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말 한마디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 Good words cost nothing(고운 말에는 돈이 들지 않는다), 口禍之門(구화지문,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다) 말 한마디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그때그때 다르겠지만 말 한마디는 중요하다고, 선조들은 속담과 고사성어를 통해 전해준다. 더욱이 도움이 필요하거나 어려움에 처한 상황에서의 따듯한 말 한마디는 가뭄 속의 단비로 다가올 수 있다. ▶최근 수원의 한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다가 보이스피싱에 관한 얘기가 화두가 됐다. 70세가 넘은 여사장님은 오전에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아 하마터면 큰 봉변을 당할 뻔 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과는 연고가 없는 서울시 금천구 얘기를 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있어 경찰에 확인을 했고, 다행히 보이스피싱을 당하지 않았다고 했다. 일행들과 함께 천만 다행이라는 위로의 말을 건냈지만, 사장님의 푸념은 이제 시작이었다. 보이스피싱이라는 생각에 가슴을 졸이며 경찰에 전화를 했는데, 경찰은 보이스피싱 맞는것 같네요. 그래도 피해 안봤으니까 됐네요라고 했단다. 위로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고 했다. 다만 너무나 무성의한 경찰의 한마디는 자신의 가슴에 비수가 꽃힌 듯 괴로웠다고 한다. ▶지난 주 한 어르신이 소상공인 새희망 자금 신청을 위해 수원시 장안구의 한 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사업자등록증 등 각종 구비 서류들을 하나도 갖추지 않은 것은 물론 잔뜩 긴장까지 했다. 다행히 이를 담당하던 기간제근로자의 도움으로 모든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일 후 센터에 떡이 돌려졌다. 상황은 이렇다. 도움을 받은 어르신은 그 날 기간제근로자로부터 받았던 따뜻한 말 한마디와 친절에 대해 아들에게 얘기를 했다. 제가 도와드릴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한 마디가 너무 고마웠나보다. 마침 인근에서 떡집을 하는 아들은 고마움을 떡을 돌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추위가 기승을 부리며 겨울로 접어들고 있다.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더욱 의미있게 다가오는 요즈음이다. 이명관 사회부장

[지지대] 수원청개구리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 청개구리 말을 거꾸로만 이행했다. 엄마 청개구리가 물가에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그래야, 아들 청개구리가 산에 묻어줄 것으로 믿었다. 아들 청개구리는 마지막으로 효도한다고 물가에 묻었다. 그래서 비만 내리면 아들 청개구리는 엄마 청개구리 무덤이 떠내려갈까 걱정하면서 울었다. 어렸을 적 밖에서 늦게까지 놀다 들어오면 어머니가 늘 들려줬던 우화다. ▶수원청개구리가 있다. 몸길이는 25~40㎜다. 등은 짙은 초록색이다. 배는 흰색이다. 콧구멍부터 목덜미를 지나 몸통에 이르는 불규칙한 모양의 담갈색 줄무늬가 있다. 수컷의 울음 주머니는 옅은 황색이다. 울음소리는 청개구리보다 더 낮고 어떨 때는 날카롭다. 이 녀석들의 이력서다. 번식기 외에는 관목이나 풀잎 위에서 서식한다. 말라 죽은 나무에서 겨울잠을 자고 5~7월 논에서 번식한다. ▶일본 생물학자인 구라모토가 수원에서 발견해 수원이란 이름이 청개구리 앞에 붙었다. 이 녀석들도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1급으로 지정된 게 지난 2012년 5월이다. 짝짓기 때면 울음소리가 꽥꽥하고 제법 높다. 웡-웡-하고 낮은 소리로도 운다. 분명 처연하고 섧은 이유가 있을 터이다. 우리가 해독할 수 없는 주파수로 우는 까닭이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수원청개구리가 최근 화성 화옹지구 내 화성습지에서 발견됐다. 수원이 아닌 곳에선 처음이다. 이상철 한국양서파충류학회장은 화성습지 보존계획을 수립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앞서 장이권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도 수원청개구리 서식지를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수원청개구리를 지키기 위해선 서식지 보호가 필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화성습지의 생태계도 우수하다. 인근에 매향리 갯벌과 화성호 등이 있기 때문이다. 해양수산부 조사 결과 연안습지 1등급을 받았고, 람사르 습지 등재기준도 3가지나 충족하고 있다. 그렇다면 수원청개구리가 우는 까닭은 무엇일까. 엄마 산소가 물에 떠내려갈까 걱정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생존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기우(杞憂)이길 바라는 마음이 필자만의 짧은 생각이었으면 좋겠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위드 코로나’ 시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고 일상에 끼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위드(with) 코로나 시대가 됐다. 백신과 치료제가 언제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코로나를 받아들이고, 바이러스와 동행하며 사는 수 밖에 없다. 침체돼 있던 산업계에서 코로나 시대에 맞춰 체질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타격이 컸던 호텔ㆍ여행ㆍ관광업계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콧대 높은 글로벌 특급 호텔들도 변화에 나섰다. 재택근무 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호텔 객실을 업무용 공간으로 빌려주는 재텔(재택+호텔) 근무 프로모션을 도입했다. 세계 최대 호텔 체인 인터콘티넨탈그룹은 호텔에서 일하기(Work for hotel)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해외여행길이 막힌 항공사들은 국내 여행 수요를 잡기 위해 목적지 없는 비행 상품을 내놨다. 호주 콴타스항공은 지난달 시드니에서 출발해 8시간30분간 호주 랜드마크를 돌아본 뒤 시드니로 돌아오는 항공편을 선보였는데 10분만에 매진됐다. 아시아나도 대형 여객기를 타고 인천~강릉~포항~제주를 비행한 뒤 인천으로 돌아오는 A380 한반도 일주 비행을 진행해 호평을 받았다. 여객기 좌석을 뜯어 화물 전용기로 개조하는 항공사들도 있다. 일본은 위드 코로나 사회 정착을 위해 위험한 실험도 했다. 야구 경기에 대규모 인원을 입장시켜 경기를 관람토록 한 것이다. 마스크를 쓴 관중들은 홈런을 터뜨리자 환호성을 지르고, 하이파이브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일본정부는 구름 관중을 대상으로 고해상도 카메라, 전파 기기, 이산화탄소 측정기 등을 활용해 자료를 수집했다. 혼잡한 장소, 동선, 관중의 마스크 착용 비율과 행태 등을 촬영했는데, 마스크를 쓰고 큰 소리로 응원하거나 음식을 먹을 때 발생하는 비말에 대해선 수퍼컴퓨터까지 동원해 분석하기로 했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안을 1일 발표했다. 3단계로 구성됐던 거리두기를 5단계로 세분화해 정밀방역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이번 발표는 정부가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위드 코로나 시대를 선언하고, 이에 맞게 거리두기 단계를 현실화한 것이다. 민생경제 숨통을 터주기 위해 민간에 자율성을 부여한 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마스크 착용을 일상화하면서 방역 수칙을 잘 지켜야 방역단계 강화로 인한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대학입시 스펙 조작

