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묻지마 폭행

묻지마 폭행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혼자 길을 가다가 눈이 마주쳤다거나 어깨가 서로 부딪혔다는 이유로 갑작스럽게 주먹질을 당한다면 맞을 수밖에 없다. 아무리 건장한 남성이라도 마찬가지다. 범죄를 저지르는 동기나 이유가 명확하지 않고 당사자들끼리 모르는 사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피해는 심각하다.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될 수 있다. 정신적인 트라우마까지 홀로 감당해야 한다. 배우자와 자식, 부모 등 가족을 포함한 주변의 지인들도 피해를 겪기는 매한가지다. 실제 발생했던 묻지마 폭행 사건의 70% 이상이 살인과 상해 등의 강력범죄로 이어지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3년 전 용인의 한 아파트상가에서 발생한 묻지마 폭행 사건으로 평생 기저귀를 차고 살게 된 40대 가장이 최근 정신적 고통 속에서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타까운 사건은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묻지마 폭행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묻지마 폭행에 대응하기 위한 보험까지 존재할 정도다. 2015년 경찰청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시작했고, 일부 보험사에서 상품을 다루고 있다. 정식명칭은 폭행 피해 보장 보험이다. 피해자가 고의로 일으키지 않고, 일방적으로 당한 폭행일 경우에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수사단계부터 재판까지 묻지마 범죄에 대한 흐름은 바뀌고 있다. 검찰은 2017년 폭력범죄 엄정 대처를 위한 사건처리기준 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묻지마 범죄에 대해 특별 가중요소로 취급하고 있다. 경찰도 지난해에 특별단속에 나서는 등 엄정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묻지마 폭행은 아직도 가볍게 여겨지고 있는 듯하다. 처벌도 약한 편이라 범죄 예방 효과도 약하다. 피해자들이 아픔을 토로할 수 있는 전문상담소 등 사회적인 갈등을 치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아직은 부족하다. 사회와 국가 차원의 보다 많은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로봇 이야기

유럽의 한 극장에 특이한 소재의 연극이 올려졌다. 배우들이 담당했던 배역은 인류에 반항하는 캐릭터였다. 체코 프라하 극장에서였다. 극작가 카렐 차펙크(Karel Capek)의 희곡 제목은 로숨의 만능 로봇이었다. 작품은 2년 만에 영어를 포함해 30개 언어로 번역되는 등 성공을 거뒀다. ▶그는 슬라브어로 강제노역이란 뜻의 로보타를 변형, 로봇(Robot)이란 단어를 세상에 내놨다. 희곡 속에 등장하는 로봇은 인공피부ㆍ인공혈액 등 인간특징을 갖췄지만, 영혼이 없는 존재들이었다. 로봇은 사실 오랫동안 신화나 전설의 영역에서 머물렀던 개념이었다. 18세기 들어오면서 자동인형이 제작됐지만, 처음으로 그 존재감을 알린 건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의 영역이었다. ▶이후 미국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가 자신의 작품을 통해 로봇이 지켜야 할 3대 원칙을 제시했다. 1961년이었다. 역시 인문학의 영역이었다. 그해 제너럴모터스 자동차 조립공장에서 처음으로 로봇 팔이 등장했다. 인간의 온갖 궂은 일을 대신해주는 기계였다. 공업용 로봇 37만3천대가 현장에 배치된 건 바야흐로 지난 2019년이었다. ▶최근에는 인간형 로봇과 인공지능 등을 매개로 로봇이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존재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공업용 로봇을 가리킬 때 경비나 창고 정리 등을 담당하는 전문 서비스 로봇은 제외된다. ▶로봇 종업원들을 세계 최초로 등장시킨 나라는 일본이었다. 지난 2015년 호텔 룸서비스 부문이었다. 이런 가운데, 서비스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하자 호텔 측은 로봇의 수를 절반으로 줄였다. 예고됐던 시행착오였다. 월마트는 지난해 선반정리를 로봇에게 맡기겠다는 계획도 취소했다. 로봇보다 사람이 정리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언제까지 사람의 명령을 잘 듣는 까칠까칠하지 않고, 반듯한 로봇만을 기대할 순 없다. 로봇의 반란을 예고했던 할리우드 영화들도 있었다. 200년 전 영국에선 노동자들이 기계를 파괴하는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앞으로는 로봇이 인류를 공격할 수도 있다. 로봇이란 명칭이 처음 등장한 게 꼭 100년 전 오늘이었다. 미래는 획일적인 상상력으로만 엮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꺼내 본 억측(臆測)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기후 악당’ 국가

얼마 전 아프리카 사하라와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에 눈이 내려 쌓이고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화제가 됐다. 무더위로 유명한 이 지역이 영하 2도까지 떨어진 가운데 눈이 내려 사막과 언덕이 하얗게 덮이는 광경이 펼쳐졌다. 눈을 뒤집어 쓴 낙타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이 곳 기온이 영하까지 내려간 것은 50여년 만이다. 눈을 보고 흥분한 사람들이 환호했지만 기뻐할 일은 아니다. 기상이변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현상이 감지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54일에 이르는 사상 최장기간의 장마가 이어졌다. 전국 평균 강수량은 686.9㎜로, 평년의 두 배 수준이었다. 장마가 지나간 후에는 태풍 3개가 연달아 한반도를 덮쳤다. 최근 일본 홋카이도와 동쪽 지방에선 2m 넘는 폭설이 내렸다. 한반도에 한파가 왔을때 중국 헤이룽장성 지역은 최저기온 영하 44.7도를 기록했다. 미국 콜로라도에선 지난해 9월 40도에 육박하는 폭염이 이어지다 하루아침에 영하로 떨어지며 폭설이 내렸다. 기상이변은 특정 지역이 아닌 전 지구적 현실이다. 한국은 국제 기후변화 대응행동 연구기관들로부터 2016년 기후 악당 국가로 지목됐다. 기후 악당 국가는 기후변화 대응에 무책임하고 게으른 국가를 말한다. 한국이 기후 악당으로 지목된 이유는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의 가파른 증가, 석탄화력발전소 수출에 대한 재정 지원 등이다. 한국의 탄소 배출량 증가율은 OECD 국가 중 첫 번째이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꼴찌에서 두 번째다. 프랑스는 2022년, 영국은 2024년, 독일은 2038년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지하기로 했지만, 한국은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를 건설하고 있다. 2034년까지 기존 60기 중 30기를 폐기 방침이지만, 세계적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을 고려하면 탈석탄에 안일하다. 한국은 각국의 기후변화 대응 성적을 지표화한 2020년 기후변화대응지수(CCPI)에서 61개국 중 58위를 차지했다. 이런 이미지는 국격을 떨어뜨리고 국제사회의 감시와 견제를 불러 외교와 경제 분야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50년 탄소중립을 선언했지만 정부의 실천의지는 약하다.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상향 조정해야 하는데 유보했다. 탄소중립을 위한 보다 적극적이고 실효성있는 정책이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출산장려금 경쟁

