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전어지

풍석(楓石) 서유구 선생은 실학자다. 하지만 역사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문신(文臣)으로만 알려진 탓이다. 홍문관 부제학과 수원부 유수 등을 역임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뜬금없이 풍석 선생을 거론한 까닭은 명쾌하다. 18세기 조선에는 상당히 많은 실학자가 있었음을 일깨워주기 위해서다. 새삼스런 얘기는 아니지만 말이다. 당시 재야(在野) 선비들의 숱한 저서들이 이를 입증해준다. 컴퓨터가 있었다면 훨씬 더 체계적이었을 연구들도 수두룩했다. ▶모든 식자층이 성리학에만 천착하지만은 않았다. 서 양문명은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었다. 정조도 돋보기 안경을 썼던 시절이다. 실학은 수세기가 흐른 뒤 학문적 편의에 의해 붙여진 명칭일 뿐이다. 당시에는 실용주의 학풍으로 풍미(風靡) 됐었다. 바람에 초목이 쓰러지듯, 그 같은 학풍이 널리 사회에 퍼져 있었음이다. ▶풍석 선생은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과 그 의 형님이신 손암(巽庵) 정약전 선생과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 손암 선생이 흑산 도로 유배를 가 쓴 책이 자산어보(玆山 魚譜)다. 바닷물고기에 대한 섬세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근대적인 동식물분 류법이 적용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렇다면, 바닷물고기에 민물고기까지 포함된 기록은 없었을까. 풍석 선생의 전 어지(佃漁志)는 바닷고기에 민물고기까지 관찰한 내용으로 꾸려졌다. 그래서 의미가 더 크다. 책은 선생의 역작 임원 경제지(林園經濟志)에 포함됐다. 백과사전 격인 저서에는 물고기는 물론 그물과어망, 통발, 낚시와 작살 등 어구(漁具)들도 수록됐다. 학문적 차원에서 보다 균형 잡힌 체계적인 어류학 저술이다. ▶서유구 선생의 실용적인 학풍은 정조가 설립한 학문연구기관인 규장각에 초계 문신으로 근무하면서 연마됐다. 많은 편찬사업에 참여했고, 여러 학문적인 경험도 공유했다. 규장각에는 제2, 제3의 서 유구 선생들이 숱했다. 그는 전어지 서 문에 민생은 군자(君子)가 백성을 위해 풍요로움을 제시해야 하는 영역이라는 정치적인 메시지도 담았다. ▶최근 전어지 한글 번역이 완간됐다. 자산어보는 영화까지 만들어지는 등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전어지는 그렇지 못해 늘어놓는 푸념이다. 실학의 외연도 이젠 더 넓힐 때가 되지 않았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반려동물 간호사

반려동물 인구 1천500만명, 국민 4명 중 1명이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시대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면서 펫팸족, 펫맘이란 용어가 일상화 됐다. 반려동물에 대한 복지, 서비스 등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관련 산업도 계속 확장하고 있다. 반려동물과 관련한 시장 또는 산업을 일컫는 펫코노미(Petconomy) 성장세가 두드러진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1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반려동물 관련 시장 규모가 6조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했고, 향후에도 연간 10%대 성장을 예측했다. 펫코노미 시장은 펫 택시, 유치원, 장례서비스, IT 결합상품 등 새로운 서비스가 출시되고 있다. 병원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펫보험이 각광을 받고, 주인 사망 후에 홀로 남겨질 반려동물을 위한 신탁상품까지 나왔다. 반려동물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와 직업이 생겨나면서 지방자치단체와 대학에선 인력 양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에 나서고 있다. 지자체들은 펫 생활미용지도사, 반려동물 수제음식지도사, 반려견 손뜨개용품 제작 과정 등을 개설했다. 반려동물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에선 수의테크니션, 펫푸드, 애견미용, 동물행동교정 이론실습 과정 등 보다 전문적인 교육을 한다. 대학들도 반려동물과, 반려동물보건과, 반려동물보건관리과, 동물바이오헬스학과 등의 이름으로 학과를 개설하고 있다. 반려동물의 간호, 미용, 식음료 및 관련 산업에 필요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서다. 동물바이오헬스학과의 경우 동물임상, 동물약품 및 의료기기 등까지 망라한다. 정부가 동물보건사 제도를 도입한다. 동물보건사는 동물병원에서 수의사를 도와 동물 간호, 진료 보조 등을 하는 반려동물 간호사다. 내년 2월 제1회 동물보건사 자격시험을 시행한다. 반려동물이 가족 구성원이 됐으니 생명과 건강을 다루는 직업에 전문성을 요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 공인 자격제도로 동물 보호는 물론 새로운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게 됐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국민지원금 노리는 ‘스미싱’

