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故 김동식 구조대장

무사히 돌아오기를 온 국민이 마음을 모아 기다렸는데 마음이 아프다 문재인 대통령이 쿠팡의 이천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서 순직한 경기 광주소방서 김동식 구조대장(52)에 애도를 표했다. 추도문을 통해 안전한 대한민국을 향한 여정에서 언제나 굳건한 용기를 보여준 고인을 기억하겠다고 했다. 김 대장은 지난 17일 오전 발생한 덕평물류센터 화재 현장에 투입됐다가 고립돼 48시간 만인 19일 오전 숨진 채 발견됐다. 불이 난 지 6시간 만에 김 대장을 포함한 구조대 5명이 지하 2층에 진입해 인명 수색작업을 벌였고, 가연물 등 적재물이 무너져 내리면서 김 대장만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많은 국민이 살아 돌아오기를 기도했으나 안타깝게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고인은 1994년 4월 고양소방서에서 소방조직에 투신한 27년차 베테랑 소방관이다. 경기지역 소방서에서 구조대와 예방팀, 화재조사 등 주요 부서를 두루 거쳤다. 소방행정유공상, 경기도지사 표창장 등 각종 상을 받으며 성실함과 능력을 인정받았고 응급구조사 2급, 육상무전 통신사, 위험물 기능사 등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는 등 남다른 학구열을 보였다. 김 대장에 대해 동료들은 위험한 현장에 가장 먼저 들어가 마지막에 나오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늘 끝까지 동료들을 보살피고 책임져 끝판 대장으로 불렸다. 김 대장의 어머니는 너 없이 어떻게 사느냐. 나도 데리고 가라며 영정 앞에서 오열했다. 상복을 입은 김 대장의 아내와 두 자녀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김 대장의 영결식은 21일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거행됐고,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김 대장에겐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1계급 특진과 함께 녹조근정훈장이 추서됐다. 가족에게 김 대장의 죽음은 비통하고 애통할 따름이다. 김 대장이 없는데 특진과 훈장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게 얼마나 위로가 될까. 정부와 정치권은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재발방지를 약속하지만 비슷한 사고가 계속된다. 김 대장의 숭고한 희생이 이 사회가 달라지는 계기가 돼야 한다. 김 대장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효순미선평화공원

6월이면 가슴이 더 시린 이들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중학생 딸을 황망하게 떠나보낸 부모다. 그들의 머리엔 어느덧 하얗게 서리가 내렸지만, 한창 꿈 많고 장난기 어린 딸을 잊을 수가 없다. 살아있다면 서른을 훌쩍 넘겼을 아이들, 부모의 기억은 19년 전에 머물러 있다. 효순이ㆍ미선이. 2002년 6월 13일, 양주시 광적면 효촌리 56번 국도에서 14살 신효순심미선 양이 인도가 없던 국도를 걷다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는 주한미군 장갑차에 치여 현장에서 숨졌다. 사고를 낸 미군 운전병은 대한민국의 재판이 아닌, 주한미군지위협정(SOFA)에 의해 미군재판을 받고 무죄로 풀려났다. 불평등한 SOFA협정에 분노한 국민들은 미군의 사죄와 책임자 처벌, SOFA협정 개정을 촉구하며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 주한미군 측은 여중생의 죽음을 불의의 사고라고 적은 추모비를 현장에 세웠다. 시민들은 미군이 책임을 회피한다고 비판했고, 시민단체 평화통일을여는사람들 등이 중심이 돼 국민 성금으로 추모비를 만들었다. 이후 추모비를 세울 공원을 조성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그래서 지난해 18주기 추모식을 맞아 시민단체 159곳과 연인원 3천여명 시민의 성금으로 효촌리에 효순미선평화공원이 탄생했다. 367㎡ 크기의 효순미선평화공원은 사고현장에 있던 두 소녀의 운동화 모양을 본 떠 만들었다. 규모는 작지만 의미는 크다. 여전히 불평등한 한미관계 때문인지 정부도, 지방정부도 침묵하던 것을 시민들이 주도해 평화공원을 만든 것이다. 평화공원조성위는 두 중학생을 잊지않고, 평등한 한미관계와 자주평화를 염원하는 시민의 힘으로 이루어낸 성과라고 밝혔다. 지난 13일 19주기 추모제 및 천도재가 평화공원에서 봉행됐다. 공원은 예산부족 탓에 주변 정비 등 마무리를 못했는데 경기도와 양주시의 지원으로 정비사업이 완료됐다. 효순ㆍ미선이 사건은 두 여중생이 억울한 희생을 당한 사건이자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공론의 장으로 이끈 사건이다. 앞으로 청소년 평화교육의 장으로 활용될 공원에서 효순ㆍ미선이가 자주평화통일의 꿈으로 다시 피어나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평택의 수달

