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깐부 할아버지 오영수

툭 튀어나온 광대뼈…. 딱 어렸을 적 세상을 뜨신 외할아버지다. “할배”라고 부르며 달려가면 환하게 안아주실 것 같다. 꾸부정한 허리와 퀭한 시선까지 합치면 영락없다. 삶의 무게가 잔뜩 내려앉은 이마. 있는 듯 없는 듯한 눈썹도 그렇다. 팔순을 바라보는 한 배우의 실루엣이다. ▶잊고 살았던 모국어도 소환됐다. 깐부. 개구쟁이 시절 구슬치기 등을 즐기면서 같은 편을 불렀던 호칭이다. 구슬치기 자체가 옛날 게임이다.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 대사도 묵직했다. “우린 깐부잖아”. 극 중 목숨 같은 구슬을 상대 배우에게 건네며 읊조린 말이었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극 중의 그와 실제의 그가 한치도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그가 출연했던 숱한 영화와 드라마가 입증해준다. 최근 드라마에서도 그랬다. 해맑았다. 마냥 신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서로가 서로를 죽이려 하자 “그만 하라”고 절규한다. 또 다른 반전도 그의 연기를 통해 이어진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연극무대에서 잔뼈가 굵었다. 몇 안 되는 대학로 터줏대감이다. ‘리어왕’, ‘파우스트’, ‘3월의 눈’ 등 200편이 넘는 작품을 소화했다. 연기에 대한 지독한 애정이 없이는 불가능했다. 영화와 TV 출연은 허드렛일이다. 반세기 넘게 연극무대를 지켜왔다. ▶그런 그가 TV 시리즈-드라마 부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으로 말이다. 그것도 비영어권 작품에는 유난히 문턱이 높다는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다. ‘기생충’과 ‘미나리’ 등도 연거푸 탈락했었다. 친구 따라 극단에 들어가면서 연기인생을 시작한 지 60년 만이다. 동아연극상 남자연기상, 백상예술대상 남자연기상, 한국연극협회 연기상…. 연기를 천직으로 알고 살았던 배우가 받은 훈장들이다. ▶‘오징어 게임’ 인기를 뒤로하고 돌아간 곳도 대학로다. 지난 8일 막이 오른 연극 ‘라스트 세션’에서 프로이트 역을 맡았다. 같은 역에 캐스팅된 신구는 “뒤에서 작품을 받치며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는 배우”라고 평가했다. ‘오징어 게임’ 이전 TV나 스크린에 나온 그의 얼굴을 기억하는 이들은 그를 스님 전문 배우로 오해하기도 했다. “이제 ‘세계 속의 우리’가 아니고 ‘우리 속의 세계’”라는 수상 소감도 그래서 예사롭지 않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난데없는 ‘멸공’

난데없이 멸공이 화제다. 젊은이들 용어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다. 공산주의 세력을 멸한다는 뜻의 멸공은 초등학교 시절 반공 포스터 그릴 때 썼다. 교실마다 반공ㆍ멸공 포스터가 붙어있던 기억이 새롭다. 멸공의 진원지는 74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이다. 정 부회장이 최근 한국이 안하무인인 중국에 항의 한 번 못한다는 제목의 정부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기사 갈무리 화면을 올린 뒤 #멸공, #반공방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숙취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다. 속 뜻은 잘 모르겠다. 정 부회장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위해 멸공이란 단어를 쓴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국민의힘이 이를 정치권 이슈로 끌어 들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8일 (정용진의) 이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여수멸치와 약콩 등을 고르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후 윤 후보 인스타에는 장보는 사진과 함께 해시태그로 #달걀 #파 #멸치 #콩이라고 적었다. 윤석열 공약위키 누리집에서는 AI 윤석열이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습니다. 달파멸콩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 세력을 연상시키는 달파에 정 부회장이 언급한 멸공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이날 장보기가 의도적인 행보였다는 해석이다. 나경원 전 의원도 8일 SNS에 이마트에서 장보는 사진을 올리며, 오늘 저녁 멸치, 약콩, 자유시간 그리고 야식거리 국물 떡볶이까지 (샀다)며 멸공! 자유!라고 적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멸치와 콩을 반찬으로 한 식사 사진을 올렸다. 김진태 전 의원은 윤 후보가 이마트에서 달걀, 파, 멸치, 콩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문파멸공. 다함께 멸공 캠페인 어떠냐고 했다. 뜬금없이 철 지난 멸공 챌린지라니,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색깔론을 부추기는 듯한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형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구매하며 멸공을 이슈화한다고 표를 얻을 수 있을까. 유권자가 원하는 건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캠페인이 아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옷 벗기기 게임

