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12월 수능은 올해가 마지막이길

결전의 날이 밝았다. 12년간의 노력을 매듭짓는 관문에 들어선 것이다. 수능 시험은 이제 학창시절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로한 채 인생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에 더욱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올해는 코로나19라는 긴 태풍 속에서 먹구름 잔뜩 낀 나날이 지속됐다. 수험생들에게도 그 여파는 상당했다. 대면수업과 온라인 원격수업을 넘나드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초래했고, 정부의 방역지침인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의 거듭된 격상으로 시간ㆍ공간적 제약 속 학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더욱이 수능을 코앞에 둔 최근 엿새 동안에는 일일 확진자 수가 400~500명대에 육박하는 등 거침없는 확산세로 접어들면서 턱밑까지 올라온 코로나19가 수험생들의 숨통을 조이며 심리적인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사뭇 달라진 풍경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고 있다. 모든 수험생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오전 8시10분 이전까지 시험실에 입실해야 한다. 책상마다 설치된 칸막이, 매 시험시간 시험실 입장 시 소독 등 바뀐 환경에도 적응해야 한다. 관계 당국도 긴장 속 막바지 준비에 나서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도내 각 시험지구에 공문을 보내 단체응원과 학부모들의 교문 앞 대기 등 방문에 대한 자제 권고령을 내렸다. 경기남북부지방경찰청도 원활한 시험진행을 위해 시험장 주변에서 특별교통관리를 실시해 혼잡 교차로에서 정체가 빚어지지 않도록 집중 단속에 나선다. 수험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결과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다. 올해 수험생들은 인생이 걸린 수능을 앞두고 험난한 과정을 거치며 더욱 커진 불안감을 안고 있다. 이들이 불안감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미래를 맞이할 수 있도록 사상 첫 코로나, 12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해는 올해가 마지막이길 기대해 본다. 하지은 사회부 차장

[지지대] 마을 안길

마을 입구에선 솟대가 이방인을 맞았다. 낯선 이에게는 계면쩍지만, 인사도 건넸다. 가끔은 느티나무 한 그루가 헛기침도 했었다. 마을로 들어서면 집들이 어깨를 마주하고 옹기종기 앉아 있었다. ▶그 안쪽으로 어르신들이 모이는 사랑방이 누워 있었다. 그 다감한 풍광들을 보노라면 어느새 오롯이 마을 한복판으로 들어선다. 꼬불꼬불 굽어 있지만 정겨웠다. 꿈을 꿀 때마다 마을 안길이 펼쳐졌다. 학창시절 읽었던 고(故) 이문구 작가의 장편소설 관촌수필(冠村隨筆) 첫 구절이다. ▶1970~1980년대를 거치면서 이 땅에서 펼쳐졌던 새마을운동은 마을 안길을 깔끔하게 단장시켰다. 그즈음 황톳길이나 흙길이 콘크리트로 포장되기도 하고, 아스팔트로 덮이기도 했다. 손님을 맞으려고 예의를 갖췄던 셈이다. 유교적인 경향도 거들었다. 마을 안길을 걸으면 그 동네의 진면목을 알 수도 있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마을 전체의 길이었고, 공동 재산이기도 했다. ▶산업화 끝 무렵 마을 안길도 새로운 전환기를 맞는다.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면서다. 소유의 개념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길이 없는 구석에 처박힌 땅은 쓸모가 없다는 맹지(盲地)라는 말도 등장했다. 길과 맞닿은 부분이 전혀 없는 땅이라는 뜻이다. ▶21세기 들어 귀촌 현상에 외지인이나 이른바 부재지주들의 농촌 토지 소유가 가속화 되면서다. 네 땅인지 내 땅인지 구분이 확실해졌다. 그러면서 마을 안길로 사용됐던 땅에 대해서도 소유 개념이 명확해졌다. 분쟁도 이어졌다. ▶최근 코로나19로 힘든 시기인데도 어김없이 도내 곳곳에서 마을 안길과 관련된 분쟁이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따지고 보면 마을 안길과 관련된 분쟁의 역사는 깊기도 하고, 얕기도 하다. 대한민국이 전통적인 유교 사회였던 시절에는 감히 상상치도 못했던 일들이 다반사처럼 발생하는 것도 그래서 다 까닭이 있다. 산업화가 진행되던 시절에는 먹고사느라 슬그머니 넘어갔던 사안들이었다. ▶그러나 무역이나 경제규모로 세계 10위권 국가로 성장하면서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까다로운 쟁점이 된 까닭이다. 어려웠던 시절, 우리가 그토록 선망했던 자본주의의 민 낯이 드러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씀바귀를 먹은 뒤끝처럼 씁쓸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마당발 정치인 이병희’