자연선택설은 C. 다윈이 수립하고 주장했다. 생물의 종은 개체 간 생존경쟁을 하며 환경에 잘 적응한 변이를 갖는 개체가 생존해 자손을 남기고 그 변이를 전하는 확률이 높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동ㆍ식물 세계에서 자연선택은 끝난지 이미 오래됐다고 이구동성이다. 그들의 생존과 번식, 죽음, 종의 종말까지 모두 자연선택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에 달렸다는 것이다. 자연선택의 결과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진 동ㆍ식물이라도 인간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환경부가 1989년부터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지정해오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생물은 총 246종이 있고 Ⅰ급과 Ⅱ급으로 나뉜다. 평택지역의 경우 최근 멸종위기종 생물과 관련 모두 세 번의 이슈가 있었다. 먼저 미군기지 평택 이전 확장부지에서 발견된 멸종위기 동물 Ⅱ급인 금개구리 1천500여개체를 대체서식지인 현덕면 덕목제 습지로 옮겼으나 10여년이 지난 후 관리 부실 등으로 개체가 확인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본보 2019년 5월21일자)했다. 이어 금개구리 대체서식지 인근에서 멸종위기 동물 Ⅰ급인 귀이빨대칭이(민물조개)가 집단으로 폐사된 채 발견(본보 2020년 6월19일자)됐다. 여기에 멸종위기 동물 Ⅰ급인 수달의 활동 모습이 평택호와 도대천 등에서 무인카메라에 포착(본보 2020년 6월11일자)됐다. 그동안 배설물 등 서식 흔적은 발견됐으나 활동하는 모습이 영상으로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평택시는 이들 수달보호 의지를 밝혔다. 군문교 일원에 추진하는 노을유원지 조성 사업을 노을생태문화공원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내용도 바꾼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수달보호 계획은 발표되지 않았다. 시의 수달보호 의지에 우려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이전의 금개구리와 귀이빨대칭이를 대했던 시의 생태ㆍ환경 정책을 봐 왔던 탓이 크다. 평택의 수달 보호는 전적으로 사람의 선택에 달렸다. 시의 보호의지와 노력을 기대한다. 박명호 지역사회부 차장

[지지대] 영원한 인천 영웅 유상철

지난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웅이자, 2019년 프로축구 시즌 최하위에 머물던 인천유나이티드를 잔류시켰던 유상철 전 감독. 그런 그가 지난 7일 오후 7시20분께 췌장암으로 세상을 등지고 떠났다. 유 전 감독과 인천의 인연은 특별하다. 그는 2019년 5월 최하위권을 맴돌던 인천의 1부 잔류라는 막중한 임무를 안고 감독을 맡은 뒤, 매 경기 살얼음판 같은 생존 경쟁을 치러냈다. 하지만 시즌 막바지이던 그해 10월 황달 증세로 입원한 유 전 감독은 11월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 투병해왔다. 그리고 투병 중에도 벤치를 지키며 그해 인천의 2부 리그 강등을 막아냈다. 당시 팬들은 남은 약속 하나도 꼭 지켜줘라며 유 전 감독의 쾌유를 바랐고, 그는 꼭 돌아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지휘봉을 내려놓고 투병에 전념해왔다. 그는 인천 훈련장이나 경기장에 종종 모습을 드러내며 건강을 회복한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듬해인 2020년 시즌 중반기 인천이 부진에 빠져 감독 경질이 이뤄지자, 차기 사령탑 물망에 올랐다. 당시 유 전 감독은 현장에 복귀하겠다는 뜻을 강력하게 밝혔으나, 그의 건강을 염려한 구단이 거절해 복귀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유 전 감독의 생애 마지막 소속팀인 인천 구단과 팬들은 그를 마음속에 간직한 채 눈물로 떠나보냈다. 인천축구경기장에 분향소를 꾸리고 그를 애도했다. 분향소 앞 보드판은 2002년 영광과 환희, 그리고 인천 잔류의 감동과 희망을 선물해줘서 감사하다는 내용의 포스트잇과 흰색 국화꽃이 가득했다. 인천의 구단주인 박남춘 인천시장은 유 전 감독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애문하면서 영정 속 환한 웃음을 마주하니 그와 얼싸안고 기뻐했던 순간부터 선수들 사이에서 비로소 빛나던 그의 얼굴까지 주마등처럼 스친다며 추억을 회상하기도 했다. 인천의 영원한 축구 영웅인 유상철. 그는 이제 인천의 명예감독으로서 모든 인천시민의 가슴속에 남아 빛날 것이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중국의 공동부유시범구

역대 중국 지도자들의 경제해석 시각은 단순하다. 공산주의 국가답다. 마오쩌둥(毛澤東)은 공부론(共富論)이다. 모든 인민이 모두 함께 잘살아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도시 노동자들보다 농민들이 더 잘살아야 한다고도 주창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선부론(先富論)이다. 공산주의라는 이념보다도 인민들의 살림살이가 먼저 윤택해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그래서 나온 게 개혁개방정책이다. ▶최근 중국 경제기조가 또 바뀌고 있다. 마오쩌둥의 공부론에 덩샤오핑의 선부론이 녹여지는 모양새다. 20세기 러시아에서 발발한 공산혁명의 주체는 도시 노동자들이었다. 이에 비해 20세기 중반 중국에선 농민들이 사회주의혁명을 이끌었다. 중국 공산주의는 공산주의보다는 사회주의에 더 가깝다. ▶시진핑(習近平)이 15일 저장성(浙江省)을 공동부유시범구(共同富裕示範區)로 지정했다고 중국 언론들이 전했다. 평등사회를 저장성을 토대로 확장하겠다는 의도가 숨겨져 있다. 덩샤오핑이 선부론을 제창했을 때가 1970년대였다. 당시는 분배보다는 국가 전체 파이를 키우는 게 급선무였다. 공동부유(共同富裕)는 사실상 구호에 그쳤었다. ▶최근 중국 경제기조 키워드는 소득분배 개선, 사회복지제도 강화, 도농격차 해소 등이다. 소득분배 개선차원에서 기업이 직원에 지급하는 보수를 합리적 범위에서 올리라고 규정했다. 최저임금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고 못을 박았다.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취업보장과 사회복지제도 강화 등을 통해 저소득층을 중산층으로 진입할 수 있도록 촉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극화문제 탓이다. ▶저장성은 중국에서 우리의 강남에 해당된다. 1년에 삼모작도 가능하다. 땅도 비옥하고 대륙의 젖줄인 양쯔강(揚子江)도 흐른다. 그런 곳을 공동부유시범구로 지정한 배경에는 조급함이 숨어 있다. 바이든 정권이 들어서면서 미국에 밀리는 중국의 열세가 읽히는 대목이다. ▶자신들이 지구촌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에도 G7에 끼지 못하니 그럴 만도 하겠다. 경제력은 급성장했지만 양극화문제가 심화되면서 국가 정체성이 심각한 도전에 직면한 까닭이기도 하겠다. 혹시 도광양회(韜光養晦)가 퇴조하는 건 아닐까. 빛을 감추고 어둠을 키운다는 저들의 전략이 거꾸로 가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실종경보 문자

