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군함도 역사 왜곡

군함도는 일본 나가사키항에서 남서쪽으로 약 17.5㎞ 떨어져 있는 무인도다. 섬의 모양이 일본의 해상군함을 닮아 군함도(軍艦島)라 불리며, 일본어로는 하시마(端島)라고 한다. 탄광사업이 번영했던 군함도는 1943~1945년 사이 500~800여명의 조선인이 강제징용으로 끌려가 노동을 착취당한 지옥의 섬이다. 징용자의 20%가 죽어나갔다. CNN은 세계 7대 소름 돋는 장소 중 하나로 지목했다. 군함도는 1960년대까지 탄광 도시로서 번영을 누렸으나 폐산되면서 주민들이 떠나고, 당시 건물만 그대로 남았다. 일본은 군함도 등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에 대해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군함도 관련 역사를 왜곡하고 산업혁명의 상징성만 부각해 한국의 반대로 난항을 겪었으나 유네스코는 강제징용 명시 조건으로 2015년 7월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하지만 일본은 이후 태도를 바꿔 강제노동의 사실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자국의 세계문화유산을 소개하기 위해 지난해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강제징용 역사를 왜곡해 일본 시민단체까지 비판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 12일 일본이 강제징용에 대한 사실을 부정한 사실을 인지하고 강한 유감(strongly regret)을 표했다. 실사단이 지난달 일본을 찾아 강제노역 사실을 알 수 있는 자료 전시가 부족하고, 희생자를 기리는 전시물이 없음을 확인한 뒤 이런 입장을 내놨다. 국제기구에서 군함도의 역사왜곡 사실을 공식화한 것이다. 그런데도 일본은 지금까지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의와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부가 약속한 조치를 포함해 성실히 이행해왔다고 억지 주장을 펴고 있다. 유네스코 지적에 반론을 펴며 수용 불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 세계대전의 불행한 역사를 담은 세계유산으로 폴란드의 아우슈비츠와 비르케나우, 나치의 집단학살수용소가 있다. 등재 배경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반성과 경고가 담겼다. 반면 일본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으며 강제노역으로 이룬 번영을 미화하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 사실 왜곡을 언제쯤이나 멈출까. 진지한 반성과 함께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탄소국경세

탄소국경세(Carbon Border Tax)는 탄소 고배출 산업에 부과하는 일종의 관세다. 탄소국경조정제도(CBAMㆍ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라고도 한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와 유럽연합(EU)이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EU는 지난 14일 2030년 유럽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55% 감축하기 위한 입법 패키지 핏포 55(Fit for 55)를 발표하면서, 탄소국경세 입법안도 공개했다. 탄소국경세는 EU 역내로 수입되는 제품 가운데 자국 제품보다 탄소배출이 많은 제품에 대해 비용을 부과하는 새로운 조치다. 사실상의 추가 관세다. EU는 탄소배출량 감축을 위해 역내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는데, 동일한 탄소배출에도 비용을 부담하지 않는 해외 경쟁사들로부터 역내 기업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EU는 2023년부터 전기시멘트비료철강알루미늄 등 탄소배출이 많은 5개 품목에 탄소국경세를 시범 시행한 뒤 2026년부터 본격 시행한다. 탄소중립은 지구촌 전체가 동참해 이뤄내야 할 과제다. 특정 국가나 지역의 노력만으로 효과를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탄소국경세는 탄소중립에 일종의 벌금을 부과해 기후위기 극복에 동참하자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미래 세대와 지구를 위한 조치로 이해해도 좋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탄소국경세를 무조건 반길 수 없는 입장이다. 당장 철강과 알루미늄 등을 수출해 온 기업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은 지난해 EU에 철철강 1조8천억원, 알루미늄 2억200억원어치를 수출했다. 때문에 탄소국경세가 가격상승을 초래해 국내 수출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탄소국경제 도입으로 탄소중립이 새로운 무역장벽 수단으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다. 세계무역기구 규정에 위배될 수 있다며 반대하는 나라도 있다. 한국은 2050 탄소중립을 선언했고, 기업들도 탄소배출 감축 실행계획을 세우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상황에서 국경세까지 부과하면 이중규제가 될 수 있으므로 정부는 EU에 우리 기업의 노력을 설명, 탄소국경세를 당분간 면제 또는 완화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탄소중립 가속화를 기업 호재로 활용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희망고문

초등학교 3학년 때 일이다. 축구광이었던 나는 축구부 형들이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용기 내 감독 선생님께 입단을 요청했다. 축구는 잘하지만 아직 키가 작으니 10㎝ 더 크면 찾아오랬다. 수시로 키를 쟀다. 키 큰다는 음식은 매일 찾아 먹었다. 어른들 말대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하지만 키는 내 마음대로 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생애 첫 희망고문이었다. ▶지난 12일부터 수도권에서는 오후 6시 이후 2명까지만 외식을 할 수 있다. 또 유흥시설은 집합금지, 식당ㆍ카페 등 모든 다중이용시설은 오후 10시까지 운영이 제한된다. 이른바 사회적 거리두기 4단계가 시작된 것이다. 지난달 정부는 확진자 수가 줄어들 기미를 보이자 7월부터 6~8인까지 모임을 허용하고, 영업시간 제한을 자정으로 완화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을 발표했다. 당시 많은 전문가는 방역 조치 완화 발표가 성급하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거리두기 완화를 결정했지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는 희망고문으로 변질됐다. 소비 진작을 기대했으나 오히려 주저앉았다. 혹자는 정부의 방역 정책을 웃프게(웃기고 슬프게)도 케겔운동에 비유했다. 규제를 조였다, 풀었다 하며 국민에게 더 큰 고통을 준다고 비꽜다. 정부의 고민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1년 이상 지속되는 규제에 피로감이 쌓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에게는 고통이 가중된 셈이다. ▶희망으로 상대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 이런 상황을 희망고문이라 부른다. 정부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정부의 방역 정책을 통해 희망고문을 경험했다. 정부는 다음 주 초까지 상황을 지켜본 뒤 오는 26일부터 적용할 수도권의 거리두기 단계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짧고도 강력한 조치로 4차 대유행을 막겠다고 각오를 다진 정부다. 이번에는 국민은 물론 피해가 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의 공감대까지 확보할 수 있는 현명한 결정을 내려주길 기대해본다. 홍완식 경제부 차장

