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나무꾼 시인 정초부

한국화는 그림의 주제, 곧 화제(畵題)가 있었다. 단원 김홍도 작품 도선도(渡船圖)의 화제는 동호범주( 東湖泛舟)였다. 오늘날 서울 옥수동 앞 한강인 동호( 東湖)를 건너던 나룻배 한척을 그렸다. 그림에는 애사(哀詞)를 읊은 한시(漢詩)도 적혀 있다. 동호의 봄 물결은 쪽빛보다 푸르고로 시작된다.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만큼 빼어나다. ▶작품을 지은 이는 어떤 선비였을까. 뜻밖에도 작가는 노비 신분의 나무꾼이다. 놀라운 반전이다. 그것도 혹독했던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말이다. 사대부들만 독점했던 한시(漢詩)라는 장르로 작품을 썼다는 점도 믿기지 않는다. 천민도 한시를 읊을 수 있었다니, 우리 옛 문학의 기품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정씨(鄭氏) 성을 가진 나무꾼이란 뜻의 정초부(鄭樵夫)가 그의 이름이다. 당시 내로라하던 사대부들이 그와 함께 세태를 자연에 비겨 풍자했다. 문학적인 재능도 출중했다.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인 이백이나 시성(詩聖)인 두보가 환생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안대희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2011년 그의 이름이 이재(彛載)였다고 발표했다. ▶노비가 어떻게 한시를 짓게 됐을까. 한시는 운율과 음의 높낮이 등을 맞춰 기승전결에 맞게 풀어낸다. 한편을 지으려면 한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15개 안팎의 규칙도 익혀야 한다. 10년 이상 정진해야 쓸 수 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노비가 어떻게 한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 정초부의 주인 여동식은 그가 가진 특별한 재능을 알아보고 아들 글공부에 함께 하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여동식의 아들 여춘영은 정초부를 스승이자 친구로 여겼다. 여춘영의 문집에는 정초부에 대한 시, 두 사람이 함께 지은 시는 물론 그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까지 실려 있다. ▶양평군이 정초부가 걸었던 지게길을 복원한다. 군은 지난해 1월부터 그가 살았던 월계(月溪)마을로 추정되는 양서면 신원리 528-5 일원 4.3㎞ 구간을 스토리텔링 지게길로 만들어 왔다. 지게길 곳곳에는 초부 주막, 전망데크, 쉼터, 정자, 도강도(渡江圖) 전망대(포토존), 초당 등도 들어선다. 신원리에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도 있다. 나무꾼 시인과 몽양 선생과는 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환경·건강 챙기는 ‘플로킹’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집에서 배달음식을 시켜먹거나 온라인으로 장을 보는 가정이 크게 늘었다. 스마트폰 터치 몇번이면 온갖 음식과 택배 꾸러미가 문앞까지 배달되니 참으로 편한 세상이다. 하지만 배달음식과 택배로 쓰레기가 넘쳐난다. 아파트 쓰레기 집하장마다 즉석식품 용기와 생수 페트병, 종이박스, 플라스틱, 스티로폼, 비닐, 아이스팩 등의 쓰레기가 가득하다. 분리수거를 한다지만 재활용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일반 주택가 골목에는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뒤죽박죽 쌓여있다. 보기도 안좋지만 냄새도 역겹다. 각 가정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쓰레기 배출량을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다행인 것은 환경에 대한 시민의식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길거리나 산책로, 등산로 등에서 쓰레기를 줍는 환경운동이 인기다. 주변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플로킹이다. 플로킹은 스웨덴어 ploke(줍다)+walking(산책하다)의 합성어로 걸으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뜻이다. 달리면서 쓰레기를 줍는다는 뜻의 플로깅(Plogging), 이를 우리말로 표현한 줍깅(줍다+조깅), 쓰담 달리기도 인기다. 환경의식이 부족한 사람들이 길거리에 생수병이나 테이크아웃한 커피잔을 버리기 일쑤인데 플로킹은 건강과 환경을 모두 지키는 좋은 방법이다. 플로킹은 걷기가 낳은 공익운동이다. 비닐봉지 하나만 호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선 뒤 걸을 때 보이는 캔, 과자포장지, 일회용 플라스틱컵, 담배꽁초 등을 주워 집에서 분리수거를 하거나 종량제쓰레기봉투에 넣는다. 스마트폰 앱을 통해 어디 골목에서 몇 시부터 플로킹을 하자는 공지가 올라오면 시간 가능한 참여자들이 나와 함께 걸으며 쓰레기를 줍는 동호회도 있다. 여러 사람들이 플로킹을 실천하면 길거리 쓰레기 양이 많이 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쓰레기 줍는 모습을 본다면,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일도 줄 것이다. 걷기 좋은 요즘, 가을 산책길에 플로킹을 해보면 어떨까?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헌혈 인센티브