서울 강남구 소재 A학원은 2015년 말부터 입시컨설팅 전문학원을 운영했다. 이 학원은 인터넷 광고 등을 통해 대학 수시전형의 일종인 학생부 종합전형(학종)으로 대학에 진학하려는 고교생을 모았다. 학원장 B씨는 학생별로 강사를 지정해 학생들이 각종 대회에 낼 논문과 발명보고서 등을 대신 작성하게 했다. 대필 대가로 한 건당 100만~560만원을 받았다. 학생들은 강사가 작성한 논문 등을 스스로 창작한 것처럼 대회 주최 측에 제출, 그 중 일부는 대회에 입상했다. 학생들의 수상 실적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됐다. 경찰이 학원 원장을 구속했다. 학원 관계자와 고교생 78명도 공정한 대회 심사를 방해한 혐의로 수사하고 있다. 학종이 대학입시 수시전형에서 비중이 크다보니 이런 비리가 생기고 있다. 수능시험을 더 많이 반영하는 정시 전형과 달리, 수시 전형은 대개 학교생활기록부 등에 적힌 사안을 토대로 평가해 부모 찬스로 스펙을 조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학종의 명확한 합격기준이 애매하다보니 학부모들은 입시 스펙은 고고익선(高高益善)이라 생각해 스펙 인플레이션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각 학교의 재량과 담당 교사의 자유의지가 반영돼 학생 개인의 능력보다 다른 요소들이 가미될 수 있어 공정성 논란도 일고 있다.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학종이 불신받는 것은 제도 특성상 부정 개입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입시용 스펙 조작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저지를 수 있는 일상적 비리가 된 것 같다. 금수저 수험생들이 부모 재력과 인맥을 활용해 고교생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실적을 만들고 이를 스펙으로 내세워 명문대 입시 관문을 통과한 사례들이 알려져 허탈하게 한 사건이 종종 있었다. 단순한 문제 풀이 능력이 아니라 학생의 잠재력과 열정, 성실성까지 두루 평가하겠다는 것이 학종의 도입 취지다. 그러나 이를 평가하기 위한 자료의 진정성에 문제가 있다면 제도는 신뢰성이 떨어져 존립 근거를 잃게 된다. 교육당국과 대학은 학종 평가 자료의 진위를 정밀하게 판별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고교 교과과정의 범위를 넘어서거나 학교 틀을 벗어난 활동과 실적은 입시에 반영하지 않아야 한다. 스펙 조작은 범죄행위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교원 성(性)비위

▶2016년 구리남양주 지역 공립학교 A교사는 학생을 성폭행해 파면 처분을 받았다. 2017년 파주의 한 사립학교 B교사는 재직 학교 학생을 강제추행 및 성희롱했다 해임됐다. 2018년 시흥의 공립학교 C교사는 성추행 및 부적절한 행위로 해임 조치됐다. 성폭행성희롱 등 성(性)비위가 끊이지 않고 있는 교육계의 현실이다. 경기도교육청 교원이 가해자가 돼 학생 대상 폭행ㆍ성비위ㆍ언어폭행 징계 현황(2016년~ 2018년)에 따르면 공무원 징계규정 가운데 가장 높은 수위인 파면만 9명이었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더불어민주당, 안양만안)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성비위 교원에 대한 징계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18년부터 2020년 7월까지 교육부가 집계한 초중고와 대학 교원의 성비위 사건은 전체 631건이었고, 이중 파면이나 해임된 비율은 20.9%(132건), 수업배제 비율은 1.6%(10건), 전출ㆍ전근 조치 2건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부터 2020년 7월까지 초중고와 대학 교원의 성비위 사건 중 파면ㆍ해임되거나 수업배제, 전출/전근 비율이 매우 낮았다. 사회적으로 가장 모범을 보여야 할 교직사회가 성비위 사건에 대해 너무 관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성비위로 교사가 교단으로 복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엔 텔레그램을 통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공유에 교사들도 가담한 것으로 확인돼 교육계에도 파장이 커지고 있다. 일벌백계뿐 아니라 교사 선발 과정에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엇보다 학생을 상대로 한 교원들의 성비위 사건은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만큼 형사처벌과는 별도로 교육청 징계위원회에서 정하는 행정처분 역시 영구퇴출에 해당하는 수위에서 결정돼야 한다. 강현숙 사회부 차장

