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시진핑의 역사결의

역사결의(歷史決議). 중국 집권세력은 위기 때마다 늘 이 표현을 썼다. 중국공산당 100년 분투의 중대한 성취와 역사경험에 관한 결의의 준말이다. 뉘앙스는 제법 둔중하다. 첫번째는 공산당 정권수립 4년 전에 발표됐다. 1945년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첫번째 역사결의를 통해 사상적 단결을 역설했다. ▶두번째는 1981년이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당시의 최고 통치자였다. 그는 이 선언을 계기로 대륙을 재앙으로 몰고 간 문화대혁명 10년의 폐해를 정리하고 개혁개방의 길을 열었다. 문화대혁명을 정리하지 않고선 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위중한 시대였다. ▶역사결의를 선포한 뒤 지도자들은 어김없이 장기집권에 들어갔다. 마오쩌둥이 그랬고 덩샤오핑도 마찬가지였다. 인민들을 핍박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허울 속에는 과연 뭐가 녹여져 있었을까. 정권의 장기집권이 속내였다. 역사결의는 이들에겐 장기집권의 동의어다. 적어도 중국 현대사에선 그렇다는 얘기다. 사실 중국인들은 정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명청시대 때도 그랬고 쑨원(孫文)과 장제스(蔣介石) 집권 때도 그랬다. ▶생뚱맞게 역사결의를 꺼낸 까닭은 뭘까. 엊그제 끝난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또 선포된 탓이다. 벌써 세번째다 중국 공산당은 5년마다 한번씩 2천2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대표대회를 연다. 중간 해에는 중앙위원과 후보위원 등 372명이 중앙위 전체회의를 개최한다. 이를 중전회(中全會)라고 부른다. ▶중국은 내년 하반기 제20기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의 3연임 확정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시진핑은 신시대 당과 국가사업 발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역사 추진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2049년 중궈멍(中國夢) 달성을 내걸고 시진핑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한 셈이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어 시진핑도 1인 통치체제를 열었다. 이번 역사결의 채택 이후 시진핑의 장기집권은 기정사실이 됐다. 중국 공산당은 한술을 더 떴다. 3차 역사결의를 계기로 시진핑의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주의로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가 공산당 중흥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또다시 위험한 도박을 시작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청년층 경제고통지수

경제고통지수는 국민들이 실제로 느끼는 경제적 삶의 질을 측정하는 지표다. 일정 기간의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더한 것에다 소득증가율을 빼서 나타낸다.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 청년들이 겪은 경제적 고통이 역대 최악 수준이라는 분석이다. 취업난이 심각한 데다 물가까지 폭등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14일 경제고통지수를 재구성해 세대별 체감경제고통지수를 산출한 결과 올해 상반기 기준 청년 체감경제고통지수가 2015년 집계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고 밝혔다. 청년층(1529세)의 체감경제고통지수는 27.2로 가장 높았다. 이어 60대 18.8, 50대 14.0, 30대 13.6, 40대 11.5 등의 순이었다. 원인은 고용 한파다. 청년 체감실업률은 올 상반기 25.4%로 30대(11.7%)의 2.2배, 40대(9.8%)의 2.6배였다. 2015년 21.9%에서 2019년 22.9%로 4년간 1.0%p 올랐으나 그 후 2년 반 만에 2.5%p나 더 상승했다. 청년 물가상승률도 2018년 1.6% 이후 0%대를 유지하다 올 상반기 1.8%로 급등했다. 청년 자영업자 폐업률은 2020년 기준 20.1%로 전체 평균(12.3%)의 1.6배였다. 재무 건전성도 나빠져 청년층(29세 이하 가구주)의 자산 대비 부채 비율은 2015년 16.8%에서 2020년에는 32.5%로 최고치였다. 청년층 부채는 2015년 1천491만원에서 2020년 3천479만원으로 연평균 18.5% 올랐지만, 자산은 8천864만원에서 1억720만원으로 연평균 3.9% 증가하는 데 그쳤다.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난에 코로나19까지 장기화하면서 청년들의 경제적 고통이 더 심화하고 있다. 이를 청년 기본소득, 청년 기본대출, 청년 도약 보장금 등 선심성 정책이나 퍼주기식 지원금으로 해결하려는 건 한계가 있다. 정치권과 정부는 기업규제 혁파, 고용 유연성 확보 등 민간의 고용창출을 지원해 양질의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청년들에게 고통이 아닌 희망을 줘야할 의무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코로나에 ‘보복’하다

