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는 그림의 주제, 곧 화제(畵題)가 있었다. 단원 김홍도 작품 ‘도선도(渡船圖)’의 화제는 ‘동호범주( 東湖泛舟)’였다. 오늘날 서울 옥수동 앞 한강인 동호( 東湖)를 건너던 나룻배 한척을 그렸다. 그림에는 애사(哀詞)를 읊은 한시(漢詩)도 적혀 있다. “동호의 봄 물결은 쪽빛보다 푸르고…”로 시작된다.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만큼 빼어나다.
▶작품을 지은 이는 어떤 선비였을까. 뜻밖에도 작가는 노비 신분의 나무꾼이다. 놀라운 반전이다. 그것도 혹독했던 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말이다. 사대부들만 독점했던 한시(漢詩)라는 장르로 작품을 썼다는 점도 믿기지 않는다. 천민도 한시를 읊을 수 있었다니, 우리 옛 문학의 기품은 또 얼마나 근사한가.
▶정씨(鄭氏) 성을 가진 나무꾼이란 뜻의 정초부(鄭樵夫)가 그의 이름이다. 당시 내로라하던 사대부들이 그와 함께 세태를 자연에 비겨 풍자했다. 문학적인 재능도 출중했다. 중국 당나라 시선(詩仙)인 이백이나 시성(詩聖)인 두보가 환생했다는 평가도 받았다. 안대희 성균관대 교수는 지난 2011년 그의 이름이 이재(彛載)였다고 발표했다.
▶노비가 어떻게 한시를 짓게 됐을까. 한시는 운율과 음의 높낮이 등을 맞춰 기승전결에 맞게 풀어낸다. 한편을 지으려면 한자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15개 안팎의 규칙도 익혀야 한다. 10년 이상 정진해야 쓸 수 있다.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노비가 어떻게 한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 정초부의 주인 여동식은 그가 가진 특별한 재능을 알아보고 아들 글공부에 함께 하도록 배려했다고 한다. 여동식의 아들 여춘영은 정초부를 스승이자 친구로 여겼다. 여춘영의 문집에는 정초부에 대한 시, 두 사람이 함께 지은 시는 물론 그의 죽음을 애도한 제문까지 실려 있다.
▶양평군이 정초부가 걸었던 지게길을 복원한다. 군은 지난해 1월부터 그가 살았던 ‘월계(月溪)마을’로 추정되는 양서면 신원리 528-5 일원 4.3㎞ 구간을 스토리텔링 지게길로 만들어 왔다. 지게길 곳곳에는 초부 주막, 전망데크, 쉼터, 정자, 도강도(渡江圖) 전망대(포토존), 초당 등도 들어선다. 신원리에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생가도 있다. 나무꾼 시인과 몽양 선생과는 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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