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어느 영웅돼지의 죽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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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촨성(四川省) 음식은 꽤 맵다. 그래서 유명하다. 그런데 이곳은 중국의 자존심, 그 자체다. 한족(漢族)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그런 곳에서 규모 8.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2008년 5월12일이었다. 중국 국영방송 CCTV는 무려 1년여 동안 모금캠페인을 생방송으로 진행했다. 다른 곳에서의 재난사고였다면 어림도 없었을 터이다.

▶쓰촨성에선 규모 4.0 이상 여진이 240여차례 이어졌다. 전체 여진 횟수는 2만1천500건 이상이었다. 피해 면적 10만㎢에 사망자 6만9천여명, 실종자 1만7천여명 등이었다. 경제손실도 1조위안(160조원) 이상이었다. 유적지들도 많이 파괴됐다. 유비와 제갈량 사당 무후사(武侯祠)와 유비묘가 그랬다.

▶주젠창((猪堅强) 얘기를 하려고 쓰촨성 얘기를 늘어놓았다. 쓰촨성 대지진 당시 36일만에 살아 구출된 아기돼지 이름이다. 36일간 매몰됐지만 기적적으로 구출돼 중국인들에게 감동을 줬었다. 중국인들은 ‘이 돼지는 먹어선 안 된다’며 구명운동도 펼쳤다.

▶당시 젠촨박물관을 운영했던 판젠촨(樊建川)은 돼지에게 ‘강인한 의지의 돼지’라는 뜻의 ‘주젠창’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이후 중국의 국보인 판다 못지않게 중국인의 사랑을 받았다. 포털사이트 홍망(紅網)이 당시 시행한 조사 결과 ‘가장 감동을 준 동물’로도 뽑혔다.

▶하지만 이후 주젠창이 호의호식하면서 살이 찌고 게을러졌다는 보도들이 쏟아지면서 중국인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갔다. 그런데도 이 돼지는 정기 건강검진을 받는 호사생활을 누려왔다. 무제한 사료도 제공받았다. 5천위안(한화 88만원)짜리 보험까지 가입했다.

▶그랬던 주젠창이 태어난 지 14년이 된 최근 노환으로 자연사했다. 주젠창이 사망하자 중국인들은 애도했다. 큰 재난에도 죽지 않으면 반드시 복을 받는 날이 온다는 희망을 줬다는 것이다.

▶이 돼지가 쓰촨성 대지진을 경험한 중국인들에겐 상징과 같은 존재였겠다. 하지만 국론분열을 막기 위해 동물까지 이용하는 중국 당국의 저의는 아무리 생각해도 씁쓸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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