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실종 아동의 날

우리 아이가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지만 해마다 많은 아이들이 사라진다.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수십년까지. 시간은 흐르고 세상은 변하건만, 아이를 잃어버린 부모는 그때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생사조차 알지 못한 채 까맣게 탄 가슴을 부여안고 오늘도 아이를 애타게 기다린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대구 개구리소년 실종사건을 지금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1991년 3월 초등학생 5명이 도롱뇽 알을 줍는다며 집을 나섰다가 돌아오지 않은 사건이다. 당시 연인원 50만명의 경찰군인과 함께 국민들이 나섰지만 찾지 못했다. 11년이 흐른 2002년 대구 와룡산 중턱에서 이들의 시신과 신발이 발견됐다. 타살로 결론났으나 범인을 잡지 못했고, 장기 미제사건이 됐다. 오늘 5월 25일은 세계 실종 아동의 날이다. 1979년 5월 25일 미국 뉴욕에서 6살 에탄 파츠라는 초등학생이 등교 중 유괴, 살해됐다. 1983년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이날을 세계 실종 아동의 날로 선포했다. 우리나라도 2007년 실종 아동의 날을 제정했다. 실종 아동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아동 실종 문제에 관심을 갖자는 취지에서다. 국내에선 만 18세 미만 실종 아동 신고가 매년 2만여건 접수된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실종신고 1시간여 안에 부모 품으로 돌아온다. 만 8세 이하의 미취학 아동일 경우 실종신고 3시간 안에 발견돼 대다수가 가족의 품에 안긴다. 때문에 실종아동 찾기의 골든타임을 3시간 이내로 본다. 실종기간이 1년 이상이면 장기 실종아동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4월 기준 장기 실종아동은 771명이다. 이 중 20년 이상된 아동이 500명을 넘는다. 실종 아동 찾기 시스템은 2005년 관련법 제정 이후 계속 발전해왔다. 현재는 지문 사전등록, 실종 이후 경보 시스템, 유전자 등록 등으로 실종된 아이를 찾고 있다. 하지만 부족한 점이 많아 실종아동 보호지원 법률 개정안이 발의돼 있는 상태다. 실종아동법의 조속한 제정과 함께 전담수사팀이 꾸려져 잃어버린 아이를 한명이라도 더 찾기를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노동권 인정받는 ‘가사근로자’

남의 가정에서 돈을 받고 가사 노동을 하는 여성들이 있다. 보통 식사 준비, 빨래, 청소, 아이 돌봄 등을 한다. 이들은 1980년대까지 가정부, 파출부, 식모 등으로 불렸다. 예전엔 부유층에서 고용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2010년대부터는 중산층 가정에서의 고용이 늘었다. 핵가족화 되고 맞벌이 부부가 많아지면서 집안 관리, 자녀 육아에 도움이 필요해진 것이다. 명칭도 가사도우미로 바뀌었다. 가사 노동을 하는 사람들 중엔 가정관리사, 가사도우미, 베이비시터, 간병인 등이 있다. 이들은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일을 하면서 임금을 받고 있어 노동자라고 할 수 있겠으나 법ㆍ제도적으로는 노동자로서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근로기준법에 가사사용인에 대하여서는 적용하지 아니한다(11조)는 적용제외 조항을 둬 근로자로서 기본권 보장과 사회보장을 받지 못한 것이다. 지난 21일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가사근로자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은 정부인증을 받은 가사노동자 제공기관이 가사도우미를 고용해 최저임금을 보장하면서 퇴직금, 4대 보험, 유급휴일, 연차 유급휴가 등을 제공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정부인증 기관이 고용하는 가사도우미에 대해 가사근로자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이후 68년 만이며, 2010년 관련법 개정안이 처음 발의된 지 11년 만이다. 인식 전환의 계기는 2011년 국제노동기구(ILO)가 가사노동자의 인간다운 노동에 대한 협약을 채택하면서 마련됐다. 이를 전후로 국내에서도 근로기준법의 가사사용인 제외 규정 삭제나 특별법 형태의 가사노동자법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폐기되다 이제 빛을 본 것이다. 노동권 사각지대에 있던 가사근로자는 30만~60만명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그동안 노동자로서 보호받지 못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더 큰 불편은 파출부, 아줌마, 가정부 등으로 부르며 하대하는 시선, 인격적 무시였다. 그런 측면에서도 법ㆍ제도적으로 공식 근로자로 인정받게 된 것은 희소식이고, 늦은 감이 있지만 의미가 크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64년지기 112 친구에게

국민의 64년지기 친구가 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뭔가 큰일이 생겼을 때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언제든 전화할 수 있는 친구. 전화 한 통이면 쏜살같이 달려와 무엇이든 해결해줄 것 같은 친구. 1957년 도입돼 올해로 64년을 맞은 경찰청 긴급전화 112 얘기다. 112는 일일이 알린다는 뜻에서 유래해 만들어졌다. 1957년 서울과 부산에 최초로 112 비상통화기를 설치했다. 1958년에는 112 비상통화기가 전국으로 확대설치됐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112 신고전화의 98.5%가 가짜 신고였다. 지금처럼 버튼식 전화기가 아닌 기계식 전화기를 쓰고 있었던 게 이유다. 기계식 전화기는 후크를 누르면 1을 누른 것과 같은 효과가 나 112로 잘못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112는 912로 바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12에 허위신고가 줄어든 건 버튼식 전화로의 변화와 함께 위치추적시스템 도입을 꼽는다. 2004년에는 순찰차 내비게이션에 전자지도를 더해 신속한 출동이 가능해졌고, 2013년에는 112 통합시스템이 구축됐다. 전국 어디서나 균일한 112 치안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게 112 신고전화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비상벨이자 든든한 친구로 64년을 우리 곁에 있어왔다.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노래주점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죽기 전 112에 신고전화를 했다. 하지만, 상황실 경찰은 출동지령을 내리지도, 위치추적을 하지도 않았다. 급해 보이지 않아서란다. 지난해엔 남성 승객에게 입이 막힌 채 성추행 당하면서도 신고전화를 건 여성 택시기사에게 똑바로 말하라는 얘기만 반복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화를 받은 경찰 개인의 잘못이라 할 수 없다. 개인의 판단에 국민의 안전을 맡긴 시스템의 잘못이다. 64년간 112는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번호로 자리했다. 이제 그 믿음에 부흥할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다시는 64년지기 친구의 배신을 보고 싶지 않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가슴으로 낳은 아이