보복은 남이 자신에게 끼친 해를 그대로 갚는다는 의미다. 복수와 뜻이 비슷하지만 실생활에선 복수와 뉘앙스가 다르게 쓰인다. 복수는 긍정적, 혹은 중립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보복은 대개 부정적 의미로 사용된다. 최근 보복○○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보복소비, 보복여행, 보복음주 등. 1일부터 시작된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그동안 억눌렸던 몸과 마음이 활개를 치고 있다. 코로나 블루에 대한 보상심리가 크다. 코로나19는 일상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다. 확진자가 늘면서 거리두기가 강화돼 모임을 할 수도 없고, 외출이나 여행도 힘들었다. 소비생활에도 큰 변화를 가져와 비대면 소비가 일상화됐다. 사람들은 외식을 줄였고 집밥을 먹었다. 나갈 필요가 없으니 옷과 화장품에 지갑을 닫았다. 만날 수 없으니 술도 덜 먹었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고 경제ㆍ사회적 타격이 커지면서 위드 코로나가 시행됐다. 거리두기 제한이 풀리면서 2년 가까이 참아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졌다. 마치 코로나에 보복이라도 하듯. 억눌린 소비 심리는 명품 구매로 이어졌고, 여행지엔 사람들이 붐볐다. 성급하게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늘었다. 내년부터는 해외 보복여행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보복적 만남도 이어지고 있다. 다같이 모여 마시는 음주문화가 살아나고 있다. 거리두기로 못했던 사적 모임과 회식이 이어지면서 술을 맘껏 즐기려는 분위기가 한창이다. 보복 음주다. 이에 따라 음주운전 사고도 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달 첫 주(1~7일)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건수는 하루 평균 406.3건으로 1~9월(309.9건)보다 96.4건(31%) 늘었다. 확진자가 다시 급증하고 있다. 백신접종을 완료한 이들의 돌파감염이 많다. 모임과 술자리가 늘어 상황이 더 악화될까 걱정스럽다. 코로나19 상황이 크게 좋아져 단계적 일상회복으로 가는건 아니다. 자영업자의 한숨 등 경제적 이유가 크다. 아직 조심하고 자중해야 한다. 슬기로운 일상생활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76년 만에 추진되는 원폭피해자 추모시설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정부가 경남 합천군에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 추모시설 조성을 추진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한국인 원자폭탄 피해자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에 노출돼 피해를 본 사람이다. 추모시설이 합천군으로 결정된 것은, 원폭피해 생존자가 가장 많이 살고 있다는 점과 원폭피해자복지회관 및 자료관 등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까지 후속 연구를 지원해 합천군을 중심으로 입지 확보 방안과 추모시설 구성 배치 등을 담은 추진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자신은 물론 후손까지 고통을 겪고 있는 원폭피해자들에게는 역사적인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일본에서도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지난 6일 일본 나가사키시 평화공원에서 한국인 원자폭탄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열린 것이다. 나가사키시는 1945년 8월9일 원자폭탄 투하 당시 약 7만4천여명이 사망했고, 이 중 1만여 명이 한국인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른 원폭 투하 지역인 히로시마시에는 1970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현지 평화기념공원에 건립돼 매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전날인 8월5일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제가 열렸지만, 그동안 나가사키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없어 추모 행사를 열지 못했다. 지난 1996년부터 민간단체 등이 나가사키시에 위령비를 세우기 위해 노력했지만 강제징용과 관련된 갈등 등으로 인해 지지부진하게 논의되다 25년 만에 건립된 것이다. 1세대 원폭피해자가 180여명 거주하고 있는 경기도 역시, 조만간 원폭피해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들려 줄 것으로 기대된다. 경기도는 내년부터 도내 원폭피해자들을 대상으로 매월 5만원의 생활지원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계획으로, 11월29일부터 시작되는 경기도의회의 예산심의를 통과하면 도의 계획이 실현된다. 지난 76년간 외면당해왔던 원폭피해자들, 이제라도 관심과 지원에 나선 정부와 지자체의 노력이 자그마한 위로가 되길 기도한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지지대] 집값 잡으려다… 부동산 양극화 부른다

영끌, 패닉바잉으로 점철됐던 부동산 시장의 지형도가 바뀌고 있다. 정부의 정책으로 일단 집값 상승세는 잦아들고 있다. 다만 자유시장경제에 칼을 댄 상황이라 파생될 문제가 만만치 않다. 금리는 올라가고 있다. 대출 상환 기간은 줄였다. 대출의 문턱은 높아졌다. 다시 말해 돈줄이 막히고 있다.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큰 상황이다. ▶집값이 상승세는 이어가지만 상승 폭은 둔화하는 추세다. 11월 첫째 주(1일 기준)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0.29% 오르며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9월 초부터 8주째 하락세다. ▶아파트의 거래 절벽은 심각하다. 경기부동산포털 부동산거래현황에 따르면 경기도 아파트 거래량은 감소세가 지속되고 있다. 7월에는 1만5천76건이었지만, 8월(1만3천598건), 9월(1만38건), 10월(6천447건)까지 불과 3개월 사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전세 거래량 역시 급감했다. 7월에는 2만3천238건으로 올해 들어 최고 거래량을 기록한 데 이어 8월(2만2천63건), 9월(1만8천717건)에도 하락세를 이어갔다. 지난달에는 1만6천280건으로 불과 석 달 사이 거래량이 약 30% 감소했다. ▶이같이 집값 상승세가 둔화되고, 거래가 현저히 줄어든 데는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방안 발표와 금리 인상 우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정부가 대출을 과도하게 옥죄고 있다는 것이다. 개입이 과도한 것이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현금 부자만 부동산 시장에서 움직일 수 있다.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영끌과 패닉바잉으로 아파트를 샀던 2030세대가 이자 부담 등 무거운 짐만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는 속담이 떠오른다. throw the baby out with the bathwater라는 영어속담과 함께. 이명관 경제부장