수원 만석공원 한켠에 고(故) 이병희 의원(1926~1997) 동상이 있다. 李秉禧 先生像이라고 적힌 동상은 지난 2000년 뜻있는 수원시민들이 동상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기금을 모아 추진했다. 당시 홍기헌 수원방송 사장(전 수원시의회 의장), 우봉제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정기호 수원예술인총연합회 회장이 공동회장을 맡았다. 동상 앞에선 고인이 작고한 1월13일에 매년 조촐한 추도식이 열린다. 고 이병희 의원은 1963년 38세에 수원에서 제6대 국회의원에 당선돼 7선을 역임한 정치인이다. 그는 삭발을 해가며 서울에서 인천으로 가려던 경기도청을 수원으로 유치했다. 삼성전자, 한일합섬, 연초제조창 등도 수원으로 유치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했다. 성균관대 수원캠퍼스 유치에도 그의 역할이 컸고, 화성 성곽 복원에도 기여했다. 지금 수원이 경기도의 수부도시, 한반도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하는데 이 의원의 역할을 빼고 얘기하기 어렵다. 수원이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광역도시로 성장하는 데는 몇 단계에 걸친 굴기(起)가 있었다. 첫번째는 정조대왕에 의해 화성(華城)이 축성되면서 조선 최초의 신계획도시로 급부상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일이다. 두번째는 1960년대 초부터 1970년대 말까지 이어진 군사정권 집권기에 이뤄졌다. 5ㆍ16 군사정변은 18년에 걸친 군부통치로 민주화를 후퇴시켰으나 산업화의 급물결 속에 수원에도 큰 변화가 일었다. 이 의원이 경기도청과 삼성전자 수원 유치, 수원연초제조창 착공 등 정치적 역량을 발휘한 시기다. 세번째는 1990년대 이후 지방자치제가 부활되고 심재덕, 김용서, 염태영 민선시장의 선진화 시정에 힘입어 인구 130만여명의 대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2실(失) 1락(落) 7기(起)의 치열한 정치인생을 살았던 이병희 의원의 수원사랑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있다. 올해 이 의원 소천 23주기를 맞아 그의 애향 애민 업적을 기리며 마당발 정치인 이병희가 발간됐다. 이태섭 조웅호 노창호씨가 편찬위원회 공동회장을 맡아 시민의 머슴으로 수원시와 시민을 위해 진력했던 이 의원의 생애를 조명하는 책을 펴냈다. 4일 출판기념회를 연다. 한 시대를 풍미한 이 의원의 공과(功過)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기도 하지만, 수원하면 여전히 이병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살얼음판 ‘코로나 수능’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며칠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코로나19 확산세가 거세지면서 수험생과 학부모, 교육당국 모두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교육부는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돼도 수능을 예정대로 치른다는 방침 하에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들의 불안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올해 수능을 보는 수험생은 49만여명이다. 공교롭게도 현재 고3 학생은 초중고교 시절 모두 감염병을 경험했다. 초등학교 1학년인 2009년에 신종플루, 중학교 1학년인 2015년에는 메르스 사태를 겪었다. 코로나19가 3차 유행에 접어들고 연일 신규 확진자가 500명을 넘자 수험생들은 혼란에 휩싸였다. 매일 안갯속을 헤매는 것처럼 불안하고, 살얼음판을 걷는 심정이라고 토로한다. 많은 수험생들이 혹시나 해서 학원이나 독서실에도 가지 않고 집콕 생활을 한다. 부모도 출퇴근 외에는 외출을 삼가하고 사람들도 만나지 않는다. 가족 모두가 비상이다. 12월3일 수능을 앞두고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방역당국과 교육부는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는 다음달 3일까지를 특별방역기간으로 정해 학원, 스터디카페 등에 대한 방역 관리에 나섰다. 또 학원, 교습소에 대면 교습 자제를 당부하고 수험생에게도 이용 자제를 권고했다. 유은혜 교육부 장관은 26일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현재 감염증 확산 속도가 매우 빠르고 위험한 상황이라며 모든 국민이 수험생을 둔 학부모 마음으로 일주일간 일상적인 친목 활동을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교육부는 이번 수능에 일반 수험생은 물론 코로나19 유증상자, 자가격리자, 확진자에게도 최대한 응시 기회를 주기 위해 생활치료센터와 병상을 확보했다. 수능 당일에는 출입 시부터 체온 측정을 실시한다. 수험생의 마스크 착용은 의무화되고, 책상 가림막도 설치된다. 코로나가 새로운 수능 풍속도를 만들었다. 불편하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수험생들은 마스크가 갑갑하더라도 미리 써보면서 차분하게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는 게 좋다. 수험생들에게 수능은 끝이 아니다. 수능 전후로 치러지는 논술실기평가 등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국민들도 가족이 수능을 본다 생각하고 최대한 협조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원팀과 수원

지난 24일 오후 라마다프라자 수원호텔에서 열린 수원지역 당정 정책간담회에 염태영 수원시장과 수원지역 국회의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수원지역 당정 정책간담회는 수원지역 발전의 협력 기반을 구축하고 관내 주요 현안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기 위해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는 자리다. 이날 회동에선 인구 100만 이상 대도시에 특례시 명칭을 부여하는 내용 등을 담은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 처리 문제, 수원 군 공항 이전 문제 등 수원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과제들이 심도 있게 다뤄졌다. 특히 이번 당정 협의는 21대 국회 개원 후 첫 회동이었던 만큼 수원지역 정치인 모두 더 큰 수원의 완성을 위한 열정을 드러냈다. 이처럼 정치권을 하나로 묶는 수원지역 당정 협의에도 굴곡의 역사는 숨어 있다. 지난 20대 총선 당시 민주당은 수원지역 선거구 5곳을 석권했다. 당정이 원팀을 이룬 만큼 지역 정가에선 오랜 기간 쌓인 수원의 문제들이 하나 둘 풀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원팀은 곧 삐그덕 거렸다. 총선이 끝난지 6개월 후 민주당 소속이던 한 의원이 탈당하며 당정 협의에도 금이 간 것이다. 수원의 굵직한 현안들도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지역 현안에 여야가 없다고 하지만 현실 정치는 역시 다르다는 평가가 나왔다. 그랬던 수원 정치권이 21대 총선 이후 다시 원팀이 됐다. 염태영 시장과 김진표(수원무)박광온(수원정)백혜련(수원을)김영진(수원병)김승원 의원(수원갑)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더욱이 염 시장은 지방자치단체장 최초로 최고위원에 선출되며 민주당 지도부에 입성했고, 박광온 의원은 당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또 김영진 의원의 경우 당 원내수석부대표를 맡아 야당과의 협상을 주도하는 위치에 섰고, 백혜련 의원은 법사위 간사로서 모든 법안 처리에 관여할 수 있는 힘을 갖췄다. 맏형인 김진표 의원은 차기 국회의장 1순위로 꼽힌다. 이분들이 할 일은 간단 명료하다. 수원시민들의 민생과 연결된 수많은 현안을 푸는 일이다.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진 제대로 된 원팀으로 거듭나길 바라며 지역사회를 넘어 전국에 커다란 울림을 주길 기대해 본다. 양휘모 사회부 차장