2014년 10월 울산 입양아 학대 사망, 2020년 10월 정인이 사건, 그리고 7개월 만에 발생한 화성 입양아동 등 일련의 아동학대 사건이 큰 충격을 주고있다. 가정의 달에 또다시 벌어진 입양아동에 관련된 비보를 접하면서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슬픔을 넘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가눌길 없다. 입양아든 친자녀든 간에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를 학대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최고의 죄악이다. 우리 사회에는 혼외 출산, 이혼, 가정파탄 같이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아동보호시설에 맡겨지는 아이들이 많다. 이 가운데 일부 아이들은 사회복지단체를 통해 국내ㆍ외 가정에 입양되고, 상당수는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며 성장하고 있다. 2019년 기준 국내 입양아 수는 387명, 국외 입양아는 317명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입양아의 대다수는 양부모 가정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일부는 학대와 방치, 무관심에 신음하고 있기도 하다. 흔히 친자녀는 배아파서 낳았다고 한다. 입양아는 가슴으로 낳은 아이라고 표현한다. 전자는 어머니가 출산의 고통을 통해 낳았다는 것이고, 후자는 가슴으로 소중함을 안고서 기른다는 뜻이다. 필자 역시 생후 2개월 아이를 입양해 10년째 키우고 있다. 그 누구보다 간절하고 소중함을 느끼며 키우는 아이이기에 더욱 사랑스럽고 정성을 쏟아 양육하고 있다. 첫 만남부터 지금껏 아내와 함께 아이를 키워오면서 진정한 삶의 행복과 키우는 보람을 남부럽지 않게 누리고 있다. 딸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못할게 없다는 아내의 말처럼 아이는 우리 가정의 가장 소중한 존재로 자리한지 오래다. 그렇기에 입양아와 관련된 안좋은 소식이나 아동학대 소식을 접할 때마다 더욱 가슴이 아프고 저려온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잘못으로 고통을 줘서는 안된다. 더 이상 아동학대가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펼쳐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소문의 벽’

갑자기 방문이 열린다. 손전등 불빛이 방안으로 쏟아진다. 눈이 부시다 못해 아프다. 손전등 뒤에 서 있는 이들을 향해 악다구니를 쓰며 외친다. 국군 만세! 손전등 뒤에 있는 이들이 반대편 쪽 군인들이라면 어땠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타계한 이청준 작가가 1971년 발표한 소문(所聞)의 벽(壁)의 한 대목이다. ▶소문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전해지는 말이다. 근거도 없고 논리도 없지만, 무섭고 흉악하다. 주인공은 어두운 방안에 손전등을 들이대며 어느 편이냐는 추궁에 공포감을 느낀다. 한국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소설은 전화(戰禍)로 고통스러운 젊은이들의 잠재의식을 추적한다. 이를 통해 진실과 억압의 갈등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같은 이름의 소설을 남긴 서양 작가도 있다. 프랑스 작가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던 1939년이었다. 귀청을 찢을듯한 굉음이 들려온다. 건물이 통째로 무너지는 소리도 들린다. 숱한 아낙네들이 유린당하면서 비명을 지른다. 주인공은 두껍게 막힌 벽 앞에서 좌절한다. 오래된 관습과 통념이 만든 벽은 전쟁보다 더 무섭고 참혹하다. ▶연암 박지원은 만주족의 나라라고 청나라를 멸시하는 건 잘못이라고 설파했다. 열하일기(熱河日記)를 통해서였다. 그는 서장관(외교사절)이었던 8촌형을 따라 청나라를 여행하면서 목격한 세상을 토대로 썼다. 연암은 북벌론(北伐論)이 벽이라고 꼬집었다. 명나라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헛된 성리학을 숭상했던 기득권층에게는 반역이었다. 역사는 그렇게 반전(反轉)을 거듭한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사회를 두텁게 가르는 벽은 늘 존재한다.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편견 등은 뛰어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요즘의 벽은 코로나19다.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엄연한 현실을 무시하는 것도 또 다른 벽이기 때문이다. ▶그 벽 가운데 으뜸은 소문이다. 소문은 이데올로기의 사촌 격이다. 그 벽은 사람들을 언제나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둔다.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인 에드워드 할렛 카(Edward Hallett Carr)의 해석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두꺼운 억압의 벽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양심을 지켜왔을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부동산 계급도

