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맘때는 야속했었다. 여름방학이 저물고 있었던 탓이었을까. 며칠 밤을 꼬박 새웠었다. 일기 쓰기와 곤충채집 등을 벼락치기로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개학이 코앞이었다. 필자의 어렸을 적 얘기다.
▶곤충채집을 하느라 뛰어다니다 보면 들녘이 온통 논이었다. 벼 이삭들이 막 패기 시작했었다. 메뚜기들도 한철이었다. 당시 벼 품종은 ‘통일벼’로 불렸던 ‘IR667’이었다. 반세기 전, 유신정권 때였다. 김포공항서 서울로 들어오던 차들도 평야를 가르며 달렸었다. 김포가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적어도 그땐 그랬다.
▶해마다 8월 말이면 또 설레던 까닭이 있었다. 한가위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던 탓이다.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다. 풍성한 계절이었다. 햇볕도 따갑지 않았다. 과일을 더 달게 해준다는 어른들의 잔소리를 익히 들어서였다. 나중에 서양시인의 작품에서 그런 구절을 읽고선 피식 웃었던 기억도 새로웠다.
▶세월이 흐르면서 도회지 주변의 그 많던 논들은 어느새 아파트단지 등으로 변해갔다. 엊그제 벼들이 고개를 숙였던 곳에 아파트단지가 들어설 때마다 뭔가 서운해졌다.
▶그렇게 논들은 우리 곁에서 멀어져 갔다. 코흘리개들에게 벼를 ‘나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어른들도 늘어만 갔다. 이런 와중에 올해 벼 재배면적이 늘었다는 통계청의 발표가 반갑다. 쌀값이 오르고 정부의 쌀 적정생산 유도정책 덕분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올해 벼 재배면적은 73만2천477㏊로 지난해보다 0.8%(6천45㏊) 늘었다. 지난 2001년 이후 20년 만이다. 정부가 쌀 적정 생산을 위해 지난 2018년부터 논에서 벼 이외 다른 작물을 재배하면 지원금을 주던 사업이 지난해 11월 종료된 점도 한몫했다. 공익형 직불제가 도입된 점도 벼 재배면적의 증가 원인이다.
▶연평균 쌀 20㎏ 도매가격이 2019년 4만8천630원, 지난해 4만9천872원에서 올해 5만8천287원으로 뛰어오른 점도 영향을 미쳤다. 농림부는 현재까지 평년과 기온이 비슷하면서 일조량은 많은 등 기상 여건이 좋고 벼생육이 양호, 평년 대비 포기당 이삭수와 이삭당 총영화(總穎花:벼로 익은 꽃) 수가 모두 늘었다고 설명했다. 쌀 한 톨 더 수확한다는 의미다. 명절을 앞두고 꼭 나쁘지만은 않은 소식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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