[지지대] 초유의 사태

언론은 처음 있는 일을 좋아한다. 그동안 발생하지 않았던 사건이나 현상은 좋은 뉴스거리다. 취재원으로부터 단독정보라도 입수할 경우 더할 나위 없이 가치있는 뉴스가 된다. 특종이다. 특종은 아니더라도 요즘 '초유의 사태'라고 표현할 수 있는 뉴스가 빈번하게 등장하고 있다. 그만큼 현장의 기자들이 할 일이 많아졌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24일 저녁 예고하지 않은 긴급 기자브리핑을 자청했다. 이날 추 장관이 읽어내려간 브리핑 내용은 윤석열 검찰총장 직무정지. 헌정 사상 초유의 일로 받아들여진다. 같은 정권의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대립하는 것도 이례적이다. 당분간 이들의 갈등은 지속할 전망이다. ▶추 장관이 윤 총장을 직무정지하던 날 경기도에도 정치적으로 이례적인 일이 있었다.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이재명 지사의 경기도 감사가 위법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시장은 경기도북부청 광장에서 시위하듯 기자회견을 자청해 부당 감사를 주장했다. 기초단체장이 광역단체 감사를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불법행정과 부정부패 청산에는 여야나 내편 네편이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정치권 외에도 초유의 질병 코로나19가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장기화 되면서 일상은 변했다. 자신도 모르게 감염돼 사회적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공포가 우리사회를 멈추게 하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은 가축전염병 아프리카돼지열병(ASF)도 축산농가에는 공포다. 지난해 9월 국내에서 처음 발병한 ASF는 경기북부지역 돼지농장의 씨를 말렸다.최근 14개월만에 재입식에 들어갔지만 백신이 없어 불안한 새 출발이다. 첨예한 정치권 초유의 갈등에 대한 옳고 그름은 명확히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현재 국민들을 고통받게 하는 초유의 코로나 사태 등에 대한 대응방향은 명확하다. 초유의 갈등을 빚는 정치권이 정쟁에서 벗어나 초유의 고통을 받는 국민들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네번째 악몽과 눈물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가 다시 2단계로 격상됐다. 다시 평범한 일상은 제한이라는 이름에 갇혔고, 상인들의 깊은 한숨과 눈물을 마주하게 될 생각을 하면 가슴이 아프다. 마스크가 일상이 된 삶만으로도 힘든데, 정부의 지침에 따라 내 장사 마저도 통제를 받는 그들의 심정은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올해 들어 벌써 네번째 제한 조치다. 첫 번째는 올해 2월 말 대구 종교단체발 코로나19 확산이었고, 당시 감염병 위기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됐다. 두 번째는 지난 9월 초 광화문 집회발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높아졌을 때며, 세번째는 추석연휴기간(9월28일~10월4일) 정부가 추석 특별방역대책을 발표했을 때였다. 그리고 또다시 시작된 제한의 시간. ▶코로나19가 확산될 때마다 가장 많은 피눈물을 흘리는 대상은 바로 소상공인들이다. 정부의 방역조치가 강화될 때마다 이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매출은 큰 변곡점을 맞았다. 그래서 이번 강화 조치로 인한 4번째 악몽은 자칫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갈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포함하고 있다. 더욱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한해가 가기전 ~회로 통칭되는 모임을 갖는 것이 특징인데, 올해는 이마저도 사실상 끝나면서 장사로 먹고 사는 상인들의 기반은 비극으로 마무리될 확률이 높아졌다. 그리고 지역 경제는 임계점에 달해 결국 붕괴될 수도 있다. ▶그래서 난 오늘부터 더 많이 먹고 마실 생각이다. 시간을 제한한다면, 그 시간 안에서 충실히 먹고 마시겠다. 이제는 마스크로 가려졌지만, 십수년을 함께 한 회사 근처 상인들의 미소를 되찾아주고 싶다. 그것을 지켜 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 밖에 없기에. 나부터 조금은 불편하더라도 철저한 방역 속에서 조심하겠다. 오후 9시라는 시간 제약을 1~2시간만이라도 늘려줄 정부의 유연함을 기대하면서 말이다. 지역 경제의 기반이 그들임을 잊지 말자. 김규태 경제부 부장

