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비폭력 신념’ 병역거부

우리나라 병역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하지 않으면 3년 이하 징역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종교적 신념이나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의무를 거부하는 이들이 종종 있다. 여호와의 증인 같은 특정종교 신도가 많다. 국회는 2019년 종교적 신앙 등에 따른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역 신설과 관련한 병역법을 통과시켰다. 대체복무제는 지난해부터 본격 시행되고 있다. 최근 비폭력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남성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종교적 이유가 아닌 비폭력ㆍ평화주의 신념에 따라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것이 정당한 사유라고 인정한 대법원의 첫 판례다. 윤리도덕철학적 신념에 의한 경우라도 진정한 양심에 따른 것이라면 예비군법이 정한 정당한 거부 사유에 해당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오모씨는 2013년 2월 제대하고 예비역에 편입됐으나, 2016년 3월부터 2018년 4월까지 16차례 예비군훈련병력 동원훈련에 참석하지 않은 혐의로 재판을 받아왔다. 오씨는 어릴 적 폭력적 성향의 아버지를 보며 비폭력주의 신념을 갖게 됐다고 한다. 미군의 민간인 학살 동영상을 보고는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은 전쟁을 통해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병역을 거부하기로 했지만, 홀어머니의 설득에 못이겨 군사훈련을 피할 수 있는 화학 관리 보직에서 근무했다. 제대 후에는 양심을 속이지 않기로 하고 예비군 훈련을 거부했다. 이에 14차례 고발돼 재판을 받았고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없었다. 그는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재판에서 무죄를 받은 오씨는 예비군 8년 차까지 매년 3박 4일간 교도소에서 대체역과 동일하게 급식, 물품 보급, 보건위생 등의 보조 업무를 맡게 된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에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사회 시선은 차갑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서 안보상황이 엄중하고,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요구는 강력하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 허용은 병역거부자에게 특혜를 주는 것 이상의 가치가 있다. 헌법 제19조는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했고, 소수의 목소리와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칙을 확인한 결정으로 볼 수 있다. 정부는 신념을 내세워 악용하는 부작용은 막고, 깊고 확고하며 진실한 신념을 가진 병역거부자들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봄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다가오고 있다. 어학사전에 봄은 겨울과 여름 사이의 계절로 1년을 4계절로 나눌 때 첫 번째 계절이다. 천문학적으로는 춘분부터 하지까지가 봄이지만 기상학적으로는 3, 4, 5월을 봄이라 한다. 이런 복잡한 표현으로 정의된 봄의 의미를 간단히 정리해보자면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다. 한파가 지나간 후 봄이 오기 전 봄은 신호를 보낸다. 겨울 동안 한껏 움츠려 있던 나뭇가지에는 꽃망울이 피어오르고, 겨우 내내 꽁꽁 얼어붙어 있던 계곡은 밑에서부터 슬며시 녹아내리며 어느덧 본연의 기능을 수행한다. 4계절 중 봄은 새 시작을 알리는 희망의 계절이라고도 불린다. 학생들은 들뜬 마음으로 새 노트와 책가방, 필기류 등을 준비해 새 교과서에 선생님들로부터 듣는 강의 내용을 정성껏 준비해 알록달록한 펜들로 교과서에 표기한다. 적어도 봄이 가기까지는 열등생, 우등생 상관없이 한 번쯤은 해 본 경험이다. 많은 기업들이 올해의 채용공고를 내는 3월 봄은 신분 전환을 노리는 취준생들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의 계절이기도 하다. 호텔과 유통업계 등 다양한 업종에서도 봄맞이 마케팅에 적극 나서며 소비자들의 이목 잡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올해의 봄은 온 국민이 손꼽아 기다렸던 코로나19 백신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가슴 벅찬 계절로 기억될 것이다. 봄과 함께 다가온 백신 접종 소식에 많은 사람들도 조심스럽게 봄맞이 외출을 준비 중이다. 전국 국립공원 봄꽃 개화 시기는 경칩인 다음 달 5일께로 예상된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봄 경치를 즐기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들이에 나선 적이 없다. 이번 봄 기간 동안에는 한 번쯤은 그동안 코로나19로 지쳐있는 심신을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전국의 국립공원 한 곳을 찍어 노랗게 물든 대자연을 감상해봐야겠다. 양휘모 사회부 차장

[지지대] 영화와 현실

드디어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시작한다.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은 26일, 화이자 백신은 27일부터 각각 접종에 들어간다. 지난해 1월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환자가 발생한 후 우리 삶은 큰 변화를 겪었다. 마스크 착용은 일상이었고, 지인들과의 만남도 자유롭지 못했다. 우리보다 먼저 접종을 시작한 해외 국가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접종을 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다른 나라보다 일찍 백신을 확보한 이스라엘은 벌써 전 국민의 절반이 백신을 맞았다. 이런 속도면 이스라엘은 조만간 코로나19 이전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상황을 보면서 오래 전에 본 월드워 Z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세계적인 배우인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이 영화는 전형적인 좀비영화다. UN 소속 조사관인 제리 역을 맡은 브래드 피트가 한국과 이스라엘 등을 찾아 좀비가 발생한 원인 등을 조사하는 것이 이 영화의 내용이다. 한국 평택 미군기지를 찾은 브래드 피트는 CIA의 요원으로부터 북한은 하룻밤 사이에 전인민의 이빨을 뽑아 좀비 감염을 막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마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한국을 떠나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도착한 브래드 피트는 거대한 장벽을 목격한다. 좀비들은 장벽에 막혀 도시로 들어올 수 없었다. 이스라엘 정부는 좀비 발생 정보를 파악해 미리 장벽을 만들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한다. 종교 행사로 시끄러워지면서 소리에 민감한 좀비가 장벽을 넘으면서 예루살렘은 쑥대밭이 된다. 그 곳을 간신히 비행기로 탈출한 브래드 피트가 아이슬란드에 도착해 연구소에서 백신을 찾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영화는 영화다. 현실과 다르다. 그래도 월드워 Z가 해피엔딩으로 끝나듯이 올해 안에 전 인류가 코로나19 백신을 맞아 일상으로 돌아가는 현실을 희망한다. 이현구 인천본사 경제부장