지난해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가 사상 처음으로 감소했다. 행정안전부가 1월 초 발표한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0년 12월 31일 기준 주민등록인구는 5천182만9천23명으로 전년도 말보다 2만838명(0.04%) 줄었다. 지난해 출생자는 27만5천815명으로 전년 대비 10.65%(3만2천882명) 감소했다.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3.10%(9천269명) 늘어난 30만7천764명이었다. 주민등록인구 감소는 출생자 수가 사망자 수보다 적은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 현상이 나타난 영향이다. 또 10대~30대 인구는 줄어든 데 비해 60대~70대 인구가 늘어나는 고령화 현상도 두드러졌다. 저출산이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60대 이상 인구가 전체의 4분의 1로 증가해 정부 정책에 근본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 지난해 처음으로 총 인구가 감소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코로나19 충격에 출산율 하락 속도가 더욱 가파를 것이란 전망이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2018년 세계에서 유일하게 0명대(0.98명)를 기록한 후 코로나19가 강타한 지난해 3분기엔 0.84명까지 하락했다. 인구 유지 수준인 2.1명의 절반도 안 된다. 저출산 쇼크가 인구 감소로 현실화하자 지방자치단체마다 출산장려금을 늘리며 경쟁을 벌이고 있다. 2020년 전국 광역기초 자치단체가 지출한 출산지원금은 약 3천822억원으로 전년(약 2천827억원) 대비 35%가량 올랐다. 파격적인 출산 유인책들이 눈길을 끈다. 셋째 아이를 낳으면 최대 1억원을 지원하겠다는 지자체까지 나왔다. 경남 창원시는 결혼하는 부부에게 1억원까지 결혼드림론을 지원하고, 10년 안에 셋째 아이를 낳으면 대출금 전액을 제해준다. 충북 제천시도 셋째 아이를 낳으면 주택자금 대출 5천150만원을 갚아준다. 전남 영광군은 신혼부부에게 장려금 500만원을 준다. 첫째 아이 500만원, 둘째 1천200만원, 셋째~다섯째 3천만원을 지급한다. 출산장려금은 늘어나는데 출산율은 매년 감소 추세다. 지자체 출산장려금이 국가 전체 출산율을 높이기보다 인근 지역 인구를 빼앗아오는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다. 현금성 지원 경쟁은 출산율을 단기간에 높여 지방소멸 위기를 돌파하려는 고육책이지, 지속가능한 해법은 아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고, 교육시키며, 일할 수 있는 사회 기반을 제대로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가족의 탄생