[지지대] 코로나 장발장

A씨(47)는 지난 3월 수원의 한 고시원에서 달걀 18개를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건설현장 청소부로 생계를 유지한 그는 코로나로 공사가 중단돼 수입이 없어지고, 무료급식소도 문을 닫는 바람에 열흘 가까이 물 밖에 못 마셨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후 그는 코로나 장발장으로 불렸다. A씨 변호인은 단순히 생계형이 아니라 굶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생존을 위해 달걀을 먹으려고 했던 사정을 고려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당시 A씨는 보이스피싱 관련 혐의로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던 중이었다. 여기에 달걀을 훔친 사건까지 더해져 구속됐다. 수원지법 형사2부는 지난 15일 A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동종 전과가 9회 있고, 누범기간에 타인의 건조물에 침입,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며 코로나로 직장을 잃어 생활고로 범행을 저지른 점을 참작, 최대한 배려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경기침체의 직격탄을 맞은 서민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먹고살기 힘들어진 사람들의 절도나 사기 같은 생활고형 범죄도 크게 증가했다. 식료품 가게에서 과자와 스팸 등을 훔치거나, 배추밭에서 배추 몇포기를 슬쩍하거나, 전봇대에 올라 전깃줄을, 식당 창문을 넘어 1만원짜리 주방용품을 훔치는 식이다. 생활고 범죄 증가세는 대검찰청이 발간하는 분기별 범죄 동향 리포트에 잘 드러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가 국내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1분기 전체 범죄 발생 건수(40만4천534건)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 증가했다. 유형별로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가장 많이 증가한 게 사기절도 등 재산범죄(11.3%15만5천718건)다. 경제위기에 취약한 고령층 범죄도 늘었다. 반면 폭력범죄(0.5%)나 교통범죄(1.2%)는 같은 기간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굶주림으로 빵을 훔칠 수밖에 없는 장발장이 지금 우리 이웃이 되고 있다며 생계형 범죄 해결책으로 푸드마켓 한 켠에 장발장 코너를 제안했다. 어떤 경우에도 범죄를 정당화할 순 없지만, 배가 고파 범죄를 저지르는 일은 막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가가, 사회가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비상한 시기에 비상대책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수도권 지역도 소멸위험

지방소멸위험지수라는게 있다. 한 지역에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9세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이 지수 수치가 낮으면 인구의 유출유입 등 다른 변수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경우 약 30년 뒤에는 해당 지역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2014년 5월 일본 도쿄대 마스다 히로야 교수가 자국 내 지방이 쇠퇴해가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내놓은 지방 소멸에 제시한 분석 기법에 기초해 개발됐다. 당시 마스다 교수는 해당 저서를 통해 2040년까지 일본 기초단체 1천799곳 가운데 절반인 896곳이 인구 감소로 소멸 가능성이 있다는 예측을 내놓았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올해 5월 전국 228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소멸위험지수를 조사한 결과, 0.2 미만인 소멸고(高)위험과 0.5 미만0.2 이상인 소멸위험 진입단계를 합친 소멸위험지역이 2014년 79곳에서 105개로 늘어났다. 전체 시군구의 46%가 소멸위험에 처해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5, 6년 전만 해도 강원ㆍ경북ㆍ전남에 편중돼 있던 소멸위험지역이 비수도권 전체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올해는 특히 경기도에서도 가평양평연천군 등 기존 소멸위험지역 외에 시 단위에서 처음으로 포천여주시가 포함됐다. 수도권 농촌 지역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인천시에서는 옹진강화군, 동구가 포함됐다. 소멸고위험지역은 2014년 경북 군위의성, 전남 고흥 등 3곳에 불과했으나 6년 새 23곳으로 늘었다. 소멸위험지역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저출산과 고령화, 인구 유출 등으로 쇠락해가는 지방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002018년 인구가 감소한 시군은 모두 98곳이다. 지방 소멸을 방치할 경우 국가 생존에 큰 영향을 준다. 인구 감소 지역의 성장 잠재력이 바닥을 드러내면 수도권 등 대도시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쳐 국가 성장력의 쇠퇴를 불러온다. 서울ㆍ경기 등 수도권에도 인구감소 위험이 닥칠 것이다. 국가 존망을 염려할 정도의 심각한 위기다. 저출산 극복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아 다각적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인천시의 코로나 악수 4일

수도권의 코로나19 확산세가 심상찮다. 인천도 며칠째 식당, 주점 등을 통한 지역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정부는 이 같은 상황을 심각하게 판단하고 오늘(19일)부터 수도권의 거리두기 단계를 1.5단계로 상향했다. 그런데 수도권 중 유일하게 인천만 나흘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23일부터 거리두기 단계를 상향하겠다는 게 시의 방침이다. 시는 서울이나 경기보다 확진자 수 평균이 적다는 이유로 방역당국에 거리두기 상향을 4일 미뤄서 하겠다고 했다. 소상공인들의 고통을 고려해 조치를 늦췄다는 설명이다. 악수(惡手)다. 어떤 이유를 가져다 붙이더라도 명백한 악수다. 시는 이번 거리두기 상향 조정을 늦추면서 클럽이나 헌팅포차 등에서의 춤추기도 허용키로 했다. 서울경기는 모두 금지하는 춤추기를 허용한 건 춤추기 금지가 이들 업장에 대한 영업정지나 다름없다는 계산 때문이다. 대신 테이블간 이동을 금지해 위험한 상황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도대체 어떤 생각이면 업장 중간에 모여 춤을 추고 자리에 와 앉는 사람들이 원래 자리에 앉은 것인지, 아니면 춤을 추던 중 헌팅을 해 다른 테이블로 옮겨앉았는지를 구분할 수 있는가. 사실상 정상 영업하란 얘기다. 인천이 1단계를 유지하는 4일동안 서울과 경기에서는 놀 공간을 찾아 인천으로 원정을 올 것이다. 이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 같은 내용의 글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진정으로 소상공인을 위하는 길이 무엇일까. 1년여를 지루하게 끌어온 코로나19를 하루 빨리 막아내고 정상적인 삶으로, 정상적인 영업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아닌가. 언제까지 확진자에 따라 상향되는 사회적거리두기에 소상공인을 떨게 해야 하나. 그렇다면 시는 과잉대응 해야 한다. 피해를 보는 소상공인은 지원책을 고민해볼 문제일 뿐, 대응 단계를 낮추는 게 능사는 아니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쓰레기는 발생지 처리가 원칙