몇년 전 일본 방송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여성 출연자의 옷을 벗기는 게임이 진행됐다. 이 방송의 일부를 담은 동영상은 ‘흔한 성진국 예능’이라는 제목으로 유튜브에 올라왔다. 영상에는 팬티만 입은 남성 4명이 스웨터를 입은 여성의 옷을 벗기는 게임이 담겨있다. 남성들이 우스꽝스런 연기를 하며 판넬을 돌리면 여성이 입은 스웨터의 실이 풀려 속옷이 노출되고 가슴이 보이게 된다. 여성 옷 벗기기 게임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싱가포르에서 출시된 ‘와이푸’(Waifu)’라는 게임이다. 이용자가 여성 캐릭터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기면 여성의 옷이 하나씩 사라진다. 게임에서 모두 이기면 여성 캐릭터는 속옷 차림이 된다. 개발사는 “사랑스러운 소녀들의 남자친구로 변신해 가위바위보 게임을 하고 모든 소녀들을 정복, 그들의 비밀과 어울리는 도전을 수락하게 된다”고 소개했다. 이 게임은 구글플레이 앱스토어에서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3일까지 인기게임 1위에 올랐다. 누적 다운로드 수는 100만회를 넘었다. ‘와이푸’는 15세 이용가다. 중고생 등 미성년자도 성인인증 없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여성 캐릭터의 옷을 벗기는 자극적ㆍ선정적인 게임이 무문별하게 유통되면서 ‘15세 이용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구글플레이 측은 논란 이후 이 게임을 ‘숨김’ 처리했다. 한국게임학회는 “청소년 대상의 선정적 게임이 출시되는 현실을 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이 게임의 목표는 최대한 많은 여성 캐릭터를 벗기고 수집하는 것”이라며 “이런 게임이 어떻게 ‘15세 청소년 이용가’로 됐는지 경악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게임의 선정적 내용도 문제거니와,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왜곡된 인식을 청소년들에게 심어줄 우려가 크다. 2020년에도 소아성애 내용의 게임이 ‘15세 이용가’ 등급으로 구글에서 유통돼 파장이 일었다. 유통사인 구글, 게임물 등급을 관리하는 문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는 각성해야 한다. 정부는 게임물 등급분류체계 개선 등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새해 살림에 보탬 되는 ‘꿀 팁’

2022년 새해가 밝았다. 매년 그렇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지칠 대로 지친 마음에 치솟는 물가까지. 유독 어느 해보다 신년 느낌도 없고, 그저 막막하기만 한 하루하루의 연속이다. 그럼에도 새해는 밝았고 행정기관들도 새로운 업무를 시작한다. 올해 추진되는 신규 정책사업 중 생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사업을 몇 개 소개한다. 우리가 내는 세금으로 추진되는 사업이니 꼭 챙겨 받아서 정당한 권리와 혜택을 누리자. 먼저, 저소득 청년을 대상으로 한 청년 월세 한시 특별지원이 6월 시행된다. 대상은 중위소득 60% 이하인 만 19세에서 34세까지의 무주택 청년들로, 월세 범위 내에서 최대 월 20만원을 12개월간 지원한다. 올해 아이를 출산하는 부모들은 첫만남이용권을 꼭 챙기자. 1월1일 이후 아이가 출생하면 1인당 200만원을 바우처(국민행복카드)로 지급 받을 수 있다. 또 올해 0~1세 영아(어린이집 미이용)에게 월 30만원 영아수당을 지급하는 것도 체크 포인트다. 코로나19 백신 접종완료 재택치료자를 대상으로 생활지원비도 추가 지급한다. 지원 대상은 재택치료를 받는 코로나19 확진자 중 △접종 완료자 △코로나19 완치자 △18세 이하 소아청소년 등이다. 재택치료 기간 10일을 기준으로 가구별로 1인 가구 22만원, 2인 가구 30만원, 3인 가구 39만원, 4인 가구 46만원, 5인 가구 48만원을 지원 받을 수 있다. 4월부터는 경기도 지역서점에 지역화폐 소비지원금이 지급, 경기도가 인증한 지역서점에서 지역화폐로 책 등을 구입하면 구입액의 10%를 지역화폐 소비지원금으로 받을 수 있다. 새해 모두가 부자가 될 순 없겠지만,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혜택은 꼭 챙겨서 소확행하자. 이호준 정치부 차장

[지지대] 2022년, 위대한 선택의 해

2022년 임인년(壬寅年). 검은 호랑이의 해가 밝았다. 비록 우리가 코로나19라는 어둠의 터널을 아직 다 빠져나오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빠져나갈 것이란 희망을 갖고 있다. 올해에는 이 같은 희망과 함께 한국의 미래, 그리고 인천경기지역의 미래를 책임질 제20대 대통령 선거와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라는 선택의 시간이 있다. 대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가 유력주자로서 양강을 형성하고 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정의당 심상정, 새로운물결 김동연 후보도 도전자로 나섰다. 이들 가운데 누가 치유와 회복, 공정과 평등, 포용과 통합을 끌어낼 후보인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아쉽게도 아직 대선의 혼돈에 지방선거는 보이지도 않고 있다. 양극화, 일자리, 성장, 복지와 분배 등 난제는 모두 뒷전으로 한 채 휴력 후보들은 여전히 진흙탕 공방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선의 후보가 아닌, 차악의 후보를 뽑는 선거로 전락할 것이란 걱정이 나온다. 어쩌면 도지사시장 등 광역단체장과, 기초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의원 등 자신의 지역에서 뛸 일꾼을 뽑는 지방선거가 대선보다 훨씬 중요한데도 말이다. 특히 이번 선거는 청년층이 주도적으로 나섰으면 하는 기대가 크다. 선거는 미래에 대한 선택인 만큼, 우리 사회의 미래인 청년층이 그 미래를 이끌어줬으면 한다. 청년층은 현재 대선의 스윙보터로도 평가받고 있다. 스스로 그 스윙보터의 역할을 잘 했으면 한다. 청년층의 훌륭한 선택이 바로 한국, 그리고 경기인천의 희망찬 미래를 열 수 있을 것이다.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은 청년층을 비롯한 유권자들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해줄 수 있는 공약 제시하고, 유권자들은 그 공약을 잘 따져보고 좋은 정책을 제시한 후보를 고르자. 그 위대한 선택을 위해.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백두산 호랑이