[지지대]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

어느 여름 오후였다. 한 소녀가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대책을 마련하라며 1인 피켓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의 국회 격인 의사당 앞에서다. 2018년 8월 스웨덴 스톡홀름의 하늘에선 햇볕이 따갑게 쏟아지고 있었다. 당시 소녀의 나이는 불과 열다섯 살이었다. ▶피켓에 적힌 문구도 기후를 위한 학교파업(School Strike for Climate)이었다. 당돌했다. 기후를 위해 등교를 거부했던 소녀는 이후 매주 금요일마다 결석하면서 시위를 이어갔다. 시위는 마침내 세계적인 기후운동인 미래를 위한 금요일(Fridays for Future)로 귀결됐다.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가 이 소녀의 이름이다. 스웨덴에선 이 나라를 대표하는 자동차 기업보다 더 유명해졌다. 노벨상을 창시한 알프레드 노벨만큼 이 나라를 대표하는 인사가 됐다. 열한살 때 아스퍼거 증후군 등을 진단받았던 소녀가 말이다. ▶인터넷에 그레타 툰베리를 검색어로 치면 동시에 뜨는 단어가 있다. COP26다. 유엔 기후변화 협약당사국총회를 뜻하는 Conference of the Parties의 약칭이다. 뒤에 붙은 숫자는 회차를 알려준다. 올해가 제26회째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오는 12일까지 열리고 있다. COP는 지난 1995년 독일 베를린에서 처음 시작됐다. 그레타 툰베리가 태어나기 전에 태동한 셈이다. ▶이번 총회에는 그레타 툰베리말고도 환경운동가로 알려진 영화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찾았다. COP는 여러 의미로 각별하다.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국가와 금세기 내 지도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 작은 섬나라 대표가 나란히 앉아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레타 툰베리가 이 행사에 처음 참가했던 건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열렸던 지난 2018년 12월이었다. 열다섯살 소녀는 당시 각국 정부를 상대로 기후변화 대비를 촉구했었다. 이듬해 1월 다보스 포럼과 8월 UN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도 호소를 이어갔다. 2019년에는 대안 노벨상으로 불리는 바른생활상도 받았다. 잔 다르크가 환생해 자연을 보존하자고 호소하는 걸까. 가냘픈 소녀의 외침이 지구촌을 바꾸고 있다. 기후변화 대비는 이제 미래를 위한 또 하나의 정의(正義)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나가사키의 한국인 원폭위령비

1945년 8월9일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은 8월6일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500m 상공에서 폭발한 원폭으로 약 7만4천명이 사망했다. 이 중 최대 1만여명이 조선인으로 추정된다. 나가사키는 공업지역으로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원폭에 희생된 것이다. 원폭 피해자인 권순금(95) 할머니는 이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펑 하고 엄청난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온통 새까만 구름이었다고. 당시 원폭 투하 지점에서 1.8㎞ 떨어진 집에 있다가 피폭된 권씨는 현재 생존한 거의 유일한 한국인 피해자다. 원폭으로 권씨는 여동생 2명을 잃었다. 나가사키시 원폭기념관 앞 평화공원에서 지난 6일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위령비에는 원폭으로 인한 수난의 역사를 영원히 기억하고, 희생당한 동포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치고자 하는 우리의 작은 증표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위령비가 세워지기까지 76년의 시간이 걸렸다. 히로시마에는 1970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졌다. 매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전날인 8월5일 위령제가 열린다. 하지만 나가사키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없었다. 원폭 피해자들은 1990년대부터 나가사키 위령비 건립을 추진했고, 2013년에는 재일본대한민국단 나가사키본부 등이 건립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러나 나가사키시는 강제징용 관련 내용 등을 문제 삼아 허가를 거부했다. 위령비 건립위는 시 당국을 설득해 올 여름 건립 허가를 받았다. 비문에는 시의 반대로 강제징용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을 새겼디. 아쉬움이 있지만 나가사키위령비 건립을 통해 전쟁의 역사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징표가 마련됐다. 제막식에선 일본 고등학생 평화사절단이 평화와 추모의 의미로 종이학 1천마리를 위령비에 바쳤다. 제막식에 비가 쏟아졌다. 일부 참석자는 원폭이 떨어졌던 날을 기억하며 묵념할 때 우산도 쓰지 않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빗물과 함께 눈물도 흘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줄다리기

줄다리기가 때아닌 인기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줄다리기가 등장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줄다리기를 즐기고 있다. 지난달 28일에는 수원 칠보중학교에서 학생들이 줄다리기 게임을 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팬데믹 상황에서 오는 긴장, 우울, 스트레스 등을 해소하고 학교생활의 활력을 찾게 하려고 학교측이 운동회를 마련한 것이다. 줄다리기는 오징어 게임에 나온 다른 놀이와 달리 여러 나라에서 인기가 높다. 사람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놀이로, 벼농사 문화권에서 주로 행해졌다. 한국의 6개 줄다리기(무형문화재)는 캄보디아, 필리핀, 베트남과 공동으로 201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줄다리기는 캄보디아에선 테안 프롯, 필리핀에선 푸눅, 베트남에선 깨오꼬라 부른다. 4개 국가에서 모두 줄다리기를 통해 풍작과 번영, 공동체 결속을 기원한다. 줄다리기는 100여년 전엔 올림픽 정식 종목이었다. 1900 파리올림픽부터 1920 앤트워프올림픽까지 5회 연속 열렸다. 올림픽 줄다리기는 58명이 한 팀을 이뤄 맞붙었다. 경기 시간은 5분, 시작 뒤 6피트(약 183cm)를 먼저 잡아당기면 승리하는데 3판 2선승제였다. 서로 다른 나라 출신이 한 팀을 이루기도 했고, 개별 클럽팀 참가도 허용됐다. 줄다리기는 1920년 대회 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 규모를 축소하면서 33개 종목과 함께 퇴출됐다. 정비되지 않은 규칙 등이 퇴출 원인 중 하나였다. 1908 런던올림픽에서 영국 리버풀 경찰관팀이 스파이크가 달린 운동화를 신고 참가했다. 반면 상대였던 미국팀은 일반 운동화였다. 심판은 관련 규정이 없다며 영국의 손을 들어줬고, 미국팀은 항의 표시로 대회를 포기했다. 국제줄다리기연맹(TWIF)이 줄다리기의 올림픽 재진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60년 창설된 연맹은 줄다리기 경기 방식과 규정을 정비하고, 국제대회도 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2년 IOC에도 가입했다. 2020 도쿄올림픽과 2024 파리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에도 도전했다. 줄다리기를 올림픽에서 다시 볼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리쩌허우의 별세