[지지대] 지금 민주당에게 중요한 것은

지난달 11일 치러진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이준석 후보가 돌풍을 일으키며 전당대회 흥행 대박을 가져왔다. 36세인 이준석 후보는 43.8% 득표로 당 대표로 선출됐다. 30대가 우리나라 정당사에서 제 12당의 당 대표가 된 것은 이준석 대표가 처음이다. 이같이 국민적 지지에 힘입어 국민의힘은 정당 출범 후 역대 최고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준석 대표 선출은 문재인정부 들어 계속되는 내로남불과 무기력한 제1야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정치적 피로감 등의 결과다. 아울러 기성 정치판의 틀을 새로 짜고 바꾸려는 국민적 시각에서의 개혁과 열망의 적극적인 표현이다. 이준석 대표는 당원 선거인단 투표(전체 표수 5만5천820표)에서 37.4%를 득표해 나경원 후보(40.9%)에게 불과 3.5%p로 졌다. 이는 그동안 여당에 무기력하고 대안이 없었던 당내 분위기를 신진 정치인을 통해 개혁하고픈 당심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한다.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는 이 후보(58.8%)가 나 후보(28.3%)를 압도적 차이(30.5%p)로 이긴 것도 이를 반증한다. 이준석 태풍은 일반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실체적이고 실존적이다.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사에서 대선 예비경선 컷오프 결과, 추미애이재명정세균이낙연박용진김두관(기호순) 후보가 본 경선에 진출했다. 하지만 경선일정 연기, 김경율 논란, 코로나19 확산 등으로 경선 흥행에 실패했다. 본경선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슈퍼위크 방식을 도입하는 등 이벤트를 마련했다. 지금 민주당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적 흥행이 아니다. 촛불정권을 내세우며 출범한 문재인정부의 지난 4년2개월 국정운영을 어떻게 평가하고 계승, 극복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국민은 내로남불, 진영논리,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등으로 이 정부가 외친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하고 결과가 정의로운 나라가 되도록 공정과 정의의 가치를 바로 세우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특정 진영논리에 끌려 후보를 선택한다면 국민 관심과 지지에서 멀어진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김창학 정치부 부국장

[지지대]좌전고개 만세운동… 항일독립기념관

좌전고개는 용인서도 외졌다. 양지면 평창리와 원삼면 좌항리를 잇는다. 원래는 좌찬고개였다. 조선 정종 때 무장(武將) 박포(朴苞)가 넘었다. 그때 벼슬이 좌찬성이어서 그렇게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 좌전고개로 개명됐다. 그런 곳이 어디 좌전고개뿐일까. ▶이곳에서도 어김없이 3ㆍ1운동이 펼쳐졌다. 1919년 3월21일이었다. 용인 최초의 3ㆍ1운동이었다. 3월28~29일 1천여명이 모여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고기리동천리풍덕천리로 이어졌다. 2천여명이 가세했다. 4월3일까지 이어졌고, 1만3천200여명이 참가했다. 35명이 순국했다. 140여명이 다쳤고, 500명 이상이 투옥됐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은 크게 두 흐름으로 나뉜다. 3ㆍ1운동과 무장투쟁이다. 3ㆍ1운동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물론 있다. 무장투쟁과 비교해 그렇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독립이든 혁명이든 숙성기를 거쳐야 한다. 곧바로 완성되지 않는다. ▶미국이 독립을 선언한 건 1776년이다. 이후 10여년간 독립전쟁이 이어졌다. 실제로 독립을 쟁취한 건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뒤였다. 프랑스 혁명도 마찬가지다. 1789년 왕정이 타도됐지만, 나폴레옹이 다시 황제에 즉위했다. 혁명이 완료된 건 30여년이 지나서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된 건 3ㆍ1운동이 일어난 해 7월이었다. 단순한 만세운동이 아니었다. 30여년 동안의 독립투쟁을 알리는 깃발이 올려진 것이다. 3ㆍ1운동이 없었다면 독립운동도 없었다. 그게 올곧은 역사의 흐름이다. ▶이처럼 용인지역 첫 3ㆍ1운동이 펼쳐졌던 원삼면 좌항리에 2024년까지 항일독립기념관 건립이 추진(본보 12일자 11면)된다. 원삼면 좌항리 산 21-1 31 만세운동 기념공원 내 연면적 800㎡, 지상 2층 등의 규모로 지어진다. 지역의 독립운동자료를 한데 모아 전시하고, 항일운동을 교육하고 체험하는 곳으로 활용된다. ▶기념관 명칭에 일본에 항거했다는 뜻의 항일(抗日)이 들어간다. 자주적이고 능동적인 표현이다. 무릇 3ㆍ1운동이 일제에 맞선 독립전쟁으로 계승됐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지구촌 어디에 내놓아도 늠름한 우리의 유산이다. 초복이 지난 오뉴월에도 3ㆍ1운동만 생각하면 시원해지는 까닭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살인적 폭염