스미싱(SMishing)은 문자메시지(SMS)와 피싱(Phishing)의 합성어다. 정부기관이나 은행, 거래처 등을 사칭해 인터넷 주소가 첨부된 문자메시지를 스마트폰 이용자에게 보내고, 이를 클릭하면 악성코드가 폰에 자동 설치돼 소액결제나 개인금융정보를 탈취하는 범죄다. 소비자에게 신청하지도 않은 대출의 승인 대상자로 선정됐다고 안내하거나, 정부의 소상공인 및 서민금융 지원제도를 빙자해 소비자를 현혹하는 등 대출 지원을 빙자한 스미싱이 크게 늘어났다. 은행들이 가계부채 증가세를 꺾기 위해 대출 금리를 올리는 등 전방위적인 대출 규제에 나서면서 은행권 대출이 녹록지 않은 소비자를 겨냥한 스미싱 범죄도 기승이다. 이에 은행들이 자사 고객을 대상으로 유의 안내 문자를 발송하고 있다. 최근엔 코로나 상생 국민지원금 신청지급과 맞물려 정부나 카드사를 사칭한 스미싱이 증가하고 있다. 국민지원금 지급대상금액 안내, 카드 사용 승인, 지원금 충전 등의 내용으로 정부카드사를 사칭한 스미싱이 늘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원금 신청 안내] 귀하는 국민지원금 신청 대상자에 해당되므로 온라인 지원센터에서 지원하시기 바랍니다 귀하는 국민지원금 대상자입니다. 신청하기를 클릭하세요라는 식의 문자가 오면 스미싱을 의심해야 한다. 어디서 보냈는지 출처가 불분명하거나 의심스러운 인터넷 주소가 포함된 문자는 클릭하면 안된다. 이미 열람을 했다면, 문자 내 인터넷주소(URL)를 누르지 말아야 한다. 스미싱 의심 문자를 받은 경우 한국인터넷진흥원(국번없이 118)에서 상담받을 수 있다. 국민지원금과 관련해 정부는 국민비서 서비스에서 문자메시지 알림을 별도로 신청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문자나 SNS로 신청 기간ㆍ지원 여부 등을 먼저 안내하지 않는다. 경찰청의 사이버범죄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스미싱 발생 건수는 822건으로 2019년 207건 대비 297.1% 증가했다. 올해는 더 늘 것으로 예측한다. 쏟아지는 문자 폭탄에 진짜ㆍ가짜를 구별하기 어렵다. 금융관련 문자는 무조건 지워버리는게 피해를 안보는 방법인 것 같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송어’와 ‘숭어’

슈베르트의 가곡 송어는 명곡이다. Quintett Die Forelle Op. 114가 정식 명칭이다. 1819년 탄생했다. 4악장 피아노 5중주곡 A장조의 실내악곡이다. 4악장 속에 송어가 들어 있다. 선율이 곱다. ▶곡의 얼개는 어떨까. 송어들이 시냇가에서 헤엄치며 놀고 있다. 어부가 그물을 던진다. 물이 맑아 잡히진 않는다. 어부는 시냇물을 어지럽히고 나서야 포획에 성공한다. 안타깝게 이를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어수선한 사회에서 설쳐대는 세력의 속임수를 빗대고 있다. ▶송어는 연어와 비슷하지만, 더 둥글다. 등쪽은 농남색이고, 배쪽은 은백색이다. 옆구리에 암갈색 반점이 있다. 번식기에 수컷은 주둥이가 연장되고 몸 측면에 복숭아색의 불규칙한 무늬가 나타난다. 몸길이는 60㎝ 정도다. 경남 이북 동해안에 주로 서식한다. ▶다시 작품 속으로 돌아가 보자. 가곡 송어는 일화가 많다. 그중에서 제목의 혼동이 으뜸이다. 필자가 어렸을 적에는 송어가 아니라, 숭어로 배웠다. 교과서에도 그렇게 기록됐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송어는 민물고기이고, 숭어는 바닷고기인데 말이다. ▶슈베르트의 가곡 제목이 숭어는 틀리고 송어가 맞는 까닭은 명쾌하다. 노랫말에 맑은 시내에라는 귀절이 있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최초 번역자가 저지른 실수로 알려졌다. 이때부터 온 국민이 송어를 숭어로 알고 지낸 셈이다. 제목이 송어로 정정된 건 불과 10여년 전이다. ▶말이 나온 김에 숭어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숭어는 전체적으로 둥글고 길다. 마주 보고 있으면 마치 미소를 짓는 듯 온화해 보인다. 성장하면 몸길이가 120㎝에 무게는 8㎏ 정도다. ▶숭어는 국내 서식하는 물고기 중 방언과 속담 등이 가장 많다. 서남해 해안가에선 큰 것을 숭어, 작은 것을 눈부럽떼기라고 부른다. 크기가 작다고 무시해 너도 숭어냐 했더니 성이 난 녀석이 눈에 힘을 주고 부릅떠 붙여졌다. 숭어가 뛰니까 망둥어도 뛴다는 속담도 있다. 코로나 4차유행에 아프간 사태 등으로 뒤숭숭한데 뭔 물고기 타령이냐고 따지는 이들에게 되묻는다. 일본에 의해 잘못 붙여진 게 어디 서양 가곡 이름뿐이겠는가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추석물가

물가. 추석을 앞둔 이맘때쯤, 매번 반복되는 이슈다. 올해도 많이 올랐다. 올해 전통시장에서 장을 봐 4인 가족 기준 추석 차례상을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은 26만1천270원으로 작년 추석 때보다 8.9% 증가한다고 한국물가협회가 밝혔다. 어떤 것들이 올랐고 떨어졌는지도 관심사다. 달걀(특란)은 30개 기준 7천130원으로 44.3% 뛰었다. 쇠고기(국거리 양지 400g)는 36.8% 비싸졌다. 곶감(10개)도 39.3%, 대추(400g)가 14.9% 올랐다. 배는 5개 기준 2만3천320원으로 15.5% 올랐으나 사과는 5.7% 떨어졌다. 과거와 달라진 게 있다면 지난해에 이어 코로나와 함께하는 추석이란 점이다. 올해는 국민지원금 지급으로 현금이 시중에 더 많이 돈다. 전국에 11조원 정도가 풀린다. 경기도로 한정하면 3조4천억원이다. 전체 30% 이상에 달한다. 재래시장을 포함한 자영업자들에겐 기회이자 희망일 것이다. 물가 오름세를 자극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올해 들어 물가상승률은 가파르다. 1월부터 3월까지는 0.61.5%에서 움직였으나 4월 이후에는 2.32.6%로 확 높아졌다. 지난달에도 2020년 8월 대비 2.6% 올랐다. 시장의 예상을 크게 넘어섰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그나마 코로나에 억눌렸던 소비가 살아나는 분위기였지만, 국제유가가 오르고 농축수산물의 생산원가가 뛰면서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다는 이억원 기획재정부 1차관의 최근 발언도 가볍게 여길 수만은 없다. 서민들은 아우성이다. 오이 가격이 급등, 남편이 좋아하는 오이소박이를 담그는데만 2배 이상의 돈이 든다고 푸념이다. 장보기가 겁이 난다는 것이다. 차라리 배달 음식 시켜 먹는 게 만들어 먹는 것보다 싸게 먹힌다는 얘기까지 나올 정도다. 물가 걱정 없는 풍성한 한가위는 언제쯤 맞을 수 있을까. 이명관 경제부장