밤이 낮처럼 환했다. 뺨을 스치는 하늬바람이 꽤 매웠다. 면도칼로 귓바퀴를 자르는 듯 아팠다. 벌거벗은 자작나무들 사이로 맹수 한 마리가 휙 하고 지나갔다. 건너편 숲으로 사라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눈앞에서 섬광이 번쩍거렸다. 중국과 러시아 국경지대인 중국 지린성(吉林省) 훈춘(琿春)을 찾았을 때 얘기다. ▶중국 교포 가이드가 북한 억양으로 그랬다. “녀석들의 친정은 장백산(백두산) 아닙니까. 겨울이면 이곳은 호랑이 천지가 아니겠습니까”. 격앙됐지만, 진지했다. “우리 민족의 자긍심 아니겠습니까”. 말리지 않았다면 설명은 계속 될듯싶었다. ▶훈춘은 호랑이들의 제국이다. 이곳은 겨울이 유난히 길다. 그 혹독한 계절의 산하를 지배하는 맹수는 단연코 호랑이다. 녀석들은 백두산을 근거로 수천 년을 살아왔다. 생물학적으로 ‘백두산 호랑이’로 분류되는 개체다. ▶‘훈춘(琿春)’의 앞글자인 ‘훈(琿)’은 우르렁대는 호랑이 울음을 닮았다. 겨울잠을 자지 않는 짐승이어서 소생의 계절을 기다리는 게 아닐까. 봄이 기다려지는 까닭이다. 녀석들은 그렇게 질주하며 겨울을 보낸다. 아직도 그때의 포효(咆哮)가 귓전을 때린다. 수십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외신에 따르면 훈춘의 야생 호랑이 개체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 고장에서 호랑이 출몰이 빈발하고 있다. 한낮에도 목격된다. 중국 포털사이트 바이두에는 새해 첫날 훈춘 들녘에서 촬영한 야생 새끼 호랑이 동영상이 올라왔다. ▶해당 동영상에는 새끼 호랑이가 달아나는 모습이 담겼다. 녀석은 달아나다 잠깐 멈춰 돌아본 뒤 다시 숲속으로 사라진다. 이튿날 낮 같은 지점에서 성체 호랑이와 만난다. 차가 지나가는 길을 가로질러 숲으로 들어간 뒤 잠시 엎드려 응시하다 자취를 감춘다. ▶중국 정부가 지난해 10월 훈춘을 포함해 지린성과 하이롱장성黑龍江省) 일대 1만4천100㎢를 백두산 호랑이와 표범 국가공원으로 지정했다. 지속적인 보호를 위해서다. 야생 호랑이는 지난 2017년 27마리에서 지난해말 50여마리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개체수가 늘면서 근친교배로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호랑이해에 고구려의 영토를 달리는 호랑이 소식을 듣는 심정이 사뭇 자괴스럽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백두산 호랑이인데 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피선거권 만 18세

올해는 굵직한 선거가 여럿 있다. 3월 9일에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있고, 국회의원 재ㆍ보궐 선거도 있다. 6월 1일에는 도지사와 시장ㆍ군수, 지방의원을 선출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도 있다. 어떤 지도자, 어떤 일꾼이 코로나19에 지친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 갈지 관심이 뜨겁다. 올해 선거에는 고등학교 3학년도 생일이 지나 만 18세가 되면 출마가 가능하다. 국회 정치개혁특별위가 12월 말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의결,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피선거권자 연령을 만 25세에서 만 18세로 낮췄다. 대통령 선거는 예전처럼 만 40세 이상이다. 갑작스레 피선거권자 연령을 낮춘 것은, 여야가 3월 대선을 앞두고 청년층 표심을 의식해 의기투합한 것으로 해석된다. 각 당은 더 많은 청년의 정치적 권리와 참여 기회가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해외의 경우 OECD 회원국만 놓고 보면 37개국(한국 제외) 중 20개국이 국회의원 출마 하한 연령을 만 18세(양원제 국가는 하원 기준)로 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페인 등은 만 18세가 되면 출마할 수 있다. OECD 회원국을 포함해 총 189개국(한국 제외)을 기준으로 해도 62개국이 만 18세를 하한 연령으로 정하고 있다. 선거 출마 연령 하향 조정과 관련, 온라인에선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사회생활을 해보지 않은 만 18세가 국회의원을 할 수 있겠냐는 반대론이 있는가 하면 선거권이 만 18세인 만큼 피선거권도 여기에 맞게 낮추는 게 타당하다는 찬성론도 나온다. 청년층의 정치참여 기회를 넓히자는 취지는 바람직하다. 하지만 피선거권 연령만 낮춘다고 청년정치가 활성화 되는 건 아니다. 고3 국회의원, 고3 시장ㆍ군수 시대가 열린다고 생색만 낼게 아니라 청년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큰 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선수(選數)와 장유유서의 꼰대 문화부터 청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청년들의 실질적 정치참여 및 권익 확대가 가능하도록 지원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범 내려온다