[지지대] 중국 양회

중국에선 매년 3월이면 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가 열린다. 이를 줄여 흔히 양회(兩會)라고 부른다. 2개의 회의라는 뜻이다. 양회는 사실상 중국을 이끌어가는 최고 권력기구이자 통치기구다. 중국이 자본주의 국가가 아니라, 공산당이 통치하는 사회주의 국가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는 입법기관이다. 헌법에 규정된 국가의 최고 권력기관이기도 하다. 성(省)과 자치구, 직할시, 특별행정구 및 인민해방군 등에서 선출된 대표들과 각 소수민족 대표를 포함해 3천여명으로 구성된다. 각종 법률 등을 제정하고 심의한다. 임기는 5년이다.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는 정책자문기구이다. 전국위와 상무위 등으로 구성된다. 전국위는 공산당을 비롯해 각 당파와 인민단체, 소수민족, 홍콩과 마카오 교포 등을 대표하는 위원 2천여명으로 구성된다. 역시 임기는 5년이다. 권력서열도 결정한다. ▶중국은 문화혁명시기인 1960년대를 제외하고 양회를 단 한차례도 거른 적이 없다. 지난해 코로나19가 지구촌을 강타했을 때도 개최시기를 2개월 늦췄을 뿐이다. 공산당의 건재함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올해는 3월4일과 5일 연다. 코로나19 극복을 만방에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녹여져 있다. ▶외신은 최근 리커창(李克强) 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원 상무회의를 통해 올해 양회를 이처럼 개최한다고 전했다. 이번 양회에선 제14차 5개년계획 승인을 포함해 주요 안건들이 채택된다. ▶올해 양회는 매우 각별하다. 헌법까지 개정하면서 밑그림을 그려놓은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장기집권을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해 양회는 내년 당대회 성공을 위한 정치일정의 스타트다. ▶시진핑 주석의 장기집권을 공식화할 것으로 보이는 제20차 당대회는 내년 9~10월 열린다. 하지만 사실상 올해 양회를 통해 대대적인 인사교체와 장기정책 구상 등으로 권력을 공고화하겠다는 포석이다. 공산당 창당 100주년신중국 성립 100주년을 위한 청사진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양회는 중국의 얼개를 짜는 기구다. 양회가 우리를 일깨워 주고 있는 건 실로 명쾌하다. 가끔씩 잊고 살지만, 중국은 지구촌에서 몇 남지 않은 공산주의 국가라는 사실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산업재해 청문회

포스코 포항제철소에서 지난 8일 노동자 1명이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협력업체 직원이 제철소 원료부두에서 설비교환 작업을 하다 장비에 몸이 끼여 숨졌다. 지난해 12월9일에 산재사고로 하청업체 노동자가 세상을 떠난 데 이어 또다시 발생한 것이다. 최근 3년간 포스코 포항제철소와 광양제철소에서 포스코 및 하청업체 직원이 10명 넘게 사고로 숨졌다. 지난 5일에는 현대중공업에서도 사망사고가 있었다. 작업 중 2.5t 철판이 떨어져 노동자를 덮쳤다. 잇따른 산업재해 사망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을 계기로 산재를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현장에선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9년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현황에는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HDC현대산업개발, 현대제철 당진공장 등 대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최근 3년 이내 2회 이상 산재 발생을 보고하지 않은 사업장은 포스코와 한국GM 창원공장 등 116개소에 달한다. 급기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22일 사상 첫 산재 청문회를 열었다. 이날 청문회에는 현대건설GS건설포스코건설(건설), LG디스플레이현대중공업포스코(제조업), 쿠팡CJ대한통운롯데글로벌로지스(택배업) 등 산업재해가 많이 일어난 9개 기업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최근 5년간 이들 기업 소속 노동자들의 산재 승인 건수는 2016년 679건에서 지난해 1천558건으로 2.29배 증가했다. 청문회는 산재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한 건설제조택배업에 대한 질의답변으로 진행됐다. 건설업에선 대부분 중대재해가 하청 노동자에게서 발생하는 위험의 외주화 문제가 다뤄졌다. 최근 5년간 중대재해로 다치거나 숨진 건설업 노동자 가운데 하청 비중은 포스코건설 100%(37명), 현대건설 90%(18명), GS건설 89.2%(25명) 등이다. 대기업에서 산재 사고가 반복되는 현상에 많은 국민이 실망을 넘어 분노를 느낀다. 산재 청문회가 일회성 이벤트로 그쳐선 안된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소중히 여기고, 산업안전 시스템을 강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10곳 중 8곳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이 유예면제되는 50인 미만 사업장이다. 안전 강화를 위해 법망을 세심하게 다듬고 종합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기부 훈풍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는 전 세계 부호들이 재산의 사회환원을 약속한 기부 클럽이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부부가 2010년 공동 설립했다. 재단에 가입하기 위해선 10억 달러(한화 1조원) 이상의 자산을 보유해야 하며, 평생 재산의 절반 또는 그 이상 기부를 약속해야 한다. 미국에선 수퍼리치들의 더 기빙 플레지 서약이 활발하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머스크 등도 회원이다. 기빙 플레지는 범국가적 기부 운동으로 세계 부호들의 자발적 참여를 독려한다. 국내 배달 앱 1위인 배달의민족 창업자인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이 얼마전 219번째 더 기빙 플레지 회원이 됐다. 한국인 중에 첫번째다. 김 의장의 재산은 배민을 독일 딜리버리히어로(DH)에 매각하면서 받은 DH 주식 가치 등을 포함해 1조원대에 이르며, 5천억원 이상을 기부할 전망이다. 김 의장은 전에도 100억원 이상을 기부했다. 김 의장은 더 기빙 플레지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대한민국의 아주 작은 섬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때는 손님들이 쓰던 식당 방에서 잠을 잘 정도로 넉넉하지 못했던 가정형편에 어렵게 예술대학을 나온 제가 이만큼 이룬 것은 신의 축복과 운이 좋았다는 것으로 밖에 설명하기 어렵다면서 존 롤스의 말처럼 최소 수혜자 최우선 배려의 원칙에 따라 그 부를 나눌 때 그 가치는 더욱 빛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도 재산 절반 이상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다. 김 의장의 재산은10조원대로 추정되며 최소 5조원은 기부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재계 인사들 가운데 수 조원 단위의 재산 기부를 약속한 것은 김 의장이 처음으로, 그야말로 파격적인 기부 선언이다. 연이은 두 기업가의 기부 선언은 신선한 충격이다. 흙수저 출신으로 자수성가해 IT 산업을 이끄는 두 김 의장은 자식에게 재산ㆍ경영권을 물려준 1세대 재벌 총수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한국 재벌 기업들은 사회 환원보다 부의 대물림에 집중하고 간혹 비리가 밝혀져 속죄의 뜻으로 마지 못해 기부를 했다. 그것도 회삿돈인 경우가 많았다. 두 김 의장은 부를 사회와 나누는 가치와 불평등 해소 등 사회문제 해결을 기부 동기로 밝혔다. 이들의 기부가 척박한 기부문화를 일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아시타비