[지지대] 장 폴 벨몽도

서울 한복판에 있었다. 아날로그시대 이곳에서 프랑스 영화 한 편 정도는 봤겠다. 꼭 불문학도((佛文學徒)가 아니더라도 말이다. 당시 대학생들의 단골 데이트코스이기도 했다. 주한 프랑스대사관이 운영하던 프랑스 문화원 얘기다. 경복궁 동문 건너편이었겠다. 지금도 있을까. ▶중국문학을 전공했던 필자도 이곳에서 두자릿수가 넘는 프랑스 영화들을 봤었다. 그중에 지금까지도 기억나는 작품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젊은이들의 방황을 그렸다. 연신 줄담배를 피우는 청년의 일그러진 얼굴. 영화는 그런 장면이 클로즈업되면서 시작됐었다. 네 멋대로 하라였다. ▶이 영화는 1960년대 프랑스를 강타했던 영화운동이었던 누벨 바그(Nouvelle Vague)의 산물이었다. 영어로 새로운 물결(New Wave)이란 뜻의 이 운동은 프랑스는 물론 전 유럽으로 번져나갔다. 보수적이고 반동적이었던 당시의 영화산업에 대한 저항이었다. 필연적이고도 숙명적이었다. ▶네 멋대로 하라에서 강한 인상을 남겼던 장면은 또 있다. 코가 삐뚤어진 주연 배우의 명품 연기였다. 장 폴 벨몽도(Jean Paul Belmondo)였다. 대서양을 건너 미국을 대표했던 반항아 제임스 딘과는 다른 풍모를 지녔던 배우였다. 전형적인 미남형이 아니었기에 배우를 준비할 때 주인공 배역을 따내지 못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외모는 전혀 장애물로 작용되지 않았다. ▶아마추어 권투선수로도 활동했던 그가 영화와 첫 인연을 맺었던 건 1958년이었다. 지방의 작은 연극무대의 단역이었던 젊은이가 장뤼크 고다르 감독의 눈에 띄면서 단편영화에 출연했다. 이후 그의 연기는 빛을 보기 시작했다. 장뤼크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알랭 레네, 루이 말, 장 피에르 멜 빌. 1960년대를 풍미했던 누벨 바그 감독들의 작품에는 늘 그가 있었다. 40여년의 근사한 인연은 그렇게 이어졌다. ▶그랬던 장폴 벨몽드가 지난 6일 먼 세상으로 떠났다. 액션과 코미디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었던 노배우의 필모그래피도 추억으로 남게 됐다. 삶의 일부였던 그가 세상을 떠나 삶이 산산이 부서진 느낌이다. 그의 오랜 동료였던 배우 알랭 들롱의 조사(弔詞)가 귓가에 맴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인천상륙작전기념관 ‘전두환 지우기’

인천상륙작전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국제 연합군이 인천에 상륙해 전세를 뒤바꾼 군사작전이다. 인천시는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기념ㆍ보존하기 위해 연수구 옥련동에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을 건립, 1984년 9월 문을 열었다. 기념관 건립에는 시비 28억원과 시민성금 15억원 등 43억원의 비용이 들어갔다. 인천상륙작전기념관은 인천의 대표 명소 중 하나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희생한 참전용사의 정신을 기억하고 나라사랑의 마음을 고취시킬 수 있는 전쟁사기념관으로 관련 유물 및 자료, 디오라마, 6ㆍ25전쟁 당시 무기와 유물 등이 전시돼 있다. 기념관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관련된 시설물도 있다. 야외전시관 기념석비와 자유수호의 탑에 건립 당시 대통령이던 전씨의 이름과 휘장이 새겨져 있다. 기념석비에는 어떤 이유로든 전쟁은 막아야 하며 이런 비극이 이 땅에 또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그 길은 국력을 신장시켜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는 길뿐이다.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글이 봉황과 함께 새겨져 있다. 자유수호의 탑에 있는 추모시비에는 전두환 대통령각하의 뜻을 받들고 시민의 정성을 모아 기념관을 짓고 이 비를 세우니라는 문구가 있다. 인천지역 시민단체 등은 전씨의 경우 대법원에서 금고형 이상의 형이 확정돼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상 기념사업 지원 등이 박탈됐다며 기념석비 등의 철거를 요구해왔다. 인천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도 518 민주항쟁 학살의 책임자이자 진실을 은폐하려 했던 전두환의 기념석비를 철거하지 않으면 시민 모금으로 철거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인천시가 전두환 전 대통령 관련 시설물을 37년 만에 없애기로 했다. 10월 중 철거한다. 전국에서 전 전 대통령 행적을 기념하거나 미화하는 시설물 철거가 이어지는 점을 고려해 역사보훈시민단체 등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현충탑 앞에 있는 기념식수 표지석은 지난해 철거했다. 전두환씨의 흔적은 그렇게 점점 사라지고 있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환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파이브 아이즈