범 내려온다. 범이 내려온다 2022년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가 밝았다. 올해는 검은 호랑이, 흑호(黑虎)의 해다. 단군신화 속 호랑이부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까지, 호랑이는 무섭고 사나워 보이지만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권위와 용맹의 상징으로 우리 역사 속에 깃들어있다. 새해 인사를 나누는 SNS에는 귀여운 호랑이부터 용맹스런 호랑이까지 다양한 호랑이 이미지가 등장했다. 모습은 조금씩 다르지만, 모두가 호랑이 기운을 듬뿍 받아 강건하고 무탈한 한 해가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가 썩~ 물러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도 함께. 전국에는 호랑이와 관련된 지명이 많다. 국토지리정보원은 호랑이가 포함된 지명이 389개에 이른다고 했다. 새해 첫해를 가장 빨리 볼 수 있는 경북 포항의 호미곶(虎尾串)이 대표적이다. 원래 장기곶으로 불리던 곳인데 한반도 지도 전체를 호랑이 모습에 비유했을 때 이 지역이 호랑이 꼬리 부분에 해당한다 해서 이름을 바꿨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호산리도 마을 뒷산이 범처럼 생겼다해서 붙여졌다. 5개 행정리로 이뤄진 호산리는 밖범이, 안범이, 밤이고개, 새터범이 등 호랑이와 관련한 다양한 지명이 존재한다. 경기도에선 안성시 금광면 복거리가 과거 호랑이가 살았다고 해서 복호리로 불렸다. 가평군 청평면의 호명산은 호랑이가 많이 살아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호랑이는 나쁜 것을 물리쳐주는 수호신으로 여겨져 석상도 많다. 경복궁 근정전 위 기단의 서쪽 계단 기둥엔 백호가 자리해있는데 궁궐과 하늘 등의 서쪽을 관장하고 지키는 신령으로 여겨졌다. 호랑이가 많이 출몰했던 서울 인왕산은 조선 건국때 도성을 지키는 우백호로 삼았던 명산이다. 호랑이해를 맞아 유통업계는 호랑이 마케팅이 활발하다. 화장품, 맥주, 우유, 커피, 치킨, 제빵 등 곳곳에서 호랑이 캐릭터를 활용한 한정판 상품을 개발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톡톡튀는 재밌는 것들이 많다. 새해가 되면 새 희망을 꿈꾼다. 국민 모두가 호랑이의 힘찬 기운을 받아 올 한해 건강하고 활기차게 나아가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한 해를 보내며

벌써 2021년의 마지막 날이다. 기억 속 하얀 소의 해 신축년은 코로나로 시작해 코로나로 저물고 있다. 지난달 가까스로 시행된 위드 코로나로 잠시나마 일상회복에 대한 설렘을 품었지만, 신규 확진자수 급증과 오미크론 확산 등에 따른 방역조치 강화로 지역사회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올 한해 경제부에서 가장 많이 다룬 소재는 소상공인이었다. 방역조치 강화에 따른 피해, 일상회복에 대한 기대와 실망, 손실보상 불만 등 생계의 갈림길에 선 이들의 하소연이 주였다. 현 상황을 봤을 때 지금의 거리두기 조치는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 또 내년에는 방역패스마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기에 물가 상승마저 가팔라지며 소상공인들은 어느 때보다 냉혹한 겨울을 나고 있다. 피해에 대한 단편적 지원이 아닌 정부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절실한 때다. ▶연말이면 제야의 종소리와 새해 해돋이를 보기 위한 명소로 인파가 몰린다. 아쉽지만 올해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전국 주요 해돋이 명소인 산과 바다 등의 입장이 통제된다. 보신각 타종 행사도 온라인으로 진행된다. 정부의 제재에도 명소 인근의 숙박시설은 모두 만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우린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방역의 구멍을 만든다. 진정한 방역은 경각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일상회복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만남은 줄여야 할 때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19가 2년째 우리 일상을 지배하고 있다. 기나긴 코로나 터널을 벗어나 일상회복으로 나아가려면 국민 모두의 방역 의식과 자발적 노력이 절실하다. 아무리 좋은 대책도 개인의 의지와 실천이 동반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2022년 임인년은 검은 호랑이의 해다. 예로부터 호랑이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는 권위와 용맹의 상징이었다. 지금 당장은 코로나 종식이 어려울 수 있다. 내년에는 호랑이 기운을 받아 우리 모두가 올해보다는 나은 삶을 누리길 소망해 본다. 홍완식 경제부 차장

[지지대] 인플레이션의 공포

인플레이션 공포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통화량의 증가로 화폐가치가 하락하고, 모든 상품의 물가가 전반적으로 꾸준히 오르는 경제 현상을 인플레이션이라고 한다. ▶지난해 초 코로나19 발병 이후부터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은 화폐를 마구 찍어내기 시작했고, 돈은 시중에 많이 풀렸다. 그만큼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있다. 특히 오미크론 변이에 따른 재봉쇄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세계 각국의 인플레이션 공포는 심각하다. 터키의 경우 과거에는 3리라로 빵을 4개 구매할 수 있었다면, 현재는 빵을 1개 밖에 살 수 없을 정도로 화폐가치가 급락했다. 스페인의 물가상승률도 29년만에 가장 가파르게 치솟아 5.5%를 기록하는 등 전 세계가 비상 국면이다. ▶국내 상황도 쉽지 않다. 올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9년 만에 최고치(2.4%)에 이르는 등 가파르게 올랐다. 특히 11월 물가상승률은 9년 11개월 만에 최고치인 3.7%까지 치솟으며 추가 상승 우려가 크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집값이 상승했다. 1~11월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17.64% 올랐고, 전셋값은 10.29% 상승했다. 내년 대통령 선거 이후 전기요금과 가스요금도 단계적으로 인상된다. 그동안 에너지요금은 정부가 물가 인상 우려 등의 이유로 억제했지만,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공공요금까지 줄줄이 인상되면, 물가 상승은 더욱 가팔라진다. ▶달러를 기축통화로 사용하는 미국은 어떤가.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내년 3월까지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완료한 뒤, 기준금리를 3차례 인상할 전망이다. 시중에 풀렸던 돈을 회수하겠다는 정책으로 그만큼 돈줄을 옥죄겠다는 의미다. 여기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인플레이션 대처가 지금 최우선 과제라는 성명을 냈다.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19를 통해 우리는 하나의 지구촌에 살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 여파로 다가오는 인플레이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럴수록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한다. 정부도 엄중한 상황을 인식하고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명관 경제부장