[지지대] 강철 리더십

2013년 프로야구 10구단으로 창단돼 2015년부터 1군 무대에 뛰어든 KT 위즈가 첫 포스트시즌 진출의 꿈을 6시즌 만에 이뤄냈다. 창단 4년동안 하위권을 맴돌던 KT 위즈는 지난해 6위에 올라 가능성을 예고했고 올해 그 꿈을 이뤘다. 그 중심에 초보 감독 이강철이 있다. 2018년 11월 3대 사령탑 부임 이후 2년 만에 일궈낸 값진 결실이다. ▶이강철 감독은 현역시절 해태왕조의 마운드를 이끌며 국내 프로야구 사상 유일하게 10년 연속 두 자리수 승리에 150이닝 이상 투구, 100탈삼진 이상을 기록한 전설적인 투수다. 2006년 은퇴 후 KIA에서 지도자로 변신해 넥센과 두산 등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50대 중반에 KT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감독은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다. 그의 성품은 리더십에서도 나타난다. 선수에 대한 믿음과 인내를 바탕으로 잠재력을 이끌어 내고 있다. 믿음을 가지면 오랜 시간이 걸려도 선수의 활약을 기다린다. 붙박이 주전으로 도약한 포수 장성우와 유격수 심우준, 외야수 배정대, 조용호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코칭스태프는 물론 주전 선수들과 단톡방에서 대화를 하며, 농담도 주고받으며 소통한다. 이 감독은 당장의 눈앞 성적 보다 멀리보는 큰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지도자다. 취임 당시 도전ㆍ협업ㆍ시스템으로 가을야구 진출을 이루겠다고 약속했고 2년 만에 약속을 지켰다. ▶이강철 감독은 현역시절 이름 때문에 아이언 맨으로 불리웠다. 그러나 그의 성품과 리더십은 정반대다. 강함 보다는 부드러움, 선수에 대한 신뢰감 구축이 KT가 추구한 인성ㆍ육성의 야구를 열매맺게 했다. 구단은 계약기간 만료를 1년 앞두고 특급 대우의 재계약으로 예우했다. 이강철 감독의 리더십이 가을야구와 다음 시즌 어떤 마법으로 다가올 지 팬들의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다. 황선학 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중국의 자금성 띄우기

팔도 꼬집어 보고 다리도 꼬집었다.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이 꿈인지 생시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붉은 벽돌의 장대와 금빛 처마를 올려다보면서 주눅이 들었다. 조선의 선비가 목격한 자금성(紫禁城)의 위용이었다. 1780년이었다. 연암 박지원 선생 얘기다. 당시 청나라를 보고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의 한 대목이다. ▶연암 선생은 이 책을 통해 경고했다. 청나라를 북벌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라고 말이다. 서양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당연히 금서로 분류됐다. 몰래몰래 읽혔다. 베스트셀러였다. 없어서 못 구할 판이었다. 18세기판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금서에서 풀린 건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였다. ▶조선 사신이 자금성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축구장 72개(72만㎡)가 들어갈 정도로 압도적이기 때문이었다. 자금성(紫禁城)이 올해로 600살이다. 20만명이 넘는 인력이 동원돼 15년에 걸쳐 완성됐다. ▶중국이 요즘 자금성 띄우기에 열심이다. 세계를 주름잡았던 과거 명청시대를 재연하겠다는 포석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열망이 고스란히 녹여졌다. 기념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물론 코로나19로 하루 입장인원이 오전과 오후 각각 1만5천명으로 제한됐다. 그 끝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지구촌 한복판에 다시 우뚝 서겠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항일투쟁 기간 자금성을 봉건주의 잔재라며 애써 깎아내렸었다. 그랬던 그도 1949년 10월1일 자금성에서 건국행사를 열었다. 건축물 70여개와 방 9천999개가 있었지만 많이 소실됐다. 하지만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중국 공산당이 자금성 띄우기에 올인하는 까닭은 명쾌하다. 한국전쟁을 미국에 저항하고 북한을 돕는(抗美援朝) 전쟁이라는 논리에서 더 나아가 미국이 침략한 전쟁이라고 우기는 그들이다. 분명한 역사 왜곡이다. 1세기 정도 수난의 역사가 있었지만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임을 지구촌에 선포하겠다는 그 음흉한 의도를 경계해야 한다. 연암 선생의 200여년 전 경고는 그래서 아직도 유효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코로나19와 결혼

8월 말, 여고 동창생이 9월 중순 아들이 서울에서 결혼한다고 알려왔다. 예비 신랑ㆍ신부의 아름다운 웨딩사진이 담긴 모바일 청첩장을 보며 친구에게 아들 키우느라 수고했다고, 축하한다고 했다. 하지만 결혼식은 예정된 날짜에 열리지 못했다. 코로나19로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어서다. 친구 아들의 결혼식은 위약금을 물고 내년 봄으로 미뤄졌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 삶 곳곳에 충격을 줬다. 결혼에도 영향을 미쳤다. 통계청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력 실시한 지난 4월 혼인 건수는 1만5천670건으로, 1~3월 평균(1만9천여건)보다 3천300건 정도 적었다.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하면 20% 이상 낮다. 1년 중 결혼이 가장 많은 달인 5월에도 혼인 건수는 1만8천여건에 그쳤다. 전년도 5월보다 20% 줄었다. 예년 같으면 9, 10월에도 결혼이 많은데 올해는 거의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엄격한 방역 지침에 예비부부들이 결혼식을 미루거나 취소한 경우가 많다. 이 과정에서 예식장과 위약금 관련 다툼이 크게 늘었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9월에 예식장 예약 취소 관련 분쟁이 10배 넘게 증가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결혼식장 계약 관련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코로나 방역 지침으로 결혼식을 미루거나 취소할 경우 위약금을 안 내도 된다는 내용이다. 결혼식이 어려워진 것은 우리나라만이 아니다. 미국에서도 결혼식 하객 수를 제한하는 주(州)가 많다. 영국은 최근 하객은 15명까지, 음료ㆍ음식 섭취 금지, 노래는 되지만 환호 유발은 안됨 등으로 결혼식 지침을 까다롭게 업데이트했다. 결혼이 미뤄지면 당사자들이 힘들지만 경제에도 악영향을 준다. 예식업ㆍ미용업 등 결혼과 직결된 산업이 타격을 받는다. 신혼부부가 가정을 꾸리기 위해 구매하는 여러 제품 수요도 없어진다. 사라진 결혼은 우리나라에 더 치명적이다. 그렇잖아도 심각한 출산율이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혼외 출산이 거의 없어 결혼이 사라지면 출산도 줄어든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 2분기 0.84명으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코로나 충격의 가장 장기적인 흔적은 미뤄진 결혼으로 인한 출산 급감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노인보호구역