전례없는 폭염, 산불, 사망자 수백명, 그리고 황폐화된 마을 미국 CNN이 최근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연일 최고 기온을 갈아치우며 수백명을 숨지게 한 폭염 사태를 전하며 기후변화가 북반구를 태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심상치 않은 살인적인 폭염에 주민들의 공포감이 크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소도시 리턴은 지난달 30일 기온이 49.6℃까지 치솟았다. 평상시 리턴의 6월 최고기온이 25℃ 정도임을 감안할 때 거의 두배에 가깝다. 여름철에도 에어컨 없이 지내는 곳인데 50℃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산불이 속출했다. 일주일간 돌연사한 사람이 700명을 넘고, 170여건의 화재가 일어나 순식간에 마을이 초토화되기도 했다. 미국 북서부 오리건주와 워싱턴주도 폭염 피해가 극심했다. 오리건주의 온열질환 사망자는 100명에 육박했다. 워싱턴주도 30여명이 불볕더위로 숨졌다. 앞서 캘리포니아주 휴양지 팜스프링스는 지난달 50.6℃를 기록했고, 사막 데스밸리는 53.5℃까지 치솟았다. 이라크는 수도 바그다드 등에서 50℃가 넘는 고온과 전기 시스템 붕괴로 임시 공휴일을 지정했다. 러시아 모스크바도 지난달 34.8℃를 기록, 6월 기온으로 사상 최고치였다. 북극권도 최근 기온이 30℃를 넘었다. 전례없는 더위로 수백명이 숨지고 화재로 도시가 파괴됐다. 기후전문가들은 정체된 고기압에 따른 열돔(Heat Dome) 현상 등을 원인으로 꼽았다. 기후학자들이 19701980년대부터 지구온난화 때문에 폭염이 더 잦고 더 오래 지속되며 더 강력해질 것이라고 경고해 왔다. 하지만 세계는 말로만 걱정할뿐 지구온난화를 막기위한 실천이 너무 미흡했다. 우리나라는 올 여름 맑은 하늘에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지는 기습폭우가 여러번 반복됐다. 곧 폭염이 이어질 것이라 한다. 코로나19로 숨막히는데 폭염까지 가세하면 여름 나기가 고통스러울 것이다. 폭염은 예고된 재앙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중장기적 노력도 중요하고, 올여름 폭염 대책도 서둘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더 빨리’ 배송 경쟁

더 빨리 더 더 빨리 유통업계의 퀵(quick) 커머스 속도 경쟁이 치열하다. 새벽배송이나 당일배송을 넘어 분(分) 단위 배송 경쟁으로 확산하는 추세다. 배송 단축에 대한 소비자 수요가 늘면서 이젠 1시간 내 배송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근거리단시간 배송을 전문으로 하는 숏(short) 커머스가 새로운 시장으로 자리잡고 있다. 물류창고 대신 편의점슈퍼마켓음식점화장품 가게에 있는 상품을 가까운 소비자에게 배달해주는 방식이다. GS리테일은 지난달 22일부터 49분 번개배달 서비스를 시작했다. 배달전용 주문 앱에서 우동(우리동네)마트를 선택해 주문하면 인근 GS슈퍼마켓에서 49분 내 배달해 준다. 그동안 1시간 배송 서비스를 했는데 11분 단축했다. GS리테일은 번개배달 서비스 도입 후 주문이 4배가량 느는 등 고객 반응이 좋다고 밝혔다. CJ올리브영은 화장품 즉시 배송서비스인 오늘드림 빠름배송의 평균 배송 시간을 45분으로 단축했다. 2018년 12월 서비스를 처음 시작했을 때 3시간 배송을 내세웠는데, 작년엔 평균 배송 시간 55분, 올해 상반기는 10분이 더 줄었다. 더 빠른 배송으로 오늘 드림 전체 주문 건수는 전년 대비 12배 증가했다. 쿠팡은 지난 6일 생필품먹을거리 등을 배달하는 쿠팡이츠 마트 서비스를 출시하면서 10~15분 배송을 내세웠다. 현재는 서울 송파구에서 시범 운영 중인데 조만간 서울 전역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배달의민족도 한 건의 주문을 20~30분 내에 바로 배송하는 배민1 서비스를 서울 전역으로 확대했다. 유통업계에선 상품이 비슷하다 보니 배달 속도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더 빠른 배송은 업체 간 출혈 경쟁과 배달원의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택배노동자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의 2차 사회적 합의를 한 게 얼마 안됐는데 다른 한편에선 1시간 배송 경쟁을 벌이고 있으니 씁쓸하다. 배달노동자 안전은 아랑곳 않고 시간을 다투는 무한 경쟁으로 고객을 확보하려는 유통업계는 자성해야 한다. 소비자 편의만 앞세우지 말고 이를 위해 투입되는 노동자들의 건강ㆍ안전도 고려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고스톱