아시타비(我是他非).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이 쓰인 말이자 신조어인 이 한자 단어는 나는 옳고 남은 그르다, 흔한 말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의미하는 말이다. 사자성어로는 목불견첩(目不見睫) 정도의 이 말은 지난해 교수신문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기도 하다. 당시 교수들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 이 같은 말이 우리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는데 서글픔을 느낀다며 이제 희망적인 언어로 치유해나가자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가 아시타비에서 벗어났는지를 묻는다면 선뜻 답하기 어렵다. 코로나19라는 위기가 온 나라를 집어삼킬 때 우리는 분명 이타적인 마음으로 살아가는 이들도 만났다. 그렇게 그들이 온 힘을 다해 막고 있던 사회의 방역망 속에서 아시타비의 얼굴을 감춘 이들은 속속 드러났다. 얼마 전 한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갔다가 황당한 상황을 만났다. 인천의 모 기초자치단체 공무원 6명이 식당안으로 들어왔다. 식당 주인은 자연스럽게 세 분씩 나눠 앉으세요라고 안내했고, 이들은 익숙하다는 듯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가림막 너머로 대화를 나눴다. 목에는 버젓이 공무원증이 걸려 있었다. 귀를 기울여보니 대화 주제는 코로나19. 코로나로 업무가 갑자기 늘었다는 하소연부터 설 연휴 집에 가지 말라는데 왜 고향에 가 감염이 됐냐는 불평도 나왔다. 정작 자신들은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지키지도 않으면서 말이다. 내가 남에게 들이대는 잣대는 언젠가는 나에게 누군가가 들이댈 잣대로 돌아온다. 남에 대한 비난을 하기 전 나의 행동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무엇보다 안정세로 돌아서던 코로나19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는 남의 허물보다 내 티끌을 더 크게 바라보며 조심하는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학폭 미투

원래 그런 줄 알았다. 고등학교 동아리 선배가 옥상으로 후배들을 집합시키고 툭툭 치며 훈계하는 것, 군대에서 선임이 점호시간 뒤 내무반에서 하루를 반성시키는 일. 조금 큰 잘못이라도 했을 경우 따로 화장실로 끌려가 뺨까지 맞았다. 이처럼 과거 폭력은 일상이었지만 교육과 훈계라는 이유로 암암리에 묵인됐다. 폭력은 당한 사람은 기억한다. 평생 뇌리에 잊혀지지 않기 마련이다. 어느 날 TV를 봤더니 나에게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가 나온다. 화면 속 이미지는 과거 나를 괴롭히던 그가 아니다. 그는 착하고 친절해 인기도 많다. 운동도 잘한다. 그런데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일진이었고 나를 괴롭힌 악마다. ▶잘 나가던 쌍둥이 자매 국가대표 배구 선수들이 퇴출당했다. 과거 학교폭력이 드러나면서다. 이들은 10년 전 중학교 시절 동료 후배 선수들을 괴롭힌 사실이 SNS를 통해 알려졌다. 뒤늦게 자필 사과문까지 올리며 용서를 구했으나 결국 국가대표를 박탈당했다. 이들은 학교폭력이 드러나기 전까지 억대 연봉에 미모와 실력을 갖춘 선수로 인정받았다. 쌍둥이 자매 배구선수 학폭 논란은 남자 배구로까지 번진데 이어 여기저기서 유명 스포츠 스타 선수로부터 과거 괴롭힘을 당했다는 학폭 미투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연예인을 둘러싼 학폭 논란도 잊을 만하면 나온다. 지난해 학교폭력 예방 홍보영상까지 촬영한 아이돌은 중학교 시절 학폭 논란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인기 밴드그룹 멤버는 학폭 논란으로 팀을 탈퇴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를 끌던 참가자도 학폭 논란에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 유명 걸그룹 멤버 역시 같은 이유로 활동을 중단해야 했다. ▶인기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은 TV 등 미디어 속에서 화려하다. 만약 이들 중 누구가로부터 과거 폭행을 당했다면 피해 당사자는 그 사람이 나올때마다 다시 그때의 고통이 떠오를 것이다. 그때 나를 괴롭힌 그가 인기를 얻으며 잘 나간다니 세상이 잘못된 것 같다. SNS, 청와대 청원까지 하며 이들의 과거 행태를 폭로한다. 연이어 비슷한 일을 당한 이의 미투가 이어지고 문제의 인기 스타는 하차한다. 요즘 학폭 미투의 기승전결이다. 시대가 변했다. 특히 요즘 우리의 도덕적 기준은 절대평가 수준이다. 우리가 남들에게 상처주지 않고 하루 하루 잘 살아야 할 이유를 보여준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지구종말시계