[지지대] 터 이야기

동구 밖에는 정자나무가 있었다. 고향을 떠날 때는 슬펐다. 정자나무에 노란색 리본 수백개가 걸려 있기도 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미국 젊은이 얘기다. 1960년대 미국 밴드 토니 올란드와 돈(Tony Orlando&Dawn)이 부른 Tie a yellow ribbon around the old oak tree의 사연이다. ▶정자나무들이 앉아있던 자리는 그루터기다. 풀이나 나무 따위의 아랫동아리다. 우리나라에선 그 자리에 성황당(城隍堂)이 있었다. 그루터기들이 모이면 터가 된다. ▶터는 건물 등을 짓거나 조성할 자리를 일컫는다. 한자식 표현으로는 장(場)이다. 사회와 정치와 문화가 모이는 공간이다. 집합체 정신이 모이는 구심점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누군가의 뿌리를 알려면 터를 헤아리면 된다. 믿음의 영역이고 신뢰의 영토다. ▶똑같은 제목의 대중가요가 있다. 1987년 신형원이 부른 터의 노랫말은 저 산맥은 말도 없이/오천 년을 살았네로 시작된다. 산맥은 오천년 동안 앉아있던 그루터기의 여러 묶음이다. 그 사이로 강물도 유유히 흐른다. ▶조선시대까지 고을마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는 터가 있었다. 그런 곳에 관아가 있었다. 그곳에서 고을 수령이 행정ㆍ입법ㆍ사법을 판단하고 처리했다. 여론도 형성됐다. 그랬던 관아터를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평택시가 조선시대 평택현(平澤縣) 동헌(東軒) 터 복원에 나선다. 반갑다. 동헌은 수령(현감)의 집무실이 있던 곳이다. 지금의 팽성읍 객사리다. 그곳에는 지금 팽성읍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그곳에 관아터를 알리는 현판을 제막했다. 앞서 시는 지난 2019년 팽성읍 시민과의 대화에서 지역 역사ㆍ유적 등을 수 있는 현판을 세워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 자료조사 등 현판 설립을 준비해왔다. ▶터 살리기는 터 지킴이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터는 중요하다. 무릇 정치는 우리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를 지키는 건 곧 우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있는 내년에는 우리의 터를 지키고, 바로 세우는 한해가 돼야 하지 않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대통령선거 후보 토론회

우리나라에서 TV 대담, 토론 규정을 선거법에 명문화해 처음 도입한 것은 1995년 제1회 지방선거 때다. 대통령 선거는 1997년 제15대 때 합동 TV토론이 공식 도입됐다. 중앙선관위 주최로 3회의 TV토론이 열렸는데, 평균 시청률이 50%를 넘을 정도로 관심이 컸다. 이때 당선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토론에서 선전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대선 후보 TV토론 정치가 활성화된 나라는 미국이다. 2012년 11월 열린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롬니 공화당 후보가 출연한 TV토론은 매회 5천만~6천만명이 시청할 정도로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은 TV토론을 통해 대통령이나 총리 후보를 검증한다. 우리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기간에 선관위 주관 대선 TV토론회를 3차례 이상 해야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필요하면 횟수 제한없이 개최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미국의 대선 후보 TV토론은 주로 정책 이슈에 촛점을 두는 반면, 우리나라는 정치공방으로 흐르는 경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대선 후보 TV토론은 열려야 한다. TV토론을 통해 후보를 검증할 수 있고,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데 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후 한국정치학회의 후보자 토론회 효과 분석 결과를 보면 유권자 98.1%가 토론회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토론회를 이용한 선거정보 습득이 효과적이라고 답한 사람도 74.5%였다. 최근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토론을 하면 결국은 싸움밖에 안 난다며 대선 후보 토론회 무용론을 제기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민주주의 정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발언이라고 비판했고,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도 대통령이 돼선 안 될 이유를 스스로 폭로했다고 말했다. 후보자 토론은 유권자가 지지 후보를 선택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선거전에서의 유불리만 따져 토론을 회피하면 안된다. 이는 유권자의 후보 선택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자신의 비전과 철학, 구체적 정책 방향을 토론을 통해 밝혀야 한다. 후보자라면 격렬한 토론을 벌이고, 제대로 검증받아야 할 의무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플라스틱 어택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는 케이크가 엄청 많이 팔린다. 케이크를 사면 플라스틱 빵칼이 따라온다. 동봉된 일회용 빵칼은 한번 쓰고 버리거나 아예 쓰지 않고 버리는 경우가 많다. 최근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소비자들이 모여 빵칼 반납 운동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13일부터 2주간 SNS를 통해 진행된 빵칼 반납 운동에 약 300개의 일회용 칼이 모였다. 반납 타깃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롤케이크로 기네스북에 오른 파리바게뜨다. 이들은 이 회사 빵칼을 모아 편지와 함께 고객서비스팀으로 보냈다. 제과업계에 원하는 건, 요구하지 않으면 제공하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파리바게뜨가 대상이 된 것은 제과업계 인지도가 가장 높고 가맹점 수도 많기 때문으로, 이 회사가 움직이면 타 브랜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이러한 운동을 플라스틱 어택(Plastic Attack)이라고 한다. 매장에서 물건 구매 후 과대포장된 플라스틱 포장재와 비닐을 분리해 매장에 버리고 오는 운동이다.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가 불필요한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도록 경각심을 주기 위한 것이다. 플라스틱 어택은 2018년 3월 영국에서 시작돼 유럽을 중심으로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한국에서도 펼쳐지고 있다. 지난해 9월 한 음식료업체가 일회용 플라스틱 빨대를 돌려받는 캠페인을 벌였다. 빨대는 크기가 작아 선별이 어렵고, 재활용도 어렵고, 소각하면 환경파괴 위험이 커 일회용 빨대를 쓰지 말자는 취지에서다. 통조림 햄 뚜껑 반납운동도 있었다. 통조림 햄은 이미 완벽하게 밀봉된 상품이기 때문에 플라스틱 뚜껑이 필요하지 않은데 국내에선 과하게 포장해 이를 개선하자는 캠페인이었다. 이후 이 기업은 플라스틱 뚜껑 없는 햄 캔을 판매하고 있다. 화장품도 과대포장의 대표 사례다. 때문에 재활용이 편하도록 용기 재질과 구조를 바꾸라며 화장품 어택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이제 시작 단계지만 플라스틱 어택은 더 확산돼야 한다. 개인의 실천도 중요하지만, 정부기업이 먼저 플라스틱 줄이기에 나서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나 홀로 집에