허삼관 매혈기는 한평생 피를 팔아 가족을 위기에서 구해낸 아버지 허삼관의 이야기다. 중국 소설가 위화(余華)가 1995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았다. 살아가기 위해 목숨 건 매혈(賣血) 여로를 걷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특유의 익살과 풍자, 해학으로 그려냈다. 과거엔 거의 모든 피를 매혈로 충당했다. 매혈의 역사를 헌혈(獻血)의 역사로 바꾸게 된 계기는 419혁명이다. 1960년 4월19일 전국에서 학생들이 일어났고, 무차별 발포로 이날만 1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상자 치료를 위한 혈액이 부족하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나섰다. 대한적십자사는 1961년 사랑의 헌혈운동을 시작했고, 1974년 매혈로 충당했던 혈액 수급을 헌혈로 변경했다. 헌혈은 서로의 생명을 지키는, 고귀한 사랑의 실천이며 나눔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병원들마다 혈액이 크게 부족해 난리다. 감염 우려에 헌혈하는 사람이 급감한데다 헌혈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학생들이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헌혈자가 크게 줄었다. 올해 1~8월 헌혈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보다 약 13만건 줄었다. 코로나로 헌혈이 급감하자 대한적십자사가 최근 헌혈을 통한 교통법규 위반 벌점 공제 제안 문건을 작성했다. 헌혈에 참여한 사람이 경찰에 헌혈증서를 제출하면 교통법규 위반 벌점 10점을 감경해달라는 것이다. 적십자사는 벌점 감경 횟수를 연 4회(최대 40점)까지 허용해달라는 안을 담아 보건복지부에 타당성 검토까지 요청했다. 복지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어 어려울 것 같다는 반응이다. 경찰청도 적십자사와 합의된 바 없는 내용이라며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는 부정적 입장이다. 일각에선 사실상 매혈을 부추기고 법규위반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다. 결국 자발적인 헌혈만이 해결책이다. 사회 각계각층의 헌혈 캠페인을 통해 급한 불을 끌 수밖에 없다. 혈액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헌혈자 예우와 헌혈 편의성 제고 등 제도개선도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방치된 시각장애인의 길

10월15일은 흰지팡이의 날이다. 세계시각장애인연합회가 시각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하고자 지정했다. 시각장애인이 보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자 제작한 흰지팡이의 상징적인 의미를 이용해 흰지팡이의 날로 명명했다. 우리나라에서 흰지팡이에 대한 규정이 마련된 것은 지난 1972년 도로교통법에서다. 도로교통법 제11조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도로를 보행할 때는 흰지팡이를 가지고 다녀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42회 흰지팡이의 날을 맞아 많은 공공기관에서는 시각장애인의 권리 보장을 위한 흰지팡이의 날 기념식을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차별 없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 앞으로도 장애인들의 복지 욕구에 대응하고,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다양한 복지 정책을 추진해 나가겠다 등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희망적인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흰지팡이의 날을 하루 앞두고 본보 사회부 기자들이 시각장애인의 삶을 직접 경험하는 1일 체험에 나서봤다. 취재결과, 기자들은 시각 장애인들의 이동 권리를 위협하는 현장들을 온몸으로 체험했다. 점자블록은 시각장애인의 유일한 이동안내 시설이다. 청각과 촉각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블록은 외출 길에 눈과 같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현실은 부서진 점자블록들은 물론 점자블록 위에 장애물이 설치돼 있거나 점자블록이 횡단보도가 아닌 도로 중간으로 향해있는 등 점자블록 관리는 무관심 속에 방치돼 있었다. 점자블록이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오히려 위협하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에는 현재 5만4천여명의 시각장애인이 거주 중이다. 이들이 인간의 기본권 중 하나인 이동권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 무장애 도시가 하루빨리 오길 기대한다. 양휘모 사회부 차장

[지지대] 여야 대선 후보, 인천의 선택을 받아라

제20대 대통령 선거일이 5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인천은 전국 민심의 바로미터답게 이번에도 대선 민심의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민주당은 지난 3일 인천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일에 2차 슈퍼위크를 진행했다. 서울ㆍ경기 등의 경선을 앞둔 수도권 첫 경선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인천 경선과 2차 슈퍼위크 모두 과반을 훌쩍 넘는 득표율로 압승했다. 이후 선거인단 규모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 지사의 본선 직행을 예측할 수 있던 순간이었고 그 장소는 바로 인천이었다. 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여야 주요 대선 후보들이 인천을 잇달아 찾고 있다. 또 인천에 자신의 조직을 구성하는데 상당히 신중한 모습도 보인다. 가장 최근인 지난 12일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홍준표 의원이 안상수 전 인천시장, 정유섭 전 국회의원, 이재호 전 연수구청장, 백석두 전 인천시의원 등을 영입하고 인천지역 지지세를 확장하기 위한 진영을 꾸리고 있다. 같은 당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지난 7일 인천의 전통산업을 디지털ㆍ스마트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민주당의 이 지사는 지난달 말 인천에서 인천시가 건의한 지역 현안 20개 중 13개를 반영한 인천 발전 5대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지사는 인천을 2번이나 찾아오는 등 인천 민심 잡기에 집중해왔다. 그동안 인천의 민심은 역대 대통령선거에서 바로미터 역할을 했다.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는 인천의 최다 득표자가 모두 대통령 당선의 영예를 안았다. 인천시민이 꿈꾸는 리더는 항상 국민이 바라는 리더와 일맥상통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인천이 바로미터의 역할을 할 것임은 분명하다. 여야 대선 후보 모두가 인천시민의 선택을 받기 위해 인천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인천이 바로 전국 민심을 보여주기에.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경제부장

