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터 이야기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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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밖에는 정자나무가 있었다. 고향을 떠날 때는 슬펐다. 정자나무에 노란색 리본 수백개가 걸려 있기도 했다.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미국 젊은이 얘기다. 1960년대 미국 밴드 토니 올란드와 돈(Tony Orlando&Dawn)이 부른 ‘Tie a yellow ribbon around the old oak tree’의 사연이다.

▶정자나무들이 앉아있던 자리는 그루터기다. 풀이나 나무 따위의 아랫동아리다. 우리나라에선 그 자리에 성황당(城隍堂)이 있었다. 그루터기들이 모이면 터가 된다.

▶터는 건물 등을 짓거나 조성할 자리를 일컫는다. 한자식 표현으로는 장(場)이다. 사회와 정치와 문화가 모이는 공간이다. 집합체 정신이 모이는 구심점이다. 그래서 소중하다. 누군가의 뿌리를 알려면 터를 헤아리면 된다. 믿음의 영역이고 신뢰의 영토다.

▶똑같은 제목의 대중가요가 있다. 1987년 신형원이 부른 ‘터’의 노랫말은 “저 산맥은 말도 없이/오천 년을 살았네…”로 시작된다. 산맥은 오천년 동안 앉아있던 그루터기의 여러 묶음이다. 그 사이로 강물도 유유히 흐른다.

▶조선시대까지 고을마다 정치와 경제와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하는 터가 있었다. 그런 곳에 관아가 있었다. 그곳에서 고을 수령이 행정ㆍ입법ㆍ사법을 판단하고 처리했다. 여론도 형성됐다. 그랬던 관아터를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평택시가 조선시대 평택현(平澤縣) 동헌(東軒) 터 복원에 나선다. 반갑다. 동헌은 수령(현감)의 집무실이 있던 곳이다. 지금의 팽성읍 객사리다. 그곳에는 지금 팽성읍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그곳에 관아터를 알리는 현판을 제막했다. 앞서 시는 지난 2019년 ‘팽성읍 시민과의 대화’에서 지역 역사ㆍ유적 등을 수 있는 현판을 세워야 한다는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 자료조사 등 현판 설립을 준비해왔다.

▶터 살리기는 터 지킴이의 다른 표현이다. 그래서 터는 중요하다. 무릇 정치는 우리를 지키는 것이다. 우리를 지키는 건 곧 우리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대통령선거가 있는 내년에는 우리의 터를 지키고, 바로 세우는 한해가 돼야 하지 않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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