가족처럼 끈끈하고 강한 연결고리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있을까. 규정된 뜻은 혈연, 인연, 입양으로 연결된 일정 범위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가족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다. 혼인으로 맺어진 부부와 자녀의 혈연관계일 수도 있고, 할머니와 손자의 관계일 수도 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법률에 따라 가족 공동체로 묶이기도 한다. ▶ 가정사 없는 집 없고 저마다 속사정도 다르다. 주말 드라마도, 아침 드라마도, 영화도, 소설도 사실 따지고 보면 대부분 가족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살아가며 느끼는 사랑과 애틋함, 절망, 분노는 가족에게서 가장 많이 느끼기 때문일테다. 누군가에게 가족은 든든한 울타리이지만, 누군가에겐 짐처럼 버거운 존재일 수도 있다. 최근에 연이어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킨 아동학대 사건들을 보면 어떤 아이들에겐 가족과 집이 보호를 내세운 감옥일 수도 있겠다. ▶ 지난 19일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 특례법)과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아동학대범죄 예방 및 피해아동 보호 강화를 위해 수사기관 등이 아동학대범죄 신고를 받으면 즉시 조사수사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1년간 2회 이상 신고 시 즉시 분리, 보호자 조서 거부 시 과태료 천만 원 부과 등의 내용도 담겼다. 청와대는 아동학대범죄 현장 대응의 실효성이 높아지고 피해아동의 신속한 보호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현장 대응과 보호를 강화하는 것만으로 국가와 사회가 아동 보호의 책임을 다한다 할 수 없다. 예방 정책의 축을 함께 세워야 한다. 한부모든 양부모든 전형적인 가족의 형태든, 제각기 다양한 얼굴로 탄생한 가족이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국가와 사회가 해야 할 일을 찾는 거다. 아동의 양육과 돌봄이 충분치 못한 가족의 형태도 많다. 양육과 아동의 돌봄을 각기 여러 사정을 지닌 가족에게만 전가해선 안 된다. 사회, 국가가 아동에게 안전한 가족이 될 전반적인 시스템 점검과 변화가 필요하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지지대] 경항모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동북아 최강이었다. 함포를 갖췄기 때문이다. 해전(海戰) 수행에 최적(最適) 이었다. 일본 군함은 전투함이 아니라, 병사들을 태운 수송선 수준이었다. 명량해전이 일어나기 전 조선 군함은 13척이었다. 일본 군함 수백척을 격파했던 명량대첩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다. ▶임진왜란 이전 서양에선 그 유명한 트라팔가르 해전이 있었다. 당시 넬슨 제독이 지휘했던 군함에 함포들은 탑재되지 않았다. 역사학계에 따르면 조선 해군과 영국 해군이 해전을 벌였더라도 능히 영국 군함들을 격파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다. ▶거북선의 존재가 조선 해군 전략적 지위강화에 한몫했다는 주장에는 이견이 없다. 최초의 철갑선이었다는 견해에도 무게가 실린다. 조선 군함은 판옥선(板屋船) 이었다. 바닥이 평평하고 윗부분에 판옥을 만든 형태다. 항공모함(항모)에 비견된다. ▶거북선 철갑선 논쟁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본보 보도에 따르면 국내 일부 거북선 연구학자들은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이 세계 최초 철갑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홍순구 순천향대 교수는 이에 반박하고 있다. 이순신 장군 거북선이 세계 첫 철갑선이라는 입장이다. ▶항모는 영어로 Carrier다. 수송선의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전투기 등이 착륙하는 모함(母艦) 기능이 더해진다. 경항모(경항공모함:Light Aircraft Carrier)도 있다. 보통 배수량 1만~2만5천t급 안팎의 항모를 일컫는다. 경항모는 2000년대 들어 다목적 헬기와 상륙전력까지 탑재하는 강습상륙함 용도도 겸하는 다목적함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합동참모본부가 최근 경항모 건조사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연초부터 경항모 얘기를 꺼낸 까닭은 중국과 일본 때문이다. 중국은 스텔스기를 탑재한 항모를 작전에 투입할 계획이다. 앞으로 두척을 더 만든다. 일본은 헬기모함이었던 3만t급 이즈모급 2척을 스텔스기 운용체제의 항모로 개조해 전력화한다. 일본 자민당은 7만t급 항모 확보도 거론하고 있다. 동북아 미래 안보환경도 따져봐야 한다. 이웃 국가들의 움직임에 대비하려면 우리도 경항모보다는 항모를 건조해야 한다. 중국과 일본의 전략적 속셈을 모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주권과 원칙 사이

프로야구 연봉 조정신청이 9년 만에 나왔다. 지난 시즌 홀드왕인 주권(KT 위즈)에 의해서다. 연봉 조정신청은 선수와 구단간 연봉 계약에 실패하는 경우 제3자인 한국야구위원회(KBO) 조정위원회에 중재를 구하는 제도다. 주권은 지난해 77경기에 나서 6승2패, 31홀드, 평균자책점 2.70으로 팀의 창단 첫 2위 도약에 기여했다. 이를 근거로 주권은 2020시즌 연봉 1억5천만원에서 1억원이 오른 2억5천만원을 구단에 요구했고, KT는 2억2천만원을 제시했다. 3천만원 격차로 조정신청에 이르렀다. 주권으로서는 2년 연속 팀 경기 수의 절반 가까운 경기에 등판해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은 합당한 대가를 요구했다. 이에 구단은 자체적으로 만들어 놓은 연봉 평가시스템에 따라 선수 연봉을 정하고 있어 주권만 예외로 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주권과 KT는 연봉협상 마감일인 지난 1월11일까지 수 차례 만나 협상을 벌였지만 끝내 합의를 이뤄내지 못했다. 이제 공은 KBO 연봉조정위원회에 넘어갔다. 조정위원회는 양측이 제출한 산출 근거를 바탕으로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 그동안 KBO리그의 연봉 조정위원회가 열린 것은 20차례 있었지만 선수가 승리한 것은 단 한번에 불과하다. 2002년 류지현(현 LG 감독)이 전부다. 하지만 구단 안팎에선 지난해 혹사 논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등판해 공헌도가 높은 주권에 대한 동정론이 만만치 않게 일고 있다. 구단 입장도 이해는 하지만 팀내 최고 공헌도를 기록해 창단 첫 플레이오프를 견인한 그의 요구가 과하지 않다는 여론이다. 구단 역시 그의 활약과 공로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팀을 위해 묵묵히 마운드에서 역할을 다한 보상을 요구하는 선수와 그동안 연봉 평가시스템에 예외가 없었음을 주장하며 원칙론을 고수하는 구단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주권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고, 구단으로서는 원칙을 무너뜨리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조정 마감기일이 다가오는 가운데 선수의 기를 살려주고 구단의 입장도 지키며 합의를 이끌어낼 솔로몬의 지혜를 팬들은 바라고 있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비자발적 실직자 200만명