강에는 죽은 송어들이 떠올랐다. 숲에선 새들의 주검이 넘쳐났다. 곤충들도 사라졌다. 모두 몰살당한 탓이다. 어린 연어들의 먹을거리들도 남지 않았다.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이 1962년 발표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의 도입부다. ▶그는 당시 만능 살충제였던 DDT(Dichloro Diphenyl Trichloroethane) 사용에 대해 경고장을 던졌다. 수없이 협박도 받고 공격도 당했다. 우리도 똑같은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도 일깨워줬다. 미국의회 증언에선 환경보호정책 수립도 촉구했다. ▶DDT는 산업화시기에 들어섰던 1960년대 국내에선 쓰임새가 많았다. 하얀색의 이미지 때문이었을까. 신학기 때마다 DDT 포말을 하얗게 뒤집어쓰던 기억도 새롭다. 인체에 치명적인 DDT는 이미 그때부터 환경파괴를 예고했었다. 하지만 당시 개발도상국이었던 대한민국에게 환경문제는 사치였다. ▶이후 시민단체들이 속속 결성됐고, 우리도 환경문제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경은 후손들로부터 빌린 유산이라는 구호도 등장했다. 환경을 보존하지 못하면 지구도 종말을 맞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지구의 종말은 할리우드 SF영화에서도 자주 다뤄졌다. 그만큼 현실로 절실하게 다가왔다. ▶미국 핵과학자모임이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고 지구종말시계를 발표했다. 충격적인 건 (지구멸망시각을 자정으로 놓고 이 시점에서 현재 시각은 불과) 100초 전이라는 점이다. 이 단체는 핵위협과 기후변화 위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매년 지구종말시계를 발표하고 있다. 레이첼 카슨이 DDT를 계속 사용하면 지구멸망을 재촉한다는 경고 이후 60년만이다. ▶핵무기는 여전히 인류에 심각한 위협으로 남아있다. 화석연료 소비에 따른 기후변화도 위험하다. 더 끔찍한 건 지구촌에는 여전히 핵무기 1만3천여개가 있고, 핵보유국들은 핵전력 현대화를 계속하고 있다는 점이다. 답보상태인 핵감축도 긴장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지구종말시계가 위험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구종말시계가 자정 정각을 가리킬 수도 있다. 환경이 잘 보존되지 않으면 개똥밭에 뒹굴어도 이승이 저승보다 낫다는 얘기는 다 공염불(空念佛)일 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이천오층석탑

이천시청 옆 이천아트홀 잔디광장에는 일본이 강탈해 간 이천오층석탑의 모형이 세워져 있다. 이천오층석탑환수위원회가 시민 성금 1억5천100만원을 모아 모형 탑을 제작, 지난해 10월16일에 세웠다. 석탑 환수를 바라는 시민들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 있다. 여기엔 이 자리는 이천오층석탑이 놓일 자리입니다라는 글귀가 쓰여진 표석이 있었다. 표석은 2009년 5월 세운 것으로, 이후 모금운동을 통해 모형 탑을 건립했다. 탑 옆에는 2019년 8월14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일에 제막된 평화와 인권의 영원한 소녀 김복동상이 자리해 있다. 이천오층석탑은 고려시대 초기에 만들어진 높이 6.48m의 방형석탑으로 균형미가 뛰어난 국보급 석조문화재다. 이천향교 인근에 있던 오층석탑은 1915년 일본이 한일병합 5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의 장식을 위해 경복궁으로 옮겨졌다. 이후 문화재 수집광이자 일본의 실업가인 오쿠라 기하치로의 수중에 들어가 1918년 일본으로 반출, 도쿄의 오쿠라호텔 뒤뜰에 서있다. 이천시는 2008년 이천오층석탑환수위원회를 구성, 오쿠라문화재단과 협상하며 환수운동을 펼쳐왔다. 하지만 별 성과가 없었다. 오쿠라문화재단은 오층 석탑이 도쿄에 있어도 일본을 찾는 한국인들이 언제든 볼 수 있고, 일본 국민도 한국 석탑을 감상할 기회가 되는 데다 다른 박물관의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며 반환을 거부했다. 또 국가 문화재정책의 영향을 받고 있어 일본 정부가 반환을 허용해야 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석탑 반환은 한일관계의 냉각과 정부의 관심 등이 줄면서 낙관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그래도 이천시민의 환수 의지는 강렬하다. 이천시와 시의회가 이천오층석탑의 환수를 위해 국외소재 문화재 실태조사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서학원 시의원이 최근 이천시 국외소재 문화재 보호 및 환수활동 등 지원에 관한 조례안을 대표 발의했다. 조례안은 이천시장이 국외소재 문화재의 현황, 보존관리실태, 반출 경위, 관련 자료 등에 대해 조사연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 문화재위원, 향토사학자 등으로 이천시 국외소재 문화재 실태조사단을 꾸려 보호 및 환수와 관련된 활동을 하도록 했다. 강제 반출된 이천오층석탑의 귀향이 쉽지는 않겠지만 조례 제정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빼앗긴 이천오층석탑이 제자리로 돌아올 날을 염원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성차별 호칭