숱한 청년들이 이념의 깃발 이름으로 동원됐다. 까까머리 소년들까지 그 흉측한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의미 없는 선동 구호로 아침이 시작됐고, 패악질 투성이의 구호 속에서 하루가 저물었다. 사회는 모순과 왜곡 등이 들끓는 싸구려 저잣거리일 뿐이었다. ▶어떤 지식인이 이불 속에서 쓴 중국의 1970년대 서사(敍事)는 그랬다. 상식이 있다면 누구나 우울증 환자일 수밖에 없었던 시대였다. 당대는 한 마디로 문화대혁명이란 껍질을 뒤집어쓴 대혼란의 시대였다. 아무도 임금님의 당나귀 귀를 당나귀 귀라고 꼬집지 못했다. 모두가 병들었는데도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이 같은 혼돈을 유일하게 지적한 이가 있었다, 중국 사상계의 거목 리쩌허우(李澤厚)였다. 그의 이름 앞에는 철학자와 미학자라는 호칭도 함께 붙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고향인 후난성(湖南省) 출신이지만, 정작 마오쩌둥으로부터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1954년 베이징(北京)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80년대 중국 청년들의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을 받았다. 지식계에서의 영향력도 지대했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10년 동안 허난성(河南省)으로 축출돼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이후 1970년 후반 대륙으로 불어온 개혁개방 속에 주요 저작을 펴내며 주목받았다. 1979년 펴낸 중국근대사상사론을 시작으로 1985년 중국고대사상사론도 출간했다. 그로부터 2년 뒤에는 중국현대사상사론도 햇빛을 받는다. ▶그는 조국과 또다시 맞붙는다.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였다. 횡포와 독선을 일삼는 정부에 쓴소리를 했다는 이유로 다시 암울한 시대를 맞는다. 그리고 미국으로의 망명을 선택한다. 미국에서 서양사상의 새로운 탈출구를 중국 전통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철학과 서양 철학과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깊이 사유했다. ▶콜로라도대 등에서 연구와 강의를 하며 여생을 보냈다. 파리 국제철학원 종신회원이었고, 미국 콜로라도대 명예 인문학 박사였다. 그랬던 그가 3일(현지시각) 91세를 일기로 세상과 하직했다. 중국이 또 한 명의 소중한 스승을 잃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그가 꺼낸 카드, ‘이재명 정부’

이재명은 경기도민에게 어떤 존재일까. 경기도지사, 성남시장, 사이다 발언, 인권 변호사, 소년공, 흙수저 . 떠오르는 수식어는 많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통령 여당 후보만 하랴. 지역주의에 파묻힌 정치판에 경기도지사가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여론은 그를 재조명하고 도민들은 열광했다. 이재명 후보는 3년여 간 도정을 수행하면서 기본소득 시리즈, 재난지원금, 지역화폐, 계곡ㆍ하천정비 등 전국적 이슈를 만들었다. 도정을 정치에 접목하면서 정무감각을 높였고 정치 내공은 한층 탁월해졌다. 그런데 대선 후보 컨벤션 효과가 없다. 지지율은 20~30% 박스에 걷힌 채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을 분노케 한 대장동 개발사업이 발목을 잡은 탓이다. 캠프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지만, 민심이다. 최근 한국갤럽이 대장동 개발사업의 민간업체 특혜 의도성 여부를 조사, 발표했다. 응답자 55%는 당시 이재명 성남시장이 대장동 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업체에 특혜를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개입했다고 봤다. 의도적 개입이라고 보는 시각은 보수성향이 강할 수밖에 없다. 주목할 것은 무당층과 성향 중도층 등에서도 의도성 있었다는 쪽으로 기울었다는 점이다. 특검 도입 여론은 국민 10명 가운데 6~7명에 이르는 걸로 조사됐다. 기반세력인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도 41%가 특검 도입을 요구했다. 대장동 의혹을 털어야 대선 승리를 담보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대통령 국정 수행평가는 긍정이 여전히 높지만, 정권교체 여론도 절반을 넘은 채 꺾일 줄 모른다. 문 정부와 각을 세울 수도 없는 데다 정권교체 여론이 높으니 진퇴양난이다. 이 시점에 그가 꺼낸 카드는 이재명 정부이다. 이재명이라는 개인 이름 (차원) 보다는 이재명이라는 한 인간의 삶, 정치 역정, 국민의 기대, 이런 측면에서 상징성이 있어 보인다며 그 의미를 말했다. 친문 입장에서는 따라오려면 와라고 도발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같이 살던가 같이 죽자는 절박한 외침으로 들린다. 우회 없고 오직 직진, 정면 돌파다. 승부사답다. 도정수행이 그러했듯이. 김창학 정치부 부국장

