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마스크 투혼

상대 팀의 저지는 집요했다. 그래도 흔들리지 않고 줄기차게 골문을 때리고 위협했다. ▶손흥민(30·토트넘)이 90여분 동안 만든 늠름한 서사(敍事)였다. 28일 밤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였다. 얼굴을 보호해주는 검은 마스크를 쓰고 그라운드를 질주했다. 하지만 끝내 세 번째 골은 터지지 않았다. ▶태극전사들은 이날 열린 가나와의 조별리그 H조 2차전에서 2 대 3으로 석패(惜敗)했다. 손흥민은 우루과이와의 1차전(0 대 0 무승부)에 이어 이날도 풀타임으로 경기장을 질주했다. 전반전 두 골을 내줬다. 이어 후반전 들어 13분과 16분 조규성(전북)이 멀티골을 터뜨리며 만회했지만 한 골을 더 얻어맞았다. ▶그의 아쉬운 패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브라질 대회에서 알제리와의 조별리그 2차전서 첫 골을 넣지만 2 대 4로 무너졌다. 벨기에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도 0 대 1로 패했다. ▶4년 뒤 러시아에서도 계속됐다. 멕시코와의 조별리그 2차전에서 0 대 2로 끌려가던 후반 추가시간 만회 골을 터뜨렸으나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세기의 대결로 이어졌다. 3차전이었다. 독일을 2 대 0으로 제압하는 ‘카잔의 기적’을 만들어서다. ▶그는 앞서 이달 초 소속 팀에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치르다 안와 골절상을 당해 수술받았다. 월드컵 출전도 불투명해지는 듯했지만 얼굴 보호대를 쓰고라도 경기에 뛰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우루과이와의 1차전부터 그라운드로 돌아와 풀타임을 소화했다. 100%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장을 누비면서도 “괜찮다”며 승리에만 집중해 왔다. ▶그의 투지가 찬란하게 빛을 발할 기회는 아직 한 차례 더 남아있다. 확률상 16강 진출 가능성은 낮다. 하지만 환하게 웃으면서 카타르를 떠날 것이다. 마스크 투혼(鬪魂)은 반드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늘 그랬듯이 말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산업스파이