경찰은 수원시 팔달구 소재 병원에서 실종된 ○○○씨(78살, 남)를 찾고 있습니다 경찰은 화성시 주민인 실종자 ○○○씨(78살, 남)를 찾고 있습니다 지난 11일 저녁 문자 메시지 2건이 연달아 날아왔다. 코로나19 관련 문자인가 들여다보니 실종자를 찾는 것이었다. 한참 후 실종된 사람을 찾았다며, 감사하다는 메시지가 다시 전달됐다. 경찰청이 9일부터 실종사건 발생 시 재난문자처럼 실종경보 문자메시지를 발송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제도 시행 이틀 만에 수원에서 실종자를 무사히 찾은 첫 사례가 나왔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10일 수원시 팔달구 소재 병원에서 치매환자 A씨에 대한 실종 신고가 접수됐다. 응급실 진료를 위해 배우자와 병원을 방문한 A씨는 배우자가 코로나19 검사를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운 사이 실종됐다. 경찰은 A씨가 병원 인근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약 8㎞ 떨어진 곳에 하차한 사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주변에 CCTV가 적고 위치 추적이 어려워 행적 확인이 어려웠다. 경찰은 다음 날인 11일 오후 7시37분쯤 수원시와 화성시 일대에 실종경보 문자를 보냈다. 문자엔 A씨의 나이와 이름, 신체조건 등의 정보가 담겼다. 약 30분 만인 오후 8시6분쯤 한 시민으로부터 수원농생고 인근에서 풀을 뽑는 할아버지를 봤다. 실종자와 비슷한 것 같다는 제보를 받았다. 곧바로 출동한 경찰은 A씨를 발견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냈다. A씨는 평소 집 근처 공터에서 텃밭을 가꾸는 취미가 있었다고 한다. 새로 시행된 실종경보 문자 제도가 가족에게 큰 기쁨을 선사했다. 실종도 초기 골든타임이 있어 48시간 이내에 찾지 못하면 장기 실종으로 분류되고, 실제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실종아동 신고 접수가 매년 3만~4만건에 이른다. 지적ㆍ자폐성 장애인이나 치매환자 등의 실종도 많다. 실종경보 문자는 시민 제보를 통해 좀 더 신속하게 실종자를 찾기 위한 제도다. 혹여 실종경보 문자가 오면 내 가족이나 이웃의 일처럼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제고통지수

경제고통지수는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수치화한 것이다. 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이 고안한 것으로,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해 계산한다. 경제고통지수 수치가 높다는 것은 실업률이나 물가 상승이 높아 국민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경제고통지수가 5월 기준 10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추경호 의원이 통계청 자료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 5월 기준 6.6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 2.6%에 실업률 4.0%를 더해 나온 것이다. 2011년 5월(7.1)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2019년 5월 4.7, 2020년 5월 4.2와 비교해도 큰 폭으로 상승했다. 추 의원은 확장실업률과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을 더한 서민경제고통지수도 산출했다. 구직활동 여부로 계산하는 실업률과 달리 확장실업률은 구직 의지를 반영해 취업을 준비하거나 불완전고용까지 좀 더 포괄적인 실업을 나타내는 통계다. 실업자뿐 아니라 추가 취업 가능자와 잠재경제활동인구도 포함한다. 여기에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을 더해 서민층이 느끼는 경제적 어려움을 보여주기 위한 지표가 서민경제고통지수다. 5월 서민경제고통지수는 16.8로 집계됐다. 확장실업률이 13.5%, 생활물가지수 상승률이 3.3%였다. 이 또한 2015년 이래 5월 기준 역대 최고치다. 양질의 일자리는 늘지 않고 물가는 계속 올라 서민들의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추경호 의원도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 실패와 코로나19 충격에 따른 일자리 가뭄에 더해 생활물가까지 급등하면서 서민 고통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밥상 물가와 실업률뿐만이 아니다. 집값 폭등에 전세난민이 속출하고, 가계 부채도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가난한 가계일수록 빚 증가율은 더욱 가파르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지난 4년간 소득 상위 1%의 부채가 8.5% 감소한 반면 소득 하위 20%의 부채는 5.3% 늘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서민들의 경제적 고통을 헤아려 민생에 더욱 전념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빌바오 효과와 신기루

스페인의 대표적 조선 공업 도시였던 빌바오는 20세기 후반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바스크 주 정부가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애써 유치했다. 쇠락하던 빌바오는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살아났다. 미술관 신화다. 구겐하임의 소장품과 독특한 건축미가 큰 몫을 했다. 이후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는 문화가 한 도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뜻하는 용어가 됐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빌바오 효과가 유행가처럼 들린다. 이건희 미술관 얘기다. 한 달 넘도록 지자체가 서로 건립 당위성을 말한다. 삼성그룹 창업주의 고향부터 시작해 삼성 본사와 이건희 회장 묘소가 자리한 곳 등 절절한 사연이 나온다. 수도권 분산과 문화 향유 기회 확대 등의 이유도 줄줄이 붙는다. ▶ 코로나19 속 더더욱 뒤편으로 밀려났던 문화예술이다. 모처럼 받는 주목이다. 그런데 정작 문화는 보이지 않는다. 고미술부터 현대미술, 각종 문화재가 포함된 예술품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존할지 고민이 없다. 예술을 존중하는 자세도 계획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자체의 경제, 정치논리만 가득하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한창인 지자체에 거주하는 한 작가가 말했다. 지역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심도 없지 않았느냐. 자기 자식도 보살피지 못하면서 이건희 미술관이 웬 말이냐. ▶빌바오 시청의 도시계획국장이 말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를 국제화하는 데 역할을 한 것뿐이다. 빌바오의 도시재생은 수많은 프로젝트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졌다. 실제 빌바오의 부흥은 구겐하임 미술관만으로 불러온 게 아니다. 미술관 근처 주민들이 사색하고 걷고 뛰는 네르비온 강변의 산책로와 그 속에서 빚어진 풍부한 문화적 소양, 예술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지자체의 깊은 고민이 한몫했다. 빌바오 효과를 거저 바라기만 한다면 그건 신기루에 불과하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지지대] 백신 소외 4050세대