남편의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을 부를때 도련님이라 한다. 결혼한 시동생은 서방님이라 한다. 또 손아래 시누이는 아가씨라 부른다. 반면 아내의 손아래 남자 형제를 부를 때는 처남, 여자 동생은 처제라 한다. 결혼한 배우자의 형제자매를 부르는 말인데, 남편 집안만 높여 부른다. 조선시대도 아닌데 도련님, 서방님, 아가씨라니.. 시대에 맞지 않는 불평등한 호칭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명절 때마다 정부나 국립국어원, 여성단체 등이 성차별적 호칭 개선을 홍보하지만 나아지지 않고 있다. 시대가 바뀌어도 남성 우위를 강조하는 가족 호칭은 여전하다. 아버지 쪽에는 가까움을 뜻하는 친(親)을 쓰고, 어머니 쪽은 바깥을 뜻하는 외(外)를 붙여 표현한다. 친할머니ㆍ친할아버지와 외할머니ㆍ외할아버지로 구분하는데 모두 할머니ㆍ할아버지로 쓰자고 한다. 장인ㆍ장모, 시아버지ㆍ시어머니도 아버님, 어머님으로 통일하자는 제안이다. 서방님, 도련님, 아가씨 등은 ○○씨라는 이름을 부르자는 주장이다. 며느리란 표현도 불편하다. 며느리는 기생(奇生)한다는 뜻의 며늘과 아이가 합쳐진 말로 내 아들에 딸려 더부살이로 기생하는 존재라는 의미로 남존여비 사상이 배어있다. 오빠(남동생) 아내를 지칭하는 올케는 오라비의 겨집(계집의 옛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필종부 문화를 반영한다. 국립국어원이 지난해 새로운 언어예절 안내서인 우리, 뭐라고 부를까요?를 펴냈다. 안내서는 특정한 호칭이나 지칭어를 반드시 써야한다는 규범적인 틀에서 벗어나 서로 배려하고 자유롭게 소통하자는 취지에서 발간했다. 가족형태의 변화, 수평적 인간관계 추구 등 다변화된 사회 환경에서 언어예절의 유연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반영했다. 국립국어원 등은 결혼한 여성이 본인 부모 집을 가리켜 친정이라고 하는데, 결혼 여부와 남녀 구분없이 부모님 집을 본가라고 부르는 방식을 제안했다. 남성 쪽은 집 밖에서 일하고, 여성 쪽은 집 안에서 일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집사람ㆍ안사람ㆍ바깥사람이라는 말 대신 배우자로 부르자고도 했다. 전통에 얽매인 특정한 호칭이나 잘못된 언어 표현은 타인에게 불쾌감을 준다. 남성, 여성의 차별적 호칭어지칭어 체계를 바꿔 나가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설을 앞둔 단상

설은 조심하라는 뜻으로 신일(愼日)이라고도 불렸다. 통일신라시대였으니 1천500여년 전이다. 그것도 삼남(三南)지방에서다. 삼국유사의 기록이다. 요즘도 이렇게 부르는 마을이 더러 있다. 역시 남녘에서다. 해가 바뀌니 매사(每事)에 삼가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다. ▶나이를 헤아리는 말로도 쓰였다. 설을 쇨 때마다 한 살씩 더 먹는다. 설을 한번 쇠면 1년이듯, 나이도 한 살씩 더 먹는다. 흔히 몇 살?하고 물을 때 바로 그 살의 어원이다. ▶새해 아침은 으레 낯설기 마련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경험해보지 못한 오늘이었기 때문이다. 설다나 낯설다 등의 형용사들도 낯선 설에서 유래했다. ▶그 낯선 날이지만 가족들은 반갑기만 했었다. 피붙이들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행복했기 때문이다. 몇 달 못 봤던 조카들이 그렇고, 어느새 귀밑머리가 하얗게 변한 당숙도 그랬었다. ▶떡국을 뜨면서 그동안 어떻게 지냈느냐고 묻다 보면 화제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었다. 어느 집에 숟가락이 몇 개 늘었는지도 궁금했었다. 누구네 아들이 장가를 갔느니, 어떤 집 손녀가 아들을 낳았는지도 반가웠었다. 세상이 참 험하더라면서도 웃음꽃이 활짝 피었었다. 그렇고 그런 얘기지만 하루가 짧았었다. ▶코로나19 이전 설 분위기는 그랬었다. 살다 보면 하루하루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단조롭지만, 그간 살아온 사연들은 애틋하고도 정겨웠었다. 그래서 허접스럽지만 남의 일 같지가 않았었다. 꼭 내 일처럼 느껴졌었다. 얼굴을 맞대고 턱을 괴고 들으면 그랬었다는 말이다. ▶이번 설은 상황이 다르다. 코로나19에 47 재보궐선거 탓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빅 쓰리 가운데 두 곳인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을 뽑는 선거다. 여야가 불을 지핀 건 오래됐다. 설 밥상 민심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만나기 무섭게 정치 얘기는 하지 말자고 다짐하면서도 어느새 화제는 선거로 이어질 터이다. ▶여야 입장도 사뭇 다르다. 여당은 코로나19 극복과 일상회복 희망을 부각한다. 야당은 식상하지만 또 정권 심판론을 들고 나온다. 설을 설답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다. 정치의 영역일 뿐이라고 애써 합리화하지 말자. 이번 설을 설답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어디 정치뿐이겠는가.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코로나 취약층의 학습퇴행