파이브 아이즈(Five Eyes)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 권 5개국이 참여한 기밀정보 동맹체 다. 1946년 미국과 영국이 소련 등 공 산권과의 냉전에 대응하기 위해 기밀 정보공유협정(UKUSA)을 맺은 것이 시초다. 이후 호주와 뉴질랜드ㆍ캐나다 가 가세해 1956년에 결성됐다. 이들 은 각각의 첩보기관끼리 동맹을 맺고 얻은 정보를 공유하는 등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파이브 아이즈 5개국은 소련과 동 구권의 통신을 도감청하기 위해 1960 년 세계 최대 규모의 통신정보감청시 스템 에셜론을 개발했다. 에셜론은 전 세계의 통신정보를 수집분석공 유하는 신호정보 수집 및 분석 네트워크다. 비밀 조직이던 에셜론은 1998년 1월 한 언론인이 유럽연합(EU) 의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며 드러났다.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에서 지난 2일 파이브 아이즈의 대상을 한국, 일본, 인도, 독일 등으로 확대할 필요성을 담 은 법안을 처리했다. 군사위는 파이 브 아이즈 협정 도입 이후 위협의 지형 이 광범위하게 변했다며 협력 범위 를 비슷한 민주주의 국가로 확대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ㆍ일본 등을 새로 끌 어 들이려는 것은 미국이 중국을 억제 하기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에 초점을 맞추는 가운데 동맹과 협력 분야를 경 제, 군사훈련 등을 넘어 기밀정보 공유 로까지 확대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 일본, 호주, 인도가 참여하는 아시아태평양 안보협의체 쿼 드(Quad)에도 한국 참여 문제를 논의 했다. 우리는 중국과 심각한 경쟁을 하고 있다고 한 바이든 대통령의 말 처럼, 중국 견제가 얼마나 중차대한 미 국의 외교 과제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중국은 파이브 아이즈가 중국의 발전을 막는 단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한국이 기밀정보 공유 동맹체에 포 함된다면 위상 제고와 함께 정보전에 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다만 대중국 견제 대열에 동참할 경우 경제문제 등 은 한국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동 맹인 미국의 결정을 존중하되 중국과 대결하지 않는 국익 우선의 원칙 아래 신중히 협상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가상인간

이름은 오로지, 성별은 여성이다. 나이는 영원한 22세. 로지는 지난 7월 한 보험사의 TV 광고에 발랄하게 춤추며 등장한 가상인간이다. 요즘 10~20대가 좋아하는 얼굴형으로 인간 뺨치는 로지는 그야말로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다. 로지의 활약 속에 18세의 가상 뮤지션 로아도, 가상 쇼호스트 모델 루시도 탄생해 인기를 끌고 있다. ▶그야말로 가상 열풍이다. 가상인간은 미디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한 줄기 빛처럼 등장했다. 높은 미디어 활용성과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점 등의 장점을 등에 업었다. 가상은 내가 있는 현실에서도 구현된다. 가공, 추상을 의미하는 메타(Meta)와 현실세계를 의미하는 유니버스(Universe)의 합성어인 메타버스가 대표적이다. 3차원 가상 세계인 이곳에선 누구든 원하는 캐릭터로 어디든 갈 수 있고 뭐든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메타버스는 개척해야 할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가상인간 역시 MZ세대와 잘 통하는 버추얼 인플루언서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콘텐츠 산업의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도 갖췄다. 그러나 가상인간은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리고 일자리를 대체할 거란 우려도 나온다. 인간 세계를 옮겨놓은 메타버스엔 사용 교육과 윤리 교육 등 범죄를 예방할 법안과 규칙은 없다. 비대면이 일상화 되면서 가상세계에 대한 장밋빛 전망만이 넘친다. ▶2014년 개봉한 영화 에서 남자 주인공은 AI와 연인으로 발전한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AI가 8천316명의 사람과 동시에 커뮤니케이션 하고, 6천41명과 사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AI는 능력을 더 진화하려고 남자를 떠나고 주인공은 홀로 남으며 영화는 끝난다. 영화 속 주인공의 모습이 낯설지 않은 것은 가상세계 환상만 좇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일 테다. 가상 환상이 넘실대는 요즘 그 어느때 보다 소통과 소외, 인간의 존엄성을 곱씹어봐야 할 때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지지대]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다

대낮 동네 공원에서 불량서클 멤버 2명의 고교생이 같은 반 학생을 폭행한다. 대입입시 평가 시험 커닝 부탁 거절이 폭력의 이유다. 학폭 피해자인 이 학생은 맞으면서도 외친다. 열심히 공부하는 애들에게 불공평하잖아!. 이때 초절정의 무술 고수인 여학생이 등장, 시원한 발차기로 상황을 순식간에 평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정의 없는 힘은 폭력이고, 힘없는 정의는 무능이다. 청춘 액션물인 영화 공수도의 한 장면이다.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본 경선이 대전, 충남을 시작으로 5주간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에 국회의석 180석으로 출발한 거대 여당은 여전히 무소불위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정부의 화두인 적폐청산을 비롯해 경제ㆍ부동산, 국방 정책 등을 펼쳤지만, 검찰개혁은 끝내 조국수호전(戰)으로 전락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고 부동산 찬스, 내로남불, 내 편 아니면 적, 이분법적 논리, 구멍 뚫린 안보에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이었다. 짧고 굵게 끝내겠다던 코로나 K방역은 오히려 굵게 길게라는 비아냥 속에 공염불이 됐다. 끝없는 방역터널에 소상공인, 자영업자는 물론, 서민도 절망했다. 마치 오늘만 있고 내일은 없는, 내일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독선과 아집, 불통으로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 공정이 무너지고 비상식적인, 불공정한 국가로 전락할까 두렵다. 이젠 언론까지 적폐로 몰아 재갈을 물리려 한다. 오죽했으면 세계 언론ㆍ단체까지 나서 극구 반대할까. 그래서일까 여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추진에 한발 물러났다. 오는 27일 본회의 상정을 전제로 8인 합의체에 합의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넘어진 김에 쉬어간다는 말이 있다. 명분은 만들었다. 이제껏 그랬듯이 독단적 처리가 우려된다. 국민의 힘은 더 답답하고 참담하다. 야당으로서의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끌려가는 모습에서 야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당 같은 야당의 무력함만 보여줬다. 법안 표결에서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것이 전부다. 입법 독주를 막기에는 의석수가 부족해 어쩔 수 없어라고 말하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김창학 정치부 부국장