[지지대] 스푸트닉 순간

옛 소련이 달을 향한 인공위성 발사에 성공했다. 스푸트닉(Sputnik) 1호였다. 1957년이었다. 미국이 뒤통수를 맞았다. 우주경쟁은 먼저 시작해놓고 선수를 빼앗긴 탓이다. 미국 우주과학자들 사이에서 자조 섞인 탄성들이 터졌다. 스푸트닉 순간(Sputnik Moment) ▶이처럼 탄성을 뜻하는 의성어는 이후 큰 자극이 주어지는 순간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됐다. 당시 미국의 충격은 컸었다. 스푸트닉 쇼크(Sputnik Shock)란 말까지 등장했다. 스웨덴 출신의 스푸트닉이란 밴드까지 결성됐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옛 소련의 경쟁은 치열했다. 우주경쟁이 그 한복판에 있었다. 그랬으니 옛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에 미국이 얼마나 놀랐겠는가. 안 봐도 비디오다. 그런 의미에서 회자되던 의성어가 스푸트닉 순간이었다. ▶최근 스푸트니크 순간이란 의성어가 재소환됐다. 70여년만이다. 마크 밀리 미국 합참의장에 의해서다. 중국의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실험 성공을 놓고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며 이렇게 표현했다. 갈수록 발전을 거듭하는 중국 군사력에 대한 미국의 위기의식이 녹여져 있다. ▶중국은 앞서 지난 78월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극초음속은 음속의 5배 이상의 속도다. 그래서 미사일 방어망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차세대 게임 체인저로도 불린다. 미국과 러시아 등도 시험발사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도 지난 9월말 극초음속 미사일을 시험발사한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이 지난 7월 시험발사한 극초음속 미사일은 핵탄두를 목표점 근방 상공에서 역추진 로켓으로 감속, 낙하시키는 부분궤도 폭격체제를 이용했다. 핵 탑재도 가능해 미국에 충격을 안긴 것으로 파악됐다. 중국 정부는 정기적인 우주선 시험일 뿐이라고 부인하고 있다. 하지만 서방세계는 이 기술이 완성되면 미사일 추심체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데도 사용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도 극초음속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우주 및 사이버공간 영역에서의 능력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최근 통일 후 대만 통치의 개략적인 원칙과 구상을 천명했다. 중국의 자신감이 서방세계를 자극하고 있다. 남의 얘기가 결코 아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직장갑질119

직장갑질119는 노무사, 변호사, 활동가 150여명으로 구성된 민간공익단체다. 직장 내 괴롭힘, 갑질, 임금체불 등의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전문가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기반으로 노동자들과 만나고 있다. 11월1일은 우리 사회에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이슈를 던진 직장갑질119가 출범 4년을 맞은 날이다. 지난 4년간 카카오톡 오픈채팅을 통해 이뤄진 상담이 약 8만건에 이른다. 네이버 밴드를 통한 상담은 5천건, 신원이 확인되는 이메일 상담은 1만5천947건이었다. 총 10만건 넘는 상담을 했다. 관련 연구보고서 51건을 발표했고, 설문조사도 25회 진행했다. 이 단체에 온라인으로 접수된 직괴(직장 내 괴롭힘) 신고는 중소기업ㆍ비정규직처럼 상대적으로 기댈 곳이 약한 직장인의 호소가 많다. 직원을 개 부리듯 한다는 회사에 대한 성토도 있고, 연차 사용을 못쓰게 한다는 직장도 있다. 폭언ㆍ성희롱도 여전하다. 괴롭힘이 더 교묘하고 은밀해지기도 했다. 폭행폭언이 줄어든 대신 은따(은근한 따돌림)가 크게 늘었다 어디에선가 갑질은 계속되지만 성과도 많았다. 2019년 7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제정됐다. 올해 10월 과태료 부과의무 등 법의 실효성을 강화한 법이 개정됐다. 간호사에게 선정적인 옷을 입고 장기자랑을 강요해 문제가 된 한림대성심병원, 외주제작 스태프에게 상품권을 임금으로 지급한 SBS의 사례 등 사회적으로 논란이 된 굵직한 사건도 직장갑질119를 통해 알려졌다. 코로나19 발생 이후 직장갑질119는 불안정한 고용상황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소외된 노동자들에 주목하고 있다. 시즌2로 온라인 노조라는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펼친다. 기업ㆍ산별 노조에 속하지 못한 프리랜서, 특수고용직,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등 기존의 노조 체계에 속하지 못한, 근로기준법 적용의 사각지대에 있는 이들을 지원할 계획이다. 변화하는 노동현실을 반영한 새로운 시도가 노동운동의 지평을 넓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스토킹처벌법