대한민국이 갈림길에 서 있다. 평범한 일상생활로 복귀하기 위한 과감한 전진(GO)이냐,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는 피해 확산을 막기 위한 현 상태 유지(STOP)냐. 이 2가지 선택지를 두고 대한민국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코로나19가 경기도를 비롯한 수도권에서 급속도로 재확산되며 4차 대유행 조짐을 보이는 등 사회 전반에 초비상이 걸렸기 때문이다. 특히 휴가철을 앞두고 이 같은 확산 속도가 지속될 시 2천명대 돌파는 시간 문제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정부는 코로나19의 사슬을 끊고 일상 생활 복귀를 향한 GO!를 선언했다. 일상 회복에 대한 기대도 잠시, 지난달 30일 수도권 확진자가 급증함에 따라 수도권은 새로운 거리두기 체계로 전환하지 않고, 현행 거리두기 체계를 1주일간(7월1일~7월7일) 연장됐다. 이어 지난 2일부터 수도권의 주간 평균 환자 수는 500명을 넘어(7일 기준 636.3명) 새로운 거리두기 3단계 기준을 충족되자 또 다시 오는 14일까지 일주일 간 수도권에서는 종전의 2단계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더욱이 정부는 거리두기 연장 기간 중이라도 유행 상황이 계속 악화되는 경우에는 새로운 거리두기의 가장 강력한 단계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할 것이라고 예고하고 나섰다. 평범한 일상 생활이 잡힐 것 같지만 잡히지 않는 전설 속 신기루처럼 느껴진다. 전세계 전례 없었던 규모의 피해와 충격을 주고 있는 코로나19라는 타짜로 인해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는 피박에 멍박, 쓰리고까지 당하는 호구로 전락하고 있다. 괴물 타짜를 이길 히든패가 필요하다. 철저한 방역수칙 준수라는 패를 움켜쥐고 이 판에서 승리해 이제 그만 이 위험한 도박판을 훌훌 털고 빠져나와야 할 때다. 양휘모 사회부 차장

[지지대] 이건희 미술관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들이 통근 결단을 내렸다. 이 회장이 생전에 수집한 2만3천여점의 미술품을 기증하기로 한 것이다. 모두 환영했다. 그리고 이른 바 이건희 컬렉션이라고 불리는 기증품을 보관하고 전시할 공간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지자체들의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이 시작됐다. 저마다 이건희 미술관의 최적지라며 유치 경쟁을 벌였다. 도내 지자체 중에는 수원시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이건희 묘지가 수원에 있는데다 삼성전자 역시 위치해 있는 등 명분을 강조했다. 이어 인천, 평택, 용인, 과천, 오산 등 지자체가 미술관 유치를 희망했다. 경기ㆍ인천 지역뿐만 아니라 부산, 대구 등 전국의 지자체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나서 과열 조짐까지 보였다. ▶그러나 지자체들의 미술관 유치전은 다소 허무하게 끝났다. 문화체육관광부는 7일 이건희 기증관(가칭) 부지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부지와 국립현대미술관 인근 송현동 부지 2곳으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문광부의 이건희 기증관 예정부지 결정 이유를 보면 이들 부지가 국내 최고 수준의 전문성과 기반시설을 갖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인근에 있어 연관 분야와의 활발한 교류와 협력, 상승효과를 기대할만하다는 것. 또 유치전을 벌인 수많은 지자체를 의식한 듯 지역문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기증관 건립과는 별도로 지역문화 활성화를 위한 지원을 강화하고, 권역별 분포와 수요를 고려한 국립문화시설 확충, 지역별 특화된 문화시설에 대한 지원 방안도 검토한다고 부연했다. ▶정부 발표는 지자체 입장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다. 결국 문화 인프라가 있는 곳에 또다시 문화시설을 강화하겠다는 것. 문화 인프라가 없는 지역은 미술관 입지로 적합하지 않다? ,단 가끔 순회 전시는 가 줄게라는 식이다. ▶미술관의 기능이 전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작품을 연구, 보전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그렇다고 지방은 문화전문 인프라가 없으니 배제한다는 것에 동의할 지자체는 단 한 곳도 없다. 정부는 균형발전 기조를 늘 강조해 왔다. 그래서 공공기관 지방이전도 반발 속에서도 강행하고, 일부 효과를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이건희 미술관 부지 선정 기준은 정부의 균형발전 기조와도 맞지 않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대동법 시행 기념비

조선은 중앙집권적 국가였다. 봉건제(Feudalism)를 채택하지 않았다. 영주(領主)로부터 토지(봉토)를 받고 행정을 펼치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조선은 과거를 통해 관리들을 뽑아 지방으로 내려 보냈다. ▶조선이 중앙집권제 국가였음을 입증해주는 단서는 따로 있다. 공물(貢物)제도다. 지방 수령들은 매년 지역 특산물을 중앙으로 올려 보냈다. 공물은 오늘날 지방세다. 지방 수령들은 이 제도로 골치가 아팠다. 중간과정도 불투명했다. 비리(非理)도 다반사였다. 집권층은 고심했다. 대동법(大同法)은 그런 와중에 나왔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재정은 극도로 어려웠다. 나라의 곳간은 텅 비었다. 한 지방 수령이 조정에 공물을 쌀로 통일하자고 건의했다. 충청도 관찰사인 잠곡(潛谷) 김육(金堉)이었다. 강산이 한번 바뀐 효종 2년(1651년) 충청지역에서 처음 시행된다. ▶전국으로 확산된 건 반세기가 훌쩍 지난 숙종 35년(1798년) 때였다. 앞서 1세기 전 처음 태동됐다. 임진왜란 발발 전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처음 주창했다. 하지만 전쟁으로 정책으로는 반영되진 않았다. 그러다 김육이 충청관찰사를 하면서 재차 건의하기에 이른다. 1세기만에 국가의 세금징수 시스템이 바뀐 셈이다. ▶평택 소사동에 대동법 시행을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졌다. 효종 10년(1659년) 때였다. 김육이 충청관찰사로 부임했던 시기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0호다. 정확한 위치는 평택시 소사동 140-1번지다. 원래는 이곳에서 수백m 떨어진, 충청도로 통하는 길목에 세워졌다가 현 위치로 옮겨졌다. 1970년대였다. ▶대동법은 당시로선 세무행정의 혁신이었다. 오늘날 버전으로 표현하면 공정경제의 신호탄이다. 이 업무를 담당하던 공인(貢人)들은 조선 후기 산업자본가로 성장한다. 수공업과 상업 발달로도 이어졌다. 화폐유통과 운송활동 등도 늘었다. 대동법은 곧 조선판 산업혁명의 촉진제였다. ▶평택시 소사동 대동법 시행기념비 주변에 역사공원이 조성된다고 한다. 평택시는 10월 경기도문화재위 심의를 거쳐 확정한 뒤 설계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역사공원 조성에만 그친다면 절반의 성공일뿐이다. 대동법과 조선시대 경제와의 명쾌한 함수관계가 간과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어르신 놀이터

