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한 해의 끝자락에서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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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서동처’(猫鼠同處)는 중국 당나라 역사를 기록한 ‘구당서’에서 처음 등장한다. 한 지방 군인은 집에서 고양이와 쥐가 같은 젖을 빨고, 고양이가 쥐를 해치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된다. 쥐는 곡식을 훔쳐먹는 ‘도둑’에 비유되고, 고양이는 쥐를 잡는 동물로 여겨진다. 쥐와 고양이가 함께 있다는 것은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거리(한통속)가 됐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를 선정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임직원 땅 투기 사건을 비롯해 한국사회를 뒤덮었던 여러 정치ㆍ사회적 사건이 읽혀진다. 사자성어를 선정한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는 “기본적으로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은 케이크를 취해선 안 된다. 케이크도 자르고 취하기도 하는 꼴, 묘서동처의 현실을 올 한해 사회 곳곳 여러 사태에서 목도했다”고 밝혔다.

▶돌이켜보면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드러낸 사자성어는 대부분 부정적이었다. <교수신문>이 발표한 한자성어를 보면 2015년 혼용무도(昏庸無道ㆍ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러움), 2016년 군주민수(君舟民水ㆍ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음), 2017년 파사현정(破邪顯正ㆍ사악한 것을 부수고 사고방식을 바르게 한다), 2018년 임중도원(任重道遠ㆍ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 2019년 공명지조(共命之鳥ㆍ한 몸에 두 개의 머리를 가진 목숨을 함께하는 새) 2020년 아시타비(我是他非ㆍ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등이다. 어지러웠던 한국사회가 한눈에 드러난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또 저물어간다. 코로나19와의 힘겨운 싸움 속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 등 사회를 변화시킬 여러 굵직한 이슈도 놓여 있다. 새해를 앞둔 기대감 속 상심이 교차하는 얼굴들이 여기저기 읽힌다. 내년 이맘 때 쯤 한국 사회는 어떤 사자성어로 집약될까. 소시민에게 위로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치권의 묘수가 절실하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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