20대 남성인 A씨는 같은 직장에 다니던 여성 B씨가 자신을 만나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변을 비관하는 문자메시지를 여러 차례 보내며 괴롭혔다. 그는 B씨가 직장을 옮기자 새 직장으로 찾아가 주변을 서성이는 행위도 반복했다. 안성경찰서가 이 남성을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지난 21일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후 첫 구속 사례다. 제주도에서도 여자친구가 이별을 통보하자 이틀간 10통 넘게 전화해 욕설을 하고, 여러 건의 협박 문자를 보낸 50대 남성을 입건했다. 남성은 여친을 폭행한 전력도 있다. 법원은 지난 23일 잠정조치를 결정했다. 조치에 따라 가해 남성은 피해자 주변 100m 이내에 접근하지 못하며 전화도 금지됐다.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전국에서 신고가 줄을 잇고 있다. 21일부터 25일까지 접수된 신고가 451건에 이른다. 하루 평균 113건이다. 가해자의 상당수가 남성으로, 헤어진 전 여자친구 집을 여러 차례 찾아가거나 휴대전화로 협박성 문자를 보낸 경우가 많다. 스토킹(stalking)은 상대 의사에 반해 상대 또는 그의 가족, 동거인을 대상으로 접근하거나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주거지나 그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등을 말한다. 상대가 거부 의사를 밝혀도 지속적ㆍ반복적으로 괴롭힌다. 이는 단순한 집착과 접근으로 끝나지 않고 신체적 폭력, 성폭력, 감금, 살인 등 중범죄로 이어지기도 한다. 스토킹처벌법에서 반복적인 스토킹 범죄는 3년 이하의 징역, 흉기 등을 휴대해 범죄를 저지르면 최대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경찰은 스토킹 신고가 접수되면 현장에서 응급조치하고, 재발 우려가 있다고 판단되면 100m 내 접근금지를 명령하는 긴급응급조치와 유치장 또는 구치소 유치가 가능한 잠정조치를 할 수 있다. 스토킹처벌법은 1999년 처음 발의됐으나 20년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때문에 그동안 경범죄 처벌법을 적용해 범칙금만 부과했다. 너무 오래 걸렸지만 법이 시행돼 다행이다. 가해자 처벌뿐 아니라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도 마련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MZ세대에게 건네는 위로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특히 SNS 활용에 능숙. MZ세대를 정의하는 말이다. 관련 뉴스를 검색해 보면 미술품에 투자하는 세대, 소비 주체로 등장한 세대, 개인의 만족과 가치관을 우선시하고 워라밸을 중시하는 세대, 수평적인 문화를 당연하게 생각하고 개인의 개성을 존중받기를 원하는 세대 등등 사회에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며 핵심적인 인물로 표현된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사망 원인 통계에서는 MZ세대의 씁쓸한 이면이 나왔다. 10만명당 자살자 수를 뜻하는 자살률은 지난해 25.7명으로 2019년 대비 4.4% 줄었다. 반면 10~30대의 자살률은 오히려 늘었다. 20대 자살률은 가장 큰 폭으로 뛰었다. 20대 자살률은 전년 대비 12.8%, 10대 자살률은 9.4%, 30대 자살률도 0.7% 증가했다. 20대의 경제적 어려움도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지난해 취업 후 상환 학자금 연체는 2만189건으로 전년보다 3천236건 늘었다. 연체액은 32억원 증가했다. 청년들이 실직했거나 기타 생활비 부담으로 상환액을 납부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소셜미디어로 다양한 계층과 소통하며 자신의 세계를 꾸리고, 미술품과 주식에 투자할 줄 아는 풍족함 이면에 세상과의 불통, 경제적 어려움으로 곪는 MZ세대가 많다. 코로나19로 진짜 세상에서 자신의 설 곳을 잃어버리고 마음을 나눌 이를 찾지 못한 이들이 SNS와 가상 세계에 더 몰두하기도 한다. ▶11월1일 위드 코로나에 맞춰 사회가 또 다시 변화할 준비를 하고 있다. 중요한 일 중 하나는 다시 낯선 세상에 발을 내디딜 젊은층의 마음과 정신을 보듬는 일이다. 일부 대학에선 코로나 블루 극복을 위한 학생 건강 캠퍼스 구축, 마음치유콜 서비스 등을 준비하고 있다. 일상에서도 자신만만해 보이고 콧대 높아 보였던 그들에게 이따금 위로의 말을 건넬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진심어린 위로와 공감이 필요한 시기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지지대] 보통 사람

보통 사람 노태우, 이 사람 믿어주세요 지난 1987년 노태우 전 대통령이 선거에 출마하며 내 건 캐치프레이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보통 사람을 강조했다. 보통 사람 즉 서민들을 위한 친근한 대통령이 되겠다, 서민들이 잘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이미지 메이킹이다. 1980년대 최고 인기를 누렸던 드라마 보통사람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이 선거 전략은 통했고 대통령이 됐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노 전 대통령은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육사 동기인 노 전 대통령은 1979년 12ㆍ12 군사 쿠데타의 주역, 신군부의 이인자로 보통 사람들을 괴롭힌 전력이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89)이 지난 26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12ㆍ12군사 쿠데타, 5ㆍ18 광주학살 등을 주도하며 국민을 탄압한 그는 민주화 열망이 폭발한 시대,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수용한 6ㆍ29 선언을 발표해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넘어가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공과를 남겼다는 평가다. 마지막까지 5ㆍ18 희생자들에게 사과하지 않던 그는 유족들이 공개한 유언을 통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다했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저의 과오들에 대해 깊은 용서를 바란다는 말을 남겼다. ▶내년 3월9일 제20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예선전이 한창이다. 여야 할 것 없이 후보를 선출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미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를 대통령 후보로 확정했다. 국민의힘도 11월 중 후보를 확정할 예정이다. 벌써 유력 후보 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고 있다. ▶역대 대통령 선거 결과를 봤을 때 당선자는 진보, 보수를 떠나 공통점이 있다. 각 시대별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오는 20대 대통령 선거 승패 역시 보통 사람의 표심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집값 폭등, 최근 드러난 성남 대장지구 사태 등은 대다수 보통 사람들을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벌어지는 빈부 격차 속 기득권 세력 부(富)의 세습을 적나라하게 보면서 보통 사람들의 희망을 절망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누가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연탄에 대한 단상