운전 시 가장 주의해야 할 점은 보행자의 안전이다. 도로 위의 모든 보행자는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가 있지만, 교통약자인 어린이와 노인은 각별히 더 보호받아야 한다. 때문에 어린이와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 어린이보호구역과 노인보호구역을 지정하고 있다. 어린이보호구역(School Zone)은 교통사고 위험으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차량 통행과 속도 등이 제한되는 구역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등의 주변도로에서 운전자들은 30㎞ 이내 속도 제한 등 안전수칙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스쿨존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고, 사망사고도 많다. 2019년 충남 아산의 한 초등학교 앞에서 초등 2년생인 김민식군이 차에 치여 숨지면서 스쿨존에서의 교통사고 처벌을 강화한 도로교통법이 개정(일명 민식이법)됐다. 스쿨존 내 신호등과 과속방지턱을 늘리고 과속단속카메라 설치도 의무화했다. 노인보호구역(Silver Zone)은 노인들의 보호를 위해 양로원, 경로당, 노인복지시설, 요양병원, 공원, 시장 주변 등의 주변도로 일정 구간에 지정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늘면서 노인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노인들은 노화로 인해 위기대처 능력이 떨어지고, 뼈가 약해 경미한 사고에도 심한 부상을 입게 되며, 후유증으로 인한 합병증도 많다. 하지만 노인보호구역은 지정 수도 적고 신호등이나 CCTV, 과속방지턱 등 안전 시설이 태부족이다. 경기도에 어린이보호구역은 3천828곳인 반면 노인보호구역은 267곳이다. CCTV도 어린이보호구역은 443대인데 노인보호구역은 15대다. 또 관련법이 개정돼 시속 30㎞로 강력 규제하는 어린이보호구역과 달리 대다수 노인보호구역은 교통 원활 등을 이유로 50~60㎞로 제한하고 있다. 시속 30㎞로 제한할 수 있지만, 강제가 아니어서 실효성이 떨어진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분석시스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도내 14세 이하 어린이 교통사고 사상자는 4천359명(사망 1명)이다. 반면 65세 이상 노인 교통사고 사상자는 8천916명(사망 222명)으로 어린이 사상자의 2배다. 보행속도가 느리고 인지능력도 떨어지는 노인들의 안전을 위해 실버존을 늘리고 예산도 증액하는 등 정책 강화가 절실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정조대왕원행차

최근 지역 정치권이 정조대왕능행차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작업에 착수했다. 지역 정계 인물들과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정조대왕능행차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하고 있는데 과연 이 표현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지역의 한 학자는 정조대왕능행차가 아니라 정조대왕원행차가 맞다고 주장했다. 이 학자는 일반인의 무덤은 묘라하고 왕족의 무덤은 원, 왕의 무덤은 능이라 부른다고 했다. 현재 화성시에 위치한 융릉은 조선 영조의 둘째 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1735~1762ㆍ사도세자)와 부인 헌경왕후 홍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1762년(영조 38) 5월21일 뒤주 속에서 죽은 사도세자는 7월23일 배봉산 아래 언덕에 예장됐으며 묘호를 수은묘(垂恩墓)라 했다. 1776년(정조 즉위) 3월 수은묘를 영우원(永祐園)으로 개칭하고 존호도 사도에서 장헌(莊獻)으로 개칭했다. 1789년(정조 13) 영우원은 다시 현융원(顯隆園)으로 바뀌었고 같은 해 10월7일 현 위치로 이장됐다. 정조가 죽은 후 1899년 11월 장종(莊宗)으로 추존되고 무덤도 융릉(隆陵)이라는 능호를 받았으며 그해 12월에는 장종에서 장조(莊祖)로 묘호가 다시 바뀌었다. 지역 정치권이 추진하는 정조대왕능행차는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1752~1800)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을묘년(1795년)에 진행한 대규모 행차를 말한다. 정조대왕은 24년의 재위기간 동안 친아버지인 장조(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성 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옮긴 후 11년간 총 13번의 원행을 했다. 그 중에서도 즉위 20년 해인 1795년 윤 2월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행했던 대규모 행차가 을묘년 화성행차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면 정조대왕 능행차보다는 정조대왕원행차나 정조대왕 화성행차가 적합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역사의 기록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정조대왕능행차는 역사의 기록 어디에도 없다. 최원재 문화부장

