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저녁 11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의 토론회가 열렸다. 기호 1번부터 4번까지는 제외한 군소후보들을 대상으로.
아무리 군소후보라지만, 밤 11시부터 새벽 1시까지 1박2일 토론회를 국민들에게 시청하라고 하는 선거관리위원회도 황당하지만, 토론회 내용은 더 황당하다.
먼저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가 포문을 연다. 지지율이 5%가 넘는 자신을 군소후보 토론회에 초청한 것이 말이 되느냐고 호통치던 허 후보는 공약 발표 시간에 돌연 박정희 대통령에게 받은 것이라며 혁대와 지휘봉을 꺼내 보였다. 이어 그는 “윤석열 후보가 당선되면 4개월 안에 민주당이 탄핵 시킬 것이고, 그러면 내가 또 4개월 만에 대통령 후보에 나와야 하니, 그냥 이번에 당선 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 누구보다 심각한 표정은 덤이다. 노동당 이백윤 후보는 “원전에 찬성하는 윤석열 후보 집 지하에 핵폐기물을 예쁘게 저장해 놓겠다”고 말했다. 늦은 밤 오랜만에 국민에게 웃음을 선사한 토론회다.
군소후보들이 내놓은 공약을 보자. 기본소득당 오준호 후보는 전국민 기본소득 월 65만원을, 국가혁명당 허경영 후보는 성인 국민 1인당 1억원 지급, 새누리당 옥은호 후보는 부정선거의 진실을 밝히겠다 한다. 통일한국당 이경희 후보는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남북정상회담을 한단다.
이러한 공약은 국민이 가볍게 웃어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당장 1억원이 생긴다고 상상하니 흐뭇하기까지 하다.
군소후보란 당선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선거 입후보자를 뜻한다. 이들의 토론회를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이유다. 만약 이들 중 차기 대통령이 나온다고 생각해 보자. 갑자기 토론회의 장르가 스릴러로 변한다. 등골이 오싹하다.
가장 무서운건, 기호 1번부터 4번까지의 토론회도 장르가 범죄스릴러 장르라는 점이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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