지난 1991년 전 세계 극장가를 휩쓴 영화 나 홀로 집에.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카고. 말썽꾸러기 꼬마 케빈이 집에 홀로 남아 빈집털이 2인조 도둑을 상대하는 스토리를 담은 영화는 30여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간간이 안방극장을 통해 방영되고 있다. 메가 히트를 친 영화의 영향 때문일까? 나 홀로 집에라는 표현은 지금까지도 크리스마스 시즌을 홀로 보내는 싱글들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자의 경험에 비춰보면 크리스마스 시즌 나 홀로 집에 있을 확률은 나이가 먹을수록 높아진다. 미취학 아동 시절에는 크리스마스 이브를 사촌 친척이 한자리에 모여 크리스마스 트리를 함께 만들며 모임을 가졌다. 10대에는 크리스마스 이브가 친구 집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는 외박이 허락된 유일한 날이었다. 20대 때는 크리스마스 이브=연인과 함께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소개팅을 받는 날이었고, 30대 중반까지만 해도 주변에 홀로 있는 친구들과 연말 특수를 노리며 바가지 비용을 요구하는 업소들을 찾아 나름 크리스마스 이브 분위기를 즐겼다. 40대가 된 지금에는 주변인 대다수 제 짝을 찾아갔고, 과거처럼 억지 소개팅을 할 의지(?)도 없다. 더욱이 코로나19에 따른 영업시간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나 홀로 집에 있을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 성탄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 상황에서 문득 기자 2년차 당시 솔로들이 짝을 찾는 것을 목적으로 개최됐던 솔로 대첩 현장 취재가 떠오른다. 지난 2012년 12월24일 밤 10시 수원역 현장에서 제 짝을 찾기 위해 수천명이 군집했던 그날이 코로나19 세상에 사는 현실에서는 꿈 같은 세상처럼 느껴진다. 내년에 코로나19로부터 해방된 세상이 도래해 다시 한번 유사한 행사가 개최된다면 창피함을 무릅쓰고라도 현장에 참석해 나 홀로 집에 신세를 면할 수 있도록 노력이라도 해봐야겠다. 양휘모 사회부 차장

[지지대] 강제 혼밥은 또 다른 인권 탄압

점심 약속을 잡았던 공무원 한분이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다. 기저질환이 있어 백신을 못 맞아 혼밥해야 하는 신세니, 식사 약속은 기약할 수 없는 그날 다시 하세라고. 전화를 끊고 난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씁쓸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 안았다. 이젠 급기야 정부가 혼밥을 강제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이건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또 다른 인권 탄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이상이 있어 불가피하게 백신을 못 맞는 이들을 자칫 방역 미아라는 범주에 가둬 낙인 찍는 것은 아닌가. 세월이 지나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19 세상이 종식되면 혼밥을 강제 당한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걸지 않을까 말이다. ▶한때 혼밥, 혼술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트렌드였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혼밥과 혼술에, 관련 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혼밥족과 혼술족을 위한 맛집 베스트는 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2021년 12월18일 이후 혼밥은 방역패스에서 낙오된 이들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는 식당에서 쫓겨난 억울한 사연이 줄을 잇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국 혼밥은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야기되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한 친구는 직장 후배를 생각하면 밥 먹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같은 부서원이 4명인데 그 후배가 백신을 맞지 못해 외부 식당에서 밥도 같이 못 먹는다면서 이런 말도 안되는 정책을 생산하고 있는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이 모양, 이 꼴을 만들어 놓고 백신 미접종자를 마치 사회 부적응자를 만드냐고하면서 말이다. ▶본인이 스스로 하는 혼밥은 트렌드일 수 있다. 하지만 혼밥을 강제하는 것은 또 다른 인권 탄압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백신 미접종자를 방역 미아라는 범주에서 빼내야 한다. 아니면 반드시 부메랑이 돼 그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지지대] 우리의 모국어는 안녕하십니까?