인천시의 오는 2025년 수도권매립지 사용 종료에 따른 자체매립지 선정을 두고 서울시와 경기도 등 수도권이 시끄럽다. 인천의 자체매립지 조성은 인천 시민의 입장, 특히 수도권매립지가 있는 서구 주민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지난 1992년부터 약 30여년 간 각종 환경문제에 시달린 탓이다. 쓰레기를 버리러 오는 대형 차량이 내 집 앞을 오가고, 매일 수많은 쓰레기가 내 집 앞에 쌓여간다는 것. 이로 인한 심각한 고통은 서구 주민 및 인천 시민에게 지역 이기주의라고 손가락질 할 수 없다. 반면 서울 시민과 경기도민으로서는 당장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어진다는 걱정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우선 가장 기본적인 원칙인 발생지 처리 원칙을 적용해보자. 즉 서울에서 나온 쓰레기는 서울시에서 처리하고, 경기에서 나온 쓰레기는 경기도가, 인천에서 나온 쓰레기는 인천시가 처리하자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하고 맞는 말이다. 왜 수도권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모두 인천에 있는 수도권매립지에다가 묻어야 하는가. 인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인천을 맡고 있는 한 명의 기자로서 인천이 자체매립지를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적극 응원한다. 물론 인천시가 옹진군 영흥도에 자체매립지를 만든다고 하니 영흥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반발하는 그 심정은 그동안 서구 주민의 마음과 같을 것이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체매립지를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만들고 각종 인센티브 등을 통해 영흥 주민을 설득하는 것은 인천시의 몫이다. 제발 환경부나 서울시경기도는 인천시가 몽니를 부리고 있다는 식의 인식을 버렸으면 좋겠다. 인천 시민도 쓰레기 더미에서 벗어나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가 있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경제부장

[지지대] 마리 앙투아네트의 구두

초등학교 교사인 오 선생은 문간방을 세를 놓았다. 세입자 권씨는 보증금도 다 내지 않고 오 선생의 문간방으로 이사를 왔다. 남매를 데리고 오는데 짐이라곤 이불 보따리 하나와 취사 보따리 하나가 전부였다. 이런 와중에도 권씨는 반짝이는 구두를 바짓가랑이로 닦았다. 윤흥길 작가의 단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이렇게 시작했다. ▶권씨는 철거민 권리를 찾기 위해 시위를 벌이다 주동자로 몰려 감옥생활을 했다. 왜소했고, 내성적이었다. 그래도 대학까지 다녔다는 자존심만은 대단했다. 그는 아홉 켤레나 되는 구두를 장만, 구두닦기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구두 닦는 솜씨도 보통이 아니었다. 구두를 닦을 때면 그의 눈빛은 기쁨으로 반짝였다. ▶권씨라는 캐릭터는 197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 그늘의 아이콘이었다. 권씨의 경우처럼 구두는 성별, 나이, 계층, 취향 등 뜻밖에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그에게 구두 아홉 켤레는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도시의 흔한 가장의 전형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월이 흘러도 가장이 짊어진 무게는 마찬가지다. ▶외신에 따르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흰색 미들힐 구두가 경매에서 4만3천750유로(약 5천760만원)에 낙찰됐다고 한다.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그녀는 프랑스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해야만 했다. 최근 온라인으로 진행된 경매를 통해 제법 높은 값이 매겨진 그녀의 구두는 결국 200여 년 만에 새 주인을 찾았다. ▶그녀의 구두는 염소 가죽과 실크 등으로 호화롭게 만들어졌다. 앞 코가 해지고, 여기저기 구겨졌다. 크기는 225㎜다. 오늘날 유럽의 잣대로 따지면 굽 높이는 4.7㎝라고 한다. 굽에는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이름이 오롯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당시 그녀를 시중들었던 여성이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이번에 햇빛을 본 셈이다. ▶산업화시대를 살아갔던 권씨의 구두와 혁명의 회오리바람 속에서 사라져간 여인의 구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죽음 앞에선 철저하게 평등했던 한 인간이 신었던 신발이었다는 점은 명쾌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남아있는 역사적 체취는 날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단순한 한 켤레의 구두에서 치열했던 당시의 사회상을 현미경처럼 들여다 볼 수 있다. 그래서 씁쓸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전태일 분신 50주기

11월 13일은 청년 전태일이 만 22세의 꽃다운 나이에 분신한 지 50주년 되는 날이었다. 봉제노동자였던 전태일은 1970년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라고, 자기 죽음을 헛되게 하지 말라며 청계천 6가 버들다리 위에서 몸을 불태웠다. 자신도 그랬지만, 주변엔 볕도 들지 않는 먼지 풀풀 날리는 사업장에서 하루 15시간 안팎의 노동에 시달리는 젊은 노동자들이 넘쳤다. 전태일의 죽음은 최소한의 법적 보호도 받지 못한 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노동자들의 현실을 고발해 노동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고,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의 환경을 개선하는 노력에 나서도록 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수많은 전태일의 후예가 노동운동의 역사를 새로 썼고, 노동권은 진화했다. 50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전태일 열사에게 국민훈장 중 첫 번째 등급인 무궁화장이 추서됐다.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과 노동자 권익보호, 산업 민주화 등 한국 노동운동 발전에 기여한 열사의 공이 늦게나마 인정받은 의미있는 일이다. 노동환경이 개선되고 있지만 노동의 진보는 더디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산업재해 사망률 1위이며 노조 조직률은 11.8%로 밑바닥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는 약 750만 명으로 전체 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6%나 된다. 화력발전소에서 혼자 야간 작업을 하다 숨진 비정규직 근로자 김용균군, 택배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 등은 아직도 열악한 노동자의 현주소를 보여준다. 지난 15일 전태일다리(버들다리)에서는 전국특성화고졸업생노동조합이 기자회견을 가졌다. 특성화고노조는 50년 전 전태일이 섰던 자리에 고졸 노동자들이 왔다며 고졸 일자리 보장에 정부가 나서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특성화고를 졸업하면 취업률이 70%라고 해서 갔는데 취업이 안된다. 특성화고를 나와서 할 건 특고(특수고용노동자)뿐이라고 암담한 현실을 토로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대비 올해 대졸이상 실업자는 3만6천명 늘었지만 고졸 실업자는 약 3.5배인 12만7천명이 늘었다. 전태일 50주기, 그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전태일 3법(근로기준법 11조 개정노동조합법 2조 개정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 해결해야 할 것이 아직도 많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인구조사