[지지대] 금추와 코로나

그야말로 배추가 아니라 금(金)추다. 올해는 54일이라는 역대 가장 긴 장마와 3차례나 한반도를 덮친 A급 태풍 등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크게 줄면서 배추는 최근 한때 포기당 1만2천원을 넘나든 귀하신 몸값을 자랑했다. 코로나19의 장기화에 따라 내수 경제가 바닥을 드러내는 등 어려움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배추의 금(金)추화는 서민들의 가슴을 더욱 후벼파는 역할을 했다. 김장철을 앞두고 김장을 포기하는 김포족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기도 했고, 일부 대형 유통업체는 치솟는 배추 가격을 맞추지 못해 포기김치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다. 한 대형마트는 어렵게 마련한 한정판 배추(포기당 2천원)를 마치 배식하듯이 1인당 2포기로 판매를 제한했는데, 이마저도 반나절 만에 동나는 일마저 벌어졌다. 그렇게 배추의 상한가는 한동안 지속되고 있었다. ▶대한민국 국민에게 김치는 최고의 밥상 친구다. 밥에도, 라면에도, 심지어 치킨이나 스파게티를 먹으면서도 김치를 찾는다. 그런데 최근 발효시킨 배추와 관련된 재밌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코로나19 사망자 수가 적은 이유가 김치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프랑스 몽펠리에 대학 장 부스케 명예교수는 발효된 배추를 먹는 독일 등 일부 유럽국가와 한국, 대만이 코로나19 사망률이 낮다면서 발효된 배추의 유효 성분이 효소 ACE2(안지오텐신 전환 효소2)를 억제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치 추출물이 바이러스가 증식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이다. 김치는 2003년 사스가 유행했을 때에도 국내에서 사망자가 나오지 않아 전 세계적으로 큰 조명을 받기도 했다. ▶그런 배춧값이 다시 안정세로 돌아섰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가을배추 출하도 한몫해 김포족이 상당수 돌아서 김장을 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김치의 효능도 중요하지만, 안정세에 접어든 배춧값이 한없이 부러운 요즘이다. 국민들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 지 오래다. 배춧값처럼 극적인 반전을 이뤄내 코로나19도 안정세에 접어들어, 결국에 종식 선언이 발표되는 날을 기다려본다. 대한민국 대표 음식 김치와 함께 하면서 말이다. 김규태 경제부장

[지지대] 차부둬, 후스, 그리고 일기

어느날 차부둬(差不多) 선생이 중병에 걸렸다. 주민들은 의사 대신 수의사를 데려왔다. 그는 많이 아팠지만 의사나 수의사나 같겠지라고 생각했다. 수의사는 그를 소 다루듯 치료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사는 것과 죽는 것 다 비슷하겠지라며 숨졌다. 그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를 모든 일에 달관한 군자라고 칭찬했다. 일일이 안 따져 덕이 있다는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그의 명성은 먼 곳까지 전해졌다. 모두 차부둬가 됐다. 언어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때부터 중국인들은 뭘 물어도 차부둬(差不多)로 얼버무렸다. 관용어가 됐다. 결국 중국은 흐리멍덩한 나라가 됐다. 후스(胡適)의 단편소설 差不多선생은 이렇게 끝난다. ▶그는 루쉰(魯迅)과 함께 20세기 초반 중국을 이끌었다. 후스는 근대화를 자연과학적 시각으로 접근했다. 반면, 루쉰은 인문과학적으로 들여다봤다. 물론 두 사람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없다. 후스는 중국이 뒤처진 이유를 자연과학이 서양에 밀렸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모든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처리하는 중국인들을 비꼰 셈이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중국은 달라졌다. 작은 포구였던 웨이하이(威海)는 동양의 미항으로 발전하고 있다. 대도시들은 뉴욕의 맨해튼을 떠올릴 정도로 마천루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그런데도 중국은 아직도 군밤과 군고구마를 파는 상인이 눈짐작으로 무게를 잰다. 차부둬 선생이 사라진 지 10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외신에 따르면 후스의 일기가 경매에서 238억원에 낙찰됐다. 그의 미국 유학시절인 19121918년 쓴 18권 분량의 일기다. 최근 베이징에서 열린 경매에선 1억4천만위안(238억원 상당)에 낙찰됐다. ▶가장 비싼 일기로 기록됐다. 그의 일기에는 미국 생활 초기 술, 카드놀이, 극장 등 연예 활동에 몰두한 흔적이 남아 있어 기록으로서 가치도 충분하다. 일기를 통해 20세기 초반 중국 지식인들의 고민이 읽힌다. 한 자연인의 일기지만 중국이 외국과 소통한 증거이자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제1원전 부지 탱크에 보관 중인 방사성물질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기로 했다. 국제사회와 주변 국가뿐 아니라 일본 내 강한 반대 여론에도 바다 방류를 강행 방침이다. 일본 주요 언론은 최근 정부가 후쿠시마 오염수 방사성물질의 농도를 낮춘 뒤 바다로 방류해 처분한다는 방침을 굳혔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후쿠시마 제1원전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폭발 사고로 가동이 중단돼 폐로작업이 진행 중인데, 핵연료 냉각수 및 지하수와 빗물 등 오염수가 늘고 있다. 매일 160~170t씩 발생한다. 운영사인 도쿄전력은 이를 정화장치로 처리 뒤 부지 내 탱크에 보관하고 있는데 지난 9월 기준 그 규모가 123만t이다. 저장용량이 한계에 이르는 데다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이유로 오염수를 해양 방류하기로 했다. 오염수가 방류되면 해류를 따라 필리핀, 일본, 러시아, 미국 캘리포니아, 적도 등 태평양을 한 바퀴 돌아 이르면 1년 내, 늦어도 2년 후에는 동해로 유입된다. 한반도 주변을 포함한 대양환경 오염이 불 보듯 뻔하다. 이로 인해 국민건강 위협은 물론 한국산 수산물에 대한 신뢰가 하락해 어민 생존권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도쿄전력은 오염수 1천t을 2차 처리해보니 주요 방사성물질이 기준치 미만으로 떨어졌다고 했다. 하지만 2차 정화 결과는 전체 오염수 중 극히 일부고, 구체적 정보도 공개되지 않아 검증이 필요하다. 또 오염수를 재처리해도 삼중수소(트리튬)라는 방사성 물질이 남긴 하지만 희석해 방류하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삼중수소는 음식이나 공기를 통해 몸속에 소량이라도 들어갈 경우 세포 손상이나 변형을 일으켜 각종 암을 유발한다. 일본 정부는 자국 내 지자체와 어업단체까지 반발하는 오염수 해양 방출의 위험성을 직시해야 한다. 오염수 방류 계획을 중단하고 국제사회가 수긍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내놔야 한다. 그린피스는 장기 저장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 정부는 국민 건강과 안전이 달린 만큼 일본에 강력하고 단호한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또 오염수 방류 피해가 예상되는 국가들과 공조하고, 국제원자력기구 등 국제기구에도 적극 개입을 요청하는 등 전방위적 외교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경기만 소금길