[지지대] 또다시 부는 홍색바람

6ㆍ25전쟁은 1950년 발발(勃發)했다. UN도 한국전(Korean War)이라고 명명(命名)했다. 상당수 국가 교과서에도 그렇게 표기돼 있다. 전쟁 명칭은 전쟁이 일어난 시기나 해당 지역 이름을 붙인다. 그런데 중국만 유독 한국전을 캉메이웬차오((抗美援朝) 전쟁이라고 부른다.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와 싸웠다는 뜻이다. ▶주체는 중국공산당이다. 중국 출신 일부 한류스타들도 거들고 있다. 에프엑스(fx)의 빅토리아, 우주소녀 성소미기선의, 프리스틴 출신 주결경 등이 그들이다. 자신들의 SNS에 캉메이웬차오 70주년을 기념한다는 게시물들도 잇따라 올렸다. ▶엊그제는 한류그룹 엑소의 중국인 멤버 레이(본명 張藝興)가 생일을 맞아 생뚱맞은 이벤트를 펼쳤다. 중국 공산당이 언제 어디서 창립됐는지를 팬들에게 물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 로고에 대한 질문도 던졌다고 한다. 외신을 통해 접하는 소식이지만 씁쓸하다. ▶한국전쟁을 자국의 시각에서 그린 영화 장진호가 수익 7천억원을 올리며 역대 중국 흥행 1위를 향해 질주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 언론인이 이 영화와 전쟁 등을 비판했다가 당국에 체포됐다. 중국의 경제주간지 차이징(財經)의 부편집장을 지낸 뤄창핑(羅昌平)이 당사자다. 그는 최근 하이난성(海南省) 싼야(三亞)에서 형사구류 처분을 받았다. SNS를 통해 캉메이웬차오 전쟁에서 싸운 군인들을 모독했다는 혐의다. ▶뤄창핑을 처벌한 법은 영웅열사보호법이다. 지난 2018년부터 영웅과 열사의 명예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제정됐다. 그는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반세기가 지났지만 중국인들은 이 전쟁에 대해 거의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했을 뿐인데 유죄를 선고받은 셈이다. ▶중국은 학생들에게 한국전은 미국이 개입, 38선을 넘었기 때문에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중국 대륙에서 또다시 홍색바람이 불고 있다. 시진핑 주석이 신해혁명 110주년을 맞아 강조한 중국공산당의 재확립과도 무관하지 않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대통령 여야경선 등으로 정신이 없지만, 역사를 향한 음흉한 이웃의 삿대질은 바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의 헛된 음모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1인 세대 40%

혼자 사는 사람이 많아진다더니, 1인 세대 비중이 40%를 넘었다. 핵가족이란 단어는 옛말이 됐고, 나 혼자 산다가 주류 거주형태가 되고 있다. 고령화와 비혼, 저출산, 개인주의 확산 등의 여파다. 지난 9월 말 기준 전국 주민등록상 1인 세대는 936만7천439세대로 40.1%를 차지했다. 2인 세대는 556만8천719세대로 23.8%이고, 4인 이상 세대(19.0%)와 3인 세대(17.1%)가 뒤를 이었다. 1ㆍ2인 세대 비중 합계가 63.9%로 절반을 훨씬 넘었다. 옹기종기 모여 살던 전통적인 한국사회의 가족 개념이 확 달려졌다. 과거의 가족은 조부모, 부모, 자녀로 이어진 3대 형태였다. 이후 부모와 자녀로 이뤄진 핵가족 시대로 변화돼 3~4인 세대가 주류를 이뤘다. 이제는 1인 세대로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1인 세대 중에는 고령화가 가속하면서 홀로 남은 노인이 가장 많았다. 70대 이상 여성이 총 127만9천세대로 전체 1인 세대의 13.7%를 차지했다. 여성이 남성보다 오래 사는 데다 아직 거동이 가능해 자녀와 함께 살지 않으면서 1인 세대로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30대 미혼남 증가도 1인 세대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30대 남성은 총 98만7천세대로 10.5%다. 통계청의 2020 인구주택총조사 표본집계 결과에 따르면 30대 남성의 미혼 비율은 지난해 50%를 넘어섰다. 취업이 늦어지면서 결혼이 어렵고 부동산 문제가 영향을 끼쳤다. 1인 세대 증가는 사회적 문제라기 보다 새로운 현상이다. 1인 세대 증가는 일코노미족 증가로 이어져 유통가 트렌드도 변화하고 있다. 경제활동 중심축이 1~2인 가구로 넘어가면서 유통 및 식품업체도 이런 현상에 전략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 조세ㆍ복지제도 등 많은 정책이 3ㆍ4인 가구 중심이었다. 이젠 인구 감소와 고령화, 1인 세대 증가 추세에 맞게 조세ㆍ복지ㆍ주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 1인 세대가 정책적 사각지대에 방치되지 않게 사회적 관심과 행정시스템 개편 등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공공의료와 인천대 의대 설립

