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8월9일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 태평양전쟁 말기, 미국은 8월6일 히로시마에 이어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을 투하했다. 500m 상공에서 폭발한 원폭으로 약 7만4천명이 사망했다. 이 중 최대 1만여명이 조선인으로 추정된다. 나가사키는 공업지역으로 강제노역에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이 원폭에 희생된 것이다.
원폭 피해자인 권순금(95) 할머니는 이날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펑’ 하고 엄청난 소리가 나서 나가 보니 온통 새까만 구름이었다고. 당시 원폭 투하 지점에서 1.8㎞ 떨어진 집에 있다가 피폭된 권씨는 현재 생존한 거의 유일한 한국인 피해자다. 원폭으로 권씨는 여동생 2명을 잃었다.
나가사키시 원폭기념관 앞 평화공원에서 지난 6일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 제막식이 열렸다. 위령비에는 ‘원폭으로 인한 수난의 역사를 영원히 기억하고, 희생당한 동포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바치고자 하는 우리의 작은 증표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이 위령비가 세워지기까지 76년의 시간이 걸렸다.
히로시마에는 1970년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비가 세워졌다. 매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전날인 8월5일 위령제가 열린다. 하지만 나가사키에는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가 없었다. 원폭 피해자들은 1990년대부터 나가사키 위령비 건립을 추진했고, 2013년에는 재일본대한민국단 나가사키본부 등이 건립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러나 나가사키시는 강제징용 관련 내용 등을 문제 삼아 허가를 거부했다. 위령비 건립위는 시 당국을 설득해 올 여름 건립 허가를 받았다. 비문에는 시의 반대로 ‘강제징용’ 대신 ‘본인의 의사에 반해’라는 표현을 새겼디.
아쉬움이 있지만 나가사키위령비 건립을 통해 전쟁의 역사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징표가 마련됐다. 제막식에선 일본 고등학생 평화사절단이 평화와 추모의 의미로 종이학 1천마리를 위령비에 바쳤다. 제막식에 비가 쏟아졌다. 일부 참석자는 원폭이 떨어졌던 날을 기억하며 묵념할 때 우산도 쓰지 않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빗물과 함께 눈물도 흘렀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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