인천과 경기 서쪽 한강의 강구를 중심으로 북쪽의 장산곶과 남쪽 태안반도 사이에 있는 반원형의 만을 경기만이라 부른다. 해안선 길이가 528㎞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경기만은 연안을 따라 갯벌이 펼쳐져 있다. 경기만의 갯벌은 생명의 보고다. 드넓은 갯벌로 경기만에는 많은 염전이 만들어졌다. 구한 말 천일염이 먼저 들어온 곳은 인천 주안이다. 이후 시흥염전, 화성염전, 인천 포동염전, 대부도 동주염전, 영종도백령도영흥도 염전 등이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경기만의 갯벌은 산업화에 밀려 점차 모습을 잃어갔고, 소금 또한 사라져갔다. 수도권 집중 개발로 연안자원 감소와 환경 훼손이라는 문제에 직면했다. 인천 주안염전은 산업단지와 아파트촌으로 변했고, 영종도 염전은 비행장으로 바뀌었다. 소래염전 정도가 폐전 이후 소래해양생태공원, 시흥갯골생태공원으로 바뀌어 경기만 소금의 기억을 보존하고 있다. 갯벌 파괴, 염전 폐전 등으로 경기만 주민들은 떠밀려났다. 최근 난개발과 파괴의 역사를 가진 경기만을 생명과 평화, 순환과 재생을 통해 지역주민의 숨결이 느껴지는 삶의 현장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기문화재단이 경기만을 생명과 평화의 바다로 만들기 위해 나섰다. 2016년부터 경기만의 생태와 문화, 역사 등 다양한 자원을 활용해 경기만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에코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다. 경기문화재단은 그 일환으로 경기만 소금길을 만들었다. 경기만의 핵심자원인 갯벌과 이 곳에서 생산된 소금을 테마로 엮었다. 144km에 달하는 경기만 소금길은 시흥, 안산, 화성을 잇는 해안선을 따라 걸으며 경기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역사, 문화, 생태 자원을 만나 볼 수 있다. 경기문화재단이 2020 생명의 길, 경기만 소금길 대장정을 10월17일 시작, 11월8일까지 진행한다. 소금길 대장정은 시흥 연꽃테마파크에서 시작해 안산 대부도를 거쳐 화성 매향리스튜디오까지 각 일차별 구간을 따라 걷는 비대면 자율 여행이다. 코로나 시대 경기만 소금길 대장정은 새로운 대안 문화여행이다. 청명한 가을, 서해안 바다와 갯벌을 만끽하며 건강과 치유, 배움을 동시에 얻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다시 찾은 활기, 하지만 걱정 가득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전국적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로 낮춰졌다. 2.5단계까지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한지 두 달여만이다. 인천은 물론 두 달 동안 멈춰서 있던 사회가 다시 활기를 찾는다. 일부 노인정 등이 문을 열어 어르신들이 답답한 집안에서 벗어났고, 청소년들도 PC방이나 코인노래방 등을 이용하며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입장에서 가장 반가운 소식은 바로 아이의 등교다. 여름방학 이후 고작 일주일에 한 번 가던 학교를 세 번, 심지어 다섯 번도 간다. 아이의 등교 소식이 기쁜 이유는 단지 육아 탈출이 아니다. 아이가 학교에서 사회성을 익히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다는 점이 가장 기쁘다. 정해진 시간에 공부(수업)를 하고, 쉬는 시간엔 화장실을 다녀온 뒤 친구들과 노는 학교 생활. 그 생활은 아이에게 하나의 규칙을 배움과 동시에 사회성을 배우는 매우 소중한 시간이다. 학업 성취도가 떨어지는 문제는 이 다음이다. 아이 스스로 집에서 하는 공부와 놀이엔 한계가 있다. 학교가 문을 닫으니 결국 아이는 학원을 돌 수밖에 없고,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지 못하니 집에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는 게 고작이다. 하지만 자칫 코로나19가 대유행으로 번질까 걱정이 가득하다. 이미 1~2차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및 하향 등을 반복한 탓에 우리 모두 피로감도 크고 긴장감도 낮아진 상태다. 최근엔 코로나19 걱정에 독감 걱정까지 든다. 부랴부랴 병원에서 아이들에게 독감 백신을 맞추면서도 걱정이 크다. 사회적 거리두기 1단계일 때 우리 어른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위해 더 긴장하고 조심해야 한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를 다니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그리고 우리 모두가 조금더 빠르게 일상 복귀할 수 있도록.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ㆍ경제부장