코로나19 확산 이후 공공의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다. 국가적 재난사태인 감염병 상황에서 공공의료서비스의 부족 현상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라서다. 공공의료는 학설이나 해석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의료서비스를 공공화해 국가가 의료체계를 책임지는 형태의 서비스라 정의할 수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의료 체계를 갖추고, 이 혜택을 다시 국민에게 돌려주는 형식이다. 의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히포크라테스의 의료윤리지침인 히포크라테스 선서와 오늘날의 의료 윤리로 활용하는 제네바 선언 모두 이 같은 의료의 공공성을 내재하고 있다. 물론 모든 병원에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라고 강제할 순 없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공공의료의 확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온몸으로 경험했다는 것이다. 인천에서도 이 같은 공공의료서비스 확충은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로 자리했다. 국립대학법인이자 인천시민의 염원으로 지켜낸 인천대학교에 공공의대를 설치하자는 지역의 요구가 폭발하면서다. 지난 7월을 기준으로 인천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아 의료기관에 입원한 환자 수는 7천224명이며 이들 중 2천78명, 22.8%만이 공공의료기관에 입원했다. 서울과 경기의 공공의료기관 입원환자 비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는 인천에 그만큼 공공의료기관이 부족하다는 얘기기도 하다. 최근 국회에서 진행 중인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공공의대 설립에 대한 이야기가 활발하게 나오고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 역시 이 같은 공공의대 확충에 공감한다고 밝힌 상황이다. 지난해 우리는 이미 문재인정부에게 공공의료서비스 확충에 대한 의지를 확인했다. 그러나 관련 논의와 실천 더디기만 하다. 말로만 공공의료라는 비판을 받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진정한 실천을 보여야 할 때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안쓰럽다, 그만하자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의 고사는 당나라 멸망 후 5대10국 시대를 다룬 오대사(五代史) 왕언장전에 나오는 얘기다. 왕언장은 당애제(唐哀帝)를 폐하고 스스로 후량의 태조가 된 주전충의 부하 장수다. 그는 용장으로 100근이 넘는 2개의 철창을 회초리처럼 휘둘러서 왕철창(王鐵槍)이라 불렀다. 그가 국호를 후당으로 바꾼 진나라의 침공에 초토사(변란이 일어난 지방에 파견한 무관직)로 출전했으나 크게 패해 파면됐다. 이후 후당의 재침공으로 등용됐으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의 용맹함을 아낀 후당 왕이 회유했지만 아침에 양나라를 섬기고 저녁에는 진나라를 섬기는 일은 할 수 없소라며 죽음을 택했다. 왕언장은 평소 표범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豹死留皮 人死留名)는 고사를 자주 인용했다. 세상에, 후대에 이름을 남긴다는 것은 죽어도 사는 것을 의미한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다. 동시에 두렵고 떨린다. 그 이름이 명예이거나 오명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자리가 한 나라의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이름 남기기에 집착한다면 본말이 전도돼 허명(虛名)을 좇는 것과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2일(한국시각)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 올해는 남북한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한 지 30년이 되는 뜻깊은 해라며 한반도 종전선언을 제안했다. 지난 2018년 이후 세 번째다.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을 문 대통령이 그럼에도 종전선언의 화두를 다시 꺼냈다. 임기 마지막까지 종전선언 기조를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다. 국군의 날 기념식에서는 국군 최고통수권자의 첫 번째이자 가장 큰 책무는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만들고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방력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이자 대상인 북한을 단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국민이 화형을 당해도,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일방적 폭발을 당해도 아무 소리 하지 못한 정부다. 이런 마당에 종전선언은 너무 뜬금없다. 지난 4년간의 지독한 짝사랑에도 북한은 달라지지 않았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는 속담이 있다. 스스로 이름을 남기려 애쓸 때 보는 이는 안쓰럽다. 김창학 정치부 부국장

[지지대] 턴테이블 감성

전축(電蓄)을 들어보셨습니까 1970년대 잘 사는 집에 가면 장식품처럼 응접실에 놓여 있었던 전자제품이다. 흑백TV보다 더 귀했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랬다. 오디오가 귀한 시절의 얘기다. 취미를 음악 감상이라고 써놓고도 왠지 쑥스러웠던, 뭐 그런 시절이었다. ▶원반에 홈을 파서 소리를 녹음하고 바늘을 사용해 이를 소리로 재생시키는 장치. 전축의 국어사전 풀이다. 레코드판으로 불렸던 LP(Long Playing Record)를 턴테이블(Turntable)에 얹을 때부터 설렜다. 이내 양쪽 스피커로 지직~지직~ 하는 의성어와 함께 선율이 흘러나왔다. ▶어렸을 때 전축을 구경했던 전후세대는 청년시절 음악다방을 경험한다. 음악다방에서 커피 한잔을 마시며 DJ가 띄워 주는 음악을 듣는 재미도 제법 근사했다. DJ전성기도 바로 이 시기였다. 바늘에 긁히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들은 대부분 외국 곡이었다. 톰 존스(Tom Jones)의 명곡 고향의 푸른 잔디(Green Green Glass of Home)가 그 시절 명곡 중 한곡이었다. ▶LP와 턴테이블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원하는 음악을 즉각 들을 수 있는 시대인데도 말이다. 과거 LP를 경험해본 중장년층은 물론 레트로(복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MZ세대(19802000년대생) 중에서도 집에 턴테이블을 두는 이들이 늘고 있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올해 상반기 턴테이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0% 늘었다. 연령대별 매출 증가율은 50대(41%)와 40대(31%)가 두드러졌지만 2030대도 10% 이상 늘었다. ▶전문가들은 턴테이블과 LP 등의 인기 배경에는 특유의 소리와 감성 분위기가 있다고 분석한다. 디지털 음원과 달리 LP를 사면 음악을 소장(所藏)한다는 느낌도 든다. 음반을 차곡차곡 모으고 턴테이블 바늘을 레코드판에 올리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이들도 늘고 있다. 아날로그시대가 그리워지는 건 느리지만, 차분하기 때문이 아닐까. 턴테이블 감성 부활이 그래서 반갑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주말 고령사원제