정부는 이달까지 최대 1천400만명의 백신 접종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령층과 30대 예비군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이 이뤄지면서 40~50대 사이에선 4050은 백신 소외 계층이라는 푸념이 흘러나오고 있다. 지난 6일 기준 코로나19 백신 1차 접종자는 누적 759만5천72명으로 통계청 2020년 12월 말 주민등록인구현황 5천134만9천116명 대비 14.8%로 집계됐다. 2차 접촉자는 누적 227만9천596명으로 전 국민 대비 4.4% 수준이다. 의료기관이나 요양병원, 군인소방경찰 사회 필수인력으로 우선예방접종을 한 경우는 50대 78만1천779명, 40대 65만5천537명, 30대 42만632명, 18~29세 16만5천863명에 해당한다. 여기에 30대 남성의 경우 약 90만명이 미국이 준 얀센 백신을 민방위 명목으로 이달부터 7월까지 접종하고, 20대는 사회 필수인력 등 약 20만명이 이달 중 화이자 백신을 맞는다. 이렇듯 백신 접종률에 가속이 붙자 접종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4050세대가 소외감을 토로하는 것이다. 특히 20대는 희귀 혈전증 등 우려로 어쩔 수 없이 접종을 받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4050세대만 제외된 셈이기 때문에 불만 섞인 목소리는 더욱 큰 상황이다. 4050세대 중에는 백신 알림톡을 이용해 예방 접종을 실시한 이들도 생겨나면서 백신 접종 노하우를 전수 받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조급한 이들은 다니는 병원에 잔여량을 수시로 확인하고 지인 찬스를 이용하는 등 백신을 먼저 맞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기도 한다. 이르면 7월부터 백신 정국 소외 계층인 4050세대에 대한 예방접종이 본격화될 전망이다. 오는 7월부터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보다 화이자 백신 공급량이 증가하면서 주력 접종 백신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 조금만 참고 버텨보자. 온 국민이 힘든 시기 의젓한 어른으로 백신 접종 순서를 기다려 보자. 최원재 정치부장

[지지대] 방아머리항

해무(海霧)의 고향이었다. 바닷물이 가둬지기 전에는 그랬다는 얘기다. 김승옥의 무진기행(霧津紀行)을 체험할 수 있었다. 남해로 내려가지 않아도 말이다. 바다로 뻗어나간 모양이 디딜방아 머리를 닮았다. ▶바다에 떠있을 땐 한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방아머리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졌다. 배가 드나드는 개천의 어귀인 포구(浦口)도 아니다. 그렇다고 딱히 어항(漁港)도 아니다.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 내 방아머리항이라는 곳의 역사다. 옛 문헌에는 한문으로 용두포(頭浦島)로도 기록됐다. 지난 1871년 제작된 대부도 지도를 통해서다. 방아찧을 용()자가 맨 앞에 있다. 한자(漢字)로도 구색을 갖췄다. 대부도와는 떨어졌었지만 60여년 전 구봉염전을 만들면서 이어졌다. ▶대부도와 이어지기 전에는 징검다리로 건넜다. 시화호 바깥쪽으로는 선착장도 조성됐다. 정확한 지번은 대부북동 1955-1이다. 현지 어선 18척과 외지 어선 30여척 등이 이용 중이다. 애초 선착장은 시화호 내에 있었다. 이후 한국수자원공사가 지난 1986년 시화방조제를 축조하면서 현 위치로 옮겨졌다. ▶선착장(길이 180m)과 방파제(길이 82m), 4천400㎡ 규모의 물량장 등도 있다. 수산물직판장(1곳)과 여객전용 주차장(230면), 여객매표시설 등도 운영 중이다. ▶최근 문제가 생겼다. 좁다. 그래서 어선들이 접안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풍이 닥치면 인근 어항으로 피해야 한다. 안산시는 그래서 해양수산부에 방아머리항 개선 관련 예산 150억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반영이 불투명하다. ▶해양수산부는 앞서 내년 예산 편성을 앞두고 안산시에 공문을 보내 해양수산 관련 중장기 발전계획서 제출을 요청했었다. 지난 2월이었다. 안산시는 이에 150억원(설계비 8억원 포함) 정도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담은 중장기 발전계획서를 제출했다. ▶현재 82m인 방파제 240m 확장과 어항 내 퇴적된 토사 2만여㎡ 준설 등을 위해서다. 그러나 예산 반영이 불투명한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방아머리항을 이용하는 어민들의 불편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무릇 세상의 어떤 사물이라도 서사(敍事)가 있기 마련이다. 그 서사는 늘 발전을 지향한다. 방아머리항도 그렇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리얼돌 체험방

