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연평해전이란 영화가 개봉되어 관심을 끌고 있다. 연평해전은 2002년 월드컵이 한창 무르익어 전 국민의 관심이 온통 스포츠에 쏠려 있는 시점에서 발생되었다. 전 국민이 평온한 가운데 스포츠 경기에 열광하고 있을 때, 그들은 적들과 목숨을 걸고 전투를 하고 있었다. 2002년 6월 29일 연평도 근해 북방한계선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참수리 357호는 교전 후 예인 중에 침몰하였고, 승무원 중 6명이 사망, 19명이 부상하였다.
당시 김대중정부는 1차 연평해전 이후 북방한계선을 지키고 선제공격을 하지 말 것, 상대가 먼저 발사하면 교전규칙에 따라 격퇴할 것, 전쟁으로 확대시키지 말 것으로 이루어진 4대 교전 수칙을 지시했고, 해군은 밀어내기로 불리는 차단기동 개념을 도입했다.
이후 제2 연평해전에서 국군 피해가 컸던 것은 교전 지침, 차단기동 도입 때문이라는 증언이 있었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참으로 허망한 일이다. 상대는 총이나 대포를 쏘는 중인데, 우리는 교전 규칙에 따라 제2 연평해전 당시 경고방송, 시위기동, 차단기동, 경고사격, 격파사격 등으로 대응하라는 규칙은 전투병의 맨손을 붙들어 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과연 급박한 시간에 위와 같은 규칙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그 같은 엉터리 규칙을 지키라고 내려 보낸 정부나 군 지휘부는 어떤 생각으로 그 같은 규칙을 만든 것인가. 그런 점에서 연평해전은 반면교사(反面敎師)의 의미로 영화로도, 책으로도, 교과서에서도 전반적인 상황을 분석하고 문제점이나 개선점을 명시해야 할 것이다. 이와같은 교전규칙이 실전에선 소용없다 는 것을 파악한 정부와 군이 그 후, 시위기동, 경고사격, 격파사격 등으로 개정했다고 한다. 이는 즉각 응사 또는 선 조치 후 보고라는 실전형으로 제대로 바뀐 것이다. 이는 당연한 조치이며 진즉에 바꿨어야 할 규칙이었다. 북에서도 우리의 이 같은 약점을 알고 대응태세를 갖출 시기에 총력을 다해 총, 포탄을 퍼부어 선방을 먹인 것이다. 그러나 교전규칙이 즉각응사 또는 진원지까지 초토화란 규칙을 갖추게 되면, 북한도 침략 전에 한번쯤은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확대 해석되면 전쟁 억지력이 되는 게 아닌가. 문제는 우리 내부에 있었다는 증거다. 실제 전투에서 상대적 대응 자체를 고민하여 머뭇거리면, 패배는 불 보듯 하지 않은가. 더구나 안타까운 것은, 전 국민이 스포츠의 붉은 열기에 빠져 있는 시간과 수역 방위에 나섰던 우리 젊은이들은 붉은 피를 흘리며 생사를 넘나드는 시간이 겹쳐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이 숭고하고 위대한 뜻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625를 맞아 개봉한 연평해전은 국민들의 성원으로 만들어진 의미도 크다. 부디, 이 영화의 악몽이 재발되지 않도록 총력안보 태세에 정진할 때이다. 재삼, 연평해전및 국토방위로 희생된 호국영령들께 머리 숙여 명복을 빈다. 김중택 용인자유총연맹 지회장
오피니언
김중택
2015-07-09 2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