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김밥할머니’ 박춘자씨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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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때문에 시끄러운 세상이다. 돈이 화근이 돼 부부나 부모 자식 간에도 살인이 자행된다. 어떤 이는 돈을 벌기 위해 부동산과 주식에 뛰어들고, 또 어떤 이는 매주 복권을 산다. 돈이 전부인 듯한 세상, 사실 돈이 없으면 불편하고 힘들긴 하다. 하지만 돈 벌기는 만만치 않다. 그 놈의 돈이 뭐길래, 싶을 때가 많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힘들게 모은 돈을 선뜻 사회에 내놓는 사람이 있다. 얼마전 ‘LG 의인상’을 수상한 박춘자 할머니(92)가 그렇다. 박 할머니는 50여년간 남한산성 길목에서 등산객들에 김밥을 팔아 모은 전 재산 6억3천만원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쾌척했다. 3억3천만원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3억원은 장애인 거주시설인 ‘성남작은예수의집’에 기부했다.

박 할머니의 삶은 외롭고 힘들었다. 1929년생으로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10살때부터 생계를 위해 시장을 오가며 학교에 다녔다. 20살이 되기 전 결혼해 가정을 꾸렸지만, 아이를 갖지 못해 우여곡절 끝에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성남으로 터전을 옮겨 남한산성에서 노점 김밥 장사를 했다. 1년 365일 사계절을 쉬지 않았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칠 때도 할머니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앞만 보고 달려오던 박 할머니가 봉사, 기부와 인연이 닿은 건 성당에서였다. 형제자매도 자식도 없던 할머니는 외로움에 성당에 갔고, 거기서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장애인들이 있음을 았았다. 그렇게 시작된 장애인 봉사가 40여년 이어졌다. 60대에 김밥 장사를 그만둔 후에는 지적장애인 11명을 집으로 데려와 20여년간 친자식처럼 돌봤다. 올해 5월 거주하던 월셋집 보증금 2천만원을 기부한 뒤 복지지설로 거처를 옮겼다. 사망 후 남게 될 작은 재산도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기부한다는 녹화유언을 남겼다.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라지만, 박 할머니처럼 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훈훈한 감동이 울림이 돼, 작은 나눔이라도 실천하고 살면 좋겠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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