키는 142㎜에 몸무게는 3.2㎏. 얼굴에는 구멍이 22군데나 나있다. 불이 잘 붙진 않지만 한 번 붙으면 오래간다. 처음 한반도를 밟은 건 1920년 무렵이다. 연탄의 이력서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서민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눠줬다. 1956년에는 석탄운송 철도가 개통되면서 국민연료가 됐다. ▶냄새도 심하고 연기도 많이 나지만 값이 저렴해 서민 연료로 사랑받았다. 1977년 서울에서만 20억642만개가 소비됐었다. 낱개로 사느냐, 한꺼번에 수백장을 들여 놓느냐가 부(富)의 기준이었다. 연탄 관련 애틋한 사연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연탄가스 중독사고다. 많게는 하루에도 수십명이 연탄가스로 숨졌다. ▶연탄재도 요긴하게 쓰였다. 한겨울에는 미끄럼 예방을 위해 빙판길에 뿌려졌다. 연탄재로 그릇을 닦기도 했다. 자연에서 식물 등의 퇴적물들이 모여 석탄이 된 뒤 연탄을 거쳐 연탄재로 생을 마감하고도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 ▶연탄의 연간 소비량이 50만t 아래로 떨어졌다. 사상 처음이다. 지난해 소비량은 50만8천t이었다. 2010~2013년은 180만t~190만t대였으나 2014년 162만9천t, 2015년 147만3천t, 2016년 125만5천t, 2017년 107만9천t, 2018년 91만3천t, 2019년 64만4천t 등으로 추락했다. ▶관련업계는 최근 몇년간 감소폭을 볼 때 50만t 아래로 추락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지속적인 연탄값 상승이 소비량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도 연탄값 현실화를 위해 가격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 11월 연탄값이 19.6% 오르자 이듬해 소비량은 30% 정도 줄었다. 정부의 연탄보일러 교체사업에 따른 자연스러운 이용자수 감소도 이어졌다. 정부는 매년 겨울 연탄 공장도가격을 결정한다. 지난해는 1장당 639원으로 동결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첫 구절이 떠오른다. 너에게 묻는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반쯤 깨진 연탄/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사라져서 슬픈 걸까. 연탄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에게 감히 권한다. 석탄의 선순환을 배우라고 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비호감’ 대선

20대 대통령 선거가 비호감(非好感)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대선 유력주자들은 서로를 감옥에 갈 사람이라고 손가락질하며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국민들 사이에선 정말 이런 대선은 처음, 뽑을 사람이 없다는 개탄의 목소리가 흘러 나온다. 한국갤럽이 1921일 만 18세 이상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로 확정된 이재명 후보의 비호감도는 60%였다. 호감도(32%)의 2배로, 2개월 전보다 비호감도가 10%p 올랐다. 국민의힘 대선 예비경선 후보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비호감도가 62%로 호감도(28%)의 배를 넘었다. 홍준표 후보도 59%로 호감도(31%)의 배 가까이 됐다. 역대 대선에서 선두권 후보의 호감도는 대체로 50%였다.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선거다. 이재명 민주당 후보의 경우 대장동 의혹의 중심에 있다. 최측근 인사가 구속됐고, 민간에 천문학적 특혜를 안긴 대장동 설계의 당사자로 지목받으며 배임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후보는 국감을 거치면서 조폭 연루설까지 겹쳐 비호감도를 키웠다. 국민의힘에선 윤 전 총장에 대한 비호감이 특히 크다. 부정식품 먹을 권리, 주 120시간 노동 등의 설화에 이어 임금 왕(王) 자, 독재자를 두둔하는 전두환 옹호 발언, 개 사과 논란까지 일으켰다. 검찰 고발사주 의혹도 자유롭지 못하다. 홍준표 전 대표는 당내 경쟁자를 향해 랄하던 놈이라 했다가 막말병이 도졌다는 비판을 받았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 부인인 신경정신과 전문의 강윤형씨는 이재명 후보를 소시오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라고 발언해 비난이 거세다. 거대 양당의 네거티브 경쟁 속에 상당수 유권자들은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한채 무당층으로 표류하고 있다. 대선주자에 대한 실망과 피로감은 냉소와 무관심으로 이어져 투표 포기로 나타날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책ㆍ비전 경쟁에 나서야 한다. 일자리, 집값 폭등, 양극화, 저출산, 고령화 등 산적한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비원 갑질 금지법