[지지대] 벼 재배면적 증가

이맘때는 야속했었다. 여름방학이 저물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며칠 밤을 꼬박 새웠었다. 일기 쓰기와 곤충채집 등을 벼락치기로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개학이 코앞이었다. 필자의 어렸을 적 얘기다. ▶곤충채집을 하느라 뛰어다니다 보면 들녘이 온통 논이었다. 벼 이삭들이 막 패기 시작했었다. 메뚜기들도 한철이었다. 당시 벼 품종은 통일벼로 불렸던 IR667이었다. 반세기 전, 유신정권 때였다. 김포공항서 서울로 들어오던 차들도 평야를 가르며 달렸었다. 김포가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해마다 8월 말이면 또 설레던 까닭이 있었다. 한가위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던 탓이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풍성한 계절이었다. 햇볕도 따갑지 않았다. 과일을 더 달게 해준다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익히 들어서였다. 나중에 서양시인의 작품에서 그런 구절을 읽고선 피식 웃었던 기억도 새로웠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회지 주변의 그 많던 논들은 어느새 아파트단지 등으로 변해갔다. 엊그제 벼들이 고개를 숙였던 곳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때마다 뭔가 서운해졌다. ▶그렇게 논들은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갔다. 코흘리개들에게 벼를 나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어른들도 늘어만 갔다. 이런 와중에 올해 벼 재배면적이 늘었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반갑다. 쌀값이 오르고 정부의 쌀 적정생산 유도정책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벼 재배면적은 73만2천477㏊로 지난해보다 0.8%(6천45㏊) 늘었다. 지난 2001년 이후 20년 만이다. 정부가 쌀 적정 생산을 위해 지난 2018년부터 논에서 벼 이외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지원금을 주던 사업이 지난해 11월 종료된 점도 한몫했다. 공익형 직불제가 도입된 점도 벼 재배면적의 증가 원인이다. ▶연평균 쌀 20㎏ 도매가격이 2019년 4만8천630원, 지난해 4만9천872원에서 올해 5만8천287원으로 뛰어오른 점도 영향을 미쳤다. 농림부는 현재까지 평년과 기온이 비슷하면서 일조량은 많은 등 기상 여건이 좋고 벼생육이 양호, 평년 대비 포기당 이삭수와 이삭당 총영화(總穎花:벼로 익은 꽃) 수가 모두 늘었다고 설명했다. 쌀 한 톨 더 수확한다는 의미다. 명절을 앞두고 꼭 나쁘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쓰레기 팬데믹

팬데믹(pandemic)은 전염병이 세계적으로 대유행하는 상황을 말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염병 위험도에 따라 경보 단계를 6단계로 나누는데 최고 등급인 6단계를 팬데믹이라 한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기승을 부리는 가운데 WHO는 지난해 3월11일 코로나19 사태를 팬데믹으로 규정했다. 지금까지 코로나19로 인해 2억명 넘는 인구가 감염됐고, 사망자도 엄청나다. 백신을 개발해 접종하고 있으나 변이 바이러스 출연 등으로 진정되지 않고 있다. 팬데믹은 결코 가볍게 쓰는 단어가 아니다. 지구촌이 심각한 위험에 처해있을 때 내려지는 경고다. 코로나19와 함께 또 하나의 팬데믹이 거론되고 있다. 바로 쓰레기 팬데믹이다. 코로나19로 마스크는 세계인의 필수품이 됐지만, 또 한쪽에선 마스크로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다. 홍콩 해양환경단체 오션스아시아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난해 바다로 흘러 들어간 폐마스크를 15억6천만개로 추산했다. 폐마스크는 분해에 400년 넘게 걸리고, 서서히 미세플라스틱으로 변해 해양동물을 죽게 한다. 브라질 한 해변에선 죽은 펭귄의 배 안에서 마스크가 발견됐다. 마스크 줄에 발이 묶여 날지 못해 죽은 갈매기도 포착됐다. 우리나라도 폐마스크 문제가 심각하다. 연간 70억~80억개에 이르는 마스크가 여기저기 버려진다. 폐마스크는 대부분 종량제 봉투에 버리는데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 같은 유해물질이 배출된다. 길거리 등에 버려진 마스크는 땅 속에 묻히거나 바다로 흘러가 또 다른 피해를 야기한다. 코로나19로 일회용품 및 포장 쓰레기도 폭증했다. 음식 배달과 택배 등이 늘면서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있다. 생활폐기물을 다 처리하기 어려워 수도권 지방자치단체에 쓰레기매립지에 반입되는 쓰레기량을 할당했으나 벌써 올해 반입량을 초과한 곳이 많다. 일부 지자체에선 반입량을 늘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등 삶의 방식을 바꿔야 쓰레기 팬데믹을 막을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재사용재활용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시민과 지자체가 쓰레기 소각장이나 매립지 건설을 반대하면서 쓰레기를 줄이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다는건가.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