코로나19는 등교와 학교생활 등 학생들의 평범한 일상을 집어삼켰다. 책가방 대신 태블릿PC를 찾고, 어쩌다 잠깐 학교에 다녀오고, 수업도 등교와 원격을 번갈아 실시한다. 친구들과 사귀기는 커녕, 같은 반 친구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모른다. 학생들이 학교에 자주 가지 못하며 소외감과 우울함을 느낀다고 한다. 온라인을 통해 등교하고 수업하는, 줌(ZOOM) 세대의 학교생활은 미흡한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상당수 학교의 원격수업은 출석체크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45분짜리 수업을 10분 만에 끝내는 경우도 있다. 교사는 조례와 종례 때 출석을 체크하고 과제만 확인한다. 학생들은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붙잡고 게임을 하는 시간이 늘었다. 문제는 원격수업의 수준이 교사나 학교에 따라 천차만별이어서 학력 격차가 갈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코로나 유행으로 지난해 학교에서 원격수업이 많아지면서 취약계층 학생들은 학력이 떨어지고 상대적으로 더 우울해졌으며, 영양 불균형 등 여러 가지 부작용에 시달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일부 학생은 전년도에 배운 한글이나 구구단 등 기본 교육과정을 잊는 학습퇴행 현상도 보였다. 이같은 내용은 한국교육개발원의 코로나19 확산 시기, 불리한 학생들의 경험에 대한 질적 연구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다. 연구팀에 따르면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등 사회적으로 취약한 계층 학생들은 인스턴트 음식을 전보다 많이 먹고, 게임이나 미디어에 중독되면서 운동과 수면이 부족했다. 받아쓰기나 덧셈ㆍ뺄셈을 못하거나 구구단을 잊어버린 경우도 많고, 가정 내에 불화도 잦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사교육을 받기 어려워 학교수업이 중요한데 휴교와 원격 수업이 반복되면서 안정적으로 공부할 기회를 잃고 타격을 입었다. 우왕좌왕하는 원격수업이 낳은 학력 격차를 줄일 해법이 필요하다. 줌 세대에게는 기존 공교육이 할 수 없었던 맞춤형 교육이 필요하다. 모든 교사가 원격수업에 매달리지 않게 각 학년 및 과목에서 수준높은 원격수업 콘텐츠를 모은 아카이브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일선 교사는 학생 개인별 맞춤형 수업이나 상담에 집중할 수 있다. 팬데믹 2년차인 올해를 교육 대전환의 계기로 활용해야 한다. 학교 교육을 주입식에서 자기 주도 학습으로 바꾸는 것도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5인 금지’ 설 명절

올 설에는 어디 댕기지 말고 내년 설에 마카모예. 강원도 강릉시가 설 명절을 앞두고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다. 마카모예는 모두 모여라는 강릉 사투리.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위험하니 내년 설에 모두 모이자는 내용이다. 고향에 가고 싶은 마음도, 자식들을 보고 싶은 마음도 간절하지만 방역지침 준수를 위해 다음을 기약해야 하는 아쉬움이 정겨운 사투리에 담겼다. 강원도 동해시는 님아, 동해 망상 나들목을 건너지마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충북 제천시는 코로나 몰고 오지 말고 용돈만 보내라, 아들, 딸아 조금만 더 참자! 꽃 피는 봄에 보자꾸나!라는 현수막을 걸었다.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설 연휴에 고향 방문을 자제해 달라며 구수한 사투리로 표현한 현수막을 걸거나, 톡톡 튀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귀성ㆍ역귀성 자제와 방역수칙 준수 등 이동 멈춤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가 설 연휴기간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를 내려 고향방문 뿐만 아니라 가족간의 만남도 금지했다. 직계 가족이라도 거주지가 다를 경우 5인 이상은 모일 수 없다. 방침을 어길 경우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이 때문에 설을 앞두고 부모님이 살아 계시는 동안 찾아봬야 한다는 의견과, 지금처럼 엄중한 시국에 무리하게 고향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냐는 반응이 엇갈린다. 추석만 잘 넘기면 진정될 줄 알았던 코로나가 여전히 기세를 떨치자 시골마을 분위기는 가라앉아 있다. 이번 설에는 가족이 둘러앉아 손자 손녀의 재롱을 보고, 맛난 음식을 먹으며 정을 나눌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난 추석처럼 쓸쓸하게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올해 설 풍경도 180도 달라질 전망이다. 따로 사시는 부모님을 형제ㆍ자매가 같이 만나기는 어려워졌고, 자식된 도리로 가봐야하지 않겠냐는 사람들은 4인 이하로 순번을 정해 번갈아 가야 하는 웃픈 상황이다. 정부 지침에도 반드시 차례를 지내는 집안 분위기나, 부모님이 오라고 하는 뜻이 강경한 경우 가정 불화가 부담스러워 어쩔 수 없이 가는 이들도 있다. 전문가들은 설 연휴가 코로나 재확산의 고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아쉽고 서운하지만 더 큰 피해 방지를 위해 설 모임을 자제하는 수밖에 없다. 온 국민이 방역수칙을 준수해 봄 4차 대유행을 막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초코파이, 이재명 지지율

함박눈이 내렸던 3일 밤. 네 살배기 딸을 데리고 눈 구경하러 밖에 나왔다가 초코파이를 손에 쥐어야지만 집에 돌아가겠다는 딸에 이끌려 집 앞 마트를 찾았다. 초코파이 한 박스를 계산하니 휴대전화에 문자가 온다. 제2차 경기도 재난기본소득 차감 안내-사용금액 3천900원, 남은 금액 9만6천100원. 1982년생이라 2일 신청했던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이 하루 만에 입금이 된 것. 경기도가 설 명절 전까지 지급해주겠다고는 했지만 하루 만에 입금 될 줄이야. 깜짝 놀라면서 아직 9만6천원이나 남았다는 문자를 받으니 뭔가 든든함까지 느껴진다. 자신의 최애 간식인 초코파이를 손에 쥔 딸 아이의 해맑은 미소는 덤이다. 지난 1일부터 접수를 시작한 제2차 경기도 재난기본소득은 3일 기준 310만6천명이 신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체 경기도민 1천343만8천명의 23.1%에 달한다. 자신이 태어난 해에 맞춰서 신청해야 하는 제한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매우 높은 수치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 정신에 도민들이 호응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10만원을 받는다고 삶이 나아지진 않겠지만, 1년 넘게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는 우리에게 작은 위로가 돼 준 것만은 틀림없다. 이 10만원이 향후 내가 더 내야 할 세금이라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그래도 이 10만원이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그만큼 지금 당장 답답하고 막막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지사가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에서 독주하고 있다. 지지율이 30% 넘게 나온 조사결과도 있다. 일각에서는 이 지사가 너무 빨리 독주해 오히려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이 지사가 주창한 기본소득에 국민들이 호응하고 있다. 지지율은 계속 오른다. 당정은 뒤늦게 보편지원을 논의하고 있다. 끌고 가는 자와 끌려가는 자로 나뉘고 있다. 이 지사가 너무 빨리 독주한다고 분석하는 사람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시간은 더 빨리 흐르고, 어느덧 차기 대선을 위한 당내 경선은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 이호준 정치부 차장

