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원으로 일하는 최훈씨(66·필명)가 ‘나는 아파트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을 냈다. 경비원을 하면서 보고 겪고 느낀 것을 틈나는 대로 안내문 이면지에 기록했던 것을 엮은 것이다. 가슴에만 담아두기 억울하고 힘들 때 글을 쓰다 보면 속이 후련해지곤 했는데, 그 결과물이다.
최씨는 건설회사에 다니며 평탄한 생활을 했다. 이후 무역회사를 차렸는데 경영 악화로 폐업했다. 다시 취업이 어렵게 되자, 2018년 7월 경비원으로서 인생 2막을 열었다. 중산층이라 생각했던 최씨는 경비원이 된 뒤 자신을 낮추기 시작했다.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다. 최씨는 경비원으로 일하며 ‘을의 세계’를 알게 됐다고 한다.
아파트 경비원들의 삶이 고달프다. 일이 힘든 것도 있지만 일부 입주민의 욕설과 폭행, 괴롭힘에 극단적 선택을 한 사례도 있다. 실제 지난해 5월 서울의 아파트에서 한 입주민으로부터 코뼈가 부러질 정도의 폭행과 지속적 괴롭힘을 당한 경비원이 자살했다.
많은 경비원들이 경비 외에도 택배관리, 분리수거ㆍ청소, 주차관리 등 부가적 업무를 수행한다. 여기저기서 경비원을 불러 머슴처럼 잡스런 일을 시킨다. 입주민과의 갈등과 분쟁은 해고 1순위이기 때문에 경비원들은 그냥 예스맨이 된다.
앞으로 아파트 주민이 경비원에게 차량 대리주차나 택배 개별 세대 배달 등 허드렛일을 시키면 안된다. 이를 위반하고 지자체 시정명령을 무시하는 아파트 주민은 최대 1천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아파트 경비원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는 내용을 담은 새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을 21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제 아파트 경비원은 도난, 화재, 그 밖의 혼잡 등으로 인한 위험 발생을 방지하는 업무와 공동주택 관리에 필요한 업무만 하면 된다. 청소와 미화 보조, 재활용 분리배출 감시 및 정리, 안내문 게시와 우편함 투입 등이 해당 업무다. 제도개선으로 경비원 처우가 나아지고 입주민과의 상생문화가 형성되길 기대한다. 일각에선 언어ㆍ신체적 폭력을 막을 장치가 미흡해 ‘직장내 괴롭힘 방지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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