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회색 코뿔소의 경고?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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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꼭대기에 뿔이 난 동물 이름은? 너무 막연한가. 피부가 두껍고 딱딱하다. 그래도 헷갈리면 이건 어떨까. 꼬리에 굳은 털이 있다. 눈치가 빠르다면 코뿔소가 그려질 터이다. 그런데 녀석의 사촌은 소가 아니라, 말이다. 반전이다.

▶코뿔소에 대한 오해는 이 뿐만이 아니다. 흰 코뿔소(White Rhino)와 검은 코뿔소(Black Rhino), 회색 코뿔소(Gray Rhino).... 하지만 모든 코뿔소 뿔의 색깔은 회색이다. 좀 더 엷은 회색이면 회색 코뿔소, 짙은 회색이면 검은 코뿔소라고 부를 따름이다. 두 번째 반전이다.

▶서양인들은 음흉하고 두루뭉술한 존재를 가리킬 때 ‘회색 코뿔소’라고 부른다. 그 걷잡을 수 없는 뿔의 색깔 탓이다. 영어로 ‘회색 코뿔소 같다(Like a Gray Rhino)’는 표현은 상대방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다. 회의 석상에서 상대방이 이렇게 말한다면 그 협상은 포기해야 한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한국 경제를 두고 ‘회색 코뿔소가 어슬렁거리고 있다’는 경보음이 들린다. 미국의 긴축정책 가속과 중국의 급격한 경기둔화 등이 우리 경제와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국내 부동산 거품 붕괴와 가계 부채 부실 표면화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크다. 경제용어로 ‘회색 코뿔소’는 예상할 수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위험 요인을 뜻한다.

▶처음 이 표현을 사용한 이는 경제분석가 미셸 부커다. 지난 2013년 열린 ‘다보스 포럼’에서다. 예상하기 어렵지만 일단 발생하면 큰 충격을 주는 ‘블랙 스완(Black Swan)’과 대조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 긴축에 대비하라고 신흥국에 주문했다. 연준이 금리 인상에 속도를 낸다면? 수요와 교역 둔화를 동반하면서 신흥시장 자본 유출과 통화가치 하락으로 이어진다. 높아진 금리를 쫓아 돈이 빠져나가고, 이 과정에서 각국 환율이 급등할 수도 있다.

▶연준의 긴축 속도는 한국은행 기준금리 인상 속도에도 영향을 끼친다. 한은은 최근 기준금리를 0.25%p 올리며 물가급등 억제를 위한 추가 인상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내 금리 상승은 가계 부채, 주택 가격 등과 맞물려 경제 불안 요인으로 작용된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선정국이지만, 경제당국이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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