비자발적 실직자는 계속 일하고 싶어도 직장의 휴폐업, 명예퇴직, 정리해고, 사업부진 등 고용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일자리를 잃은 사람을 뜻한다. 코로나19 사태가 닥친 지난해 비자발적 실직자가 처음 200만명을 넘어섰다. 통계청의 17일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현재 일을 그만둔 지 1년 미만인 비자발적 실직자가 219만6천명이었다. 전년 대비 147만5천명(48.9%) 증가한 규모다. 외환위기 여파가 이어진 2000년(186만명),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78만9천명)에도 200만명은 넘지 않았다. 실직 사유로는 임시적계절적 일의 완료가 110만5천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일거리가 없어서 또는 사업 부진(48만5천명), 명예퇴직조기퇴직정리해고(34만7천명), 직장의 휴폐업(25만9천명) 등의 순이다. 비자발적 실직자 가운데는 일용직 근로자나 나홀로 사장 등 취약계층 비중이 높았다. 임시근로자가 40.3%(88만4천명), 일용근로자가 23.2%(51만명),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9.6%(21만명)를 각각 차지했다. 상용근로자는 18.2%(40만명)로 조사됐다. 비자발적 실직자 중 실직 이후 계속 구직활동을 해 실업자로 분류된 사람은 59만8천명, 구직을 단념하거나 그냥 쉬는 등 취업도, 실업도 아닌 상태가 돼 비경제활동인구로 분류된 사람은 159만8천명이었다. 비자발적 실직자의 급증은 가정경제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비자발적 실직자의 절반가량(49.4%108만5천명)이 한 가구의 가장으로 조사돼 걱정스럽다.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에 따르면 특수고용직이나 임시일용직 등 고용 취약층은 갈수록 소득이 줄고 있는 반면 소득 상위층이나 부동산주식 등 자산을 가진 계층은 소득이 늘어났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심화는 경제문제를 넘어 사회통합을 어렵게 한다. 해소책은 결국 일자리다. 일자리가 있어야 취약층의 소득이 늘어나고 소비도 진작된다. 정부는 혈세를 투입해 일자리 창출에 나섰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재정을 동원하는 땜질식 처방으론 한계가 있다. 규제를 혁파하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민간기업의 투자활력을 높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조류충돌방지법

2019년 11월 수원시청 별관 주변에서 죽은 박새 3마리가 발견됐다. 박새가 별관의 유리창을 장애물로 인식하지 못하고 날아가다 부딪쳐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염태영 수원시장은 새의 투명창 충돌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야생조류 보호 종합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했다. 수원시는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야생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대책 수립과 함께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기존 건물ㆍ방음벽에 조류가 인식할 수 있는 스티커ㆍ필름 부착을 유도하고, 신규 건물ㆍ시설에는 투명창을 줄이고 문양이 새겨진 유리를 설치하도록 했다. 하지만 야생조류 보호대책은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 광교신도시의 한 아파트 방음벽 아래 100마리 넘는 새가 부딪쳐 죽었다는 민원이 있었다. 도로의 투명 방음벽이나 건물 유리창에 새들이 부딪쳐 죽는 사고가 빈번하다. 환경부에 따르면 연간 800만 마리에 이른다. 건축물에 부딪히는 새가 765만 마리, 투명 방음벽 충돌이 23만 마리로 추산됐다. 새의 눈은 머리 옆에 달려 있어 정면에 있는 장애물과의 거리를 분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여기에 유리의 투명성과 반사성이 더해져 조류가 투명벽을 인지하지 못하고 들이받는 사고가 많다. 환경부가 조류 투명창 충돌 저감 대책을 수립, 투명 방음벽에 일정 간격의 무늬를 새겨 넣어 조류가 방음벽을 피해갈 수 있는 매뉴얼을 마련했지만 역시 무용지물이다. 강제성이 없어 현장에서 잘 지켜지지 않는다. 모든 건물에 조류 충돌방지 장치를 설치하는 건 재산권 침해 등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전문가들은 공공건물부터 차례로 충돌 방지 시설을 갖추고,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의당 강은미 의원이 지난해 12월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일명 조류충돌방지법을 대표발의했다. 강 의원은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동물의 피해방지 조항을 신설해 국가와 지자체 및 공공기관이 야생동물의 부상과 폐사 등의 피해가 최소화하도록 소관 인공구조물을 설치하도록 했다. 또한 피해방지 조치를 이행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근거 조항을 마련해 민간의 자발적 참여도 가능하도록 했다. 조류충돌방지법이 인공구조물로 인한 야생생물의 피해를 최소하는 발판이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유통산업족쇄법’이 되지 않길

2020년 코로나19 여파로 최악의 한 해를 보낸 유통업계가 또다시 긴장하고 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복합쇼핑몰과 백화점, 면세점 등에도 월 2회 의무휴업을 확대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처리를 예고하면서다. 정부는 지난 2012년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전통시장을 활성화하자는 취지로 유통산업발전법을 강화했다. 이를 통해 대형마트에 월 2회 의무휴업, 영업시간 제한 등의 규제를 씌웠다. 9년여가 흐른 지금 이 같은 규제는 어느 소상공인에게는 득으로, 또 다른 소상공인에게는 독으로 작용하며 양날의 검이 됐다. ▶민주당의 이번 유통법 개정도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서다. 현재 국회에는 유통법 개정안 14건이 계류 중인데, 대부분 골목상권과 전통시장 보호를 위해 대규모 유통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이다. 개정안 중에서도 가장 논란이 된 점은 복합쇼핑몰 등을 의무휴업 지정 대상으로 추가한다는 안이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복합쇼핑몰은 단순한 유통시설이 아니라 현대인의 트렌드가 반영된 문화소비공간이란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유통법 개정안 처리 소식에 유통업계도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업계는 복합쇼핑몰 등에 입점한 개인 점포로까지 규제를 확대하는 것은 중소상인 보호 취지에 반한다고 반박한다. 또 이미 온라인으로 쇼핑 주도권이 넘어간 상황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규제해도 소상공인 매출이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같은 이유로 대형마트가 의무휴업을 시행 중이지만 통계상 전통시장 매출이 늘지 않았다는 점을 들며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법의 취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민생 경제는 위기에 처해 있다.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소상공인에게 최소한의 보호 울타리가 될 순 있겠지만, 자칫 산업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어느 때보다 경제 회복이 절실한 지금, 어느 한 쪽을 틀어막는 규제보다는 상생을 모색하는 방안이 선제 돼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홍완식 경제부 차장

[지지대] 국민과의 거리두기?