돈이 많든 적든, 많이 배웠든 못배웠든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누구나 죽는다라는 명제를 보면, 죽음은 평등하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장례를 보면 평등하지 않다. 장례를 치를 형편이 안 되거나 치러줄 사람이 없으면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돼 그냥 처리된다. 애도가 없어도 되는 사람처럼 사라진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홀로 방치된 죽음은 안타깝다. 1인 가구가 급증하고, 노인 자살률과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1위인 우리나라는 매년 고독사ㆍ무연고사가 증가하고 있다. 고독사는 사망 시점에서 홀로 죽는 것이고, 무연고사는 장례 시점에서 시신을 인도받을 이가 없는 것이다. 고독사 뒤 가족에게 연락이 닿아 시신이 인계되는 경우도 있지만, 시신 인도를 거부해 무연고사로 처리되는 경우도 많다. 무연고 사망자는 2018년 2천447명, 2019년 2천536명에서 2020년엔 2천880명으로 증가했다. 아무도 곁에 없이 죽음을 맞고, 죽음 뒤에도 찾는 이 없는 쓸쓸한 장례가 사회문제로 부상했다. 정부가 무연고 사망과 고독사 관리를 위해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경기도도 경기도 공영장례 지원 조례에 근거해 연고자가 없거나 알 수 없는 사망자, 연고자가 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ㆍ기피한 사망자를 대상으로 시군에 장례비를 지원한다. 기초 지자체에서 공영장례가 시행되고 있다. 수원시는 지난 7일 수원역 인근 낡은 여관 객실에서 숨진 한 남성을 발견, 연고자가 시신 인수를 거부해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자 원불교 예식으로 12일 장례식을 치뤘다. 수원시가 종교단체와 무연고 사망자의 공영장례를 위한 업무협약를 체결한 후 첫 장례다. 안양시도 지난 9일 공원 벤치에 앉은 채로 숨진 70대 노인에 대해 20일 공영장례를 치르고, 화성 함백산추모공원에 안장했다. 주민등록이 말소된 이 노인은 형제가 있긴 했으나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안양시의 우리동네 공영장례봉사단 리멤버(ReMember)가 가족과 사회와 격리된 채 생을 마감한 무연고 사망자를 위해 상주 역할을 했다. 죽음 이후에도 외로운 사람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공영장례가 확산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첩첩산중

소상공인의 한숨이 더 깊어졌다. 사상 최저 수준(0.5%)이었던 기준금리가 9차례의 동결 끝에 15개월 만에 0.25%p 인상되면서다. 금융 불균형 등 정부의 불가피한 상황은 이해되지만 코로나19 장기화 속에 가뜩이나 어려운 소상공인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소상공인의 빚은 늘고 있다. 각종 영업 제한 조치로 매출이 줄어든 상황에서 임대료와 인건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 대출을 늘렸다. 실제로 7월 말 기준 은행권의 개인사업자 대출 잔액은 409조7천억원으로 1년 사이에 40조원(10.8%) 늘어났다. 2년 전과 비교하면 82조5천억원(25.2%) 증가했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며 이들의 부담은 커질 대로 커진 상황이다. 정책자금을 대출받은 소상공인의 연체액을 보면 올해 6월 기준 6천143건에 2천204억원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말보다 79.5%나 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연장에 따른 각종 영업 제한 조치로 소상공인의 불만은 극에 달해 있다. 거리두기 강화에도 코로나 국면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자 정부 방역정책에 대한 불신을 드러낸 지도 오래다. 기준금리 인상 발표 이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소상공인은 대체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중금리도 오를 텐데 더는 버틸 자신이 없다 등 자영업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고려해 소상공인의 부가가치세, 종합소득세 납부기한을 내년 12월로 연장하고, 각종 보험료와 전기, 도시가스 요금의 납부유예도 재연장한다는 방침이다. 중요한 지원책이지만 소상공인들의 피부에 와닿을지는 미지수다. 1년 반 넘게 이어진 코로나19로 부채가 늘어난 소상공인들은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정부는 직접적인 금융 비용 지원이 어렵다면 일시적 자금난으로 쓰러지는 소상공인이 없도록 대출 금리와 자금 공급 상황을 면밀히 점검해야 한다. 홍완식 경제부 차장

[지지대] 불공정 방역과 위드 코로나

지난해 코로나19 발생 초기 감염자가 다녀갔다는 이유로 수많은 식당, 카페, 병원 등이 무조건 문을 닫아야 했다. 또 해당 식당과 카페에 방문한 사람들을 찾아 모두 코로나 검사를 실시했다. 국민들은 정부 지침을 대부분 잘 따랐고 감염 확산은 통제됐다. 정부는 이른 바 K방역의 성과라고 자랑했었다. 그러나 일년이 지난 지금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 곁에 있다.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지만 되레 일일 확진자가 2천여명이 넘나드는 등 늘어나는 추세다.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최고 단계인 4단계로 강화한 뒤 지속하고 있다. 수도권 식당 등에서 식사하는 인원 수를 더 제한하고 배달 외에 매장 영업시간도 오후 9시로 단축했다. 자영업자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는 조금만 참아달라고 했지만, 그 조금이 1년을 넘어섰다. 존폐의 갈림길에 선 자영업자들이 한계에 도달했다. 집단행동 조짐까지 나타나는 등 폭발 직전이다. ▶방역 형평성 문제도 제기된다. 최근 문을 연 롯데백화점 동탄점 직원들이 잇따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았다. 지난 22일 보안직원이 처음 발병한 데 이어 현재까지 확진 직원이 7명까지 늘어났다. 롯데백화점 동탄점은 경기도 최대 규모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수만명이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백화점은 방역을 허술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동탄 롯데백화점은 확진자가 다녀 간 일반 식당처럼 단 하루도 문을 닫지 않고 성업중이다. 수만명이 드나들어 집단 감염 위험이 높은 복합시설에서 직원이 7명이나 확진판정을 받았는데도 영업을 해도 된다? 자영업자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결국 방역당국이 힘있는 대기업들은 방역에서도 유예 혜택을 준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현재 정부 노력에도 확진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확진자 증가세는 전 세계적인 추세인 듯 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국가는 방역 정책을 위드 코로나로 변경했다. 위드 코로나는 변이 바이러스 등으로 예방접종만으로 코로나 종식이 어려운 상황을 인정하고, 일상 통제를 완화하는 정책이다. 이제 정부도 방역 형평성을 바로잡고, 국민들의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일상을 유지하는 방역 정책을 미리 준비해야 할 때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카피바라의 습격

