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말똥게와 버드나무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heohy@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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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각(甲殼)이라고 불리는 두꺼운 껍질의 길이는 27㎜이다. 형태는 로마제국 병사들이 입던 갑옷 같다. 사각형이다. 눈자루는 짧다. 옆 가장자리는 오목하다. 뒷가장자리는 곧다. 눈 뒷니 뒤쪽에 흔적만 남은 이도 있다. 껍질 윗면은 울퉁불퉁하다. 양 집게다리는 대칭이다. 말똥 냄새가 난다. 그래도 몸매는 제법 날렵하다. 말똥게란 갑각류의 이력서다.

▶정확한 족보는 절지동물 십각목 바위게과의 갑각류다. 수컷의 집게다리는 암컷에 비해 크고 억세다. 땅을 헤집고 다니는 다리의 긴 마디는 넓은 편이다. 앞 모서리 끝에도 날카로운 이가 있다. 발목마디에도 긴 털이 무성하다. 바닷가에 가까운 민물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서 산다.

▶버드나무라는 식물도 만나보자. 물을 좋아한다. 주로 개울가에서 자란다. 사촌뻘로는 능수버들과 수양버들 등이 있다. 세 나무 모두 키가 훤칠하다. 썩은 줄기에선 캄캄할 때 빛이 난다. 산골에서 도깨비가 나온다고 알려진 곳이 있다면 영락없이 버드나무 숲이다.

▶한강 하구의 장항습지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고양시 일산동구 장항동 516이다. 넓이는 2.7㎢이고 길이는 7.6㎞이다. 강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곳을 생태계에선 기수역(汽水域)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선 소금 농도가 다양해 여러 생물이 살고 있다. 겨울이면 더욱 그렇다.

▶말똥게와 버드나무는 이곳에서 아주 친한 이웃이다. 버드나무는 말똥게의 먹이터다, 버드나무 밑에서 지내며 지렁이와 같은 작은 생물, 버드나무 잎이 썩어 만들어진 토양 유기물 등을 걸러 먹는다. 먹고 뱉은 배설물은 버드나무 뿌리가 흡수한다. 녀석의 집은 버드나무 뿌리 옆 굴이다. 이 굴로 말미암아 버드나무 뿌리에까지 산소가 공급된다. 그래서 버드나무를 무럭무럭 크게 만든다. 군락도 형성된다. 말똥게와 버드나무의 아름다운 융합이고, 공존이다.

▶신축년 새해가 밝은지 벌써 엿새째다. 벽두부터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정치권이 새해 첫 메시지로 국민에게 약속했던 국민화합은 또 헛구호에 그치고 있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허울 좋은 자존심은 이제 내려놔도 될 때다. 하찮은 갑각류와 식물이지만 이들의 의미 있는 상생을 배우자. 자연이 인간사회보다 훨씬 지혜롭다는 사실을 왜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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