2015년 개봉한 미국영화 인턴은 30대 열혈 여성 CEO와 70세 남성 인턴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CEO는 창업 1년반만에 직원 220명의 성공신화를 이룬 능력있는 여성이고, 인턴은 수십년 직장생활에서의 노하우와 나이만큼 풍부한 인생경험을 가졌다. 능력있는 CEO와 연륜있는 노인 인턴의 우정이 영화의 줄거리다. 많은 사람이 은퇴 이후 세상에 버려진 기분이 든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 인턴은 나이가 많은 사람은 보다 많은 경험과 연륜이 있고, 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메시지를 준다. 사회가 급속히 변하고 IT기술로 뭐든지 처리하는 세상이지만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렇다. 영화 속 인턴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존경을 받는다. 노인 한 명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노인의 인생 경륜과 축적된 지혜가 도서관에 견줄만큼 소중하다는 뜻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은 존경받지 못한다.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부정적이다. 경로(敬老)는 옛말이고 혐로(嫌老)라는 말까지 나왔다. 노인에 대한 반감이 차별을 낳고, 노인 혐오로 이어지는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 올해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16.5%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025년에는 20.3%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2036년에는 30.5%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노인층의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다. 이대로 가면 100세 시대가 기쁨이 아닌 고통이다. 노인 복지ㆍ인권ㆍ일자리 등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김호일 대한노인회장은 관공서와 기업이 최저임금으로 고령층을 채용해 주말 근무를 맡기는 고령사원제 도입을 제안했다. 주민센터 등에 컴퓨터 능력이 있는 고령층을 주말 사원으로 채용하면 평일에 관공서를 찾기 어려운 시민의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말 업무는 청년층이 꺼려 청년 일자리 창출과도 상충하지 않는다. 시행해볼 만한 정책이다. 취약한 노인 삶이 개선돼야 청년과 중장년층 노후도 행복해진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좋은 아들, 나쁜 아들, 이상한 아들

최근 아버지들이 아들 관련 뉴스로 언론사 지면과 홈페이지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 저마다 사연도 다르다. 어떤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웃고, 어떤 아버지는 아들 때문에 죽을 맛이다. 지난 28일 열린 KBL 신인드래프트에서 이원석(21연세대)이 전체 1순위로 서울 삼성에 지명됐다. 이원석의 부친은 KBL 최고령 현역 선수로 활약하던 이창수 현 KBL 전력분석관이다. 이창수 분석관는 지난 1992년 삼성전자에 입단했었는데, 30년이 흘러 아들이 아버지의 팀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 이창수는 선수 시절 리그를 호령하던 선수는 아니었지만, 꾸준히 자기 몫을 하던 선수다. 아들 이원석은 전체 1순위 지명이 이야기하듯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허재-허웅ㆍ허훈 부자를 잇는 농구계 부자 스타도 기대해볼 만하다. 자랑스러운 아들이다. 같은 날 국민의힘 장제원 의원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대선 경선 캠프 종합상황실장직에서 사퇴했다. 아들인 래퍼 노엘이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음주 측정을 요구한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된 탓이다. 장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가정이 쑥대밭이 됐다고 밝혔다. 나쁜 아들이다. 이상한 아들도 있다. 31살 청년이 회사에서 6년 일하고 받은 퇴직금이 50억원이란다. 남들은 60년을 일해도 벌기 어려운 돈인데. 아버지인 곽상도 의원은 더 이상하다. 아들이 50억원이라는 큰돈을 벌었는데 최근까지 몰랐단다. 또 일을 하면서 산재를 입었기 때문에 정당한 돈이란다. 오히려 그 많은 돈을 주게끔 설계한 자가 나쁜 놈이란다. 지난 26일에는 교도소에 입감 전 검찰 수사관을 뿌리치고 달아난 20대 도주범이 자수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도주범의 아버지는 춥고 배고프다는 아들에게 설렁탕 한 그릇을 사준 뒤 직접 차에 태워 경찰서로 데려가 자수하도록 도왔다. 설렁탕을 먹는 아들을 보는 아버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각양각색의 아들, 그리고 그들의 아버지. 이들 때문에 웃기도, 화나기도, 분노하기도, 가슴이 아리기도 한 2021년 가을이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지지대] 함께(WITH)