유치원은 아이들이 자라면서 처음 교육을 받게 되는 곳이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 유치원에 가서 공부도 하고, 놀이도 하고, 친구들도 사귄다. 아침이면 유치원 버스가 집 앞에서 아이를 싣고 가고, 일과가 끝난 후에는 다시 집에 데려다 준다. 어르신들은 위한 유치원 비슷한 곳이 있다. 일명 노치원이라 부른다.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어르신들이 다양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설이다. 노치원의 대표적인 시설이 주간보호센터(데이케어센터)다. 주간보호센터는 어르신을 위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경증치매나 중풍 등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적절한 프로그램과 식사를 제공한다. 저녁이면 집에서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요양원 입소보다 심리적 안정감을 줘 어르신뿐 아니라 보호자들의 만족도가 높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이 2000년 7%(고령화사회)에서 2018년 14%로 증가해 고령사회에 이미 진입했다.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인데 2025년에 진입이 예상된다. 노인 돌봄 시설이나 복지 등이 뒤따라야 하는데 아직 미흡한 점이 많다. 얼마전 전국에서 처음으로 충남 공주에 어르신 놀이터가 문을 열었다. 공주 춘수정 공원 안에 2천100㎡ 규모로 만들어진 어르신 놀이터에는 근력을 늘리는 기구뿐 아니라 유연성과 균형 감각을 키우는 어르신 맞춤 운동기구가 설치됐다. 또 공연 무대와 족욕장, 정자, 전통놀이터 등도 만들었다. 공원 안에 무료식당을 마련해 코로나 상황을 봐가며 놀이터를 찾는 어르신에게 음식을 제공할 예정이다. 공주시는 이곳을 돌봄+휴식+놀이+운동+문화를 아우르는 힐링 공간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공주의 어르신 놀이터는 고령화 사회를 일찍 맞이한 북유럽 등 해외의 노인 놀이터 모델과 운동기구를 도입했다. 노인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과 편의성을 갖춘 무장애 시설로 조성한 것이 특징이다. 평균 수명이 크게 늘었지만 노후생활이 외롭고 건강하지 못한 어르신이 많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고 즐겁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어르신 놀이터가 어르신 친목 도모와 체력 증진 등 행복한 노년생활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한국은 선진국”