통계청이 올해 5년 주기의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한다. 1925년 도입된 인구주택총조사는 국가정책을 세우는 데 필요한 인구가구주택 기초 자료를 만든다. 국내 거주 내외국인 연령과 직업, 거주지 등을 파악하는 가장 큰 규모의 사회통계다. 이름과 생년월일 등 기본 정보는 행정자료를 활용해 전수조사하고, 구체적 문항은 전국 가구 중 20%를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한다. 10월 말까지는 인터넷 조사로 했고, 이달 18일까지는 온라인 조사에 응하지 않은 가구를 조사원이 방문해 조사 중이다. 질문은 45개다. 질문에는 임신 계획이 있는지, 집이 자가인지 전월세인지, 직장과 직장에서 직위가 뭔지, 집에 방이 몇 개인지, 집값이 얼마인지 등이 포함됐다. 사망한 자녀가 있는지, 부부가 침실을 따로 쓰는지, 사별했는지, 사생아가 있는지 등의 질문도 있다. 1인 가구라면 혼자 사는 이유가 뭔지, 반려동물이 있는지, 거동이 불편하지 않은지 등에 답해야 한다. 이를 두고 사생활 침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개인 신상이 탈탈 털리는 느낌, 사생활 취조 받는거 같아 기분 나쁘다라는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질문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있지만,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에 대한 국민인식이 높아져 민원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사생활 침해 논란은 이전에도 있었다. 2015년 11월 한 시민이 통계청을 상대로 인구조사가 개인의 사생활 비밀과 자유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17년 조사를 통해 달성하려는 공익이 청구인의 사익 제한보다 훨씬 크고 중요하다며 합헌을 결정했다. 통계청은 질문들이 유엔의 인구조사 가이드라인에 준한 것으로, 시대와 의식 변화를 알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히 사망한 자녀가 있는지, 배우자와 사별했는지, 재혼인지 등은 영아 사망률이나 사망률, 이혼율 등의 파악에 필수라고 했다. 또 답변 내용은 비밀이 보장되고, 암호화해 관리된다고 밝혔다. 올해 인구조사에 2만7천여명의 조사원이 투입됐다. 통계청은 불필요한 논란이 발생하지 않게 조사원들을 재교육할 필요가 있다. 맞춤형 정책 수립을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조사한다지만 민감한 사생활은 주의하고 불쾌하지 않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수원화성 돌 뜨던 터

수원화성은 지난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정조시대 화성 축성공사 당시 석재는 성곽에서 3~7리 떨어진 팔달산과 숙지산, 여기산에서 떠온 돌을 다듬어서 사용했다. 수원화성은 영중추부사 채제공의 주관하에 축성했는데 근대적 성곽 구조를 갖추고 거중기 따위의 기계 장치를 활용하면서 우리나라 성곽 건축 기술사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축성 당시 돌은 숙지산과 여기산에 각각 2곳, 권동에 1곳 등 모두 5곳에서 채취했다. 공사 중 팔달산에서도 석맥이 발견돼 서성(西城)은 제자리에서 캔돌을 사용했다. 숙지산 돌은 8만1천100덩어리, 여기산 돌은 6만2천400덩어리, 권동 돌은 3만200덩어리, 팔달산 돌은 1만3천900덩어리 등 모두 18만7천600덩어리가 수원화성 축성에 소요됐다. 가장 많은 돌이 사용된 돌 뜨던 터인 숙지산 화성 채석장은 수원시 향토유적 제15호로 지정됐다. 다산도서관 앞 숙지공원 뒤 문화재 안내 간판이 세워져 있고 간판 옆에는 돌 뜨던 터(부석소)라는 비석도 있다. 채석장 중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곳은 숙지산이 유일하다. 여기산과 팔달산에도 곳곳에 돌 뜬 흔적이 있는데 이 곳은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수원시 향토유적 제16호인 화성관련 표석 일괄(괴목정교, 상류천, 하류천, 축만제, 남창교)처럼 숙지산, 여기산, 권동, 팔달산이 일괄적으로 수원시 향토유적으로 지정해 보호해야 했다.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숙지산 화성 채석장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다. 나머지 채석장은 안내판 조차 서 있지 않다.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의 시작점인 채석장이 수원시 관내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조상들의 지혜와 숨결이 묻어 있는 장소가 그대로 있는데 보존하지 않는 것은 직무유기다. 이제라도 이들 채석장이 향토유적으로 일괄지정돼 우리의 후손에게 조상의 지혜와 숨결을 대물림할 수 있도록 제대로 관리되길 바란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정치의 이상과 현실