어디 사세요? 우리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도 거침없이 묻곤한다. 물론 궁금해서 일 수 있다. 특별할 게 없는 질문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상대방은 신분이 무엇이냐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 지역을 말하면 대충 집값이 가늠돼 어쩌면 불쾌할 수 있는 질문이다. 주택시장 양극화로 자산 격차가 더욱 벌어지면서 어디에 살고, 어떻게(자가전세) 사는지가 신분이자 계급인 세상이 됐기 때문이다. 부동산 대란이다. 시장에는 부동산 상황을 풍자한 신조어가 판을 친다. 서울과 수도권을 넘어 지방까지 확산된 집값 불안 때문이다. 소득은 별로 늘지 않는데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불안감이 크게 분출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12년 넘게 걸린다는 통계 결과도 나왔다. 수도권에 집 한 채만 있어도 부자 소리를 듣는 시대다. 사회적 계급이 집 있는 자와 집 없는 자로 구분되는 모습이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될수록 강남과 강북, 서울과 지방, 유주택자와 무주택자 프레임을 넘어 계급이 더 세분화하고 있다. 예전엔 주택 소유 여부만을 놓고 계급을 나눴다면 최근엔 어떤 지역에 어떤 브랜드 아파트를 가졌느냐를 따진다. 인터넷엔 이를 도식화한 부동산 계급도가 떠다닌다. 사는 곳(자가 기준)에 따라 황족부터 왕족, 중앙귀족, 지방호족, 중인, 평민, 노비 등으로 나뉜다. 황족은 단연 서울 서초강남구다. 황족 내에서도 계급이 나뉘는데, 정점(계급도상 그랜드마스터)엔 압구정 현대아파트와 반포 아크로리버파크가 있다. 부동산 계급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더욱 공고해졌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내놓은 각종 규제책이 오히려 강남 아파트의 희소성을 높이고, 비(非)강남 거주자의 패닉바잉(공포 매수)을 부추긴 결과다. 25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내놨으나 시장에선 제대로 먹혀들지 않고, 한국판 카스트제도, 설국열차 부동산 버전 등의 새로운 부동산 계급표를 양산했다. 부동산 계급도를 보니 씁쓸하기 그지 없다. 사회 갈등, 혐오와 차별 등의 문제도 걱정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스타벅스 제한법

부동산시장엔 ○세권이란 신조어가 많다. 주변에 어떤 시설이 있느냐에 따라 입지환경이 달라지고 집값이 뛰기 때문에 ○세권에 관심이 많다. 역세권은 대략 500m 이내에 지하철역이나 기차역이 있는 경우를 말한다. 걸어서 5분에서 10분 정도 거리여서 교통환경이 좋아 아파트 가격이 비싸다. 숲 근처 등 녹지가 많은 숲세권, 공원이 있는 공세권, 전망이 뛰어난 뷰세권을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학생이 있는 가정은 학교나 학원이 가까이 있는 학세권을 중요시 한다. 스세권이란 용어도 있다. 스타벅스 카페가 가까이 있는 경우다. 카페를 찾는 사람이 늘어난 이유도 있지만, 스타벅스는 유동인구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고, 브랜드 자체로도 건물가치를 높여 스세권을 중시하는 추세다. 스타벅스가 들어서면 사람이 몰리고 지역상권이 활성화되는 효과도 있다. 새 아파트 상가건물엔 다른 점포 유치를 위해 스타벅스 입점 확정이란 플래카드가 붙기도 한다. 스타벅스 국내 1호점은 1999년 7월 오픈한 이화여대점이다. 20년이 넘은 지금 스타벅스 매장은 전국에 1천250여개에 달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스타벅스의 등장은 국내 커피시장 판도를 변화 시켰다. 그 전까지만 해도 믹스커피나 다방커피를 마셨다면 스타벅스 등장 이후 대형 커피전문점들이 생기고, 골목 카페도 크게 늘었다. 커피 소비량도 급증해 국내 커피시장 규모가 11조원을 넘었다. 앞으로 지역 상인과 임대인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 지역상생구역으로 지정되면 스타벅스 직영 매장을 낼 수 없다. 다이소나 올리브영도 마찬가지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최근 지역상권 상생 및 활성화에 관한 법률(지역상권법)을 의결했다. 이달 본회의 통과가 확실해 보인다. 지역상권법은 임대료 상승에 따른 소상공인의 젠트리피케이션(상권 내몰림)을 막겠다는 취지다. 대형점포가 주변 상권을 형성하고 활성화하는 효과도 있는데 무조건 막는게 옳은지 모르겠다. 소비자 선택권과 임대인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고통받고 있는 소상공인을 위한 것인지, 정치논리인지도 애매모호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스승의 은혜

