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한 표의 ‘거룩한’ 무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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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1세는 가장 비참하게 왕관을 내려 놓은 영국 군주였다. 왕권(王權)은 신성하다며 의회와 맞섰다. 하지만 표결 결과는 찬성 361표, 반대 360표 등으로 나왔다. 바야흐로 왕권(王權)이 퇴조하고, 신권(臣權)이 강해지기 시작하던 1649년이었다.

▶그로부터 반세기 후 명예혁명(Glorious Revolution)이란 도도한 물결이 영국을 바꿨다. 의회와 네덜란드의 오라녜 공 빌럼이 연합해 제임스 2세를 퇴위 시키고 잉글랜드의 윌리엄 3세가 왕위에 올랐다. 오늘날 민주주의에 버금가는 시스템의 시발점이다. 어떠한 왕조도 의회를 무시하는 무소불위 권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당시 작성된 권리장전(Bill of Rights)은 민주주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20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신대륙으로 넘어가 보자. 당시의 쟁점은 노예해방 문제였다. 이미 공화당의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선언했지만, 그 후유증은 끊이질 않았다. 북부는 전통적으로 상공업이 발달한 반면, 남부는 농업이 주를 이뤘다. 이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여건이기도 했다. 미국 의회에선 이 문제로 늘 격론이 벌어졌다. 이 와중에 공화당과 민주당이 결정적으로 부딪쳤다. 제19대 대통령선거에서였다.

▶당시 공화당의 루더포드 해이스(Rutherford Birchard Hayes) 후보는 노예해방을 정착시키겠다는 공약으로 선거에 나섰다. 민주당은 새뮤얼 틸던 후보(Samuel Jones Tilden)가 출마했다. 전쟁을 방불케 했던 선거전을 치루고 루더포드 해이스 후보는 선거인단 수 19명을 확보, 18명에 그친 새뮤얼 틸던 후보를 이기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1876년이었다.

▶200년이란 시간 차를 두고 벌어진 두 사안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한 표 차이였다는 점이다. 명예혁명과 권리장전이란 역사적인 대물결을 불러온 찰스 1세의 퇴위가 그랬다. 노예해방을 정착시킨 루더포드 해이스 후보의 대통령당선도 그랬다. 한 표의 ‘거룩한’ 무게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오늘 제20대 대통령선거 투표가 전국에서 진행된다. 지난 4~5일의 사전투표율이 36.9%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내가 행사한 한 표가 대한민국을 바꾼다. 그래서 복기(復棋)해 본 역사의 편린(片鱗)들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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