미국 법원이 지난 17일 산업스파이 혐의로 기소된 중국 국가안전부 소속 쉬옌쥔(42)에게 징역 20년형을 선고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쉬옌쥔이 2013~2018년 가명을 써서 유령회사를 만든 뒤, GE항공 등 미국의 여러 항공우주 관련 기업들과 접촉해 기술 등을 훔치려 했다고 밝혔다. 산업스파이는 경쟁국이나 기업이 비밀로 관리하는 중요 경제 및 산업정보를 부정한 목적과 수단으로 정탐하고 유출하는 사람이다. 산업스파이에 의한 기술 유출은 핵심인력 스카우트, 직원을 매수해 필요한 영업비밀 입수, 기업 인수합병, 컨설팅사·협력업체를 통한 유출, 외국인 연구원에 의한 유출 등 다양하다. 첨단 과학기술은 기업과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 이에 세계 각국은 자국의 첨단기술을 보호하고 경쟁국의 산업정보를 수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 첨단기술 연구 개발에는 많은 시간과 돈, 인력이 소요되기 때문에 암암리에 산업스파이가 동원되기도 한다. 산업기술이 유출되면 막대한 손실을 입게 돼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지만 기밀이 새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찰이 국내 핵심산업의 기술·인력 탈취 시도를 막기 위해 올 들어 10월까지 ‘산업기술유출 특별단속’을 벌여 317명(101건)을 검거했다. 영업비밀 유출이 75건(74.2%)으로 가장 많았고 업무상 배임이 15건(14.8%), 산업기술 유출이 11건(10.9%)이었다. 이 가운데 국가핵심기술 유출도 6건 포함됐다. 피해 기업은 중소기업(84%)이 대기업(16%)보다 많았다. 유출 주체는 외부인(9%)보다는 내부인(91%)이 많았다. 국외 기술유출도 12%에 달했다. 국가핵심기술을 포함한 산업기술 유출 범죄에 대해 엄정 대응해야 한다. 첨단기술과 경제정보 유출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금같은 솜방망이 처벌은 문제가 많다. 미국은 ‘경제 스파이법’으로 국가 전략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다 걸리면 간첩죄로 가중 처벌한다. 대만도 간첩죄를 적용한다. 우리도 국가 경쟁력과 안보를 위협하는 산업스파이에 대해 양형과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이번엔 ‘신촌 모녀’ 비극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정책을 보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또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수원 세 모녀’ 사건 석달여 만에 서울에서 ‘신촌 모녀’ 사건이 발생했다.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 원룸에서 36세 딸과 65세 어머니가 생활고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세입자가 사망한 것 같다’는 집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망한 사실이 지난 23일 밝혀졌다. 모녀의 집 현관문에는 5개월 치 전기료 9만2천여원의 연체를 알리는 9월자 독촉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월세가 밀렸다며 퇴거를 요청하는 집주인 편지도 붙었다. 지난해 11월 집 임차계약을 한 뒤 10개월 치 월세가 밀려 보증금도 모두 공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건강보험료는 14개월 치(약 96만원), 통신비는 5개월 치(약 15만원) 밀려 있었고, 금융 채무 상환도 7개월째 연체됐다. 숨진 모녀는 올해 두 차례 위기가구로 확인돼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에 포함됐다. 하지만 광진구에서 서대문구로 이사하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사는 곳이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달라 정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올해 8월 “월세가 늦어져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수원 세 모녀’ 비극과 판박이다. 복지부가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가구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지원을 못받는 사례를 막는다며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내놨지만 이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위기가구 발굴에 활용하는 정보를 34종에서 44종으로 늘린다는데 시행 시점이 내년 하반기다. 너무 굼뜬 행정이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책을 강화해 왔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비슷한 참극이 계속된다. 이럴 때마다 국가와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이 생긴다. 경제 상황이 계속 나빠지면서 위기가구들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취약계층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빚 독촉장만 남기고 외로운 죽음을 선택하는 빈곤약자가 없게 섬세하고 촘촘한 정책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6·25전쟁의 휴전회담 장소는 원래는 개성 북쪽 내봉장(來鳳莊)이었다. 이를 바꾸게 만든 동인(動因)은 북한군의 무력시위였다. ▶판문점(板門店)은 그렇게 질곡(桎梏)의 현대사 무대에 데뷔했다. 그리고 휴전협정 이후 외국인들의 발길이 이곳으로 이어졌다. 우리에게는 서글픈 현실이었지만, 이방인들에게는 동물원 구경처럼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이를 위해 설치된 기구가 판문점 견학지원센터다. ▶최근 해당 시설의 권한 이관을 놓고 경기도와 파주시의 물밑접촉이 치열(경기일보 11월3일자 10면)하다. 평화·안보관광 인프라 구축 완성을 위해선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권한 확보가 필수적이어서다. 앞서 파주시는 2020년 판문점 등 비무장지대(DMZ) 일원 미등록 토지에 대한 주소도 ‘파주시 진서면 선적리’로 복구했다. 67년 만이었다. ▶경기도의 명분도 DMZ 일원에 대한 평화안보관광 인프라 구축이다. 해당 시설의 관리는 통일부로 일원화됐었다.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및 9·19군사합의 후속조치로 2020년 상반기부터 국내외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 이전에는 국가정보원 및 통일부, 국방부 등의 소관이었다. ▶파주시는 이와 관련해 늘 경기도에 앞서 있었다. 민통선 북쪽 제3땅굴 등을 운영하면서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통일부에 권한 이관을 요청해와서다. 최근에는 통일부 담당자를 직접 만나 이를 다시 적극적으로 건의한 바 있다. ▶판문점을 포함한 DMZ 관광이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지는 이미 10년이 지났다. 관광객도 코로나19 이전에는 해마다 국내외에서 800만~1천만명이 방문하고 있다. 판문점 견학지원센터 권한 이관은 그 흐름의 한복판에 있다. 권한이 어디로 귀속되든, 판문점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소중한 서사(敍事)다. 그 처절한 아픔을 늠름함으로 바꿔야 할 자산(資産)이어서 더욱 그렇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월드컵 이변