피그말리온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키프로스의 조각가다. 어떤 여성에게도 매력을 느끼지 못한 그는 상아로 아름다운 여성을 조각한다. 이름은 갈라테이아. 자신의 창조물에 도취된 피그말리온은 이 조각상을 사랑하게 된다. 껴안고 입도 맞춘다. 피그말리온의 여성 조각상은 지금의 리얼돌(real doll)의 원조격이다. 인간과 인형 혹은 인조인간과의 사랑은 소설, 만화, 영화에 많이 등장한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에서 주인공 데카드 형사는 인조인간인 레이첼을 사랑한다. 로맨틱 코미디 영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에서도 27살까지 여자를 사귄 적 없는 라스(라이언 고슬링)가 리얼돌 비앙카와 데이트하는 얘기가 펼쳐진다. 리얼돌은 사람 피부와 질감이 거의 같은 특수 재질로 제작된다. 여성의 신체를 정교하게 재연한 성인용품 리얼돌은 남성들의 성적 유희의 대상이다. 우리나라에서 리얼돌은 수입판매가 합법이다. 대여해주고 유사 성매매를 하는 리얼돌 체험방 역시 사람 대상이 아니어서 불법이 아니다. 최근 리얼돌 체험방이 학교 주변과 주택가까지 침투해 논란이다. 현행법상 학교에서 200m 이내인 교육환경보호구역만 아니면 체험방 영업이 가능하다. 하지만 학부모들은 어린이나 청소년이 자주 다니는 장소에 외설적인 리얼돌을 세워놓거나 사진을 창문에 붙이는 등 광고물이 노출돼 해악을 끼친다고 비난한다. 지난 4월 용인시 기흥구청 인근 상가에 문을 연 리얼돌 체험방은 영업 사흘만에 문을 닫았다. 반경 500m 이내에 초중고 6곳과 유아교육 시설 11곳이 있어 인허가를 취소하라는 민원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의정부 상업지구에 24시간 리얼돌 체험방이 오픈해 청와대 게시판에 영업중단 요구 청원 글이 올라왔다. 업소가 들어서는 상업지구엔 20~30여개 학원이 밀집돼 있고 인근에 초중고교도 있다. 변종 성매매 논란이 있는 리얼돌 체험방은 여성의 성을 상품화하고, 청소년의 성인식을 왜곡할 위험이 있다. 경찰이 여성가족부, 지자체와 리얼돌 체험방을 단속하기로 했다. 관련법이 없어 정보통신망법이나 건축법 위반을 적용해 우회 단속한다. 이번 기회에 관련법도 정비하길 바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코로나 백신 접종 100일

지난 1일 광주시 선한빛요양병원에서 노부부가 1년4개월 만에 만나 두 손을 꼭잡고 온기를 나누는 모습이 언론에 보도됐다. 코로나19로 생이별 했던 남편 김창일씨(83)가 요양병원에 있는 아내 구모씨(77)를 직접 만난 것이다. 휠체어를 타고 자신을 기다리는 남편을 만난 구씨는 눈물을 터뜨렸다. 남편은 아내의 어깨를 감싸며 울음을 달랬다. 김씨 부부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대면 만남을 갖지 못했다. 투명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잠깐씩 얼굴을 보기는 했지만 직접 마주앉아 손을 잡은 건 1년이 넘었다. 정부가 1일부터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접종자에 대해 순차적으로 방역수칙을 완화하면서 대면 면회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날 많은 요양병원ㆍ시설에서 가족 상봉이 이뤄졌다. 백신의 힘이다. 요양병원ㆍ시설 등에서 오랫동안 대면 면회가 금지되면서 환자들이 우울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등 건강상태가 안좋아졌다고 한다. 방역당국은 환자나 면회객 중 한쪽이라도 접종을 완료하면 대면 면회를 허용하고 있다. 코로나로 생이별을 해야했던 부부, 가족이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게 돼 다행이다. 지난 2월26일 서울 노원구보건소에서 60대 요양보호사가 국내 처음으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했다. 5일은 예방접종을 시작한 지 100일째다. 접종 100일 만에 전 국민의 14.8%인 759만여명이 1차 접종을 마쳤다. 정해진 접종 횟수를 완료한 국민은 4.4%인 약 228만명이다. 접종을 앞둔 예약자까지 더하면 이달 중 상반기 목표치인 1천300만명보다 많은 사람이 1차 접종을 완료하게 된다. 정부는 9월까지 국민의 70%가 접종을 마쳐 당초 11월 집단면역 목표가 앞당겨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백신 접종은 회의적 전망도 있고 혼선과 시행착오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초기 고비를 잘 넘기고 본궤도에 올라섰다. 다음 달부터 일반 성인을 대상으로 본격 대규모 접종이 시작되면 일상회복 속도도 빨라질 것이다. 긴 코로나 터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강력한 거리 두기에도 3개월째 하루 500600명대의 환자가 발생하고, 변이 바이러스 확산도 우려된다. 백신 접종에 더 속도를 내면서 방역도 경계를 늦추면 안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고삐 풀린 물가