[지지대] BTS 군면제

때아닌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 군면제 논란이 이슈가 됐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며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인 점 등 공로를 인정해 BTS 멤버들의 병역 면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야기는 정치권에서 먼저 나왔다. 민주당 노웅래 최고위원 등이 주장했고, 국정감사 시즌을 맞아 찬반 여론이 엇갈렸다. BTS의 사회, 경제적 긍정적 효과에 대해 전문가들도 높게 평가한다. 대한민국의 이미지, 한류를 주도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군면제 사안을 놓고 보면 마냥 찬성할 수만은 없다. 대한민국의 건강하고 정상적인 청년이라면 군 복무를 해야 한다. ▶2000년대 초 최고 인기를 누렸던 가수 유승준. 당시 미국 영주권자였던 그는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팬들에게 군복무를 약속했지만 한국국적을 포기했다. 이후 입국금지된 채 지금도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는 신세가 됐다. 유승준은 계속해서 입국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유치 않다. 여론은 싸늘하다. 이제 유승준이 아닌 미국 이름 스티브 유로 불린다. 모종화 병무청장은 지난 13일 국감에서 스티브 유가 한국에 올 경우 장병들의 상실감이 커진다고 우려했다. ▶명예를 중시하는 영국 등 유럽 왕실은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차원에서 젊은 왕자, 공주들이 군복무를 한다. 물론 의무는 아니다. 특히 영국 왕실의 왕위 계승 서열 5위인 해리 왕자는 2015년까지 무려 10여년 동안 군 생활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만큼 영국에서 군복무는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행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아들 군 휴가 문제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군대에 안 간 것도 아닌 휴가 사용을 놓고 논란이다. 추 장관 아들 문제를 보면 우리사회가 군 문제에 대해 얼마나 예민한지 보여준다. 군복무가 의무인 나라에서 누군가 특혜를 받았다는 것에 대해 시선이 곱지 않다. 결국 공정의 문제다. 우리의 군 복무는 억지로 끌려간다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해리 왕자까지는 아니더라도 BTS 멤버들이 자랑스럽고 씩씩하게 군 복무를 하는 모습은 그들의 세계적인 국위선양에 맞먹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여전한 채솟값 고공행진

채솟값이 계속 오르고 있다. 양배추 8㎏이 1만9천100원이다. 1년 전 6천750원보다 13.0% 뛰었다. 붉은 고추는 10㎏에 1년 전 7만1천50원에서 12만9천800원으로 82.7% 올랐다. 당근도 20㎏을 사려면 7만4천980원을 내야 한다. 지난해는 5만200원이었다. 1년 새 49.4% 뛰었다. 토마토도 10㎏당 2만8천750원에서 5만3천460원으로 85.9% 올랐다. 고공행진이다. ▶쌀값도 들썩거린다. 쌀 도매값은 지난주 20㎏에 5만2천740원이었다. 1년 전 4만6천470원보다 13.5% 올랐다. 평년가격 4만757원과 비교하면 인상률은 29.4%이다. ▶장보기가 겁이 난다는 주부들의 푸념도 현재진행형이다. 아내에게서 매일 듣는 게 물가 타령이다. 허튼소리가 아니다. 물론 가공할만한 전염병이 창궐했다. 1년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매일 마스크를 챙겨야 한다. 바깥으로 나갈 때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눈총을 받는다. 지하철이나 집회, 병원, 요양시설 등에서 마스크를 안 쓰면 벌금까지 내야 한다. 마스크가 아예 필수품이 됐다. ▶채솟값만 놓고 보면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물가가 오르고 그래야 경제도 선순환 된다는 논리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1년이란 시간차가 있는데 물가가 멈춰 있다면 스태그플레이션 등이 우려될 수도 있다. 문제는 채솟값이나 쌀값 인상이 도미노현상처럼 다른 물가 인상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기업들이 재택근무에 들어가고 정부의 외식 소비활성화정책도 중단돼 소비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음식점 주인들도 아우성이다. 쌀값이 비싼 곳은 5만5천원 수준이고, 칼로스 쌀은 4만원으로 1만원이 차이가 난다. 5천원 차이면 국산 쌀을 쓰겠지만 1만원 차이면 쌀값이 내릴 때까지 (미국산 쌀을) 쓸 수도 있다. 음식값 인상조짐도 보인다. 주말에 가족들과 외식하기도 힘이 들어졌다. 코로나19로 이래저래 일상사가 팍팍한 요즘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베를린 소녀상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상징물이다. 수요집회 1천회를 맞은 2011년 12월14일 시민 성금으로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처음 세워졌다. 위안부 피해자들의 아픔, 명예와 인권회복, 평화 지향의 마음을 담았다. 단발머리의 소녀는 의자 위에 손을 꼭 쥔 채 발꿈치를 살짝 든 맨발로 앉아 있다. 왼쪽 어깨에는 새가 앉아 있다. 옆에는 빈 의자가 놓여 있다. 단발머리는 부모와 고향으로부터의 단절을, 발꿈치 들린 맨발은 전쟁 후에도 정착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방황을 상징한다. 새는 세상을 떠난 피해자와 현실을 이어주는 매개체다. 빈 의자는 세상을 떠났거나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모든 피해자를 위한 자리다. 평화의 소녀상은 이후 전국 곳곳에 설치됐다. 형상이 모두 같지는 않다. 서있는 모습도 있고, 서울 성북동의 한중 평화의 소녀상처럼 중국인 소녀와 조선인 소녀가 함께한 것도 있다. 소녀상은 국외 10여곳에도 세워져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있다. 2013년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을 시작으로 캐나다, 호주, 중국, 독일 등에 설치됐다. 해외에 소녀상 건립 때마다 어려움이 많았다. 2016년 미국 조지아주 브룩헤이븐 시립공원에 세워질 때는 일본 기업까지 나서 투자 철회 등 압박을 했고, 일본 극우세력은 시의원들에게 항의 전화를 퍼부었다. 버지니아주 소녀상은 2016년 워싱턴에 도착했지만 일본 방해로 장소를 못 찾아 창고에 갇혀있다 3년 만에 한인교포의 건물 앞에 설치됐다. 소녀상 건립에 일본의 반대와 훼방은 집요하다. 이에 2018년 필리핀 마닐라에 놓인 소녀상이 이틀 만에 철거된 사례도 있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 세워진 소녀상이 철거 위기에 내몰렸다. 지난달 28일 설치한 소녀상을 베를린 미테구(區)에서 허가 취소하고 14일까지 철거하라고 기습 통보했다. 소녀상 설치를 주도한 독일 코리아협의회는 납득이 어렵다며, 법원에 효력집행정지 신청을 할 예정이다. 과거사에 대해 진정성 있는 반성을 한 국가로 알려진 독일에서 미테구의 행태는 이해하기 어렵다. 일본의 철거 압박에 굴복한 것으로 보인다. 소녀상은 전쟁 성폭력과 식민주의를 기억하려는 기억운동의 상징이다. 베를린이 자유와 인권을 위한 기억문화의 중심지가 되려면 소녀상을 철거하면 안 된다. 세계 어느 곳보다 베를린 소녀상은 의미가 크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버려지는 반려동물