외국 사람들이 대한민국 국민의 국민성을 떠올릴 때 제일 먼저 꺼내는 말이 바로 빨리빨리다.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도, 반도체를 기반으로 한 삼성 및 현대기아자동차 등 초일류 기업을 만들어 낸 것 역시 빨리빨리 국민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그들의 일반적인 생각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대체로 급하고, 계획적인 삶을 영위하는 것은 맞다. 지난해 말부터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정부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시켰다. 이렇게 되자 유흥업소 등 집합금지 시설 외에도 헬스장과 필라테스, 스크린 골프장 등 실내체육시설의 영업이 중단됐다. 참다참다 참지 못한 해당 시설 자영업자들이 단체 행동에 돌입했다. 생계 앞에선 보살도 성인군자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됐다. 오후 6~9시까지 음주를 사랑하는 이들은 술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술을 마신다. 다닥다닥 붙어서 마시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시간과의 싸움일 뿐. 그 전투의 현장에 코로나는 없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헬스와 필라테스 등 상당수의 실내체육이 개인 운동을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방역 수칙을 지키는 것 역시 일반음식점 수준을 넘어선다. 지속적인 거리두기는 내 삶과 가족을 지키려는 이들에게 독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쯤되면 국민과의 거리두기라고 할 수 있겠다. 쥐도 코너에 몰리면 고양이를 무는 법이다. 가난과 굶주림 앞에서 모두가 장발장이 될 수 있다. 이제 숨통을 트여줘야 할 시간이 왔다. 빨리빨리의 국민성을 가진 이들에게 느림의 미학을 계속 적용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정부는 이제 코로나19에 지친 국민들에게 형식적인 거리두기만을 강요하지 말고, 빨리빨리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성난 민심이 항상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말이다. 김규태 경제부장

[지지대] 국방의 의무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예외없이 누구나 강제로 지켜야 할 4가지 의무가 있다.그 중 하나가 바로 국방의 의무이다. 최근 군(軍)과 관련한 이슈가 뜨겁다. 정부 고위 관계자의 아들의 군 휴가 특혜 의혹, 미국 국적을 선택한 연예인 입국금지 해제 조치 논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민한 영역 의혹에 휩싸인 이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만은 않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지난해 아들 서모씨의 군복무 시절 황제 휴가 의혹과 관련해 야당과 전면전(?)을 연상케 하는 공방을 벌였다. 대정부질문 당시에도 추 장관에게 쏟아진 질문 대부분이 아들 휴가 의혹으로 채워졌고,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피로감도 높아져만 갔다.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가수 유승준 등 국적 변경을 통해 병역 기피를 시도하려는 행위를 막는다는 이유로 병역기피 방지 5법을 발의했다. 유승준은 즉각 유튜브를 통해 김 의원에 대한 반격에 나섰고, 해당 영상 소식을 접한 김 의원은 병역의 의무를 저버린 것은 팬들과의 약속을 어긴 것이 아닌 대한민국 헌법을 어긴 것이라고 반박했다. 필자 또한 어쩔 수 없이 20년 전 1월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훈련소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누구나 다 가는 육군 보병을 지원했기에 특별한 군생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베게만 바뀌어도 잠을 설치는 워낙 까탈스러운 성격에 복지 최악의 군 내무반 생활은 영 부담이 아닐 수가 없었다. 어느 덧 2021년 1월. 필자가 입소를 한 지 20년이 지났다. 요즘 군생활과 연관된 이슈나 논란을 접할 때마다 건강한 성인 남성이라면 두말 없이 가야 할 군대를 간 것이 내심 대견(?)스럽다. 군 생활을 무사히 마친 전역자로서 한 마디 하고 싶다. 당연히 이행해야 할 의무라면 이행하면 된다. 기왕 하는 것 당당하게는 덤이고. 양휘모 사회부 차장

[지지대] ‘자녀 징계권’ 삭제

많은 사람이 학교 다니면서 매를 맞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손바닥이나 종아리를 맞은 적도 있고, 뺨을 맞은 기억도 있을 것이다. 회초리로 때린 교사도 있고, 맨손으로 얼굴이나 머리를 때린 이도 있다. 심한 경우 야구방망이나 마대 자루도 등장했다. 교사들은 훈육이라는 미명 하에 체벌을 가하면서 사랑의 매라고 했다. 학교에서의 체벌은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면서 금지됐고, 이후 전국의 학교로 확대됐다. 하지만 가정에서의 매는 여전히 존재한다. 국민 공분을 자아낼 정도로 사회를 놀라게 하는 사건도 종종 있다. 최근엔 양부모의 참혹한 학대로 16개월 된 정인이가 사망한 사건이 핫 이슈다. 지난해엔 동거남의 아들을 7시간 동안 여행용 가방에 가둬 심정지 상태에 이르게 한 사건도 있었다. 훈육 차원이었다지만 명백한 아동학대다. 가정내 아동학대가 심각하다. 친부모, 양부모를 가리지 않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보건복지부의 2019 아동학대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아동학대 피해 건수는 2014년 1만27건에서 2019년 3만45건으로 급증했다. 아동학대는 주로 부모에 의해 이뤄졌다. 2019년의 경우 가해자의 75.6%(2만2천700건)가 부모였다. 검찰에 접수된 아동학대 사건의 구속률은 매우 낮다. 2015년 3%, 2016년 4%, 2017년 2%, 2018년 1%, 2019년 1%에 그쳤다. 아동학대가 범죄라기보다 훈육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사법기관이 강력 대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민법은 친권자 징계권을 인정해 왔다. 민법 제915조(징계권)는 친권자는 자녀를 보호ㆍ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이는 보호자는 아동에게 신체적 고통이나 정신적 고통을 가해선 안 된다는 아동복지법과 상충됐지만, 자녀 훈육을 위해 체벌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앞섰다. 이제는 자녀에 대한 부모 체벌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국회가 지난 8일 본회의를 열어 친권자의 자녀 징계권 조항을 삭제한 민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체벌 허용 규정으로 활용됐던 조항이 1958년 민법 제정 이후 63년 만에 삭제된 것이다. 자녀 징계권 삭제를 출발점으로 가정 내에서 훈육이든 사랑의 매든 아동 체벌이 더 이상 허용돼선 안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양육비 이행법