제40회 스승의 날이 다가왔다. 내 기억 속에 선생님을 떠올려 보자. 풍금을 치시던 모습이 선한 경동 유치원 선생님, 반 아이들과 단체로 리코더를 불며 결혼을 축하해 드렸던 명일초 5학년 담임 선생님, 남북 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이 죽었다며 펑펑 울던 모습이 인상에 남은 명일초 6학년 담임 선생님, 옆반과 매주 아이스크림 내기 농구 시합을 개최하며 나를 농구의 세계로 끌어들였던 강일중 3학년 담임 선생님, 찰지게 귀싸대기를 때렸던 한영고 독일어 선생님 참 많은 선생님이 떠오른다. 스승의 날은 1958년 충남지역 청소년적십자 단원들이 병중에 있거나 퇴직한 선생님을 찾아뵙기 시작, 1963년 이들이 은사의 날을 정하고 사은행사를 개최한 것이 시초로 알려졌다. 1965년에 세종대왕 탄신일인 5월15일로 스승의 날이 정해졌고, 1973년 잠시 폐지됐다가 1982년 스승을 공경하는 풍토조성을 위해 다시 부활됐다. 그 후 40년이 흘렀다. 스승의 날을 앞두고 최근 교총이 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78%의 교원은 사기가 떨어졌다고 응답했다. 이는 2009년 설문 조사 결과보다 22%p 증가한 것이다. 교권 보호가 잘 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다는 답변이 50.6%였고, 교직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으로는 학부모 민원과 관계 유지(20.8%)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교권이 땅에 떨어졌다ㆍ학부모 민원에 교사들이 시달려 못살겠다 이런 말은 이제 새삼스럽지도 않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실시한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은사님께 가장 드리고 싶은 선물 1위로 모바일 쿠폰(33%)이 꼽혔다고 한다. 스승의 날이라며 선생님께 편지를 쓴다든가, 카네이션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모습도 이제는 아날로그 감성으로 치부되며 옛이야기가 됐나 보다. 학생ㆍ어른 할 것 없이 지쳐가는 코로나19 시대. 스승의 날을 맞아 옛 선생님을 추억하며 잔잔한 미소를 띠어보는 건 어떨까. 이호준 정치부 차장

[지지대] 끝판왕을 잡아라

게임을 끝내려면 끝판왕을 잡아야 한다. 끝판왕을 만나러 가는 과정에 나오는 캐릭터는 말 그대로 주변인일 뿐이다. 그런데 이 게이머는 주변인만 상대하고 있다. 그 사이 끝판왕의 힘은 더 강해지고 있다. 같은 게임을 하는 다른 게이머들은 끝판왕을 잡기 위한 근본적인 전략을 세우고 실천에 나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코로나19 시대, K-방역을 주창하던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난 2017년 미국 스크립스 연구소의 앤드루 워드 박사는 여러 종류의 코로나 전염병을 막으려면 미리 범용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NIAID)는 연구 목표는 뛰어나지만 범용 코로나 백신의 중요성이 높지 않다며 연구비 지원을 거절했다.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코로나 팬데믹을 막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과학계는 과거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범용 코로나 백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NIAID는 지난해 11월 범용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한 긴급 연구 과제를 공모했다. 앤서니 파우치 NIAID 소장은 모든 종류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범용 백신을 개발해야 한다고 밝혔다. 국제민간기구인 CEPI(전염병대비혁신연합)는 지난 3월 범용 코로나 백신에 2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선언했다. ▶코로나19와 관련, K-방역을 앞세워 샴페인을 일찍 터트린 대한민국은 어떤가. 근본적인 해결책인 백신 개발은 고사하고, 외국에서 개발한 백신조차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국민에게 제대로 접종하지 못하고 있다. 2차 이상의 접종을 끝내 실외에서 마스크 아웃(OUT)을 선언한 이스라엘과 영국이 부러울 따름이다. 외국의 성공사례를 부러워하는 만큼 정부에 대한 불신은 더욱더 커지고 있다. ▶게임의 전략을 수정할 때다. 제조업 강국인 대한민국은 코로나19 시대, 자가진단키트나 특수 주사기를 만들어 목돈을 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제일 우선으로 해야 할 백신 개발은 산 넘어 산이다. 끝판왕을 잡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는 진리를 깨닫길 바란다. 김규태 사회부장

[지지대] 애국지사 이종훈 선생

일본 검사가 물었다. 조선독립이 될 줄로 생각하는가?. 대답은 그렇다였다. 또 물었다. 장래에도 또 조선독립운동을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답변도 명쾌했다. 살아만 있다면 계속 할 것이다. 1919년 3월20일 한 애국지사의 조서기록이다. ▶이날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가 조사를 받기 19일 전(1919년 3월1일) 서울 창공에선 3ㆍ1만세운동의 깃발이 높이 올랐다. 태화관에선 민족대표 33명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발표했다. 吾等(오등)은 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로 시작되는 그 선언서다. ▶정암(正菴) 이종훈(李鍾勳) 선생이 그 조서의 주인공이다. 당시 선생은 환갑을 훌쩍 넘겼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최고령자였다. 그런데도 당당하게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다. 바로 일본경찰들에게 체포돼 서대문형무소로 이송됐다. 그리고 참혹한 고문을 받았다. ▶재판에선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고령에 지병까지 있어 몸이 많이 상했다. 가족들이 받았을 고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경기도 광주 출신인 선생은 어릴 때는 한학을 배웠다. 청년시절에는 동학에 입도, 우금치전투 등 숱한 항일현장을 누볐다. ▶옥고를 치른 후에도 독립운동은 계속 이어졌다. 만주 무장투쟁과 국내 민족세력을 연계하기 위해 고려혁명당을 이끌었다. 그의 외아들인 이관영 선생도 용문산 일대 의병들을 규합, 일본에 항전하다 교전 끝에 순직했다. 이 지사의 손자인 이태운 선생도 1919년 독립선언서 준비작업 중 연락임무를 담당했다. 소파 방정환 선생과 함께 독립선언문을 인쇄하고 배포했다. 3대가 독립운동에 헌신한 명가(名家)다. ▶경기일보는 광주지역 시민단체인 THE광주포럼의 이종훈 선생 업적 기림사업 추진 발표를 보도했다. 올해를 이종훈 선생의 발자취를 알리는 원년으로 삼고 학술대회 개최 준비와 종중과의 교류를 통한 사료발굴 등을 진행한다는 계획이다. 해공(海公) 신익희(申翼熙) 선생이 광주 출신임은 많이 알려졌지만, 이종훈 선생은 아직도 아는 이가 많지 않은 게 엄연한 현실이다. 이분들의 올곧은 투쟁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하는 까닭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지인이 6월 첫 주에 미국으로 40일간 트레킹을 간다. 코로나 시국이라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하니, 미국 앵커리지 공항에서 관광객 모두에게 무료로 백신 접종을 해준단다. 알래스카주는 지난 4월 이미 모든 주민이 맞을 백신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나머지 여유분은 관광객에게 제공해 침체됐던 여행업을 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선 백신관광이 시작됐다. 미국에선 코로나 백신이 넘쳐 각 주(州)에서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또 다른 국가에선 백신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신 개발과 확보, 접종에 국가간 기술과 힘이 작용하면서 백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하다.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하고 선도하기 위한 국가간 기싸움도 치열하다. 화이자와 모더나, 얀센, 노바백스 등 코로나19 주요 백신 개발과 생산을 주도하는 미국이 백신 지식재산권을 풀겠다고 한다. 지재권을 주장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개발하라는 식이다. 백신 특허를 공개하고 복제 생산을 허용하면 세계 곳곳에서 백신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미국의 지재권 면제 이면에는 백신이 남아 도는데다, 인도의 심각한 상황 등 글로벌 압박이 있었다. 중국러시아가 개발도상국 등에서 백신외교를 펼치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백신 지재권 면제를 발표했으나 넘어야 할 장벽이 높다. 백신 개발과 접종에 기술력과 돈, 안정적 수급과 배송, 의료기술 등의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 백신 레시피를 줘도 못 만드는 나라가 많다. 때문에 지재권 면제보다 백신 수출 제한을 푸는게 더 현실적이란 지적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특허권 제공이 더 많은 사람이 백신을 사용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수출과 생산을 늘리는 것이 위기를 해결하는 해법이라고 했다. 코로나 재앙을 빨리 끝내려면 백신 지재권도 면제하고 생산수출도 늘려야 한다. 자국민만의 백신 접종으로는 코로나 종식이 어렵다. 변이 바이러스도 번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처럼 백신의 보편적 접근권과 지재권의 한시적 유예가 필요하다. 미국과 EU가 백신 증산과 공평한 배분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잉여 스펙

