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의 발달은 인간 활동의 번거로움을 덜어주어 신속하고 편리한 생활을 제공해준다. 허나 그만큼의 그림자도 있기 마련이다. 인터넷, 핸드폰 등이 은행 창구의 긴 대기줄을 없앤 반면 이를 이용한 사기조직의 출현도 가져왔다.
이러한 사기조직의 기법은 날로 진화되어 자녀 납치 등을 빙자한 보이스 피싱은 이제 한 물간 수법으로 여겨질 만큼 그 악랄함은 다양해졌다.
얼마 전에는 중국 여배우인 위샤오판도 상해공안국이라고 밝힌 전화금융사기 조직에 속아 인터넷 뱅킹을 통해 800만위안(14억원)을 송금했다고 하니 그 대상은 국경,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고 있다.
보이스 피싱 등 전화금융사기의 수법은 다양하지만 실은 생각지 않은 이익을 기대케하는 유혹과 예기치 않은 피해를 강조하는 불안감의 틈새를 파고든다. 전자가 세금 등의 환급을 빙자하는 유형이라면 자녀 등의 납치를 가장하는 것이 후자일 것이다.
사람은 예기치 않은 말을 들을 경우 당황하기 마련이다. 당황하면 사리분별 능력이 떨어지고 당장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의심과 비판의 끈을 놓게 된다. 이렇듯 전화 금융사기의 유혹과 불안에 빠지면 외부에 도움을 청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어 허둥지둥 은행 ATM기를 찾아 그들이 불러주는 계좌로 송금하게 되는 것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 3월 전화금융 사기는 2,451건이 발생했고 피해액도 319억원으로 지난 해 같은 기간에 비해 90% 가량 증가한 상태다.
가족을 위해, 미래을 위해 통장에 차곡차곡 쌓아둔 서민의 고혈을 빼내는 비열한 사기행각을 척결하기 위해 금감원과 경찰청간의 공동대응 핫라인 설치, 대포통장 근절대책, 단순 인출책 구속 등 정부의 다각적인 노력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피해를 당한 후에는 그 수사에 장시간이 요구되며 피해자가 그 입증책임을 져야 하는 등 금전적 피해 외에도 화병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심리적 고통이 따르는 게 바로 전화 금융사기다.
보이스피싱, 파밍 등 금융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개인 스스로가 조심하고 주의해야 한다는 현실이 씁쓸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현실인 것은 어쩔 수 없다.
이제껏 수많은 신문과 방송에서 전화금융사기의 유형과 그 예방법을 홍보하였기에 여기서 이를 다시 재론하는 것은 지면의 낭비일 수 밖에 없어 생략하기로 한다.
그러나 하나 꼭 기억할 것은 수화기 너머 달콤한 환급금의 유혹이나 사랑하는 이의 안전을 위협하는 공포의 ‘그 놈 목소리’가 들릴 경우 은행 ATM기에 앞서 112나 182에 신고하여 상담을 받아보라는 것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전화금융사기 피해 신고를 접하는 112신고 접수요원의 경험을 빌리는 것도 사기집단의 마수에서 벗어나는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경기지방경찰청 제2청 경위 김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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