양육비 지급 의무를 회피하는 나쁜 부모들이 많다. 지난해 7월 중학교 1학년인 A군이 양육비를 주지 않은 아버지를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다. A군이 9살 때 이혼한 아버지는 A군과 어머니가 지난해 3월 양육비를 달라며 찾아가자 오히려 주거침입이라고 신고했다. 방송인 이다도시가 이혼 후 10년간 양육비를 주지않은 전 남편의 신상을 배드파더스에 공개하기도 했다. 배드파더스(Bad Fathers)는 자녀 양육비를 주지않는 부모를 압박하기 위해 개인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 사진과 이름, 나이, 주소, 직업, 미지급 양육비 정보를 제보받아 공개하고 있다. 이들은 대개 이혼 과정에서 법원 판결문이나 각서에 따라 양육비를 지급할 의무가 있으나 거부하고 있는 부모다. 한국의 양육비 이행률은 매우 낮다. 여성가족부의 2018년 한부모 실태조사를 보면 전 배우자로부터 양육비를 못 받는 한부모 가정이 79%에 달한다. 전 배우자가 주소나 전화번호를 바꾸면 연락할 방법도 없고, 혼자 아이 키우며 생활하느라 양육비 청구 소송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가부가 이런 부모를 위해 2015년 양육비이행관리원을 만들었다. 국가가 한부모를 대신해 양육비 소송부터 채권 추심, 이행 점검까지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양육비 강제이행명령제를 활용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실제 지급된 경우는 지난해 기준 35.6% 정도다. 양육비 미지급은 처벌이 미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장 강력한 처벌이 감치명령이다. 양육비 지급 이행 명령 위반시 미국영국프랑스 등은 징역형까지 부과한다. 미국은 운전면허증, 사업면허증, 전문직면허증 등 면허증 제재 조치도 하고 있다.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 이행법) 개정 공포안이 지난 5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7월 시행될 예정이다. 개정법에 따르면, 법원의 감치명령을 받았는데도 정당한 이유 없이 1년 안에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 벌금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는다. 출국 금지와 명단도 공개된다. 부모가 헤어졌다고 양육비를 안주는 것은 파렴치를 넘어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다. 양육비 미지급은 생존권을 위협하는 만큼 아동학대나 다름없다. 양육비 이행법을 통해 한부모 가정의 고통이 줄어들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북극한파

못 살던 시절의 겨울은 11월 중순부터 시작됐다. 벙거지 같은 방한모를 깊숙하게 눌러써도 귀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교실 나무 바닥은 얼음장 같았다. 딛고 서 있으면 발바닥 감각이 얼얼했다. 엄청 추웠다. 배부르게 먹지 못하고 따뜻하게 입지 못하던 탓에 더 매서웠을지도 모른다. 동장군(冬將軍)은 그렇게 3개월을 호령했었다. ▶그땐 어지간히도 따뜻함이 그리웠었다. 단풍이 들기 시작하면 벌써 겨울을 걱정했었다. 오죽하면 영국의 스티브 밀러 밴드(Steve Miller Band) 같은 록그룹도 나뭇잎이 갈색으로 변하고 새들은 여름을 찾아 날아가 버린다고 호소했을까. 1970년대 영국의 겨울도 윈터타임(Winter Time) 노랫말처럼 뺨을 스치는 바람이 칼날처럼 예리했나 보다. ▶지난 7일부터 9일까지 사흘 동안 영하 20℃의 한파가 한반도를 덮치고 있다. 기상청은 이번 추위는 북극진동 지수가 지난달부터 음(-)으로 전환된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극진동은 북극에 존재하는 찬 공기 소용돌이가 수십 일, 또는 수십 년 등을 주기로 강약을 되풀이하는 현상이다. 북극진동이 음으로 바뀌면 북반구 중위도 지역으로 찬 공기가 내려온다. 최근 동아시아~베링해 부근 기압계 이동이 매우 느려진 가운데 시베리아 부근 차가운 공기가 동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부근으로 빠르게 남하하면서 강력한 추위가 찾아왔다. ▶기상청은 79일을 정점으로 점진적으로 기온이 오르나 오는 12일까지는 평년보다 낮겠고 오는 13일 이후부터 평년 수준인 서울 기준 아침 최저기온 영하 6℃, 낮 최고기온 12℃를 회복하겠다고 내다봤다. 흔히 이런 맹추위를 북극한파라고 부른다. ▶지난해 12월 말 찾아왔던 반갑지 않은 손님이 제1차 북극한파였다. 그러니까 이번 추위는 제2차 북극한파인 셈이다. 한강도 얼었다. 폭설까지 내렸다. 코로나19로 경제까지 한파다. 험난한 난국을 극복해야 하는 의지까지 얼어붙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쓰레기 유산