선진국은 경제개발이 앞선 나라를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에 대비해 이르는 말이다. 선진국이란 용어는 좀 애매하고 막연한 면이 있는데, 보통은 1인당 소득수준이나 공업화의 진전도가 기준이 된다. 처음엔 선진국ㆍ중진국ㆍ후진국이라는 3단계로 나뉘었다. 이후 개발도상국이란 용어가 생겼고,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 급속히 경제성장ㆍ공업화를 이룬 나라를 신흥공업국으로 부르는 구분도 사용됐다. 우리나라는 개발도상국 또는 신흥공업국으로 불려왔다.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 공식 합류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2일(현지시간)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승격시켰다. UNCTAD가 1964년 설립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UNCTAD는 개도국 산업화와 국제무역 참여 증진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유엔 산하 정부 간 기구다. 회원국은 195개국이며, 한국은 1964년 3월 가입했다. UNCTAD는 아시아아프리카 등 주로 개도국이 포함된 그룹 A와 선진국 그룹 B, 중남미 국가가 포함된 그룹 C, 러시아 및 동구권 그룹 D 등 4개 그룹으로 구성된다. 한국은 그룹 A에서 B로 지위가 상승했다. 이에 따라 미국ㆍ영국ㆍ일본 등 31개국이 속한 그룹 B는 32개국으로 늘었다. 한국의 지위 변경은 세계 10위 경제규모, P4G 서울 정상회의 개최, G7 정상회의 참석 등 세계 무대에서 주요 선진국으로 성장한 한국의 위상을 공식 인정받은 쾌거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선 2019년 10월 개도국 지위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날로 높아지는데 국민의 행복감은 자꾸 떨어진다. 행복지수가 OECD 37개국 가운데 35위다. 삶의 질 지수는 세계 42위로, 4년 전보다 20계단 추락했다.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데 좋으면서도 뭔가 씁쓸하다. 1인당 국민소득 증가뿐 아니라 민주주의, 성숙한 시민의식, 잘 갖춰진 교육과 의료 체계, 빈부격차 줄이기 등 진정한 선진국으로 가려면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기게스의 반지’는 없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쓴 국가에 등장하는 기게스의 반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기게스는 리디아의 왕을 섬기는 평범하고 성실한 양치기다. 어느 날 폭우와 지진을 겪고 우연히 금가락지 하나를 얻게 된 기게스는 반지를 통해 신비한 경험을 한다. 이 반지에 박힌 구슬을 자신 쪽으로 돌리면 투명인간처럼 모습을 감춰주고, 다시 바깥쪽으로 돌리면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지녔다. 반지의 능력을 쥔 기게스의 욕망은 커지고, 궁궐에 침투해 왕비를 유혹하고 내통해 왕을 죽인 뒤 왕위에 오른다. 기게스의 반지는 자신의 존재를 감춰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때, 우리는 정의로울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전설 속에서만 존재할 줄 알았던 기게스의 반지가 SNS상의 검증 받지 않은 영상으로 재등장한 듯하다. 요즘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SNS에 나도는 동영상을 보면 마치 기게스의 반지를 악용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검증은 없고, 의혹만 있다. 최근 故손정민씨 사건 당시 수사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허위 정보들을 양산하는 유튜버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실종된 청년의 귀환을 바라던 가족과 시민의 간절한 바람은, 이름도 얼굴도 없는 일부 유령 유튜버의 가공을 거쳐 가짜뉴스로 확산했다. 보다 자극적인 유언비어를 골라 미끼성 제목을 달고, 조회수를 올려 돈을 벌 목적으로 SNS란 기게스 반지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이다. 하지만 SNS를 절대반지로 믿고 있던 이들이 사법당국에 의해 하나 둘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유통한 혐의로 법정에 선 이들은 하나같이 공익을 위해 영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분명한 건 플랫폼이라는 반지 속에 숨어 조회수를 통한 이윤을 얻기 위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공익일 수 없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기게스의 반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도쿄올림픽 참가의 불가피성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1년간 연기됐던 2020 도쿄올림픽이 우여곡절 끝에 오는 7월23일 막을 올린다. 근대 올림픽 124년 사상 첫 홀수 연도에 개최되는 도쿄올림픽은 역대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올림픽으로 남을 전망이다. 코로나19 사태는 물론이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공식 홈페이지의 독도 일본 영토 표기, 욱일승천기의 경기장 반입 허용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잦아들지 않는 코로나19 국면에 일본 국민들 마저 올림픽의 취소 또는 재연기 주장이 잇따르고 있다. 반일 정서와 맞물려 국내에서는 도쿄올림픽을 보이콧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올림픽의 시계는 예정대로 개막을 향해 돌아가고 있다. 여러가지 불안 요소를 내재한 채 지구촌 최대의 스포츠 축제가 개막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도쿄올림픽 참가가 탐탁하지 않을 수 있다. 독도를 자기네 영토로 표기하고, 일본 군국주의 전범(戰犯)의 상징인 욱일승천기 사용은 비난 받아 마땅하다. 이를 제지하지 못하고 있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더욱 그렇다. IOC가 반인류 범죄를 저지른 나치 깃발 사용은 금지하면서도 수많은 학살과 침탈 만행을 저지른 일본의 욱일승천기 사용을 허용한 것은 분명 형평성을 잃은 처사다. ▶그럼에도 올림픽이 열려야 하고 선수단이 참가해야 하는 이유는 그동안 동ㆍ하계 올림픽을 모두 치른 국가로서 스포츠를 통한 인류평화 구현의 올림픽 정신을 저버려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올림픽 정신을 훼손했다고 해서 우리도 같이 행동할 수는 없다. 우리는 두 차례 올림픽 개최를 통해 인류 화합과 전진, 평화를 강조했었다. ▶우리가 도쿄올림픽에 참가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5년 동안 수많은 도전과 좌절 속에 피땀흘려 준비해온 선수들 때문이다.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올림픽은 생애 단 한 번도 경험하기 어려운 최고 가치의 무대다. 또하나의 가치는 국민들에게 주는 희망과 감동이다. 그동안 많은 스포츠 메가이벤트를 통해 국민들이 누린 희망과 환희, 감동은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다. 요즘 같이 힘든 코로나19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지리의 힘

술래가 외친다. 레이캬비크!. 와르르 달려들어 사회과부도에서 낯선 도시를 찾기 시작한다. 사회과부도는 당시 사회과목 부교재였다. 먼저 발견한 녀석이 다음 술래를 지정한다. 그렇게 세계지리를 익혔다. 어렸을 적 이 놀이를 통해 북극 자락 나라의 수도도 가볼 수 있었다. ▶지도놀이를 기억한다면 환갑을 넘겼거나, 곧 앞둔 세대일 터이다. 이 놀이를 소환한 까닭은 뭘까. 요즘 세대가 지리에 무관심한 탓이다. 최근 교육단체 발표 내용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신세대 기피 과목에 지리가 있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수학은 그렇다 치자. 역사도 그럴 수 있겠다. 지리는 왜 꺼리는 걸까. 네비가 척척 알려줘 그런가. 지리도 섣불리 이과(理科)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어서일까. ▶딸이 초등학생 때 이렇게 물었다. 러시아는 대다수 땅이 아시아에 있는데, 왜 유럽이야 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시베리아에는 사람이 안 살잖아. 사람들이 거주하는 땅은 유럽에 있잖아. 딸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리는 이처럼 쉬운 인문학의 영역이다. ▶코로나19 백신접종률이 높은 영국과 이스라엘의 공통분모는 지도력(地圖力)이다. 지도력은 낯선 곳에서도 방향을 깨우치는 능력이다. 현장중심의 해결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영국은 지리 강국이다. 19세기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도 지도를 통해 솔루션을 찾았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지리를 통해 세상을 익힌다.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탈무드에도 어린이들에게 지리를 권하라고 적혀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명나라 때 환관 정화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선단을 꾸려 동남아는 물론 인도와 중동 등지에 진출했었다. 당시 초급관리가 되려면 지리과목들을 꼭 섭렵해야만 했다. 지금도 중국에선 지리과목이 세분화돼 있다. 지도력으로 성공의 기회도 포착할 수 있다. 지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메트로놈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사는 고장 동서남북에 어떤 도시들이 있는지 통 관심이 없다. 국내 지리도 그러니 외국은 오죽할까. 대한민국의 지상과제는 여전히 세계로의 웅비(雄飛)이고, 도약(跳躍)이다. 비좁은 땅덩어리를 박차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지도력이다. 그게 바로 지리의 올곧고 늠름한 힘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노예 놀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노예 놀이라는게 있다. 주로 트위터를 통해서 이뤄지는 일종의 역할놀이다. 각각 노예와 주인 역할을 맡아 노예는 주인 지시에 철저히 복종한다. 주인 지시에는 신체 노출 사진이나 영상을 찍으라는 등의 성적인 행위와 엽기적인 가학 행위도 포함된다. 노예 놀이가 디지털성범죄의 수단이 되고 있다. 신체 노출 사진이나 영상 등 성착취물을 손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성년자를 성추행하고 성 착취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지난 16일 구속돼 신상이 공개된 최찬욱(26)이 범행동기로 노예 놀이를 언급했다. 그는 인터넷에서 노예와 주인 놀이 같은 것을 하는 걸 보고 호기심에 시작했다고 말했다. 최씨는 2016년 5월부터 최근까지 5년 동안 남자 미성년자들을 노예화하며 성 착취물을 제작해 보관했다. 보관 중인 성 착취물은 6천954개(사진 3천841개영상 3천703개)나 됐는데, 그중 일부는 온라인에 직접 유포했다. 그는 피해자 3명을 직접 만나 강제로 신체 일부를 만지는 등 성폭행도 저질렀다. 최씨 사건에서 가장 나이 어린 피해자는 만 11세다. 최씨는 30개의 계정을 만들어 각각 여성, 동성애자, 초등학생 행세를 했다. 여성 프로필을 이용해 피해자들에게 접근한 후 알몸 사진을 보내주면 나도 보내주겠다는 식으로 피해자들로부터 사진을 받아냈다. 이후 피해자가 사진을 보내면 이를 약점으로 삼아 노예와 주인의 관계를 형성하며 피해자를 노예화했다. 그는 피해자에게 체액이나 용변을 먹으라는 등의 가학적 요구도 했다. 트위터 등의 SNS에서 가해자는 미성년자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다. 트위터는 검색에 제약이 없고, 검색 결과를 볼 때도 성인인증 등 필터링을 거치지 않는다. 때문에 트위터에서 10대들도 검색 한 번이면 노예 놀이에 가담할 수 있고, 성범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미성년자들이 각종 음란물에 쉽게 접근하고, 성범죄의 표적이 되는걸 방치해선 안된다. 가정ㆍ학교에서 디지털성범죄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트위터 등 SNS 사업자들은 자신의 플랫폼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문제에 대해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실질적인 예방 대책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인구 지진