반려(伴侶)는 짝이 되는 동무다. 보통 배우자를 반려자라고 하는데, 요즘은 개나 고양이가 반려자 역할을 한다. 반려동물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기 위해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다. 사람에게 귀여움을 받고 즐거움을 줘서 애완동물이라는 명칭을 썼으나, 동물이 장난감 같은 존재가 아니라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반려자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반려동물이라 부르고 있다. 반려동물 인구 1천만 시대를 맞았다. 하지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늘면서 쓰다 버리는 물건처럼 마구 버려지는 동물들도 많다. 새끼였을 때는 한없이 귀엽던 동물이 키우다 보니 싫증 나거나 늙고 병들었다고 휴가지 등에 버리는 경우가 적잖다. 비용 부담이 만만치 않고 동물을 버려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누군가 대신 키워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심리와 맞물려 유기로 이어지고 있다. 휴가철뿐 아니라 명절 연휴에도 버려지는 동물이 많다. 반려동물을 전용 호텔에 맡겨 놓았다가 찾지 않거나, 고속도로 휴게소에 버리고 온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유기동물이 더 늘었다. 반려동물 유기는 동물판 고려장이나 다름없다. 반려동물을 짝이고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자료에 따르면 유기동물은 2016년 8만9천732마리, 2017년 10만2천593마리, 2018년 12만1천77마리, 2019년 13만5천791마리로 해마다 늘고 있다. 5년 새 67%가 급증했다. 주로 개와 고양이로, 버려진 동물의 절반은 자연사 또는 안락사를 맞게 된다. 반려동물 학대 문제도 심각하다. 때문에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동물 학대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정부가 반려동물의 유기유실을 막기 위해 2014년부터 동물등록제를 시행하지만 실효를 못 거두고 있다. 현행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을 버리면 30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리게 돼있지만 지자체의 동물보호 전담인력 부족으로 단속이 쉽지 않다. 유기동물이 늘어나는 건 공장제품 찍어내듯 무차별 공급되는 실태도 한몫한다. 누구라도 돈만 있으면 충동구매가 가능하기 때문에 버리는 것도 쉽게 생각한다.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이들은 반려동물을 키울 자격이 없다. 동물유기는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유독 짧은 선거사범 공소시효, 고민이 필요하다

415 총선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공소시효란 범죄 행위가 있은 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검사가 재판을 청구(공소 제기)할 수 없도록 해 법원의 재판권과 국가의 형집행권을 모두 소멸시키는 제도다. 우리 형사소송법상 공소시효가 가장 짧은 범죄는 장기 5년 미만의 자격정지, 구류, 과료, 또는 몰수에 해당하는 범죄로 공소시효는 1년이다. 그런데 공무원을 제외한 선거사범의 공소시효는 고작 6개월이다. 이 안에 모든 수사를 끝내고 재판에 넘겨야 한다. 그렇다면, 왜 선거사범에게만 짧은 공소시효를 적용할까. 선거라는 행위의 특수성 때문이다. 선거 결과를 주권자인 국민이 빠르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나라를 이끌어갈 안정적인 입법부 구성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선거사범에게 일반범죄에 비해 짧은 공소시효를 적용하는 것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이는 선거관련 수사의 완성도가 떨어지면서 나오는 얘기다. 일례로 인천에서는 한 국회의원이 선거 개입의혹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경찰은 그를 입건하겠다고 했지만, 검찰이 2번이나 반대하면서 입건조차 하지 못한 일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검찰은 해당 의원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1개월도 되지 않아 뒤바뀐 검찰의 태도에 법조계에선 검찰이 공범들을 먼저 기소해 해당 의원의 시효가 정지되도록하려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사실이라면 편법을 하는 셈인데, 법에 따라 수사하는 기관에서 편법을 쓰는 촌극이 벌어진 셈이다. 지금은 선거사범의 공소시효 문제를 다시금 고민할 때가 아닌가 싶다. 국가의 미래를 결정할 선거를 방해한 선거사범에 대한 엄정한 수사를 위해 모든 행정력을 집중해 완벽한 수사가 이뤄지도록 보장한다면 지금의 시효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시효에 발목잡혀 수박 겉핥기식 수사에 그친다면, 과연 선거법의 공소시효는 누구를 위해 보장돼야 할까.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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