[지지대] 외교에 공짜는 없다

1999년 6월16일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이 북한에 보내는 통일의 소 1천마리 중 1차분 500마리를 트럭에 싣고 판문점을 통해 방북했다. 국민의 가슴을 뜨겁게 한 정 회장의 대장정은 남북한 교류협력사업의 밑거름이 됐다. 이 순간을 세계적인 미래학자이자 문명비평가인 기소르망은 20세기 최후의 전위예술이라고 표현했다. 이후 김대중 대통령이 하늘길을 열어 평양을 방문하고 노무현 대통령은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땅의 길인 평양~개성고속도로를 달려 평양에 도착했다. 정 회장의 방북을 계기로 금강산 관광이 시작됐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은 개성공단 건립이라는 남북경협의 대표사업을 만들어 냈다. 불과 4년 전에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 최고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세 차례의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은 통일을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6ㆍ15남북공동선언(1차), 핵 문제 해결을 위한 3ㆍ4자간 정상회담 추진을 담은 10ㆍ4 남북공동선언(2차),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3차)을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은 오늘날까지 주민의 인권에 눈을 감았고 핵 문제는 여전히 대한민국을 위협하고 있다. 심지어 남북경협의 상징인 남북공동연락소도 폭파했다. 정치권이 산업통상자원부 직원에 의해 삭제된 북원추(북한지역 원전 건설 추진방안) 파일을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결국, 대통령까지 나서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라며 노기를 감추지 않았다. 산업부 해명대로 비핵화를 전제로 남북 경협 활성화를 대비한 아이디어 차원으로 검토할 수 있다. 진보성향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민족=동질성 회복이라는 명분으로 북한에 아낌없이 주는 키다리아저씨가 됐다. 우리나라는 탈원전하면서 북에 원전을 짓느냐는 모순도 천만번 양보하자. 김정은이 고맙다고 할까? 정상회담 선언문에 서명하고도 지키지 않는 그들이다. 외교는 주고받는 것이 기본 전제다. 외교에 공짜는 없다. 허망한 대북환상에서 벗어나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김창학 정치부 부국장

[지지대] 아웅 산 수치 구금

우 탄트는 필자의 어린 시절 유엔 사무총장 이름이었다. 1960년대 초반 아시아 최초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전임 사무총장들보다 5년 정도 더 자리를 지켰었다. 버마라는 나라 이름도 그때 처음 들었다.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는 전임 사무총장의 사고사(事故死)로 현재까지 최장기 사무총장으로 남아 있다. 처음으로 3선 제의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를 고사하고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낯선 나라였던 버마에 대한 인상은 초등학생이었던 필자에게도 나쁘진 않았다. ▶그로부터 20여년 정도 지난 뒤 이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바뀌었다. 이 나라 독립영웅 이름을 딴 아웅 산 국립묘지에서 발생한 폭발사건 때문이었다. 1983년 10월9일이었다. 북한 공작원 3명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미리 설치한 폭탄을 터뜨렸다. 이로 인해 서석준 부총리를 포함한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했다. ▶30여년이 흐른 뒤 미얀마로 국호를 바꾼 이 나라에선 민주화가 이뤄졌다. 아웅 산 수치가 이끌던 민주진영의 총선 승리로 군부독재를 종식시켰다. 53년만이었다. 세계가 환영했고 열광했었다. 민주화열기가 동남아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공교롭게도 아웅 산 수치는 이 나라 독립영웅 아웅 산의 딸이다. ▶그랬던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또다시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 외신은 미얀마 군부가 지난 1일 새벽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 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 동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전했다. 아웅 산 수치 고문은 국민에게 쿠데타를 거부하고 항의 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미얀마 정국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권력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이양됐다고 발표했다. 쿠데타는 미얀마 의회가 개회하는 날 새벽에 감행됐다. 국영 TV라디오 방송은 기술적 문제로 방송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했다. 수도인 네피도는 물론 최대 도시 양곤 등지에서 인터넷과 전화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하루 빨리 회복돼야 하겠다. 꼭 남의 나라만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코로나 시대 결혼식

영화 칠드런 오브 맨(Children Of Men)은 더 이상 아기가 태어나지 않는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전 세계 모든 여성이 임신 기능을 상실해 인구가 소멸해 가는 사회는 정상 작동이 불가능해지면서 폭동과 테러가 일어나고, 국가는 무정부 상태가 된다. 인류는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다시 성장해 아이를 낳으며 발전해 왔는데 이것이 무너지면서 대혼란에 빠지게 된 것이다. 영화는 극단적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인구소멸 문제는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처음으로 출생자 수보다 사망자 수가 많은 데드크로스(Dead cross)에 접어들었다. 인구통계에 따르면 2020년 12월31일 기준 주민등록인구는 5천182만9천23명으로 전년도 말보다 2만838명(0.04%) 줄었다. 지난해 출생자는 27만5천815명으로 전년 대비 10.65%(3만2천882명) 감소했다. 사망자 수는 전년 대비 3.10%(9천269명) 늘어난 30만7천764명이다. 지난해 처음 총 인구가 감소했지만, 이제 시작이다. 출생아 수의 급격한 감소 배경에는 혼인 감소가 있다. 계속 감소하던 혼인 건수가 코로나19까지 겹쳐 바닥을 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혼인 건수는 1만8천177건으로 전년 11월 대비 11.3% 감소했다. 지난해 4월과 5월 혼인 건수는 전년 동월 대비 각각 21.8%, 21.3% 급감했다.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아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계속되면서 결혼식에 50명 이상 모이면 안 된다. 때문에 예식장 계약을 마친 많은 예비부부가 결혼식을 취소하거나 연기했다. 위약금을 물며 금전적 손실을 입은 사람도 많다. 일부는 마냥 미룰 수 없어 마스크를 쓴 채 스몰웨딩을 하기도 한다. 결혼을 하겠다는 신랑신부들은 웨딩홀의 갑질에 울고 있다. 2.5단계에선 결혼식에 50명 미만의 하객만 초대할 수 있는데 200~300명의 식대를 내라는 것이다. 예식의 최소인원 기준을 내세우며, 코로나로 인한 손실을 신혼부부에게 뒤집어 씌우는 행태는 예식장의 갑질이다. 정부는 일부 웨딩홀의 갑질 행태를 방관해선 안된다. 결혼을 해야 아이를 낳을 것 아닌가.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마스크 쓴 고양이