지난 주말 집 앞 마트를 찾았다. 육아에 지친 아내를 위해 모처럼 저녁상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된장찌개와 달걀말이, 소박한 밥상이었지만 장을 보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소라면 원산지와 유통기한만 확인하고 카트에 담았지만, 이날은 주부들 사이에서 신중을 기했다. 올라도 너무 오른 물가 때문이었다. ▶물가 오름세가 심상치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년 전보다 2.6% 뛰어 약 9년여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지난달(2.3%)에 이어 두 달 연속 한국은행의 물가 관리 범위(2%)를 넘었다. 이를 바탕으로 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물가 흐름을 보면 국민의 생활과 직결된 생활물가지수(3.3%)와 신선식품지수(13.0%)가 상승했다. 농산물(16.6%) 오름폭이 가팔랐고, 원재료값이 뛰면서 국수(7.2%)와 식용유(6.3%), 두부(6.2%)는 물론 빵값(5.9%)까지 올랐다. 석유류는 23.3%나 수직 상승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물가 상승이 코로나19에 따른 기저효과에 농축수산물의 작황 부진, 높은 유가까지 겹친 일시적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다. 또 수확기 도래와 산란계 회복 등으로 농축수산물 가격이 안정되고, 국제유가 오름세도 제한적인 만큼 하반기엔 물가가 안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당장 서민들의 고통은 크다. 더욱이 한 번 오른 상품 가격이 제자리로 돌아갈 가능성도 작다. 가뜩이나 코로나로 어려운 상황에서 위로만 향하는 물가는 서민들의 한숨을 깊게 한다. 정부가 달걀 수입 물량 확대, 가공용 쌀 추가 공급, 돼지고기 할인 판매 등 물가관리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물가안정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정부의 긍정적 전망에 한편으로는 다행스럽지만, 지금은 국민의 시름을 덜 현명한 물가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홍완식 경제부 차장

[지지대] GTX 탄생은 교통복지다

2009년 2월 어느 날 수원에 있는 이비스호텔에서 경기도 공무원 1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조찬간담회가 열렸다. 화성 동탄 2신도시 광역교통대책의 하나로 추진하는 대심도(大深度)광역급행철도 명칭을 보다 간단 명료하게 정하는 전략회의다.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가운데 이계삼 광교사업본부장이 입을 연다. 수도권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노선을 뜻하면서도 다양한 의미를 가져야 한다며 Great, Green, Global, Grand, Gyeonggi 등을 제시했다. Great는 경기와 서울을 아우르는 수도권 교통. Green은 친환경적인 철도. Global은 세계가 인정하는 교통수단. Grand는 웅장한 교통체계라는 뜻을 담았다. 특히 Gyeonggi(경기, 京畿)는 고려 현종 9년(1018년) 때 처음 명명된 역사를 내포했다. 토론 끝에 참석자들은 이해하기 쉽고 간단명료한 Great Train Express(수도권광역급행철도)로 결정했다. 중의적 의미를 담은 GTX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애칭은 UDT(Underground Direct Train). 여기서 UDT는 우수갯 소리로 우리 동네 교통특공대이다. 최근 GTX-D 노선을 놓고 시끄럽다. 발단은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노선 때문이다. 국토부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20212030년) GTX-D 노선에 김포 장기부천종합운동장 구간만 포함했다. 김포ㆍ부천 주민뿐 아니라 서울ㆍ인천지역 주민, 광역ㆍ기초의회, 국회의원까지 나서 원안사수를 외치고 있다. 이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교통 복지다. 경기도내 신도시에 거주하며 서울로 출ㆍ퇴근하는 인구가 적지 않다. 김포시만 보더라도 인구가 지난 2008년에 비해 2배가 넘는 49만8천여명(3월 기준)으로 50만명을 육박한다. GTX의 출발은 신도시의 가장 골칫거리인 교통문제 해결이다. 향후 각 노선 끝을 연장하거나 교통수단을 연계해 수도권 주요도시를 모두 통과하는 거미줄 같은 교통망을 만들 수 있다. 정부가 그토록 애쓰는 서울 집값 잡고 수도권 인구분산 효과도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김창학 정치부 부국장

[지지대] 벙어리뻐꾸기

몸길이가 33㎝이다. 작지도 않고, 크지도 않다. 윗몸은 푸른빛이 감도는 회색이다. 아랫몸은 누런 갈색이다. 몸 한복판에 굵고 성긴 세로무늬도 있다. 암컷 가운데 상당수는 윗몸이 붉은 갈색이다. 배의 줄무늬도 굵다. 눈 색깔은 붉은색이다. 노란색 눈테도 있다. 두견이과에 속하는 벙어리 뻐꾸기의 신상명세서다. ▶이 녀석을 영어로는 동양 뻐꾸기(Oriental Cuckoo)라고 부른다. 학명은 Cuculus Optatus다. 보통 서양에선 새들이 노래한다고 표기한다. 그들의 귀에는 그렇게 들리나 보다. 상대적으로 동양에선 운다고 표현한다. 그렇게 들리는 탓이다. 녀석의 우는 시기는 4월 중순부터 7월 하순까지다. 56월에는 울음소리가 절정에 이른다. 보보 보보라고 2음절을 반복한다. 새벽부터 울기 시작해 낮에도 계속 운다. 밤에는 울지 않는다. ▶생활은 영악하다. 다른 새둥지에 한 알씩 낳아 가짜 어미새가 알을 품고 새끼를 기르게 한다. 새끼는 부화한 지 사흘 정도 지나면 어미새의 가증스러움을 닮는다. 가짜 어미새의 알과 새끼를 둥지 밖으로 밀어내고 둥지를 독차지한다. 가짜 어미새로부터 먹이를 받아 먹으면서 큰다. ▶먹이가 궁금하다. 그런데 의외로 소박하다. 나비유충과 딱정벌레, 메뚜기 등이다. 알을 낳는 시기는 5월 상순6월 하순이다. 사할린섬 등지에서 번식한다. 중국 남부와 동남아 등지에서 겨울을 난다. ▶중요한 건 이 녀석은 여름에 한반도를 찾는 철새라는 점이다. 최근 조류학회가 필리핀을 거쳐 인도네시아 동부까지 4천여㎞ 이상 이동해 월동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한반도를 찾는 시점은 6월 하순이다. 양평과 가평 등지에서 서식한다. 이동기간은 평균 109일(95115일)이다. 이동속도는 하루평균 43㎞(3947㎞)다. 느리지도 않고 빠르지도 않다. ▶이 녀석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겨울 들녘으로 까맣게 날아와 계절을 나는 철새들만 있는 것으로 알았던, 그 섣부른 고정관념을 말이다. 여름을 한반도에서 나는 철새도 있음을 말이다. 녀석들은 그렇게 한반도에서 한여름을 우리와 함께 보낸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게 있다. 멀쩡하게 우는 뻐꾸기한테 왜 벙어리란 이름이 붙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나 혼자 산다