대학 졸업 후 몇년이 지나도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나이만 들어가는 취업준비생을 가리켜 취른이라고 한다. 취업준비에 어른을 합친 단어다. 이구백(20대 90%는 백수), 장미족(장기 미취업자), 삼일절(31세 넘으면 절대 취업 못함) 등도 청년들의 극심한 취업난을 빗댄 신조어다. 취준생들은 좁은 취업 관문을 뚫기 위해 온갖 스펙쌓기에 열을 올린다. 스펙 과잉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지난해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취준생 1천316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현재 보유한 스펙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88.7%가 부족하다고 답했다. 잉여 스펙이 있는가라는 물음엔 31.5%가 그렇다고 했다. 잉여 스펙을 쌓는 이유로 취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구직자 스펙의 상향 평준화라는 응답이 각각 46.9%, 45.2%였다. 잉여 스펙은 스펙을 많이 쌓긴 했으나 정작 취업에 써먹지 못하는 스펙이다. 기업들은 직무와 관련있는 스펙을 갖추는게 취업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한다. 구인구직 매칭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439개사를 대상으로 채용시 불필요한 스펙에 대해 조사한 결과, 69.7%가 불필요한 스펙이 있다고 했다. 불필요한 스펙 1위로 한자ㆍ한국사 자격증(55.9%, 복수응답)을 꼽았다. 다음은 극기ㆍ이색경험(51.3%), 봉사활동(31.7%), 아르바이트(23.2%), 출신학교 등 학벌(21.9%), 석박사 학위(20.9%) 등의 순이었다. 그 이유로 직무와 연관성이 높지 않아서(68%, 복수응답)라는 답변이 많았다. 기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필수 스펙으로는 1위로 업무관련 자격증(69.3%, 복수응답)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이어 컴퓨터 능력 관련 자격증(27%), 인턴 경험(20.5%), 토익ㆍ토플 등 공인영어성적(15.7%), 학점(13%), 대외활동 경험(12.3%), 출신학교 등 학벌(12.3%) 등을 꼽았다. 실무와 관련없는 스펙을 무작정 쌓는 것은 도움이 안된다. 기업은 직무를 이해하고 실질적 도움이 되는 자격증 정도만 원한다. 오늘도 취준생들은 눈물겨운 노력을 하며 절박하게 취업 문을 두드리고 있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부모, 누구인가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영화 친구(곽경택 감독ㆍ2001년)에 나오는 대사다. 공전의 히트를 친 영화답게 이 대사는 영화가 상영된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최근엔 이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패러디한 한 유명 음식점 광고가 인기를 끌며 밈(Meme)의 자리까지 꿰차고 있다. ▶의료기술 발달은 우리들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여러 가지 변화에서 가족 구성원에 영향을 끼친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시험관 시술이 불임부부에게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른 것은 이미 오래다. 그러나 이것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가족형태를 복잡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오카다 미쓰요가 쓴 새로운 가족(김재은 역)은 다양한 가족 형태를 소개하고 있다. 한쪽 부모의 피만 섞인 아이, 부모 중 어느 쪽도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정자와 난자를 제공받아서 어머니가 출산한 아이, 부모 모두의 피는 섞여있지만 제3자의 자궁(대리모 출산)을 빌려서 탄생한 아이 등이 있다. 저자는 이를 두고 아이를 만든다고 말한다. ▶지난해 11월 결혼을 하지 않은 방송인 사유리씨의 출산 소식은 사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그가 정자를 기증받아 홀로 출산했기 때문이다. 사유리씨의 출산은 먼 나라 남의 얘기 같던 오카다 미쓰요의 가족 형태가 언제든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음을 알리는 촉매 역할을 톡톡히 했다. 유전자 해독기술과 복제기술 발달까지 감안하면 앞으로 가족형태의 변화는 가늠조차 하기 힘든 실정이 됐다. ▶때마침 정부가 건강가정기본법 개정 추진에 나섰다. 개정안 내용의 핵심은 두 가지다. 하나는 1인가구ㆍ동거가족 등 가족의 형태와 규모가 달라지면서 가족의 정의를 확대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건강가정 용어를 가족으로 바꾸는 것이다. 법률 개정의 옳고 그름 판단을 떠나 시대 흐름에서 가족의 형태가 복잡해지는 것만은 틀림없다. 가정의 달에 가족이란 무엇인가, 부모는 무엇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영화 친구의 대사는 앞으로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가 아니라 느그 부모는 누꼬?라고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박명호 지역사회부 차장