국내에서도 반려동물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첫 사례가 나왔다. 최근 집단감염이 발생한 경남 진주 국제기도원 관련 확진자가 기르던 고양이 한 마리가 감염됐다. 주인이 양성 판정을 받은 뒤 돌봄장소를 옮기는 과정에서 사람과 동일한 방식으로 진단검사한 결과 감염이 확인됐다. 지난해 3월 홍콩에서 세계 최초로 반려견에서 코로나19 양성 반응이 나왔다. 국외에선 코로나에 감염된 반려동물이 기침, 설사, 구토 등의 증상을 보였다고 보고됐다. 일각에서 반려동물이 코로나19 숙주가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으나, 세계보건기구 등은 이런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중수본도 세계적으로 인간에게서 반려동물이 감염된 사례가 몇건 보고됐지만, 반려동물로부터 인간이 감염된 사례는 아직 없다고 했다. 인류 감염병 역사에서 페스트, 에볼라, 탄저, 말라리아, 황열, 메르스, 사스, 지카열 등 많은 감염병의 등장과 확산에 조류, 박쥐, 쥐, 원숭이, 침팬지 등의 동물이 관여됐다. 코로나19도 그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양이가 코로나에 걸렸다고 해서 민감하게 반응하거나 과잉 대응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다만 방역당국은 반려동물과 일상을 함께하는 많은 사람이 불안감을 느껴 반려동물 감염 사례 여파를 조사 중이다. 동물이 사람에게, 거꾸로 사람이 동물에게 병원체를 퍼트릴 수 있다. 인수공통감염병이 그것이다. 바이러스든, 세균이든, 기생충이든 병원체를 가리지 않는다. 수의학계를 중심으로 원 헬스(One Health)를 강조하며 이를 연구하는 사람도 있다. 원 헬스는 사람의 건강은 동물의 건강과 직결되며 동물이 아프면 사람도 아프다는 뜻이다. 이는 동물과 사람 간 전파가 이뤄지는 감염병ㆍ전염병 뿐만 아니라 유해화학물질 등 건강 유해인자의 경우도 사람보다 반려동물이 먼저 반응해 질병을 앓거나 사망하는 사례에서 잘 입증되고 있다. 코로나 감염이 의심되거나 밀접접촉으로 집에서 격리생활 하는 사람은 반려동물을 가까이 하지 않는 등 동물방역에도 신경은 써야 한다. 개나 고양이에게 마스크를 씌우는 사례가 종종 있는데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동물에게 직접 소독제를 뿌리는 것도 금물이다. 동물감염을 계기로 유기가 늘어날까 걱정이다. 방역당국은 반려동물 관리 지침을 마련해 불안과 혼란을 막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당신은 집이 있는가

『집 없는 시대의 문학』은 문학평론가 이동하의 첫 평론집이다. 1985년에 펴냈으니 햇수로 36년이 지났다. 20대 청년에 만났던 이 해묵은 책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이유는 한 가지다. 평론에서 제기했던 문제의식이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평론집 제목이 된 집 없는 시대의 문학의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마르틴 부버는 인간에게 살 집이 있는 시대와 그것이 없는 시대라는 패러다임을 가지고 서구의 정신사를 유려하게 설명한 적이 있다. 그 글을 읽고 강렬하게 떠오른 상념은, 부버가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우리의 근대 정신사를 살 만한 집이 마련되지 않은 시대로 규정할 수 있지 않겠느냐라는 것이었다. 백여 년 전에 강요된 개국 이래 실로 숱한 이데올로기와 주의ㆍ주장이 이 땅을 쓸고 지나갔으되, 그 어느 것도 우리들이 들어가 편안히 쉴 만한 집은 되지 못하였다. ▲이른바 영끌이란 신조어가 시대를 풍미(風靡)하고 있다. 주택 규제가 전방위로 펼쳐지자 영혼까지 끌어 모아 대출을 받아 집을 사려고 몰려든 것이다. 영혼까지 탈탈 털어야 하는 그 불안과 절박감에 몰린 사람들이 어디 2030 뿐이겠는가. 그동안 스무 번도 넘게 내놓은 부동산 대책은 속수무책이었다. 이는 대통령 국정 지지율 하락의 원인으로 작용했고, 국토부장관 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급기야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설날 전까지 특단의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설이 점차 다가오면서 어떤 대책이 나올지 모두가 목을 빼며 기대하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집이 가지는 이중의 의미 모두에 짓눌려 살고있는 셈이다. 좌파, 우파, 진보, 보수, 페미. 이동하의 말처럼 지금까지 숱한 이데올로기와 주의ㆍ주장이 지나갔으나 그 어느 것 하나 안주할 만한 집이 없다는 정신적 황폐함과, 영끌로 실제 집(물리적)을 사야하는 현실적 고단함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어떤가. 당신은 집이 있는가. 박명호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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