설치류(齧齒類)라는 종족이 있다. 한자로 설치(齧齒)는 무는 이, 곧 송곳니를 뜻한다. 쥐가 이에 해당된다. 녀석의 앞니는 송곳니다. 매일 날카롭게 자란다. 카피바라(Capybara)는 이 종족 중 몸집이 가장 크다. 물과 육지를 자유로이 오간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에 가을장마까지 시작됐는데 생뚱맞게 뭔 설치류 타령이냐는 힐난이 쏟아질 만하겠다. 지구 반대편에서 카피바라의 습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고급 주택단지가 녀석들의 공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외신이 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개발과 보존, 빈부격차 등의 논쟁에도 다시 불이 붙었다. ▶논쟁의 주무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북부 노르델타라고 불리는 고급 주택가다. 4만여명이 거주하는 이곳은 외부 주민들의 출입이 철저하게 제한되는 주택단지다. 주민들은 최근 카피바라떼의 잦은 출몰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다. ▶녀석들은 몸길이가 1m가 넘고 몸무게도 60㎏ 넘게 나간다. 하지만 온순하고 친화력도 좋은 편이다. 노르델타에 있는 카피바라들도 사람들을 공격하진 않는다. 문제는 반려견을 공격하거나 교통사고를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덩치 큰 녀석들이 줄지어 길을 건너가거나 집 마당까지 들어와 쓰레기통을 뒤지는 모습도 심심찮게 목격된다고 한다. ▶노르델타에는 400마리가량의 카피바라가 있다. 그런데 2023년에는 3천500마리로 불어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주민들도 카피바라를 처음 봤을 때는 좋아했다. 하지만 매우 빠른 속도로 번식해 정원과 반려동물에 문제를 일으키면서 불편한 동거를 거부하고 있다. 현지 언론들은 카피바라가 노르델타를 습격한 게 아니라 노르텔타가 카피바라 서식지인 늪지를 먼저 침입했다고 지적한다. ▶파라나강 습지 위에 지어진 노르델타는 지난 2000년 건설 당시부터 환경운동가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지난해 화재로 30만㏊가 넘는 파라나강 습지가 파괴되면서 카피바라 터전도 더욱 줄어들었다. 아르헨티나의 자연파괴와 빈부격차를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일각에선 우스갯소리로 카피바라를 계급투쟁의 선봉장으로 묘사하고 있다. 환경파괴로 대재앙이 우려되는 지역이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닌 것 같아 씁쓸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We have wings”

패럴림픽(Paralympic)은 장애인 올림픽이다. 하반신 마비를 뜻하는 패러플레지아(Paraplegia)와 올림픽(Olympic)의 합성어다. 지금은 그리스어 전치사 파라(Para: 나란히, 함께)와 올림픽의 합성어로 설명한다. 올림픽과 동등하게 나란히 열린다는 의미도 있고,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가는 대회라는 의미도 있다. 패럴림픽은 나치 독일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신경외과 의사인 루트비히 구트만 박사가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척추 손상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영국 군인들을 돕는데서 비롯됐다. 재활치료 목적의 스포츠대회를 생각했고, 1948 런던올림픽 개막에 맞춰 16명의 휠체어 선수가 양궁대회를 열었다. 1952년에는 네덜란드 상이군인들도 참가했고, 1960년에는 23개국 400명의 선수가 참가하는 대회로 확대됐다. 이것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제1회 패럴림픽이다. 패럴림픽은 1988년 서울올림픽 때부터 올림픽과 동행하기 시작했다. 4년에 한번, 올림픽이 종료된 후 같은 장소에서, 같은 시설을 이용한다. 2020 도쿄패럴림픽이 24일 막을 올려 다음달 5일까지 13일의 열전에 돌입한다. 16번째 하계대회인 도쿄패럴림픽에는 올림픽에는 없는 골볼, 보치아 등을 포함해 22개 종목(세부종목 539개)이 펼쳐진다. 올림픽보다 세부종목이 더 많은 것은 장애등급별로 세부종목이 나뉘기 때문이다. 한국은 14개 종목에 선수, 코치 등을 합해 선수단 159명(선수 86명)이 참가한다. 도쿄의 한국선수단 숙소에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를 개사한 센스있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Hotter(더 뜨겁게), Sweeter(더 달콤하게), Cooler(더 시원하게), Winner(승자)!. BTS 히트곡 버터 가사를 따온 것으로, 노래에서 Butter로 불린 마지막 단어만 Winner로 바꿨다. 개회식은 24일 저녁 신주쿠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우리에게는 날개가 있다(We have wings)라는 주제로 열린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 속에 열리는 패럴림픽에서 다시 한번 감동이 이어지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부르카의 부활