[지지대] 공동주택 공시가격

매년 국토교통부는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결정공시한다.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국세와 지방세 등의 과세 기준으로 활용된다. 올 1월1일 기준 전국 공시가격 분포를 보면 1주택 재산세 특례 세율 대상인 6억원 이하 공동주택이 전체의 92.1%를 차지했다. 9억원을 초과하는 공동주택은 3.7%로 나타났다. 공시가격이 발표된 후 살고 있는 아파트가 어느 정도 나왔는지 궁금해서 오랜 만에 부동산 공시가격 알리미 사이트에 들어갔다. 인천은 물론 전국적으로 아파트 상승 기사를 써와 당연히 살고 있는 집의 공시가격이 전년보다 올랐을 것으로 예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전년보다 1천100만원이 떨어졌다. 부동산 가격 공시에 관한 법률에 따라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에 맞춰 시세변동률과 현실화 제공분을 반영해 결정했다는 산정의견이 있었다. 살기에는 좋은 환경이지만 지은 지 30년된 아파트고 흔한 지하철역도 없는 비역세권이라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설마 공시가격이 하락할지는 생각도 못했다. 이번에 공동주택 공시 초안에 대한 제출 의견 4만9천601건 중 가격 상향조정 의견의 약 95%는 공시가격 6억원 이하 주택이었다. 하향 조정 의견의 62%는 6억원 초과 주택들이다. 누구나 자신의 집이 오르기를 원한다. 최근 계속 상승하는 아파트 가격 관련 기사와 주변 이야기를 들으면 더욱 그럴 것이다. 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인 MZ세대에서 부동산 문제로 분노와 절망을 한다고 한다. 지난달 서울과 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도 MZ세대의 분노와 절망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집을 살 수 없다는 좌절을 하는 젊은층이 늘수록 건전한 사회를 만들 수 없다. 아파트가 재산 증식의 수단이 아닌 삶을 위한 공간이 돼 매년 발표하는 공동주택 공시가격 때문에 일희일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현구 인천본사 경제부장

[지지대] 예덕선생

조선후기 분뇨를 치우던 역부(役夫)가 있었다. 어떤 선비가 그와 교류했다. 제자들은 그와 사귀는 스승이 마땅찮았다. 그러자 선비가 일렀다.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 질서다. 그는 질서를 실천하는 군자(君子)다. 무위도식하던 양반들을 그렇게 비틀었다. ▶역부와 선비와의 우정은 파격이었다. 선비는 이 역부를 선생으로 불렀다. 양반사회로부터 공격받았다. 그런데도 선비는 이 역부와의 우정을 이어갔다. 그 이면에는 당시 사회에서 차지하는 이 천덕꾸러기의 엄중한 무게가 담겨 있었다.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에 나오는 얘기다. ▶예덕(穢德)에서 예(穢)는 더럽다는 뜻이다. 여기에 덕(德)을 더하면 더럽지만 나름 덕을 갖췄음이다. 곧 질서다. 한양의 으뜸 골칫거리는 인분과 쓰레기 처리문제였다. 예덕선생은 이를 해결해주던 은자(隱者)였다. 그의 동료들은 한양 외곽 농사꾼과 계약을 맺고 거름을 져 날랐다. 이들이 없었다면 한양은 오물투성이였을 것이다. 그게 당시의 질서였고, 나름 지혜였다. ▶하남시가 늘어나는 생활폐기물로 딜레마에 빠졌다고 한다. 쓰레기 처리문제로 어려움에 부닥친 게 어디 하남시뿐이겠는가. 생활폐기물 처리량은 늘고 있지만, 수도권매립지 등으로의 반출량은 되레 해마다 감소하는 탓이다. 하남 인구는 지난 3월 30만명을 초과하면서 쓰레기 배출량도 늘고 있다. 지난 1~3월 종량제 폐기물 처리량은 8천357t(하루평균 92.8t)이었다. 2019년 2만7천706t(하루평균 75.91t), 지난해 3만1천334t(하루평균 85.84t) 등 해마다 늘고 있다. ▶앞서 수도권매립지는 정부정책에 따라 지난 2018년 기준치를 토대로 해마다 반입량을 줄여가는 반입총량제를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다. 지난해 90%에서 올해는 85%로 줄였다. 이로 인해 하남시는 지난 1~3월 수도권매립지에 반입한 생활폐기물량이 1천828t으로 올 한해 할당된 반입총량을 109% 초과했다. ▶하남시는 물론 도내 지자체들이 이용 중인 환경기초시설 소각용량도 한계점을 넘은 지 오래됐다. 어디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지 막막하다. 이럴 때 예덕선생에게 물어보면 뭐라 그럴까. 뭇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아도 묵묵히 할 일을 했던 그였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안내견 출입금지

