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이 시구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동방규가 후한 시대 원제의 명으로 북쪽 흉노족에 시집간 궁녀 왕소군의 비운한 운명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지은 ‘소군원(昭君怨)’에서 나온다. 앞 구결은 이렇다. ‘오랑캐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胡地無花草 春來不似春)’. 궁녀 신분에서 왕의 애첩이 됐으나 아는 이 하나 없는 척박한 타향살이의 기구한 삶을 슬퍼하고 원망할 왕소군의 마음을 담았다.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이 시구를 인용한 이가 있다. 충청권의 맹주 김종필(JP) 당시 민주공화당 총재이다.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장기집권이 무너진다. 국민은 유신의 어둡고 긴 터널이 끝났다고 환호했다. 이 상황에 JP는 “봄이 왔으나 진짜 봄이 온 건 아니다”며 극히 불안한 정국을 표현했다. 아니나 다를까, 전두환,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신군부세력은 국민의 민주주의 염원을 군사 쿠데타로 짓밟고 정권을 잡았다. 국민이 그토록 바라던 ‘서울의 봄’은 그렇게 얼어붙었다.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선거는 신군부에 대한 6월 항쟁의 결과로 만들어진 직선제로 시행됐다. 재야를 이끄는 거물 김영삼·김대중 후보는 ‘두 사람이 힘을 합쳐도 신군부의 권력 장악을 막아내지 못할 것’이라는 여론에도 각자 단독 출마한다. 결국 유신정권에 저항하며 얻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은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훗날 자서전에서 단일화 실패의 소회를 밝혔다. ‘선거가 끝나자 국민은 큰 상실감에 빠졌다. 나는 진심으로 미안했다. 어찌 됐든 야권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나라도 (김영삼 후보에게) 양보를 해야 했었다. 지난 일이지만 너무도 후회스럽다’.
20대 대선이 엿새 남았다. 여당과 제1야당 후보와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엎치락뒤치락하며 초박빙이다. 안갯속 정국이지만 정권교체 여론은 50% 이상으로 여전히 꺾일 줄 모른다. 그러기에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단일화 협상 결렬은 국민에게 실망 그 자체다. 요기 베라가 말했듯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가능성이 낮지만 후보 간 담판이 마지막 기회다. 분명한 사실은 단일화 실패에 따른 대선결과에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흔히 인용하는 ‘정치는 생물이다’는 말로 국민의 뜻을 농락해서는 안 된다.
김창학 정치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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