눈을 의심했다. 한글 간판들이 즐비했다. 필자가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주 부톤섬 바우바우시를 찾았을 때 얘기다. 10년이 훌쩍 지났다. 이곳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겪은 에피소드였다. ▶바우바우시 인구 50만여명 중 찌아찌아족은 7만여명이다. 이들은 문자가 없어 고유어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채택한 게 한글이었다. 2009년이었다. 한국인 교사 1명과 현지인 보조교사 3명으로 시작했다. 한글수업을 받는 초등교는 4곳,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배우는 학교는 고교 2곳과 중학교 1곳 등이었다. ▶이들에게 처음 한글을 가르쳤던 정덕영 교사는 그곳에 홀로 정착했다. 그의 체재비와 보조교사들의 급여 등은 정 교사 지인들이 모은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이들의 한글사용도 12년째다. 인도네시아 정부도 한글사용을 승인했다. ▶네팔 소수민족인 체팡족과 태국 라후족 등도 한글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의 경제성장과 세계 속 역할이 강화되면서 가속화될 수 있겠다. 한글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가장 과학적인 문자, 가장 발달한 문자, 가장 합리적인 문자, 가장 진보된 문자. 우리만 모르는 한글의 위상이다. ▶22세기까지 지구촌 6천500개 언어 중 1천500개가 소멸한다는 학계 보고가 나왔다. 호주국립대 린델 브롬엄 교수팀의 연구 결과다. 100년 후 살아남을 언어들도 제시됐다. 영어, 아랍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히브리어 그리고 한국어다. ▶이들은 각 언어의 사용인구와 교육정책, 사회경제적 지표 등과 관련된 51개 예측변수를 놓고 분석했다. 이 결과 모국어로 쓰는 성인만 존재하고 배우는 세대가 없는 언어가 가장 먼저 소멸한다고 예측했다. 노년층에서만 사용하면 더욱 빨리 없어진다고 정의했다. 그렇게 1천500개 언어가 사라진단다. ▶한국어가 그런 언어에 속하지 않음이 고맙다. 한글은 우리의 모국어를 온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문자다. 그래서 소중한 자존감의 영역이다. 말은 우리가 늘 숨 쉬는 산소다. 문자는 그 산소를 받쳐주는 공간이다. 경제도 문화도, 문자도 죄다 명품반열에 올랐는데 정치는 여전히 삼류를 면치 못하는 현실이 답답해 꺼낸 넋두리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스크루플레이션

스크루(screw)는 돌려 조인다는 뜻이다. 여기에 물가가 전반적ㆍ지속적으로 상승하는 경제현상인 인플레이션(inflation)이 합쳐져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이란 말이 생겼다. 물가 상승과 실질임금 감소 등으로 중산층의 가처분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경제가 지표상 회복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중산층 입장에선 들어오는 돈은 줄어들고 나가야 할 돈은 늘어나는 상황이 그들을 돌려 조이기 때문에 소비가 위축되고 실질적 경기가 살아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8개 국책ㆍ민간 경제연구원의 원장들이 최근 한 세미나에서 내년 한국 경제가 스크루플레이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놨다. 비슷한 의미의 스태그플레이션은 거시경제 차원에서 경기가 침체되면서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지만, 스크루플레이션은 미시적인 차원에서 쥐어짤 만큼 생활이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체감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다. 이 용어는 헤지펀드업체인 시브리즈파트너스의 더글러스 카스 대표가 10년 전 처음 사용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소상공인 폐업이 줄을 잇고, 일반 국민들도 숨막혀 못살겠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저런 여파로 내년에도 우리 경제 앞날이 밝지 않다니 우울하다. 변이 바이러스 확산으로 다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됐지만, 위드 코로나가 돼도 경제상황은 좋지 않다는 분석이다. 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와중에 가계지갑은 얇아지고 있으니 실질 구매력은 갈수록 훼손될 것이다. 빠른 속도로 누적된 가계부채가 금리 상승과 맞물려 민간 씀씀이를 억누르게 될 것이다. 코로나 상황이 나아진다 해도 위축된 소비행태가 굳어져 수요 활력이 코로나19 이전보다 악화될 것이다. 가계 살림을 쥐어짤 만큼 나쁜 상황, 이것이 스크루플레이션 현상이다. 서민ㆍ중산층을 중심으로 가계살림이 팍팍해지고, 상당수 기업이 투자계획도 못세운 채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대선주자와 정치권은 우리 경제 현실, 국민과 기업의 어려움을 인식하고 있을까? 가족 리스크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으니 답답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벽돌공장 ‘영신연와’