사람과 더불어 한 가족처럼 살아가는 애완견은 반려견으로 불린다. 반려견을 아끼고 사랑하는 펫팸족이 늘면서 관련산업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반려견을 위한 전용 미용실, 카페, 놀이터, 공원, 병원은 물론이고 최근엔 코로나19로 해외여행이 불가능하자 호텔에서 반려견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게 새로운 여행 트렌드가 됐다. 반려견 호텔이라 할 정도로 개들을 위해 모든 것이 최적화 돼있다. 반면 시각장애인의 눈과 발이 돼 살아가는 안내견들은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한다. 누군가의 신체를 대신해주는 도우미견과 이를 동반한 장애인들이 불평등을 겪고 있다. 장애인복지법은 장애인 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거나 공공장소, 숙박시설 및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 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려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 없이 거부하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안내견에 대한 거부는 여전하다. 지난해 서울의 한 롯데마트에서 장애인 안내견의 출입을 막아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안내견의 시작은 1916년 1차 세계대전 이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의 한 의사가 시력을 잃은 군인을 돌보는 개의 모습을 보고 적십자와 협력해 관련 교육을 시작했다고 한다. 국내에선 1972년 임안수 교수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안내견과 함께 귀국하면서 존재를 처음 알렸다. 이후 1993년 삼성화재가 안내견학교를 설립해 전문적인 양성이 이뤄지고 있다. 1994년 양현봉씨가 분양받은 바다가 국내 첫 안내견이다. 헌정 사상 처음으로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가게 된 김예지 의원의 조이 역시 같은 학교 출신이다. 현재 시각장애인을 돕기 위해 훈련된 안내견은 국내에 70여 마리가 활동 중이다. 누군가의 눈과 발, 귀가 돼주는 안내견은 장애인에게 단순한 반려견 이상이다. 그들은 몸의 한 부분이나 마찬가지다. 안내견 거부는 장애인을 거부하는 것이고, 한 사람의 인권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안내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차별받아선 안된다. 과태료 부과보다는 안내견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갖게 하는게 중요하다. 음식점 등 각종 시설에서 안내견 출입을 환영하는 스티커 캠페인 등을 지속할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대북전단 살포

남과 북은 분단 이후 대북(대남)전단, 이른바 삐라를 체제 선전과 상호 비방의 도구로 삼아왔다. 그러다 1991년 9월 남북한 UN 동시 가입이 이뤄지고 그해 12월, 상호 체제 인정과 상호불가침, 남북한 교류 및 협력에 관한 남북기본합의서를 체결해 삐라 살포를 안 하기로 했다. 2004년에도 고위급 군사회담을 통해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방송과 게시물, 전단 등을 통한 선전활동을 중지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채택했다. 이어 2018년 남북정상회담 뒤 채택한 4ㆍ27 판문점선언에서도 대북 확성기 방송과 전단 살포 등 모든 적대 행위를 중단한다고 약속했다. 정부 차원의 전단은 중단됐지만 탈북민단체 등에 의한 전단 살포는 계속됐다.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위한 법 제정이 여러 차례 논의됐지만, 표현의 자유를 둘러싼 위헌 논란과 진영 간 입장차가 불거지며 수년간 논쟁이 이어졌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전단을 살포하거나 대북 확성기 방송 등을 할 경우 3년 이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벌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북한은 대북전단 살포를 체제안전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 군사적으로 민감하게 대응한다. 2014년 10월 연천군 태풍전망대 인근 비무장지대에서 탈북자단체가 대북전단 풍선을 날려보내자 풍선을 향해 13.5㎜ 고사총을 10여 차례 발포했다. 지난해에도 탈북민단체 등이 대북전단을 살포하자, 용납 못할 도발 탈북자 놈들의 무분별한 망동 등의 비난을 하며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소 1년9개월 만에 폭파시켰다. 자유북한운동연합이 최근 DMZ와 인접한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대북전단 50만장과 소책자 500권, 미화 1달러 지폐 5천장을 대형풍선 10개에 나눠 실어 북한으로 날려 보냈다고 한다. 3월30일부터 시행된 대북전단금지법을 위반한 첫 사례다. 대북전단은 접경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협한다. 접경지 주민들이 강력 반대하는 전단 살포는 북한을 자극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군사 도발의 빌미를 제공할 뿐이다. 이는 실정법 위반으로 실효성 없는 대북전단 살포는 중지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가족의 재탄생