사회는 구성원의 집합체다. 구성원 하나 하나가 시스템으로 작동돼야 하고, 작동된 시스템이 평균값 이상이냐 이하냐에 따라 선진국과 후진국의 경계를 넘나 들게 든다. 내가 없으면 회사가 안돌아 가겠지?라고 생각하는 멍청한 꼰대는 시스템에서 가장 먼저 도태되며, 나 하나쯤 빠져도 조직이 잘 돌아갈거야라고 생각하는 회색 분자는 더 이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결국 모든 구성원이 함께(WITH) 할 때 그 조직의 힘은 배가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속 대한민국의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가? 구성원들의 함께(WITH)는 모두의 지향점을 향해 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대한민국은 속도의 사회였고, 지금도 그렇다. 그 속도의 최선봉에는 글로벌 기업으로 대표되는 대기업이, 허리를 받쳐 주는 역할은 중견ㆍ중소기업들이 해주었고, 또 해주고 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이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감압 장치 역할은 자영업자들이 도맡아, 한잔의 술과 맛난 음식으로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또 다른 새로운 날에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그런데 코로나19가 모든 것을 바꿔 버렸다. 자영업자의 눈 밑에는 엄청난 크기의 다크서클이, 어깨에는 하루하루 늘어나는 빚이 짓누르고 있다. 이 속에서 우리 사회의 함께(WITH)는 얼마나 작동하고 있는가? ▶정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밤과 낮에 다르게 출몰하게 만들었고, 필부필녀(匹夫匹婦)가 이해하지 못하는 기상천외한 방역대책이 되고 말았다. 거기까지도 그렇다 치지만 우리 사회의 굳건한 초석이던 자영업자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전가된 것이 문제다. 언제까지 우리는 그들을 시스템에서 배제하고 살 것인가? ▶코로나19도 감기처럼 예방하면서 함께 하는 존재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매일 매일 양산되는 확진자 수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함께(WITH)가 동반된 대안이 나와야 할 때다. 이제 시간이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보다 생계의 높은 장벽에 쓰러져 나가는 이들이 더 많이 늘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지지대] 신채호함

단재(丹齋) 신채호(申采浩) 선생은 사학자이자 불굴의 독립운동가다. 얼굴을 씻더라도 절대로 고개를 숙이지 않으셨다.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서였다. 대륙을 호령했던 고구려의 자랑 스런 역사도 주창하셨다. ▶단재 선생의 성함을 딴 3천t급 잠수함이 만들어 졌다. 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도 탑재됐다. 바닷속에서 전략표적 타격도 가능한 첨단 무 기시스템이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다. 해군은 28일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진 수식을 열었다. 도산안창호함, 안무함 등에 이어 세 번째다. ▶장보고급(1천 800t급) 잠수함에 비해 톤수도 2배로 커졌다. 공기불요추진체계에 고성능 연료전지도 갖춰 수중잠항기간도 늘었다. SLBM 수직발사관 6개도 장착됐다. 유사시 지상 핵심표적에 대한 전략적 타격임무도 수행할 수 있다. 물론 기뢰와 어뢰 등도 탑재됐다. ▶음향무반 향코팅제, 탄성마운트 등 최신 소음저 감기술도 적용했다. 선체 크기가 커졌는데도 기존 잠수함과 유사한 수준의 음향 스텔스 성능도 확보했다. 잠수함 두뇌에 해당하는 전투체계와 감각기관에 해당하는 소나(음파탐지기) 체계는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개발했다. 잠수함 기동성을 담당하는 추진체계에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추진전동기와 충전발전기 등이 적용됐다. 국산화 비율도 76%다. 기존 장보고급 잠수함(33.7%)과 손원일급 잠수함(38.6%) 보다 2배 이상 높다. ▶신채호함은 길이 83.5m, 폭 9.6m, 수중 최대속력은 시속 37㎞다. 장비 국산화 비율이 향상되면 외국 방산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줄어 건조비용도 대폭 절감됐다. 국내 방산업체의 수출경쟁력 향상과 일자리 창출 등 방위산업 활성화도 가능하다. 시운전 평가기간을 거쳐 오는 2024 년 해군에 인도되고, 이후 전력화 과정을 거쳐 실전 배치된다. ▶진수식에는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 (78)와 증손자인 신정윤군(20)이 참석했다. 평생 나라찾기에 애쓰셨던 단재 선생을 닮아 늠름하게 강토를 지켜주길 기대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김밥할머니’ 박춘자씨

돈 때문에 시끄러운 세상이다. 돈이 화근이 돼 부부나 부모 자식 간에도 살인이 자행된다. 어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부동산과 주식에 뛰어들고, 또 어떤 이는 매주 복권을 산다. 돈이 전부인 듯한 세상, 사실 돈이 없으면 불편하고 힘들긴 하다. 하지만 돈 벌기는 만만치 않다. 그 놈의 돈이 뭐길래, 싶을 때가 많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힘들게 모은 돈을 선뜻 사회에 내놓는 사람이 있다. 얼마전 LG 의인상을 수상한 박춘자 할머니(92)가 그렇다. 박 할머니는 50여년간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 6억3천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쾌척했다. 3억3천만원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3억원은 장애인 거주시설인 성남작은예수의집에 기부했다. 박 할머니의 삶은 외롭고 힘들었다. 1929년생으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10살때부터 생계를 위해 시장을 오가며 학교에 다녔다. 20살이 되기 전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아이를 갖지 못해 우여곡절 끝에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성남으로 터전을 옮겨 남한산성에서 노점 김밥 장사를 했다. 1년 365일 사계절을 쉬지 않았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칠 때도 할머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박 할머니가 봉사, 기부와 인연이 닿은 건 성당에서였다. 형제자매도 자식도 없던 할머니는 외로움에 성당에 갔고, 거기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장애인들이 있음을 았았다. 그렇게 시작된 장애인 봉사가 40여년 이어졌다. 60대에 김밥 장사를 그만둔 후에는 지적장애인 11명을 집으로 데려와 20여년간 친자식처럼 돌봤다. 올해 5월 거주하던 월셋집 보증금 2천만원을 기부한 뒤 복지지설로 거처를 옮겼다. 사망 후 남게 될 작은 재산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는 녹화유언을 남겼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박 할머니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훈훈한 감동이 울림이 돼, 작은 나눔이라도 실천하고 살면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백년가게의 위기

