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헌혈 인센티브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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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삼관 매혈기’는 한평생 피를 팔아 가족을 위기에서 구해낸 아버지 허삼관의 이야기다. 중국 소설가 위화(余華)가 1995년 발표한 장편소설로, 세계 문단의 극찬을 받았다. 살아가기 위해 목숨 건 매혈(賣血) 여로를 걷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특유의 익살과 풍자, 해학으로 그려냈다.

과거엔 거의 모든 피를 매혈로 충당했다. 매혈의 역사를 헌혈(獻血)의 역사로 바꾸게 된 계기는 4·19혁명이다. 1960년 4월19일 전국에서 학생들이 일어났고, 무차별 발포로 이날만 100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부상자 치료를 위한 혈액이 부족하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헌혈에 나섰다. 대한적십자사는 1961년 ‘사랑의 헌혈운동’을 시작했고, 1974년 매혈로 충당했던 혈액 수급을 헌혈로 변경했다. 헌혈은 서로의 생명을 지키는, 고귀한 사랑의 실천이며 나눔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장기화 되면서 병원들마다 혈액이 크게 부족해 난리다. 감염 우려에 헌혈하는 사람이 급감한데다 헌혈의 70% 이상을 차지하던 학생들이 집에서 나오지 않으면서 헌혈자가 크게 줄었다. 올해 1~8월 헌혈이 코로나19 사태 이전인 2019년 같은 기간보다 약 13만건 줄었다.

코로나로 헌혈이 급감하자 대한적십자사가 최근 ‘헌혈을 통한 교통법규 위반 벌점 공제 제안’ 문건을 작성했다. 헌혈에 참여한 사람이 경찰에 헌혈증서를 제출하면 교통법규 위반 벌점 10점을 감경해달라는 것이다. 적십자사는 벌점 감경 횟수를 연 4회(최대 40점)까지 허용해달라는 안을 담아 보건복지부에 타당성 검토까지 요청했다.

복지부는 논란의 소지가 있어 어려울 것 같다는 반응이다. 경찰청도 적십자사와 합의된 바 없는 내용이라며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는 부정적 입장이다. 일각에선 ‘사실상 매혈을 부추기고 법규위반 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비윤리적이라는 비판이다. 결국 자발적인 헌혈만이 해결책이다. 사회 각계각층의 헌혈 캠페인을 통해 급한 불을 끌 수밖에 없다. 혈액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헌혈자 예우와 헌혈 편의성 제고 등 제도개선도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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