에 난색을 보이고, 청년층이 기성세대가 젊은이 일자리를 빼앗아 간다고 반발하는 분위기 속에 실제 도입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부는 60세 정년을 법적으로 당장 65세로 올리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정년 연장 법제화가 시간이 걸리는 만큼 정년 연장과 비슷한 효과를 내는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생산인구 감소,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에서 고령층 노동력 활용을 확대하는 것은 옮은 방향이다. 하지만 반대여론이 높은 만큼, 전문가들 조언처럼 임금피크제 강화, 연공서열식 임금체계 개혁을 전제로 한 고용 연장 논의가 필요하다. 또 청년 일자리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선에서 고용 연장을 논의해야 한다. 세대 갈등을 야기하는 일이 없게 사회적 합의는 필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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