평택의 고복수 평양냉면은 3대째 계승되는 음식점이다. 창업주인 고학성씨가 1910년 평안북도 강계에 중앙면옥을 차린 것이 시초다. 그의 아들 고순은씨는 중앙면옥의 전통을 이어 1973년 평택역 인근에 고박사 평양냉면이란 이름으로 개업했다. 지금은 손자인 고복수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오산 할머니집은 소머리 설렁탕과 수육을 파는 음식점이다. 이 식당은 1931년부터 운영, 8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현재는 4대 박명희씨가 운영하고 있다. 두 음식점은 백년가게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올해 백년가게 215개와 백년소공인 151개를 선정했다. 전국의 백년가게는 1천22개, 백년소공인은 564개로 늘었다. 백년가게는 한우물경영, 집중경영 등 지속 생존을 위한 경영비법을 통해 사업을 장기간 계승 발전시키는 소상인과 중소기업이다. 백년소공인은 장인정신으로 한 분야에서 지속가능 경영을 하는 숙련기술 기반의 우수 소공인이다. 백년가게는 자기만의 노하우와 기술로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먹는 즐거움까지 선사하는 곳들이 많다. 천안의 학화호도과자는 호도과자 원조 개발자인 심복순 할머니가 운영하던 곳에서 대물림돼 현재까지 이어온 곳이다. 전북 군산의 빈해원은 화교인 왕창근 대표가 1950년대 창업해 대만 중식요리사 자격증을 취득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전통 중화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백년가게도 코로나19 장기화로 경영이 어렵다고 한다. 중기부 조사에 따르면, 업력 30년 이상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백년가게를 선정하는데 4분의 1(25.5%)은 가업을 가족이나 직원에게 물려줄 의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8.1%는 고민 중이라고 답했다. 고민 이유로 고생스러워 후대까지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라는 대답이 52.8%였다. 이어 생각보다 큰 수익이 나지 않아서(26.6%), 집안 내 승계 관련 흥미와 관심 부족(14.7%)이었다. 오랜 경험과 시장 경쟁력을 갖춘 가게도 힘겨운 현실이다. 자영업자 5년 생존율이 27.3%에 그친다고 한다. 백년가게가 전통을 이어가고, 초기 자영업자들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 대책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양안갈등 시즌2

TPP(Trans Pacific Partnership agreement)는 아시아ㆍ태평양 국제기구였다. 우리말로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이었다. 지난 2005년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등이 뜻을 모은 뒤 지난 2008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 주도로 결성됐던 기구다. ▶10여년 뒤 변수가 생겼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다. 그는 미국인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탈퇴한다. 지난 2017년이었다. 이에 일본호주가 주도해 다시 단체를 꾸렸다. 포괄적ㆍ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Comprehensive and Progressive Agreement for Trans Pacific Partnership)이다. 지난 2018년이었다. ▶최근 이 단체 가입을 놓고 중국과 대만이 부딪치고 있다. 중국에 이어 대만도 가입신청서를 제출했기 때문이다. 양안갈등(兩岸葛藤)의 또 다른 국면이다. 중국이 선수(先手)를 쳤다. 지난 16일이었다. 대만이 뒤를 이었다, 딱 6일 간격이었다. ▶왕원빈(汪文斌)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중국 대만 지구 역내 경제협력 참여문제는 꼭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천정치(陳正祺) 대만 경제부 차장(차관)은 정반대 입장을 발표했다. 중국과 대만은 별개라는 것이다. ▶CPTPP에 대한 양안의 입장은 명쾌하다. 외교전쟁에 전략적으로 이용하겠다는 의미다. 중국은 애초 미국 주도로 이뤄졌던 TPP에 대해선 자국을 고립시키는 수단으로 보고 경계했었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중국 견제를 위해 CPTPP에 복귀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자 가입을 서둘렀다. 대만은 이미 CPTPP 회원국 중 뉴질랜드ㆍ싱가포르와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으며, 지난 수년간 CPTPP 가입을 추진해왔다. ▶중국과 대만의 싸움은 벌써 72년째다. 정부는 호주ㆍ일본 등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CPTPP 회원국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일본 자민당 의원들은 엊그제 대만의 CPTPP 가입 지지를 표명했다. ▶추석 연휴가 끝난 뒤 들려온 불편한 소식이 복잡한 방정식을 풀도록 우리를 종용하고 있다. 코로나19 대유행과 여야 대선경선 등을 놓고도 복잡한데 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추분을 맞이하며

