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훔친 물건은 공소장에 적힌 5억이 아니라 10억입니다.” 훔친 액수를 줄이고 선처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더 훔쳤다’고 주장한 간 큰 도둑, ‘대도(大盜)’라 불린 조세형이다. 1970~80년대 조씨는 부유층과 유력인사의 집을 터는 등 전대미문의 절도행각을 벌여 유명세를 탔다. 당시 피해자들은 현직 부총리, 전 청와대 경호실장, 전 국회의원, 재벌그룹 2세까지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한민국 상위 0.01%였다.
조세형이 훔친 물건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명품시계, 5.75캐럿 물방울 다이아몬드 등 신문 한 면을 빼곡히 채울 정도였다. 서민들은 허탈감에 빠졌고 비난의 화살은 절도범이 아닌 피해자들에게 쏠렸다. 그는 훔친 금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도둑은 영웅이 됐고, ‘대도’라는 별명을 얻었다.
1982년 구속돼 15년의 수감생활을 마친 조세형은 1998년 출소했다. 꽃다발까지 받으며 나타난 그에게 플래시 세례가 쏟아졌다. 이후 선교활동을 하며 종교인으로서 새 삶을 사는 듯 했다. 개과천선의 아이콘으로 신앙간증과 강의 요청이 이어졌고, TV토크쇼에도 출연했다. 결혼도 해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했던가. 조씨의 도둑질은 다시 시작됐다. 2001년 선교 차 방문한 일본에서 고급주택을 털다 경찰에 붙잡혔고, 징역 3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최근에는 2019년 3월부터 6월까지 6차례에 걸쳐 서울 일대에서 1천200만원대 금품을 훔쳐 그해 6월 구속됐다. 2년6개월 복역 후 지난해 12월 출소한 그는 두달도 안돼 다시 구속됐다.
조씨는 이달 초까지 용인의 고급 전원주택 등 3곳에서 귀금속과 현금, 명품가방 등 3천300여 만원 상당 물건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전과 20여범으로, 인생의 절반인 40년 이상을 감옥에서 살았다. 한때 대도로 불렸으나 초라한 좀도둑 신세로 전락한 조세형씨(84), “왜 범행을 저질렀냐”는 질문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이연섭 논설위원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