인구 지진은 땅 표면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지진처럼 고령사회가 진행됨에 따라 그 사회가 근본부터 흔들리는 현상을 비유한 용어다. 영국의 작가이자 인구학자인 폴 월리스가 저서 에이지퀘이크(Age-quake)에서 만든 용어로 인구 감소와 고령사회의 충격을 지진(earthquake)에 빗댔다. 월리스는 인구 지진은 자연현상인 지진보다 훨씬 파괴력이 크며, 지진에 비유할 때 강도가 리히터규모 9.0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한국도 피해를 크게 입는 국가 중 하나로 지목했다. 유엔은 노인 인구비율이 7%인 사회를 고령화사회, 14%를 넘으면 고령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최고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비율이 2000년 7%에서 18년 만인 2018년에 14%로 증가해 고령사회에 도달했다. 올해 4월 기준 출생아 수는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다. 전년 같은 달에 비해 출생아가 줄어드는 현상은 2015년 12월부터 65개월째 이어졌다. 보통 인구유지에 필요한 합계출산율을 2.1명으로 보는데 한국은 지난해 0.84명이었다. OECD 회원국 중 평균(1.63명)은커녕 초저출산 기준(1.3명)에도 못 미치는 압도적 꼴찌다. 아이 울음소리는 듣기 어려운데 노인 인구는 초고속으로 늘고 있다. 출생아보다 사망자가 더 많은 인구 자연감소가 18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고령인구 비율은 2020년 15.7%에서 2025년에는 20.3%로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2060년에는 고령인구 비중이 43.9%까지 높아진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구 지진을 경고했다. 인구 자연감소, 초고령사회 임박, 지역소멸 현상이라는 3대 인구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특단의 대응이 없을 경우 우리나라는 2030~2040년부터 인구절벽에 따른 인구 지진이 발생할 것이라고 했다. 2030년이면 일하는 인구가 315만명 줄어든다. 홍 부총리 말대로 사회구조가 뿌리째 흔들리는 충격이다. 인구 재앙을 막기 위한 시간이 많지 않다. 앞으로 10년간 허송세월 하면 모든게 끝이다. 특단의 대책이 절실하다.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200조원을 쏟아붓고도 출산율이 최악이어서 얼마나 성과를 낼지 걱정스럽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룰을 지키지 않는 자, ‘퇴장’시켜야