MBC 예능 프로그램 중에 나 혼자 산다가 있다. 1인 가구 연예인의 일상을 관찰 카메라 형태로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이다. 기러기 아빠, 독신남, 각기 다른 이유로 혼자가 된 연예인의 싱글 라이프가 진솔하게 소개돼 인기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2020년 가족실태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나홀로 사는 1인 가구 비율이 전체 가구의 30.4%로 나타났다. 세 가구 중 한 가구 가 1인 가구인 셈이다. 1인 가구 비율은 2010년 15.8%, 2015년 21.3%로 계속 상승 추세다. 성별로는 여성(53.0%)이 남성(47.0%)보다 많다. 연령별로 70세 이상이 26.7%로 가장 많고, 이어 60대(19.0%), 50대(15.4%), 20대(13.6%), 30대(13.0%) 순이다. 혼인상태는 미혼이 40.2%로 가장 많고, 이어 사별 30.1%, 이혼 또는 별거 22.3%로 나타났다. 혼자 사는 이유는 학업이나 직장취업이라는 응답이 24.4%로 가장 많았고, 배우자 사망(23.4%), 혼자 살고 싶어서(16.2%)가 뒤를 이었다. 1인 가구의 소득은 50만100만원 미만(25.2%)이 가장 많았다. 1인 가구로 살면서 가장 부담되는 항목은 주거비(35.7%)로 나타났다. 다음이 식비(30.7%), 의료비(22.7%)라고 답했다. 혼자 살면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으로는 균형 잡힌 식사를 꼽았다. 아프거나 위급할 때 대처가 어렵다는 응답도 많았다. 우리 사회에서 일반적인 가족의 모습으로 떠올리는 부부와 미혼 자녀의 구성은 10가구 중 3가구뿐이다. 현재 혼자 사는 이들 10명 중 7명이 앞으로도 혼자 살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이들 중 20대의 55.2%, 미혼자의 60%가 혼자 살 생각이란다. 가족과 사는 이들까지 포함한 전체 20대의 절반이 독신으로 살 것(53%)이라는 응답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나 홀로 사는 1인 가구가 대세로 굳혀질 것으로 보인다. 혼자 살고 싶다는 20대가 많다니 출산율이 걱정이다. 중장년고령층의 고독ㆍ고립 등도 문제다.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청년중장년고령 등 생애주기별 맞춤형 정책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P4G 서울 정상회의

P4G(Partnering for Green Growth and the Global Goals 2030)는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를 뜻한다. 공공과 민간이 함께 기후변화에 적극 대응하고, 지속가능한 발전 목표를 이루기 위한 글로벌 협의체다. 덴마크 주도의 고위급 포럼 글로벌녹색성장포럼(3GF)에 파리기후협약,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결합해 2017년 출범했다. P4G 1차 정상회의는 2018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렸다. P4G 2차 정상회의는 2020년 한국에서 개최키로 했으나 코로나19로 올해 5월로 연기됐다. 그 정상회의가 30~31일 서울에서 열리고 있다. 포용적 녹색회복을 통한 탄소중립 비전 실현을 주제로 30일 개막,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된다. 회의에는 주요국 정상급고위급 47명, 국제기구 수장 21명 등 총 68명이 참석하고 있다. P4G 정상회의는 한국에서 열리는 첫 환경분야 다자 정상회의다. 코로나19 같은 전염병 원인이 기후변화로 지목되는 만큼 기후대응을 위한 국제사회 협력이 중요해지면서 P4G 서울 정상회의가 주목받고 있다. 이번 회의에선 탄소중립을 위해 식량농업, 물, 에너지, 도시, 순환경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 5가지 중점 분야를 논의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10개의 특별 세션도 열린다. 올해는 2015년 채택한 파리협정 이행의 원년이다. 각 나라가 유엔에 제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본격 행동에 나서는 첫해다. 그 첫해에 우리나라에서 P4G 정상회의가 열려 의미가 크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지난해 2030년까지 2017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24.4%를 줄이겠다는 목표치를 유엔에 제출했다가 미흡하다고 퇴짜를 맞았다. 한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세계 10위 안에 든다. 때문에 국제 환경단체들로부터 기후악당 국가로 지목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정부의 탈석탄 등 실천의지는 약하다. P4G 서울 정상회의를 계기로 탄소중립을 위한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펴 기후악당의 오명을 벗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바다의 날

바다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해보면 지구 상에 육지를 제외한 짠물이 괴어 하나로 이어진 넓고 큰 공간으로 정의된다. 바다는 지구표면의 70.8%를 차지하고, 면적은 무려 3억6천100만㎢에 이른다. 이 거대하고 넓은 바다는 우리에게 무한한 혜택을 준다. 특히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의 경우 바다는 더욱 소중한 존재다. 바다 관련 산업의 중요성과 의의를 높이고 국민의 해양사상을 고취하며, 관계 종사원들의 노고를 위로할 목적으로 정부는 매년 5월31일을 바다의 날로 제정했다. 그러나 26번째 바다의 날을 맞는 주인공 바다는 정작 시름시름 앓고 있다. 매년 바다에 버려지는 플라스틱 등 쓰레기 방출량은 연간 8백만t 이상으로 알려졌다. 어느 사진전에서 선보인 죽은 고래 위 안에서 발견된 나일론 그물과 다량의 해양 쓰레기, 콧속에 빨대가 박혀 있는 채 카메라에 찍힌 바다거북이. 이것은 바다가 우리에게 보내는 위태로운 시그널이다. 14년 전 우리는 죽음의 바다를 경험했다. 지난 2007년 12월7일 충남 태안군 앞바다 8㎞ 지점에서 유조선과 해상 크레인이 충돌, 원유 1만2천547㎘가 유출되는 최악의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했다. 태안 앞바다는 검은 지옥으로 변했다. 어업과 관광업이 모두 중단됐다. 하지만 오염된 바다는 예상보다 빨리 회복됐다. 최소 10년, 최장 100년까지 걸릴 수도 있다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깨부수고 하나로 뭉친 봉사자들은 세계자연보전연맹으로부터 사고 9년 만인 지난 2016년 태안해안국립공원을 청정해역으로 인정받는 결과물을 도출해 냈다. 연인원 123만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해변에 묻은 기름을 일일이 천으로 닦아 만든 기적이었다. 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을 버려두고 나부터 앞장서자는 인식의 변화가 죽어가는 바다를 살릴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양휘모 사회부 차장