1970~1980년대까지만 해도 집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는 집 앞 텃밭에서 아무렇지 않게 태웠다. 태울 수 없는 쓰레기는 공터에 묻었는데 누가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었다. 겨울이면 동네 공터는 주민들이 버린 연탄재가 산처럼 쌓여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터가 됐다. 그 시대에는 대낮에 버젓이 쓰레기를 소각하거나 버리는 행위가 당연시됐다. ▶1995년 쓰레기 종량제가 도입됐다. 재활용품을 분리배출하는 번거로움에 종량제 봉투 도입 초기 저항이 거셌다. 무엇보다 그동안 마구잡이로 버렸던 쓰레기를 돈을 내고 버려야 하다니. 충격이었다. 몇 푼 되지 않는 봉투 값을 아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서야 쓰레기를 함부로 버려선 안 된다는 인식이 제대로 생겼다. ▶근래 들어 쓰레기 처리 문제가 더 두드러지고 있다.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를 동남아로 수출했다가 평택항으로 돌아오는 국제적 망신을 당하는가 하면 불법 처리업자가 전국 곳곳에 쌓아 놓은 쓰레기 산 처리 문제는 지자체의 심각한 골칫거리다. 인천시는 수도권매립지 종료를 선언하고 경기도와 서울시에 각자 대책을 마련할 것을 통보했다. ▶수원 영흥공원 아파트 단지 개발 부지에서 기초공사 중 10만여t의 쓰레기가 나왔다고 한다. 현재로선 누가 언제 버렸는지 알 수 없는 쓰레기다. 시에서도 모른다고 한다. 개발 사업자는 울상일 수밖에 없다. 이곳 새 아파트 입주 예정자도 불안하다. 수십년 전에 불법 매립한 쓰레기가 현재는 물론 미래의 사회 갈등까지 조장하는 형국이다. 결국 10만여t의 쓰레기 처리 문제는 소송전으로 번질 조짐이다. ▶경기지역 미군 공여지 개발 지연도 쓰레기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 미군이 주둔지를 평택으로 이전했다. 그렇게 남아진 미군기지 공여지를 개발할 수 있다는 소식에 각 지자체는 장밋빛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막상 미군 공여지 개발은 쉽지 않았다. 환경 정화를 완료했다는 공여지를 파보면 폐기름이 나왔다. 이 문제를 누가 책임 질지 여부를 놓고 갈등을 빚는 사이 공여지 개발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같이 사회 문제가 되는 과거부터 물려받은 쓰레기 유산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말똥게와 버드나무

갑각(甲殼)이라고 불리는 두꺼운 껍질의 길이는 27㎜이다. 형태는 로마제국 병사들이 입던 갑옷 같다. 사각형이다. 눈자루는 짧다. 옆 가장자리는 오목하다. 뒷가장자리는 곧다. 눈 뒷니 뒤쪽에 흔적만 남은 이도 있다. 껍질 윗면은 울퉁불퉁하다. 양 집게다리는 대칭이다. 말똥 냄새가 난다. 그래도 몸매는 제법 날렵하다. 말똥게란 갑각류의 이력서다. ▶정확한 족보는 절지동물 십각목 바위게과의 갑각류다. 수컷의 집게다리는 암컷에 비해 크고 억세다. 땅을 헤집고 다니는 다리의 긴 마디는 넓은 편이다. 앞 모서리 끝에도 날카로운 이가 있다. 발목마디에도 긴 털이 무성하다. 바닷가에 가까운 민물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서 산다. ▶버드나무라는 식물도 만나보자. 물을 좋아한다. 주로 개울가에서 자란다. 사촌뻘로는 능수버들과 수양버들 등이 있다. 세 나무 모두 키가 훤칠하다. 썩은 줄기에선 캄캄할 때 빛이 난다. 산골에서 도깨비가 나온다고 알려진 곳이 있다면 영락없이 버드나무 숲이다. ▶한강 하구의 장항습지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516이다. 넓이는 2.7㎢이고 길이는 7.6㎞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을 생태계에선 기수역(汽水域)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선 소금 농도가 다양해 여러 생물이 살고 있다. 겨울이면 더욱 그렇다. ▶말똥게와 버드나무는 이곳에서 아주 친한 이웃이다. 버드나무는 말똥게의 먹이터다, 버드나무 밑에서 지내며 지렁이와 같은 작은 생물, 버드나무 잎이 썩어 만들어진 토양 유기물 등을 걸러 먹는다. 먹고 뱉은 배설물은 버드나무 뿌리가 흡수한다. 녀석의 집은 버드나무 뿌리 옆 굴이다. 이 굴로 말미암아 버드나무 뿌리에까지 산소가 공급된다. 그래서 버드나무를 무럭무럭 크게 만든다. 군락도 형성된다. 말똥게와 버드나무의 아름다운 융합이고, 공존이다. ▶신축년 새해가 밝은지 벌써 엿새째다. 벽두부터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정치권이 새해 첫 메시지로 국민에게 약속했던 국민화합은 또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 좋은 자존심은 이제 내려놔도 될 때다. 하찮은 갑각류와 식물이지만 이들의 의미 있는 상생을 배우자. 자연이 인간사회보다 훨씬 지혜롭다는 사실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

정인아 미안해 지금 온라인은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여아 정인이를 추모하는 사연으로 뜨겁다. SNS, 인터넷 카페, 청와대 청원 게시판, 경찰서 홈페이지까지 슬픔과 분노가 가득하다. 생후 16개월 정인이는 입양된 지 10개월여 만에 하늘의 별이 됐다. 그 짧은 삶마저 양부모 학대로 고통 속에 숨져 많은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2일 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선 정인이는 왜 죽었나 편이 방송됐다. 정인이가 입양된 뒤 숨지기까지 271일간 겪었던 참혹한 학대의 흔적을 밝혔다.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에 실려온 지난해 10월13일 당시 정인이는 췌장이 절단되고 주요 장기가 손상돼 배가 피로 가득 차 있었다. 양쪽 팔과 쇄골, 다리 등도 골절 상태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인이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러나 양부모는 정인이가 소파에서 놀다 떨어졌다며 사고사를 주장했다. 정인이가 다니던 어린이집 교사와 진료했던 소아과 의사 등이 지난해 5월부터 아동학대를 의심해 3차례 경찰에 신고했지만 모두 무혐의 처리됐다. 이 때문에 관할 경찰서에는 경찰이 아이를 죽였다 경찰도 정인이 살인사건의 공범이라는 비난 글이 폭주했다. 양부모는 지난해 1월 정인이를 입양하고 10월까지 지속적으로 학대했다. 양부모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검찰은 양모를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구속 기소, 13일 재판이 시작된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양부모를 학대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처벌하고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왔고,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다. 청원인은 이 땅에 태어난 귀한 생명조차 지키지 못하면서 출산율을 논할 자격은 없다며 어린 아기를 지켜주지 못한 제도적 시스템을 개선해달라고 요구했다. 네티즌들은 정인아 미안해 챌린지로 아동학대 근절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챌린지는 정인아 미안해라는 문구와 함께 쓰고 싶은 글을 적어 사진으로 공유하는 방식으로 각계 참여가 줄을 잇고 있다. 양부모 엄벌을 촉구하는 법원 진정서를 쓰자는 운동도 하고 있다. 정인이 사망 사건은 방관 경찰 등 사회시스템도 공범으로 작용했다. 입양 후 아이 상태 등을 수시 점검하고, 근본적으로 아동학대를 막을 수 있는 법적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흰 소의 해