왁자지껄하게 치르는 민족의 명절이 아니더라도 우리나라에는 때마다 돌아오는 절기가 많다. 양력 9월23일은 추분(秋分)이다. 음력으로는 8월 절기다. 가을을 반으로 나누다라는 뜻이 담겨 있는 추분은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지는 날이라고 한다. 천문학적으로는 태양이 황경 180도의 추분점을 통과할 때를 말한다. 추분이 지나면 점차 밤이 길어지기 때문에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음을 실감하게 된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는 바뀌는 계절에 맞춰 농사를 지었다. 예로부터 절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 이유다. 요즘도 농부들에게는 추분이 가장 바쁜 때다. 논밭의 곡식을 거두고 목화를 따거나 고추를 말리는 등 잡다한 가을걷이를 시작한다. 이듬해에 별을 보면서 다가올 운수를 예견해보기도 한다. 24절기는 과학 기술 시대인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추분의 시작은 2021년의 저녁이 왔음을 알리기 때문일까. 선선한 바람과 청명한 가을 하늘이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마음 한 편이 서운하다. 올해 초엔 끝날 줄 알았던 코로나19는 여전히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친척들과 만나 부대끼는 게 때론 부담스럽고 얼굴 붉힐 때도 있었지만, 사람 수 제한을 둬가며 만나야 하는 기간이 이토록 길어질 줄 짐작한 이 없을 테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과 작은 배움을 차곡차곡 채워넣으며 마음을 단단히 해야겠다는 다짐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삶의 지혜를 얻고 사고의 깊이를 더하는 데 독서만 한 것은 없다. 첨단 스마트 기기가 넘쳐나고 과학 기술 시대를 사는 요즘에도 독서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좋은 책은 세상을 보는 안목을 넓혀준다. 시간이 없고, 일을 해야 하고, 학원에 가야 하지만, 가을 밤 각자의 공간에서 작은 불 하나 밝히고 책 한 권 꺼내 읽는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시집 한 장, 소설 한 장 넘길 수 있는 가을밤을 보낸다면, 꽤 낭만적인 2021년의 후반부를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지지대] 통계의 함정

통계는 집단현상을 구체적인 수치로 반영해 나타내는 숫자다. 사회집단과 자연집단을 가리지 않고 통계를 들여다보면 일정 부분 해당 집단에 대한 이해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 같은 통계는 늘 함정을 지닌다. 가짜 통계를 통한 집단 현상의 왜곡 위험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어서다. 영국의 정치가 벤저민 디즈레일리 역시 거짓말에는 세 가지가 있다. 그럴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라는 말로 통계의 함정을 경고했다. 통계가 거짓말 소리를 듣게 된 건 결국 통계를 만드는 이나 해석하는 이의 잘못 때문이다. 먼저 너무 적은 표본을 설정하는 경우가 그렇다. 직장동료 중 20대 직원 4명에게 민트초코를 좋아하는지 물었는데, 3명이 좋아한다고 답한 상황을 가정하자. 이때 20대 75%, 민트초코 좋아해라는 통계를 낸다면, 이는 신뢰할 수 있는 통계일까. 더 나아가 20대 10명 중 7명 이상 민트초코 좋아해라고 한다면, 실제 조사 결과이긴 하지만, 옳은 통계는 아닐 것이다. 잘못된 조사 방법 역시 그렇다. 예를 들어 직원들이 한곳에 모인 상태에서 직장상사가 너무 싫은 사람에게 손을 들라고 한다면 어떨까. 실제로 너무 싫을 수 있지만, 모두가 보는 앞에서 손을 드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수집한 통계를 근거로 우리 회사는 모두가 직장상사를 좋아한다는 해석을 낼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니다. 우리는 이제 곧 몰아치는 통계의 함정을 만날 수밖에 없다. 선거는 통계를 활용해 현상을 진단하는 대표적인 제도이기 때문이다. 통계의 함정에 빠지지 않으려면 앞선 두 사례처럼 어떻게, 얼마나, 누구를 대상으로 조사했는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n명 중 n명 이렇다는 한 마디에 현혹돼선 안 된다. 받아들이는 사람 만큼 조사하는 사람들의 변화도 필요하다. 그들이 공정한 시선으로 표본을 설정해 질의하지 않는 한, 우리 사회는 통계의 함정만 존재할 뿐 진정한 집단 현상의 진단을 이룰 수 없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국민지원금 상위 12% 이의제기

1인당 25만원씩인 5차 재난지원금(국민지원금)의 지급 대상이 전 국민의 87.8%로 정해지면서 형평성 논란과 함께 불만이 폭주하고 있다. 당초 소득 하위 80% 지원금 지급에서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를 중심으로 문제가 제기되자 기준을 일부 완화했지만 결국 12%의 불만은 그대로 남았다. 우리나라 국민 중 상위 12%에 속한다면 엄청난 부자일 텐데 집 없는 세입자가 지급 대상자에서 제외되고 혼자 사는 연소득 5천만원 정도의 1인 가구도 국민지원금을 못 받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는 현재 대한민국 시스템상 소득 수준을 일정 비율로 명확하게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실제 집도 없고 빌라에 사는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지는 세입자가 정부가 일률적으로 적용한 건보료 기준 소득 상위 12%에 포함되는 것 자체가 형평성에서 어긋난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 지급 대상 제외자가 20~30%를 웃돌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 전 도민에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한 경기도는 당초 인구 비율의 12%에 대해 추가 지급하는 추경 예산을 책정했다가 지급 대상자가 예상보다 늘어나면서 추가로 예산을 편성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정부가 국민의 재산 규모나 소득을 명확하게 확인하지 못하는 것이고 건보료 납부 기준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세금을 합리적으로 거둬들이는 것인지 재산이나 소득의 상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을 메인 정책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기본소득을 제대로 도입하기 위해서는 국민 개개인의 재산 규모, 소득 수준을 보다 투명하게 파악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지원 대상을 명확하게 나눌 수 있다. 국민지원금 대상에서 제외된 상위 12%의 불만은 단순히 지원금을 받고 안 받고의 문제가 아니다. 국가 시스템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사례다. 정부는 국민 개개인의 자산 규모를 명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미래 복지 정책의 시작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최원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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