2015년 1028 재선거를 앞둔 11일 오전 경남 구(舊) 고성군농업기술센터.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 문재인 대표가 자당 소속 후보를 돕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 선거 지원유세에서 문재인 대표는 이번에 우리당 귀책사유로 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은 후보를 내지 않는 책임을 졌다.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도 이곳 고성에서 후보를 내세우지 말아야 하며 군민들은 표로써 확실하게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시 당헌으로 정한 무공천 조항은 사실상 권고 규정에 가까웠다. 같은 해 12월 28일 새정치민주연합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당명을 변경한 뒤 당헌의 무공천 사유를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확대하고 이행 의무 정도도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로 강화했다. 문재인 대표의 정당개혁 공약에 따라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만든 성과다. 이 같은 공천 혁신안은 국민에게 여야 지지성향을 떠나 문 대표, 민주당에 대한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내년 서울ㆍ부상시장을 뽑는 4ㆍ7 보궐선거를 4개월여 앞두고 정치권이 시끄럽다. 더불어민주당이 당헌을 바꿔 내년 4월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공천하기로 결정하면서다. 대선 전초전으로 평가되는 이번 보궐선거에서 후보를 내지 않을 경우 야당 후보가 무혈입성한다는 점이 민주당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클 것이다. 21대 총선 기준으로 유권자 수만 보면 서울 847만7천여명, 부산 295만8천여명이다. 유권자가 무려 1천140만여명이다. 후보를 내서 책임을 지겠다. 유권자의 선택을 막아서는 안 된다. 정당은 선거로 평가받고 그 결과로 책임을 진다는 민주당의 주장이 억지스럽지만은 않다. 정치 이상과 현실에서의 고충도 이해한다. 민주주의 근간은 법치이다. 그 법치는 국민 상호 간 약속과 신뢰의 결과물이다. 국민은 정치적 약속을 믿고 정당을 지지한다. 민주당의 당헌 뒤집기 결과가 궁금하다. 김창학 정치부 부국장

[지지대] 임진홍

애국가 노랫말 후렴에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을 넣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랭사인(Auld Lang Syne) 음률에 맞춰 목이 터져라 불렀다.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風前燈火)였던 시절이었다. 독립협회가 영은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기 위해 주춧돌을 세울 때 얘기다. 무궁화는 당시 열혈 청년들에 의해 그렇게 겨레의 꽃으로 탄생했다. 그로부터 120여년이 흘렀다. ▶무궁화 종류는 200종 이상이다. 꽃잎 형태에 따라 홑꽃, 반겹꽃, 겹꽃 등으로 나뉜다. 꽃잎 색깔에 따라 배달계, 단심계, 아사달계 등으로 구분된다. 꽃 중심에 붉은색이 없으면 배달계다. 붉은색을 품으면 아사달계다. 단심계는 꽃 한복판에 붉은 무늬가 있다. 그래서일까. 중국인들은 무궁화를 근화(槿花)라고도 부른다. ▶무궁화는 다른 꽃들보다 추위에 견디는 힘이 강하다. 꼭 우리 민족을 닮았다. 품성도 잔잔하다. 유난하지도 않다. 줄기에 털도 없다. 꽃이 피기 전에는 가지가 회색이다. 자루는 짧고 마름모꼴 또는 달걀 모양이다. 겉 껍질은 벗겨 종이의 원료 등으로도 사용한다. 어린잎은 식용하고 꽃과 잎은 차로 마실 수도 있다. ▶하와이 무궁화도 있다. 줄기 높이가 25m다. 가지가 많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다. 끝은 뾰족하고 가장자리 윗부분에 톱니 같은 모양새도 있다. 잎은 쳐지지 않고 짙은 녹색이다. 여름에 새로 난 가지에 꽃잎이 두껍다. 꽃 색깔은 짙은 주홍색이다. 광택도 난다. 꽃은 며칠 간격으로 하루만 피어 있다 진다. 꽃이 제법 크다. 이국적이다. ▶임진홍(臨津紅)은 임진강에서만 피는 무궁화다. 1979년 임진강에서 채취됐다. 꽃잎은 꼭 바람개비 같다. 파주시가 유전자 개발에 성공한 게 올해 6월이었다. 순수혈통 모본 150주를 산림청으로부터 받아 증식한지 40여년 만이다. 파주시가 보급에도 나섰다. ▶무궁화는 꽃잎이 떨어져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근원은 하나다. 끈기와 진취성을 담았다. 한그루에서 3천송이 이상을 피운다. 겨레의 튼실한 기상이다. 파주시의 임진홍 보급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자못 궁금하다. 임진강은 분단의 아픔을 온몸으로 품으면서 흐르는 강이다. 그런 강가에 피는 무궁화여서 더욱 늠름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농작물 절도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중장년이라면 참외 서리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친구들과 재미로 몰래 한 두개 따서 풀잎이나 옷에 쓱쓱 문질러 먹던 그 맛과 추억은 어른이 돼서도 잊을 수 없다. 남의 과일을 훔쳐 먹었던 장난은,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절도다. 하지만 서리와 절도는 다르다. 서리는 추억이 있다. 서리꾼은 동네 아이들이고, 몇몇이 모여 과일을 몰래 따는 정도였다. 이런 서리를 뭐라 하는 동네 농사꾼은 별로 없었다. 아이들의 호기심의 발로였고 먹을 게 부족한 원인도 있었지만 이렇다 할 놀이문화가 없는 탓이기도 했다. 이제 아이들에 의한 서리는 없다. 대신 어른들이 계획적이고 상습적으로 농작물 도둑질을 일삼고 있다. 농민들이 낮에 들에 나가 일하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은데, 주인 없는 틈을 이용해 고추, 마늘, 콩, 참깨 등 수확해 놓은 각종 농산물을 대량으로 훔쳐 가고 있다. 이에 농촌의 한 경찰서는 경찰서 앞마당에 고추를 건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봄부터 시작해 무더운 여름을 견디고 가을 뙤약볕 아래 고생한 농부들은 이맘때면 수확의 즐거움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 그런데 농작물 절도가 해마다 늘고 있으니 농민들 입장에서 얼마나 허탈하고 황당할까. 특히 올해는 긴 장마와 태풍에 따른 농작물 피해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농산물 절도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창고에 둔 농산물을 훔치는 곳간 털이와 논밭에 재배 중인 농작물을 가져가는 들걷이, 축산물 절도 등 유형도 다양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농산물 절도 사건은 2016년 554건, 2017년 540건, 2018년 507건에 이어 지난해 847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절도 건수 중 560건이 경기도에서 발생했다. 검거율은 4년 평균 45% 정도다. 농산물 절도범 검거율이 낮은 것은 농촌지역의 CCTV와 경찰 인력 부족 등으로 신고가 들어와도 제대로 된 수사나 범인 검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농산물 보관장소 등 도난 우려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정기순찰을 강화하고, 검거율을 높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도 농촌지역 CCTV 설치를 늘리는 등 방범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농민들이 피땀 흘려 수확한 결실을 도둑맞아 눈물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아이스팩 재사용’ 국민청원