이슬람 여성들은 얼굴이나 신체를 가리고 다닌다. 국가에 따라 복장의 종류가 다르다. 간단하게 머리와 얼굴 일부를 둘러싸는 히잡부터 머리부터 발까지 온몸을 천으로 감싸는 부르카까지 다양하다. 무슬림의 종교적 전통을 지키는 의상이라지만 여성 차별적이고 억압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신체를 가장 적게 가리는 것은 히잡(Hijab)이다. 아랍어로 베일이라는 뜻이다. 머리와 목, 얼굴 일부만 천으로 둘러싸는 형태로 머리를 감싸는 스카프와 비슷하다. 대중적인 이슬람 전통의상으로 입고 벗기 쉽고, 무늬와 색상도 다양하다. 모로코, 튀니지 등 북부 아프리카와 터키 등에서 많이 한다. 아바야(Abaya)는 망토나 우비 스타일이다. 옷 위에 상체 전체와 엉덩이 등을 가릴 만큼 긴 망토를 걸친 것처럼 보인다. 머리까지 가리지만 얼굴과 맨손은 드러난다. 니캅(Niqab)은 머리와 신체 전체를 베일로 감싼다. 주로 파키스탄, 예멘 여성들이 입는다. 니캅을 이라크, 이란 등에서는 차도르(Chador)라 한다. 부르카(burka)는 여성의 신체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는 엄격한 복장이다. 전신을 천으로 덮어쓰고 눈 부위만 망사로 가리는 통옷 형태로, 아프가니스탄 등 일부 지역에서만 입는다. 부르카는 코와 입을 전부 가려 호흡이 불편하고, 시야가 망사로 가려져 좌우를 살피기도 어렵다. 1996~2001년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통치 시기에 여성교육 금지, 취업활동 제한 등 극단적 이슬람 율법을 강요하며 부르카 착용을 강제했다. 아프간에 들어왔던 미군이 철수하고, 최근 탈레반이 다시 아프간을 점령하면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부르카를 입기 시작했다. 탈레반이 과거와 같이 여성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것이라는 예상에 부르카 가격이 10배 이상 뛰었다. 타하르 지역에서는 한 여성이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고 나갔다가 총에 맞아 숨졌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피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고, 그녀의 부모가 여성을 끌어안고 있는 사진이 온라인에 공개됐다. 부르카는 생존을 위한 옷이 됐다. 부르카의 부활, 절망적인 복고 유행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성범죄로 얼룩진 안보 최후 보루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국민들의 단결력과 애국심이 강하기로 유명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에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젊은이들이 군대에 가야 한다. 적대 국가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도 시간이 지날수록 희박해지며 병역기피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 세계 최고라던 이스라엘의 애국심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이스라엘과 마찬가지로 국방의 의무가 주어진 대한민국. 우리 역시 유명 연예인부터 정ㆍ재계의 아들, 일반인까지 군 입대 기피 문제가 사회문제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이런 가운데 최근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하는 군대 내 사망 사건이 잇따르며 이 같은 기조에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성추행 피해를 토로한 해군 소속 여군 A중사가 결국 유명을 달리하는 안타까운 사건이 발생했다. 공군 여군 B중사가 지난 5월 말 성추행 피해 사실을 알린 뒤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호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비슷한 사건이 또 발생한 것이다. 피해자 A중사는 지난 7일 처음으로 부대장에게 피해 사실을 토로했다. 그러나 해군에 신고를 접수한 것은 이틀 뒤인 9일. 더구나 사건 발생을 쉬쉬하다가 해군참모총장에게 보고된 시점은 피해자가 이미 숨진 뒤였다. 성범죄에 대한 군의 폐쇄성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난 셈이다. 비단 군 간부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다. 일반 사병들을 상대로 한 성추행 역시 예나 지금이나 끊이지 않고 있다. 확고한 위계질서, 경직된 조직 문화 등 군 생활의 여건은 어느 집단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여기에 끊이지 않는 군 부대 성추행 사건은 군 기피의 또 다른 이유(?)로 자리잡으며 4대 의무의 한 축을 위협하고 있다. 안보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채 확산되는 병역 기피는 결국 안보 불안으로 직결된다. 개별 사건의 해결을 넘어 제도, 구조 등 군 전반에 걸친 대대적인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양휘모 사회부 차장

[지지대] 진정한 프로의 가치

코로나19 팬데믹과 무더위 속에 치러진 2020 도쿄올림픽이 국민들에게 많은 감동과 기쁨을 선사했다. 비록 5회 연속 톱10 목표 달성은 이루지 못했지만 유난히도 무더웠던 이번 여름 현해탄 너머에서 전해온 태극전사들의 활약상에 국민들은 환호하고 감동했다. ▶예년과 달리 이번 올림픽에서 국민들은 메달 획득 여부와 메달 색깔보다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더 큰 갈채를 보냈다. 여자배구가 그랬고, 금메달 4개를 따내며 맹위를 떨친 양궁과 유럽 펜서들에 당당히 맞서 선전한 펜싱, 사상 첫 동메달의 여자 체조, 근대5종 등이 그랬다. ▶반면 국내에서 인기를 누린 야구와 축구, 해외 무대서 명성을 떨친 골프는 실망스런 경기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국민적 기대감이 컸었기에 실망감 또한 크게 다가온 탓이다. 이들 종목 구성원이 대부분 프로라는 이유도 있다. 하지만 우리 나라 프로들의 기량이 반드시 세계 일류는 아니다. 골프처럼 세계 정상권이라고 해도 대회 당시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 순위가 뒤바뀌는 게 스포츠다. 정해진 각본 없이 수 많은 이변과 드라마를 연출하는 것도 스포츠의 매력이다. ▶이를 잘 알기에 국민들의 올림픽 관전문화 또한 성적 지상주의에 매몰돼 좋은 결과만을 원하던 것에서 과정을 중시하는 문화로 바뀌었다. 선수들 역시 이제는 국가대표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 올림픽을 즐기고 최선을 다한 것으로 기쁨을 누릴줄 아는 프로다운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흔히 프로(professional)라 함은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춘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운동선수에 있어 프로는 수준높은 기량을 펼치며 그에 따른 부와 명예를 함께 거머쥐는 직업선수를 의미한다. 도쿄올림픽에서 선수들의 경기력과 경기장 안팎 태도가 때론 칭찬을 받기도 했고, 일부는 도마위에 오르기도 했다. 진정한 프로는 경기장 뿐만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빛난다. 배구 여제 김연경의 리더십, 태권도 이다빈, 유도 조구함의 승자에 대한 예우, 노장 투혼을 발휘한 펜싱 김정환, 양궁 오진혁의 활약, 첫 올림픽 무대에서 주눅들지 않고 당당히 세계와 맞선 신예들의 활약이 좋은 예다. 진정한 프로는 스스로 품격과 그 가치를 증명할 때 더욱 빛나는 것이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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