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최훈씨(66필명)가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을 냈다. 경비원을 하면서 보고 겪고 느낀 것을 틈나는 대로 안내문 이면지에 기록했던 것을 엮은 것이다. 가슴에만 담아두기 억울하고 힘들 때 글을 쓰다 보면 속이 후련해지곤 했는데, 그 결과물이다. 최씨는 건설회사에 다니며 평탄한 생활을 했다. 이후 무역회사를 차렸는데 경영 악화로 폐업했다. 다시 취업이 어렵게 되자, 2018년 7월 경비원으로서 인생 2막을 열었다. 중산층이라 생각했던 최씨는 경비원이 된 뒤 자신을 낮추기 시작했다.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다. 최씨는 경비원으로 일하며 을의 세계를 알게 됐다고 한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삶이 고달프다. 일이 힘든 것도 있지만 일부 입주민의 욕설과 폭행,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있다. 실제 지난해 5월 서울의 아파트에서 한 입주민으로부터 코뼈가 부러질 정도의 폭행과 지속적 괴롭힘을 당한 경비원이 자살했다. 많은 경비원들이 경비 외에도 택배관리, 분리수거ㆍ청소, 주차관리 등 부가적 업무를 수행한다. 여기저기서 경비원을 불러 머슴처럼 잡스런 일을 시킨다. 입주민과의 갈등과 분쟁은 해고 1순위이기 때문에 경비원들은 그냥 예스맨이 된다. 앞으로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차량 대리주차나 택배 개별 세대 배달 등 허드렛일을 시키면 안된다. 이를 위반하고 지자체 시정명령을 무시하는 아파트 주민은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은 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2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제 아파트 경비원은 도난, 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와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업무만 하면 된다. 청소와 미화 보조, 재활용 분리배출 감시 및 정리, 안내문 게시와 우편함 투입 등이 해당 업무다. 제도개선으로 경비원 처우가 나아지고 입주민과의 상생문화가 형성되길 기대한다. 일각에선 언어ㆍ신체적 폭력을 막을 장치가 미흡해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물가 공포

걷잡을 수 없는 물가, 고삐 풀린 물가. 벌써 수개월째 반복되는 이슈다. 국내 물가 동향이 심상치 않다. 코로나19 사태로 경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고물가는 서민 경제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연일 기름값이 뛰었다는 소식이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지난 14일 ℓ당 1천700원을 7년 만에 넘어선 데 이어 21일에는 1천743원까지 올랐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로 세계 원유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산유국들의 증산 억제 여파로 공급이 부족해진 영향이다. 국제 유가 상승은 단순히 국내 휘발윳값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다. 각종 수입물가도 동반 상승하게 되며, 수입물가는 시차를 두고 국내 소비자물가에 반영된다. 국제 유가와 환율 동향에 대한 면밀한 추적과 유류세 인하 방안 등 정책적 대응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내 소비자물가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지 오래다. 지난 4월부터 9월까지 6개월 연속 2%대 상승률을 기록했고, 10월에는 3%대 상승이 점쳐진다. 정부의 올해 물가상승률 목표치 1.8%,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목표치 2%는 달성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특히 식품 등 생활물가가 뛰면서 서민들에게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동안 정부는 물가상승률이 억제될 것이라며 낙관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유가에 환율마저 고공행진하며 비상이 걸렸고, 급하게 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물가 대책이 지나치게 안일했다는 비판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서민의 살림살이가 더욱 팍팍해지고 있다. 물가에 대한 적절한 대책이 없다면 서민들에게는 더 춥고 힘겨운 겨울이 될 수 있다. 정부로선 재정 여건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대처할 필요도 있겠지만,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여러 차례 기회를 놓쳤지만 이제는 가능한 모든 방책을 놓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때다. 홍완식 경제부 차장

[지지대] 무너져 내린 ‘체육웅도’ 명성

1990년대부터 경기도 체육은 타 시ㆍ도의 부러움을 넘어 질시의 대상이었다. 지난 1981년 인천시와 분리 후 경기도 체육은 학교 및 시ㆍ군청 팀 창단과 꿈나무 육성 등 홀로서기를 통해 전국 최고로 성장했다. 오랜세월 체육인들의 피눈물 나는 노력의 결과였다. 이후 경기체육은 하계 전국체육대회에서 17연패 달성을 비롯, 종합우승을 25차례나 이뤄냈다. ▶이처럼 화려했던 경기도 체육이 고사(枯死) 위기에 직면했다. 체육웅도라는 명성도 점차 잊혀져가고 있다. 그동안 경기체육을 지탱해온 학교체육이 뿌리째 흔들리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다. 경기도교육청의 체육정책 기조 변화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전문체육ㆍ생활체육을 관장하는 단체의 통합, 경기도체육회의 민선시대, 경기체고의 침체 등 리더의 무관심과 방관, 정치권의 과도한 간섭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운동선수들에 대한 과도한 제약과 규제에 우수선수 타 시ㆍ도 유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선수들의 진로는 학업이 아닌 운동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 저 마다의 기량이 미래를 결정하는 달란트(talent)이지만 그 꿈을 펼칠 수 없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래의 주역인 청소년들에게는 공부가 전부가 아닌 각자의 재능을 살려 꿈을 이뤄가야함에도 유독 체육 인재들에겐 엄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전국 최초의 도립(道立) 체육고등학교로 세워진 경기체고 역시 개교 26년을 맞았지만, 최근 2년 연속 미달사태를 빚는 등 중학 선수들에게 선망의 대상에서 기피 대상이 돼가고 있다. 또한 민선체제 출범후 경기도체육회는 조직의 갈등과 균열로 몸살을 앓고 있다. ▶최근 이 같은 경기체육의 퇴보 상황에 정책을 바꾼 정치인부터 단체장ㆍ학교장 등 몇명의 이름이 지주 오르내린다. 경기체육이 급격히 무너져 내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반면 다시 일어서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떻게 쌓아올린 명성인데. 이제라도 경기체육의 심각성을 깨닫고 바른 길로 나아가는 방향과 대안을 고민할 때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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