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싱크탱크 레가툼연구소가 매년 세계 번영지수를 발표한다. 번영지수는 세계 167개국을 대상으로 안전, 개인의 자유, 거버넌스, 투자환경, 기업여건, 시장 접근도와 기간시설, 경제의 질, 생활환경, 보건, 교육, 자연환경, 사회자본 등 12개 항목을 평가해 그 나라의 번영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흔히 살기 좋은 국가 지표로 인용된다. 최근 발표된 2019 레가툼 번영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세계적으로 잘사는 나라에 속하지만 심각한 불신사회인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순위는 29위로 상위권이었으나, 사회자본 항목은 142위로 바닥권이었다. 한국은 교육(2위)과 보건(4위) 분야에선 최상위를 기록했다. 경제의 질(10위), 시장 접근도와 기간시설(20위), 투자환경(21위), 생활환경(25위), 기업여건(33위), 안전(35위) 등도 양호했다. 개인의 자유(46위)는 지난 10년간 가장 크게 개선됐다. 그러나 자연환경은 91위에 그쳤고, 특히 사회자본은 142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사회자본(social capital)은 개인과 개인의 신뢰, 국가 제도에 대한 사회구성원들의 신뢰, 사회규범, 시민참여 등 그 사회의 생산성에 영향을 미치는 무형의 자산이다. 이 부문에서 142위는 충격이다. 대한민국이 심각한 불신사회임을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11월 초 발표된 OECD 주요국 정부신뢰도 순위에서도 34개국 가운데 22위를 차지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9 사회조사에서도, 우리사회를 믿을 수 없다고 응답한 사람이 49.1%에 달했다. 연령별로는 20~30대 54.9%가 믿을 수 없다고 답해 청년층의 사회적 불신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30~39세에서도 절반 이상(51.5%)이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개인과 사회에 대한 불신은 국민 행복을 저해한다. 때로 개인 간의 불신은 폭력으로, 국가에 대한 불신은 집단 시위로 나타난다.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의 저자인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투명하고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분노와 불신이 팽배한 것이 우리사회의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는 개인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불신사회에선 실력경쟁 대신 안전한 위험회피 경쟁을 하게 되면서 성장 한계에 부딪치게 된다고 말했다. 레가튬연구소도 제도에 대한 신뢰, 개인 사이 신뢰는 세계 각국이 진정한 번영을 구축하기 위한 핵심 요소라고 밝혔다. 신뢰 기반이 없는 나라는 사회적 비용 증가로 선진국 문턱에서 좌절하게 된다.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신뢰 사회로 나아갈 수 있고, 국민행복지수도 높아진다. 이연섭 논설위원
오피니언
이연섭 논설위원
2019-12-08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