[지지대] 2022년 최저임금

2022년 최저임금을 놓고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노동계 측은 역대 최대폭의 인상을 요구한 반면 경영계는 인상에 대해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첫해인 2018년에는 최저임금을 무려 16.4%나 인상했다. 다음해인 2019년에도 10.9%로 높은 인상률을 유지했다. 최저임금이 문재인 정부 소득주도성장의 대표 주자로 주목받았던 탓이다. 그러나 2020년 2.87%, 2021년 1.5%로 급격히 줄어들었다. 특히 올해 최저임금은 1998년 외환위기 때인 2.7%보다도 인상률이 낮았다. 고용 상황이 악화된데다 코로나19까지 터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4년간 문재인 정부의 최저임금 평균 인상률은 7.7%에 달한다. 박근혜 정부 시절보다 조금 높지만 큰 차이는 없다. 문재인 정부의 초기 공약은 2020년까지 시급 1만원 달성이었다. 현재 최저임금 시급이 8천720원임을 감안할 때 정권 말까지 시급 1만원 달성이 만만치만은 않다.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은 내년 최저임금 최초 요구안은 지난해 민주노총이 요구한 금액(1만770원)보다 높게 결정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인 가구 생활비(월 225만원) 보장을 근거로 1만770원을 최저임금으로 요구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1.0~2.0%대 수준 인상에 따른 임금 손실분을 충당해야 하는 등의 이유로 높은 인상률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1만770원은 올해(8천720원) 최저 시급보다 23.5% 오른 것으로, 역대 최대 인상률을 기록한 2018년(16.4%)과 비교해도 7.1%p가 높다. 이에 맞서 경영계는 고용 감소 등의 이유로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600곳을 상대로 설문 조사한 결과, 전체의 57.1%가 내년 최저임금을 동결(50.8%) 또는 인하(6.3%)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고 밝혔다. 동결 의견을 낸 중소기업 상당수는 코로나19 전과 비교해 경영이 악화했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최저임금 결정이 해마다 반복되는 실익 없는 연례행사에 그쳐선 안 된다. 모두를 위한 최선의 답을 찾아가는 솔로몬의 지혜가 발휘되길 기대해본다. 이명관 경제부장

[지지대] “머뭇거리지 말자”

입대 전, 중간고사를 며칠 앞뒀을 때였다. 고교 동창 꾐으로 녀석이 다니는 대학 강의실로 들어섰다. 달음박질치느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5분 정도 늦었다. 교수님의 눈초리가 꽤 따가웠다. 낯선 학생을 향해 곧장 질문이 던져졌다. 왜 뛰어왔는가 ▶어리석은 학생의 대답은 참으로 아둔했다. 선생님 강의를 빼놓지 않고 들으려고 그랬습니다. 무슨 의미가 있는가라는 물음에는 아무튼 살아야 하겠다는 의욕이 생긴다고 대답했다. 현문(賢問)에 우답(愚答)은 계속됐다. 살아야 하겠다는 의욕은 열공하게 되고,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참한 여성과 결혼하고, 아들 딸 낳아 잘 키우고. 뭐 이런 식이었다. ▶(교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일대 반전이었다. 학생이 내 강의를 들으려고 뛰어온 목적은 결국 죽기 위해서가 아닌가? 대답거리가 막혀 버렸다. 막막했다. 강의실은 순간 웃음바다가 됐다. 바야흐로 유신정권 말기였던 1978년 5월 하순이었다. ▶필자를 주눅이 들게 만들었던 장본인은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였다. 장안의 젊은이들을 울리고 웃겼던, 그리스시대 소크라테스를 연상케 하는 철학자다. 올해 100세를 맞으셨다. 99세를 가리키는 백수(白壽)보다 1년이 높은 연세다. ▶비록 직접 은사로 모시진 못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인생의 스승으로 모셨다. 힘들 때마다 43년 전의 그 일화를 생각하며 이겨왔다. ▶국내 서양철학의 체계를 세운 김형석 교수가 엊그제 또 명언을 남겼다.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2차 세계대표자대회 기조강연에서다. 무엇이 달라져야 하는가를 주제로 남을 위해 사는 이타심 있는 삶을 설파했다. ▶그는 친한 동료 학자였던 안병욱김태길 교수와의 우정을 이야기했다. 먼저 세상을 뜨긴 했지만, 모두 다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기라성 같은 철학자들이다. 이 친구들의 학문 연구는 환갑이 넘어 비로써 시작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 같은 열정은 국가와 민족을 생각했기에 가능했다고 덧붙였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독일 속담도 인용했다. 마지막 구절이 또 반전이었다. 인생은 얼마나 짧은가. 그러니 절대 머뭇거리지 말자. 이젠 반백이 된 그때의 젊은이를 그 대철학자는 기억하실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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