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지리의 힘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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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래가 외친다. “레이캬비크!”. 와르르 달려들어 ‘사회과부도’에서 낯선 도시를 찾기 시작한다. 사회과부도는 당시 사회과목 부교재였다. 먼저 발견한 녀석이 다음 술래를 지정한다. 그렇게 세계지리를 익혔다. 어렸을 적 이 놀이를 통해 북극 자락 나라의 수도도 가볼 수 있었다.

▶지도놀이를 기억한다면 환갑을 넘겼거나, 곧 앞둔 세대일 터이다. 이 놀이를 소환한 까닭은 뭘까. 요즘 세대가 지리에 무관심한 탓이다. 최근 교육단체 발표 내용 중 눈에 띄는 대목이 있다. 신세대 기피 과목에 지리가 있다는 것이다.

▶백번 양보해 수학은 그렇다 치자. 역사도 그럴 수 있겠다. 지리는 왜 꺼리는 걸까. 네비가 척척 알려줘 그런가. 지리도 섣불리 이과(理科) 영역으로 분류되고 있어서일까.

▶딸이 초등학생 때 이렇게 물었다. “러시아는 대다수 땅이 아시아에 있는데, 왜 유럽이야” 필자의 대답은 간단했다. “시베리아에는 사람이 안 살잖아. 사람들이 거주하는 땅은 유럽에 있잖아”. 딸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리는 이처럼 쉬운 인문학의 영역이다.

▶코로나19 백신접종률이 높은 영국과 이스라엘의 공통분모는 지도력(地圖力)이다. 지도력은 ‘낯선 곳에서도 방향을 깨우치는 능력’이다. 현장중심의 해결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영국은 지리 강국이다. 19세기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도 지도를 통해 솔루션을 찾았다. 이스라엘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지리를 통해 세상을 익힌다.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탈무드’에도 어린이들에게 지리를 권하라고 적혀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명나라 때 환관 정화는 사상 최대 규모의 선단을 꾸려 동남아는 물론 인도와 중동 등지에 진출했었다. 당시 초급관리가 되려면 지리과목들을 꼭 섭렵해야만 했다. 지금도 중국에선 지리과목이 세분화돼 있다. 지도력으로 성공의 기회도 포착할 수 있다. 지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메트로놈이다.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사는 고장 동서남북에 어떤 도시들이 있는지 통 관심이 없다. 국내 지리도 그러니 외국은 오죽할까. 대한민국의 지상과제는 여전히 세계로의 웅비(雄飛)이고, 도약(跳躍)이다. 비좁은 땅덩어리를 박차고 말이다. 그러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지도력이다. 그게 바로 지리의 올곧고 늠름한 힘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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