조광한 남양주시장이 지난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더 늦기 전에 국가적인 아이스팩 재사용 활성화 대책마련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이다. 조 시장은 청원 글에서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소비가 늘면서 아이스팩 사용량이 3억2천여개로 추정되는 등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며 아이스팩은 매립 시 자연분해에 500년 소요되고 불에 타지 않아 소각도 불가능하다고 심각성을 강조했다. 주성분인 고흡수성 수지는 미세 플라스틱의 일종으로 물에 녹지 않고, 하수 배출 시 심각한 수질오염을 일으키며 어류 등을 통해 우리 몸으로 되돌아와 인류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아이스팩 표준 규격화와 공용화, 포장재 내구성 강화 및 친환경 소재 사용 의무화, 재사용 총량제 법제화 등 4가지를 제안했다. 제품 크기와 중량에 따라 대중소 등 아이스팩 표준 규격화를 법령으로 의무화하고, 포장재에 업체명 기재를 금지해 소주 공병처럼 공용화하자는 것이다. 또 지속적 재사용을 위해 포장재 내구성 강화 및 친환경 소재 제작을 환경부 권고가 아닌 법령으로 정하고, 아이스팩 생산공급 업체가 일정 비율(50% 이상) 재사용하도록 법제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고흡수성 수지를 채워넣은 아이스팩은 현재 유통 중인 아이스팩 충전재의 80%를 차지한다. 고흡수성 수지 아이스팩 사용량은 2016년 1억1천만개에서 지난해 2억1천만개로 증가했다. 이중 약 80%는 종량제 봉투에 버려지고, 약 15%는 하수구로 배출됐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터넷 주문이 증가해 3억2천여개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남양주시는 지난 9월부터 아이스팩 수거 사업을 추진, 전국 처음으로 보상 수거제를 도입했다. 16개 읍면동 주민센터 등에 아이스팩 수거 창구를 마련, 5개를 가져오면 10ℓ짜리 종량제 봉투로 교환해 준다. 쓰레기 20% 감량 정책을 펴면서 아이스팩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 자체 추진하는 정책으로 남양주 영문 첫글자 N을 넣어 나이스팩 사업으로 이름 붙였다. 남양주에서 9,10월 모은 아이스팩만 105t에 이른다. 각 가정의 애물단지인 아이스팩 수거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 재사용을 통해 자원을 아끼고 환경도 보호하는 효과가 있기를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113 美 대선 그 후…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던 미국 대선은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승리로 마무리되는 모양새다. 바이든 후보는 주요 경합지역에서 막판 뒷심을 발휘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따돌리고 선거인단 확보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섰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를 문제 삼으며 일부 핵심 경합주의 재검표와 개표 중단 소송을 제기, 바이든 후보가 승리하더라도 최종 확정까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우편투표를 사기투표라고 주장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은 개표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무더기 소송전을 전개하고 있다. 트럼프 캠프는 조지아주 채텀 카운티 선거관리위원회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우편투표 접수 시한인 3일 오후 7시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를 분명히 분리해 유효한 우편투표와 섞이지 않도록 재판부가 명령해 줄 것을 요청했다. 트럼프 캠프 측은 접수시한을 넘긴 우편투표가 뒤섞여 개표에 포함됐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트럼프 캠프는 이에 앞서 같은 날 미시간주에 대해서도 개표에 대한 접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소송을 제기하고 개표 중단 등을 요구했으며, 펜실베이니아주에 대해서도 민주당 측이 투표용지 개표와 처리를 공화당 투표 참관인들에게 숨기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을 낸다고 밝혔다. 이 같은 부정선거 논란은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지난 4ㆍ15 총선 이후 몰아쳤던 사전투표 조작 의혹은 선거가 반년 가량 지났음에도 여전히 제기되고 있다. 지난 총선에서 패배한 미래통합당은 일각에서 강력히 제기했던 부정선거 의혹과 선을 긋고 쇄신의 길을 갔다. 만약 총선 이후 공당조차 부정선거 논란에 가세했다면, 우리 사회는 급격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미국 대선 이후가 주목되는 이유다. 자유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미국. 대선 후 분열과 혼란의 파국으로 갈지, 새로운 변화의 길로 갈지 지켜보자. 이호준 정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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