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약속을 잡았던 공무원 한분이 전화를 걸어와 이렇게 말했다. “기저질환이 있어 백신을 못 맞아 혼밥해야 하는 신세니, 식사 약속은 기약할 수 없는 그날 다시 하세”라고. 전화를 끊고 난 뒤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씁쓸한 기운이 온 몸을 감싸 안았다. ‘이젠 급기야 정부가 혼밥을 강제하는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이건 백신이라는 이름으로 만든 또 다른 인권 탄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이상이 있어 불가피하게 백신을 못 맞는 이들을 자칫 ‘방역 미아’라는 범주에 가둬 낙인 찍는 것은 아닌가. 세월이 지나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19 세상이 종식되면 혼밥을 강제 당한 이들은 정부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걸지 않을까 말이다.
▶한때 혼밥, 혼술은 젊은 세대를 대표하는 새로운 트렌드였다.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즐기는 혼밥과 혼술에, 관련 업계는 호황을 누렸다. 혼밥족과 혼술족을 위한 ‘맛집 베스트’는 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런데 2021년 12월18일 이후 혼밥은 방역패스에서 낙오된 이들을 대표하는 단어가 되고 말았다. 그날 이후 각종 온라인 사이트에는 식당에서 쫓겨난 억울한 사연이 줄을 잇고 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결국 혼밥은 사회적 갈등으로까지 야기되는, 웃지 못할 촌극을 연출하고 있다.
▶한 친구는 직장 후배를 생각하면 밥 먹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같은 부서원이 4명인데 그 후배가 백신을 맞지 못해 외부 식당에서 밥도 같이 못 먹는다면서 이런 말도 안되는 정책을 생산하고 있는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지들이 잘못된 판단을 내려 이 모양, 이 꼴을 만들어 놓고 백신 미접종자를 마치 사회 부적응자를 만드냐고”하면서 말이다.
▶본인이 스스로 하는 혼밥은 ‘트렌드’일 수 있다. 하지만 혼밥을 강제하는 것은 또 다른 ‘인권 탄압’이다. 이제라도 정부는 백신 미접종자를 ‘방역 미아’라는 범주에서 빼내야 한다. 아니면 반드시 부메랑이 돼 그들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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