수원시 권선구 고색동에 옛 벽돌공장 영신연와가 있다. 고색중학교 정문 방향 골목길로 접어들면 아파트 10층 높이의 굴뚝이 우뚝 서 있고, 다소 퇴색했지만 영신연와라는 글씨가 보인다. 연와(煉瓦)는 구워낸 기와라는 뜻으로 벽돌을 말한다. 영신연와 공장은 1960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성장으로 인한 건축 붐이 한창이던 1970년대 전성기를 누렸다. 호황기엔 하루 5만장 넘는 벽돌을 만들어 낼 만큼 수요가 많았다. 수원이 도시화하고 여러 건축물이 들어설 때 쓰인 벽돌을 생산한 곳이니, 도시 역사와 함께했다고 볼 수 있다. 영신연와는 1992년 문을 닫았다. 하지만 5천775㎡ 면적(건축물 1천902㎡)에 굴뚝과 가마터, 초벌 야적장, 무연탄 야적장, 창고, 노동자 숙소 등 공장 시설물이 원형을 잘 유지한 채 남아 있다. 벽돌을 구웠던 가마는 호프만 가마다. 독일 화학자 호프만이 개발한 가마로 국내 유일하다. 둥근 형태의 가마는 내외벽과 투탄구, 연도 등이 견고히 남아있어 당시 벽돌을 어떤 방식으로 만들었는지 보여준다. 사택에는 최대 100여명이 살았는데 폐업한 지 30여년 됐지만 아직도 당시 노동자 몇 명이 살고 있다. 영신연와는 수원에 남은 유일한 초기 산업 건축물로 산업화 시대 유산이자 근대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높다. 문화계와 시민사회단체에서 보존 여론이 높다. 2012년 영신연와 보존 시민모임도 발족했다. 시민모임은 전시회도 열고, 보존을 위한 서명운동도 펼쳤다. 하지만 사유지여서 철거 위기에 놓여있다. 보존이냐 철거냐, 10년 가까이 결론을 내지 못하던 수원시가 2019년 존치가 어렵다는 잠정결론을 내렸다. 영신연와 공장 건물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태지만, 다행히 공장 건물과 굴뚝, 가마 등은 아직 존치돼 있다. 영신연와 같은 형태의 벽돌 공장은 10여년 전만 해도 전국에 여러 개 있었으나 모두 사라져 이곳만 남았다. 국내 마지막 남은 호프만 가마식 벽돌공장, 영신연와가 보존돼야 하는 이유가 커졌다. 이곳이 멋진 문화공간, 역사문화공원으로 재탄생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한 해의 끝자락에서

▶묘서동처(猫鼠同處)는 중국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에서 처음 등장한다. 한 지방 군인은 집에서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빨고, 고양이가 쥐를 해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쥐는 곡식을 훔쳐먹는 도둑에 비유되고, 고양이는 쥐를 잡는 동물로 여겨진다. 쥐와 고양이가 함께 있다는 것은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거리(한통속)가 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를 선정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땅 투기 사건을 비롯해 한국사회를 뒤덮었던 여러 정치ㆍ사회적 사건이 읽혀진다. 사자성어를 선정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선 안 된다. 케이크도 자르고 취하기도 하는 꼴, 묘서동처의 현실을 올 한해 사회 곳곳 여러 사태에서 목도했다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드러낸 사자성어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교수신문이 발표한 한자성어를 보면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ㆍ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러움),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ㆍ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음),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ㆍ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 2018년 임중도원(任重道遠ㆍ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2019년 공명지조(共命之鳥ㆍ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목숨을 함께하는 새) 2020년 아시타비(我是他非ㆍ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등이다. 어지러웠던 한국사회가 한눈에 드러난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저물어간다. 코로나19와의 힘겨운 싸움 속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등 사회를 변화시킬 여러 굵직한 이슈도 놓여 있다. 새해를 앞둔 기대감 속 상심이 교차하는 얼굴들이 여기저기 읽힌다. 내년 이맘 때 쯤 한국 사회는 어떤 사자성어로 집약될까. 소시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권의 묘수가 절실하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지지대] 여부야빈

지난 2018년 6월13일 치러진 제7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여부야빈 현상은 두드러졌다. 촛불로 창출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상황에서 이재명, 전해철, 김태년, 안민석 등 쟁쟁한 후보가 거론됐었다. 반면 야당은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홀로 이름을 올리면서 그야말로 여부야빈의 양상을 보였다. 원래 여부야빈은 정치계의 유행어 중 하나로 여당이 비교적 정치 후원금이 넉넉해 자금 면에서 여당은 부유하고 야당은 가난하다는 말인데 지금의 여부야빈 현상은 후보를 두고 하는 얘기다. 내년 6월1일 치러지는 제8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도 지난해와 비슷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본보가 구글 트렌드를 분석한 결과,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안민석 의원, 김태년 의원, 심재철 전 의원, 남경필 전 경기지사가 상위권을 기록했다. 3명은 여권 인사고 남경필 전 지사는 정계 은퇴를 선언한 터라 사실상 야권 인사로 볼 수 없다. 그렇다면 야당은 아예 후보군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야권은 그냥 빈(貧)이 아니라 극빈(極貧) 양상을 보이는 것이다. 내년 3월 치러지는 대통령 선거의 승패가 지방선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마땅한 후보가 없는 야권의 인물난이 심각하다. 정권 말기 문재인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다소 하락했지만, 여전히 지지층이 두터운 데다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도 윤석열 후보와 백중세를 보이고 있어 야권 인사들은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인지도 높고 영향력 있는 야권 후보가 나와야 유권자들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아직 늦지 않았다. 야당이 분발해 여부야부의 팽팽한 대결을 펼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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