룰을 지키는 모습을 보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가. 최근 민주당의 대통령 경선 일정 논의 모습을 보면 답답하기만 하다. 지난 보궐선거의 결과에서 아무것도 느낀 게 없는 것 같다. 민주당은 국회 과반 이상을 차지한 거대 집권 여당이다. 국정을 책임지는 정당이다. 그러한 정당에서 최근 약속ㆍ신뢰ㆍ공정이라는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다. 본인들이 만든 당헌ㆍ당규에 명시된 경선 일정을 바꾸려 한다. 이는 당원들과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 행위다.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신뢰를 잃게 된다. 신뢰가 깨지면 경선 결과에 승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특정 집단의 유불리에 따라 정해진 룰을 변경하려는 것 자체가 이미 공정하지 않다. 당헌당규를 무시하고 후보를 낸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돌이켜보자. 만약 민주당이 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국민에게 반성하는 모습으로 비춰줬을까. 집권정당으로서 책임 있는 모습으로 보였을까. 제3의 후보를 내세우며 민주당의 외연을 더욱 확장했을 수 있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야당에 패배하진 않았을 것이다. 지지 않아도 될 선거를 자신들이 약속한 것까지 져버리고 후보를 내 억지로 패배했던 민주당이, 이번에는 후보자 선출 과정에서까지 룰을 바꾸려 한다.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프로야구에서는 심판 판정에 대해 감독이 비디오 판독을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판독 결과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항의를 계속하면 즉각 퇴장 조치된다. 계속 항의를 하면 경기를 진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감독이 떼를 쓴다고 경기 도중에 룰을 바꿀 수도 없지 않은가. 민주당 경선 논의도 이 정도면 됐다. 경선 연기를 주장하는 쪽의 의견도 충분히 들었지만, 많은 국민은 경선 연기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않는 듯싶다. 이제는 게임을 진행해야 한다. 더이상 항의 하는 자, 끝까지 룰을 못 지키겠다는 자는 퇴장 시켜야 한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지지대] 마지막 판단

전투에서 지휘관의 마지막 판단은 승리와 패배 중 하나로 귀결되듯 사회적 거리두기와 거리붙이기라는 대명제 앞에서 정부의 결단이 도마위에 올랐다. 우리보다 높은 백신 접종율을 보이며 야외에서 탈 마스크를 선언했던 이스라엘과 영국은 변이라는 변수에 발목이 잡혀 다시금 혼돈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7월1일 시행되는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에 이목이 집중되는 선례이기도 하다. ▶정부는 지난 20일 7월1일부터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 체계를 적용한다고 발표했다. 사적모임 제한이 완화되고, 다중이용시설 이용시간이 늘어나는 것이 핵심이다. 수도권은 사적 모임 규모를 다음 달 1일부터 2주 동안 6인까지 허용하고, 다음 달 15일부터 새로운 거리두기 개편 체계로 전환한다.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자정까지 운영이 가능하게 된다. 비수도권은 1단계가 적용돼 사적모임 기준이 전면 해제된다. ▶영국으로 넘어가보자. 영국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확진자는 지난 22일(현지시간) 1만467명을 기록했다. 델타 변이가 신규 감염의 99%를 차지하고 있다. 영국은 지난 5월부터 술집과 음식점의 실내 영업을 재개하는 등 사회적 거리두기를 대폭 완화했다. 인구 80%가 백신을 1회 이상 접종했음에도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이유는 델타 변이가 백신을 2회 접종까지 모두 완료해야 감염예방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전체 인구의 55%가 2회차까지 접종을 마친 이스라엘의 상황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정부는 최근 델타 변이를 중심으로 신종 코로나19 재확산이 시작됐다면서 해외여행을 자제하고 실내에서 마스크를 써달라고 강력하게 권고하고 나섰다. ▶정부는 현재 유행상황이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고, 1천400만명까지 접종(1회차)하는 등 예방접종이 원활하게 진행 중이라며 완화된 거리두기 체계의 적용 이유를 설명했다. 아직 인구의 30%도 안되는 국민들이 1회차 백신을 맞은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정부의 이번 판단이 재앙의 시간이 될 지, 아니면 경제와 코로나19 두 가지를 모두 잡는 신의 한수가 될 지 지켜볼 일이다. 다만, 대한민국이 결코 델타 변이의 무풍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지지대] 어느 영웅돼지의 죽음

쓰촨성(四川省) 음식은 꽤 맵다. 그래서 유명하다. 그런데 이곳은 중국의 자존심, 그 자체다. 한족(漢族)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규모 8.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2008년 5월12일이었다. 중국 국영방송 CCTV는 무려 1년여 동안 모금캠페인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다른 곳에서의 재난사고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터이다. ▶쓰촨성에선 규모 4.0 이상 여진이 240여차례 이어졌다. 전체 여진 횟수는 2만1천500건 이상이었다. 피해 면적 10만㎢에 사망자 6만9천여명, 실종자 1만7천여명 등이었다. 경제손실도 1조위안(160조원) 이상이었다. 유적지들도 많이 파괴됐다. 유비와 제갈량 사당 무후사(武侯祠)와 유비묘가 그랬다. ▶주젠창((猪堅强) 얘기를 하려고 쓰촨성 얘기를 늘어놓았다. 쓰촨성 대지진 당시 36일만에 살아 구출된 아기돼지 이름이다. 36일간 매몰됐지만 기적적으로 구출돼 중국인들에게 감동을 줬었다. 중국인들은 이 돼지는 먹어선 안 된다며 구명운동도 펼쳤다. ▶당시 젠촨박물관을 운영했던 판젠촨(樊建川)은 돼지에게 강인한 의지의 돼지라는 뜻의 주젠창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후 중국의 국보인 판다 못지않게 중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포털사이트 홍망(紅網)이 당시 시행한 조사 결과 가장 감동을 준 동물로도 뽑혔다. ▶하지만 이후 주젠창이 호의호식하면서 살이 찌고 게을러졌다는 보도들이 쏟아지면서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도 이 돼지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호사생활을 누려왔다. 무제한 사료도 제공받았다. 5천위안(한화 88만원)짜리 보험까지 가입했다. ▶그랬던 주젠창이 태어난 지 14년이 된 최근 노환으로 자연사했다. 주젠창이 사망하자 중국인들은 애도했다. 큰 재난에도 죽지 않으면 반드시 복을 받는 날이 온다는 희망을 줬다는 것이다. ▶이 돼지가 쓰촨성 대지진을 경험한 중국인들에겐 상징과 같은 존재였겠다. 하지만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 동물까지 이용하는 중국 당국의 저의는 아무리 생각해도 씁쓸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