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기게스의 반지’는 없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gaeng2d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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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이 쓴 ‘국가’에 등장하는 ‘기게스의 반지’는 전설 같은 이야기다.

기게스는 리디아의 왕을 섬기는 평범하고 성실한 양치기다. 어느 날 폭우와 지진을 겪고 우연히 금가락지 하나를 얻게 된 기게스는 반지를 통해 신비한 경험을 한다. 이 반지에 박힌 구슬을 자신 쪽으로 돌리면 투명인간처럼 모습을 감춰주고, 다시 바깥쪽으로 돌리면 사람들이 나를 볼 수 있게 해주는 능력을 지녔다.

반지의 능력을 쥔 기게스의 욕망은 커지고, 궁궐에 침투해 왕비를 유혹하고 내통해 왕을 죽인 뒤 왕위에 오른다.

‘기게스의 반지’는 자신의 존재를 감춰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지지 않아도 될 때, 우리는 정의로울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다.

전설 속에서만 존재할 줄 알았던 기게스의 반지가 SNS상의 검증 받지 않은 영상으로 재등장한 듯하다. 요즘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등 SNS에 나도는 동영상을 보면 마치 기게스의 반지를 악용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검증은 없고, 의혹만 있다.

최근 故손정민씨 사건 당시 수사에 어떤 도움도 주지 않는 허위 정보들을 양산하는 유튜버가 끊임없이 등장했다. 실종된 청년의 귀환을 바라던 가족과 시민의 간절한 바람은, 이름도 얼굴도 없는 일부 유령 유튜버의 가공을 거쳐 가짜뉴스로 확산했다.

보다 자극적인 유언비어를 골라 ‘미끼성’ 제목을 달고, 조회수를 올려 돈을 벌 목적으로 SNS란 기게스 반지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이다.

하지만 SNS를 절대반지로 믿고 있던 이들이 사법당국에 의해 하나 둘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검증되지 않은 정보를 유통한 혐의로 법정에 선 이들은 하나같이 공익을 위해 영상을 제작했다고 한다.

분명한 건 플랫폼이라는 반지 속에 숨어 조회수를 통한 이윤을 얻기 위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 수 있는 허위 사실을 유포하는 것은 공익일 수 없다.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기게스의 반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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