독일에서 태어나 재독 한인으로 살아가던 사촌의 결혼과 출산 소식을 들었다. 4년 후 남편과 헤어졌고 아이는 사촌이 양육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둘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은 동거 파트너였다. 한국 친척들의 반응은 한결같았다. 아이고 어쩌냐. 미혼모로 감당할 사회적 편견과 양육 비용 등등 걱정이 잇따랐다. 독일에서 들려온 반응은 쿨했다. 괜찮다. 여긴 한국 같지 않다. 정부가 지원한 아파트에서 거주하고, 일하고 안정적으로 양육비를 받으며 공부도 했다. 삶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혼인과 유사한 공동체를 법규화한 생활 동반자법(Lebenspartnerschaften), 이를 바탕으로 한 정책적 지원이 그 뒷받침이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생활 동반자법과 같이 전통적인 가족의 범위가 넓어진다. 정부는 1ㆍ2인 가구, 미혼모ㆍ미혼부ㆍ다문화 가정 및 이혼ㆍ동거 부부 증가와 성평등 추세 등에 맞춰 확 바뀐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21~2025)을 확정했다. 가족 형태 다변화, 개인 권리에 대한 관심 증대 등 시대 흐름을 고려해 가족정책을 개편할 예정이다. 삶의 다양한 선택으로 법이 굴레였던 가족사의 다양한 면면을 이제라도 껴안을 논의의 장이 마련된 것이다. 늦은 감이 있지만 환영할 일이다. 시대는 이미 바뀌었다. 사실혼이나 노년 동거 부부의 법적 권리 보장이 필요한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악용에 대비한 철저한 보완책과 시스템 마련도 필요하다. 개인이 원치 않아도 이득을 위해 가족을 인위적으로 조정할 우려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타인을 존중하고 포용하는 문화다. 삶의 다양한 이유로 만들어진 가족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시선이 우선돼야 한다. 개인의 선택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게 선진국이고,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집단이 지성 사회다. 가족의 재탄생을 맞이할 우리가 지닐 첫 번째 자세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지지대] 어린이 자가격리

최근 아들이 학원 선생님의 코로나19 확진 판정 탓에 방역 당국에 의해 밀접접촉자로 분류, 2주간의 자가격리를 통보를 받았다. 갑작스러운 아이에 대한 자가격리 통보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방역 당국 관계자로부터 자가격리 방법을 들었을 때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보건소 직원이 제시한 방법은 이랬다. 아이가 혼자 방에서 자가격리 하도록 하면 됩니다. 과연 11살 남자 어린이가 2주 동안 방에서 혼자 있을 수 있을까. 화장실이 있는 안방을 내어주더라도 이것이 과연 가능한가라는 의문이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아홉 살 동생이 거실에서 뛰어노는데, 열한 살 형은 안방에서 나오지 않고 혼자 잘 있을까? 결론은 불가능하다였다. 최근까지 지인 수십 명에게 이런 상황을 설명했더니 돌아오는 대답은 모두 그게 가능하느냐였다. 보건소 직원도 이런 어려움을 알 테지만 아무리 문의해도 규정이 그렇습니다라는 대답만 돌아온다. 혹시 몰라 방역 당국이 자가격리 보호자라도 지정을 해준다면 부모 중 1명이 아이와 같이 자가격리를 하고, 다른 가족은 외부에 나가서 사는 방법도 고민했다. 하지만 이런 것은 아예 규정에 없다고 한다. 많은 고민 끝에 찾아낸 단 하나의 방법은 가족 모두 14일간 자가격리였다. 만약 아들이 확진 판정을 받는다면 모든 가족이 확진자가 될 수밖에 없는 도박적 선택이다. 직장엔 양해를 구해 재택근무를 하거나, 아니면 아예 휴가 및 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올해 들어 학교가 문을 열면서 지역 곳곳에서 어린이 확진자나 자가격리자가 많이 나온다. 가족 모두가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것 말고는 해답이 없다. 방역 당국이 이제라도 현실적인 해결 방법을 담은 세밀한 방역 예방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중국의 발해역사 도발

중국이 또 한민족 역사에 대한 도발을 감행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고고학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정신적 힘이라면서 발해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라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중국은 최근 발해 건국 추정지인 시짱(西藏) 자치구 묘지 등도 자신들의 역사유물에 포함시켰다. ▶이들의 우리 역사 왜곡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발해가 위치했었던 중국 지린성(吉林省) 당국도 발해는 말갈족이 주체가 돼 건립한 당나라의 지방정권이라고 다시 한번 주장하고 나섰다. 200여년의 민족융합을 거쳐 최종적으로 중화민족의 일원이 됐다는 게 이들의 억측이다. 발해는 고구려 출신 장수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을 이끌고 고구려 땅에 건국한 나라다. 역사적 팩트다. 그런데 중국은 한술 더 떠 발해가 당나라 문화를 전면적으로 배우는 기초 위에서 비교적 완비된 정치제도를 만들었다고 강조하고 있다. ▶중국의 이런 주장에는 논리적으로 맹점이 많다는 게 역사학계의 지적이다. 발해가 멸망 후 중화민족에 복속됐다는 주장은 현재의 중국이 1천여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논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런 논리로 얘기한다면 중화민족은 사실상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건국되는 와중에 한족이 만든 개념이라는 주장과도 일맥상통한다. ▶중국이 변방 민족의 역사를 자신들의 역사에 복속시켜 해석해온 건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특히 한민족에 대해선 두드러지고 있다. 우리의 고대사나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 등도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해석하고 있다. 만리장성이 동북3성과 한반도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을 통해 고대사 범위를 확대하려는 시도도 있다. 일제강점기 만주지역 독립운동은 자국 역사로 편입하고 공산당 투쟁사 위주로 정리하고 있다. ▶중국의 변방에 대한 왜곡은 한(限)도 없고 끝도 없다. 특히 미국과의 강 대 강 대립을 노골화하면서 수위를 더욱 높이고 있다. 그럴수록 우린 중국과의 역사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역사적인 사실과 자료 등을 더욱 확보해 세계사 관점에서 객관적인 논리로 대처해야 한다. 한민족은 숨막히는 지구촌의 역사 흐름에서 늠름하게 정체성을 지켜왔다. 중국과의 역사전쟁에서 승리해야 하는 까닭은 명쾌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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