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연탄에 대한 단상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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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는 142㎜에 몸무게는 3.2㎏. 얼굴에는 구멍이 22군데나 나있다. 불이 잘 붙진 않지만 한 번 붙으면 오래간다. 처음 한반도를 밟은 건 1920년 무렵이다. 연탄의 이력서다.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서민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눠줬다. 1956년에는 석탄운송 철도가 개통되면서 ‘국민연료’가 됐다.

▶냄새도 심하고 연기도 많이 나지만 값이 저렴해 서민 연료로 사랑받았다. 1977년 서울에서만 20억642만개가 소비됐었다. 낱개로 사느냐, 한꺼번에 수백장을 들여 놓느냐가 부(富)의 기준이었다. 연탄 관련 애틋한 사연들도 많았다. 대표적인 게 연탄가스 중독사고다. 많게는 하루에도 수십명이 연탄가스로 숨졌다.

▶연탄재도 요긴하게 쓰였다. 한겨울에는 미끄럼 예방을 위해 빙판길에 뿌려졌다. 연탄재로 그릇을 닦기도 했다. 자연에서 식물 등의 퇴적물들이 모여 석탄이 된 뒤 연탄을 거쳐 연탄재로 생을 마감하고도 인류를 위해 봉사한다.

▶연탄의 연간 소비량이 50만t 아래로 떨어졌다. 사상 처음이다. 지난해 소비량은 50만8천t이었다. 2010~2013년은 180만t~190만t대였으나 2014년 162만9천t, 2015년 147만3천t, 2016년 125만5천t, 2017년 107만9천t, 2018년 91만3천t, 2019년 64만4천t 등으로 추락했다.

▶관련업계는 “최근 몇년간 감소폭을 볼 때 50만t 아래로 추락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지속적인 연탄값 상승이 소비량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도 연탄값 현실화를 위해 가격을 꾸준히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 2018년 11월 연탄값이 19.6% 오르자 이듬해 소비량은 30% 정도 줄었다. 정부의 연탄보일러 교체사업에 따른 자연스러운 이용자수 감소도 이어졌다. 정부는 매년 겨울 연탄 공장도가격을 결정한다. 지난해는 1장당 639원으로 동결했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 첫 구절이 떠오른다. ‘너에게 묻는다/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반쯤 깨진 연탄/언젠가는 나도 활활 타오르고 싶을 것이다’ 사라져서 슬픈 걸까. 연탄이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여야 대선주자들에게 감히 권한다. 석탄의 ‘선순환’을 배우라고 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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