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시진핑의 역사결의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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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결의(歷史決議). 중국 집권세력은 위기 때마다 늘 이 표현을 썼다. ‘중국공산당 100년 분투의 중대한 성취와 역사경험에 관한 결의’의 준말이다. 뉘앙스는 제법 둔중하다. 첫번째는 공산당 정권수립 4년 전에 발표됐다. 1945년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첫번째 역사결의를 통해 사상적 단결을 역설했다.

▶두번째는 1981년이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이 당시의 최고 통치자였다. 그는 이 선언을 계기로 대륙을 재앙으로 몰고 간 문화대혁명 10년의 폐해를 정리하고 개혁개방의 길을 열었다. 문화대혁명을 정리하지 않고선 당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던 위중한 시대였다.

▶역사결의를 선포한 뒤 지도자들은 어김없이 장기집권에 들어갔다. 마오쩌둥이 그랬고 덩샤오핑도 마찬가지였다. ‘인민들을 핍박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위기를 극복하겠다’는 허울 속에는 과연 뭐가 녹여져 있었을까. 정권의 장기집권이 속내였다. ‘역사결의’는 이들에겐 ‘장기집권’의 동의어다. 적어도 중국 현대사에선 그렇다는 얘기다. 사실 중국인들은 정권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명청시대 때도 그랬고 쑨원(孫文)과 장제스(蔣介石) 집권 때도 그랬다.

▶생뚱맞게 ‘역사결의’를 꺼낸 까닭은 뭘까. 엊그제 끝난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6차 전체회의에서 또 선포된 탓이다. 벌써 세번째다 중국 공산당은 5년마다 한번씩 2천28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대표대회를 연다. 중간 해에는 중앙위원과 후보위원 등 372명이 중앙위 전체회의를 개최한다. 이를 ‘중전회(中全會)’라고 부른다.

▶중국은 내년 하반기 제20기 당대회에서 시진핑(習近平)의 3연임 확정을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시진핑은 “신시대 당과 국가사업 발전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역사 추진에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밝혔다. 2049년 ‘중궈멍(中國夢)’ 달성을 내걸고 시진핑 장기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한 셈이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에 이어 시진핑도 1인 통치체제를 열었다. 이번 역사결의 채택 이후 시진핑의 장기집권은 기정사실이 됐다. 중국 공산당은 한술을 더 떴다. 3차 역사결의를 계기로 시진핑의 사상을 21세기 마르크스주의로 강조했기 때문이다. 이웃 나라가 ‘공산당 중흥’이라는 깃발을 내걸고 또다시 위험한 도박을 시작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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