소는 인류와 함께 한 가장 오래된 가축 중 하나다. 기원전 6000년쯤 서남아시아와 인도에서 인간에 의해 길들여졌다고 한다. 소는 농경문화가 한반도에 정착되기 시작한 삼한시대 이후 뛰어난 노동력 덕분에 귀한 대접을 받았다. 삼국사기에 신라 눌지왕 22년(438년) 백성에게 소로 수레 끄는 법을 가르쳤고, 지증왕 3년(502년) 소를 써서 논밭을 갈기 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큰 몸짓에 느린 걸음, 힘든 일을 묵묵히 해내는 소는 우직함과 근면, 풍요와 힘을 상징한다. 자기희생의 상징으로도 표현된다. 조상들은 소는 하품밖에 버릴 게 없다고 했다. 살아있을 때 달구지와 쟁기를 끌었고, 연자방아를 돌리는 동력원으로 쓰였다. 우유도 제공했다. 죽은 후엔 고기는 물론 내장까지도 먹을거리로 내놓았다. 뿔과 가죽도 공예품이나 악기, 옷과 신발 등을 만드는 데 활용됐다. 소는 벽사의 상징이기도 했다. 개업이나 이사를 했을 때 문 위에 코뚜레를 거는 풍습은 재물을 코뚜레처럼 꽉 잡아줘 가계가 번창하길 기원한 것이다. 시골에선 논밭과 함께 중요한 자산으로 꼽혔다. 소 팔아 자식 대학 보냈다는 말처럼 소는 목돈을 마련할 수 있는 비상금고 역할을 했다. 대학을 우골탑(牛骨塔)이라 부른 것도 여기에서 유래했다. 소는 가족처럼 귀중히 여겨 정월 들어 첫번째 맞은 축일(丑日)을 소날이라 해서 소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쇠죽에 콩을 많이 넣는 등 잘 먹였다.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나물 등을 먹이고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했다. 2021년은 신축년(辛丑年), 흰 소의 해다. 흰색에 해당하는 천간 신(辛)과 소에 해당하는 축(丑)이 만났다. 올해는 여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소띠 해로 모든 것이 잘 풀리는 씩씩한 운세의 한 해라고 한다. 이중섭 화가의 작품 중 흰 소가 있다. 거친 붓질로 소의 힘찬 기운, 역동적인 자세를 표현했다. 흰 소는 백의민족인 우리 민족의 모습을 반영했다고 한다. 새해에는 이중섭의 흰 소처럼 힘찬 기운으로 코로나19를 물리치고 건강하고 평온한 한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건강하소 행복하소 부자되소 합격하소. 온라인으로 보내는 새해 인사들처럼.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2021년 작고 단순한 행복 다시 찾아오길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갑자기 쓸쓸함이 몰려오곤 했다. 지난 한 해 내가 결심했던 것들은 올해도 또 헛구호였을 뿐이구나하는 후회와 법적 나이는 자꾸 먹는데, 심적 나이는 먹지 않는 철없음에 대한 창피함이 한번에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2020년은 좀 달랐다. 이처럼 한 해와의 작별이 후련했던 적이 있을까. 각자의 얼굴을 반쯤 가려버린 마스크 사이로 서로의 감정을 얼굴에서 느끼는 일이 불가능해지고, 모든 것들이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장벽을 만나 변해버린 지금. 나는 그 어느때보다 2020년이 가는 게 반갑다. 얼마 전 출입처 한 곳에서 달력을 받아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시선을 달력으로 돌렸더니 글귀 하나가 가슴에 와 박힌다. 시인이기도 한 장석주 작가의 에세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속 한 구절이다. 행복은 늘 작고 단순한 것 속에 있다. 그렇다. 아니, 돌아보니 그랬다. 멀리서 서로를 단번에 알아보고 활짝 웃으며 다가와 반가운 인사를 건네는 일이 이다지도 소중한 일상일지 몰랐다. 서로 좋아하는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그날의 고단을 털어내고, 그날의 설렘을 나누는 일이 소소하지만 우리를 또다시 살게 하는 원동력인 행복이라고는 그땐 미처 몰랐다. 어쩌면 지난해 코로나19가 우리에게 준 것은 그 작고 단순한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를 깨닫게 하는 교훈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다가올 2021년, 어느 땐가 다시 우리에게 그 일상이 찾아온다면 함께 가는 주변 사람들을 살피고 사랑하라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이제 2021년 새해가 밝았다. 우리에겐 반드시 일상 속 작고 단순한 행복이 다시 올 것이다. 그리고 그땐, 누구보다 멋지게 그 행복을 즐길 수 있는 내가 되기를,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2021년, 당신에게도 그 일상이 다시 오길.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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