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멸공’이 화제다. 젊은이들 용어로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다. 공산주의 세력을 멸한다는 뜻의 ‘멸공’은 초등학교 시절 반공 포스터 그릴 때 썼다. 교실마다 반공ㆍ멸공 포스터가 붙어있던 기억이 새롭다.
‘멸공’의 진원지는 74만명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의 인스타그램이다. 정 부회장이 최근 ‘한국이 안하무인인 중국에 항의 한 번 못한다’는 제목의 정부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기사 갈무리 화면을 올린 뒤 #멸공, #반공방첩 등의 해시태그를 달았다. 숙취해소제 사진과 함께 ‘끝까지 살아남을 테다. 멸공’이라는 해시태그를 달기도 했다. 속 뜻은 잘 모르겠다.
정 부회장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기 위해 ‘멸공’이란 단어를 쓴 것으로 보이진 않지만, 국민의힘이 이를 정치권 이슈로 끌어 들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는 지난 8일 (정용진의) 이마트에서 장을 보면서 여수멸치와 약콩 등을 고르는 모습을 공개했다. 이후 윤 후보 인스타에는 장보는 사진과 함께 해시태그로 ‘#달걀 #파 #멸치 #콩’이라고 적었다.
‘윤석열 공약위키’ 누리집에서는 ‘AI 윤석열’이 “오늘은 달걀, 파, 멸치, 콩을 샀습니다. 달파멸콩”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친문 세력을 연상시키는 ‘달파’에 정 부회장이 언급한 ‘멸공’을 연상시키는 것으로, 이날 장보기가 의도적인 행보였다는 해석이다. 나경원 전 의원도 8일 SNS에 이마트에서 장보는 사진을 올리며, “오늘 저녁 멸치, 약콩, 자유시간 그리고 야식거리 국물 떡볶이까지 (샀다)”며 “멸공! 자유!”라고 적었다. 최재형 전 감사원장은 멸치와 콩을 반찬으로 한 식사 사진을 올렸다. 김진태 전 의원은 “윤 후보가 이마트에서 달걀, 파, 멸치, 콩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문파멸공. 다함께 멸공 캠페인 어떠냐”고 했다.
뜬금없이 철 지난 ‘멸공 챌린지’라니, 코미디를 보는 듯하다. 색깔론을 부추기는 듯한 행보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형마트에서 멸치와 콩을 구매하며 ‘멸공’을 이슈화한다고 표를 얻을 수 있을까. 유권자가 원하는 건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캠페인이 아니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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