1등하던 사람이 1등을 하면 당연한 일로 여겨진다. 그러나 만년 꼴찌가 1등을 이긴다면.... 사람들은 이를 이변, 기적이라고 부른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고, 소수가 다수를 물리친다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 이변은 스포츠 세계에서 자주 일어난다. 사람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다. 스포츠 중에서도 축구는 지구촌 최고 스포츠로 평가받고 있다. 축구의 규칙은 단순하다. 축구공 하나를 던져 주고 편을 가른 선수들이 일정 시간 내에 골대에 골을 많이 넣으면 승리한다. 이 같은 단순한 규칙은 스포츠에 관심 없는 이들도 쉽게 알 수 있다. 야구나 농구 규칙처럼 복잡하지도 않다. 그래서 가장 본능에 가까운 스포츠가 축구다. 축구 경기 중에서도 4년마다 열리는 월드컵은 전 세계 지구촌을 열광시킨다. 올해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첫 이변이 나왔다. 지난 22일 열린 월드컵 조별 리그 C조 1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우승 후보 아르헨티나를 2 대 1로 이겼다. 사우디는 세계 랭킹 51위인 반면 아르헨티나는 세계 랭킹 3위로 국가대표 36경기 무패를 달려온 명실상부한 강팀이다. 사우디 정부가 이날 승리 다음 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고 하니 사우디는 이번 월드컵에서 그야말로 대 이변을 연출한 주인공이 됐다. 대한민국도 월드컵에 이변을 연출한 팀으로 꼽힌다. 20년 전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전통의 강호들을 누르고 4강 신화를 이룬 이변의 팀이었다. 당시 대한민국은 하나 돼 열광했다. 축구는 국민들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선사했다. 이런 대한민국이 24일 오후 10시 우루과이와 카타르 월드컵 첫 예선전을 치른다. 코로나19, 경제침체, 이태원 참사 등으로 우울한 대한민국. 2002년 기적처럼 대한민국 축구팀이 이변을 연출해 고달픈 국민들에게 희망을 보여주길 기대해 본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봉수대 문화재 지정

천림산. 성남시 금토동과 상적동 옛골 사이의 구릉이다. 청계산 동쪽 기슭이다. 높이는 해발 170m다. ▶이곳에는 조선시대 봉수대(烽燧臺)가 있다. 서쪽으로 청계산의 주봉인 망경대와 국사봉 등이 앉아 있다. 그 사이의 해발 545m인 봉우리가 동북쪽으로 2.7㎞ 정도 이어진다. 동쪽 하단부로는 경부고속도로 달리내 구간과 금토동과 상적동 옛골 간 포장도로가 통과한다. ▶조선시대 전체 5로 봉수 노선 중 제2로에서 서울 남산 봉수대에 신호를 전달하는 마지막 시설이었다. 2000년 이후부터 학술조사가 진행됐다. 2004년 천림산 봉화제도 열렸다. ▶용인시 포곡읍 마성리 석성산에도 같은 시설이 있다. 해발 472m다. 천림산보다 높다. 남쪽이나 북쪽에서 보면 뾰족한 삼각형 형상이다. 동쪽은 완만하다. 서쪽은 가파르고 육중한 암벽을 이루고 있다. 숲이 울창하고 각종 기암괴석과 전통사찰이 어우러져 있다. ▶봉수대는 조선시대 중요한 통신수단이었다. 변방의 위급한 소식을 중앙에 가장 신속하게 전달해서다. 그런 봉수대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최근 관보를 통해 봉수대 16곳을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공고했다. 사적 명칭은 ‘제2로 직봉’(第2路 直烽)이다. ▶횃불과 연기 등으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시스템이 봉수대였다. 1895년까지 운영됐다. 특히 전국을 5거(炬) 직봉(전국 봉수망을 잇는 중요 봉화대)으로 편제했다. 변경 방어를 강화하고 적의 침입이나 전투 시작 등 급박한 상황을 빠르게 알렸다. 직봉 중 2거·5거는 서울을 중심으로 남쪽에, 1거·3거·4거는 북쪽에 위치했다. ▶봉수대는 국내 전역을 아우를 수 있어 연대성(連帶性)이 강하다. 전국에 산재한 봉수대 유적 중 일부만 시·도 지정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 대부분은 아직 제도적 보호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지정문화재 추진이 너무 늦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월드컵과 맥주

아랍 국가에서 최초로 열리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이 21일(한국시간) 개막했다. 개막식 후 A조의 카타르와 에콰도르가 첫 경기를 펼쳤다. 경기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즈음, 에콰도르 축구 팬들은 “우리는 맥주를 원한다”고 소리쳤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에서는 음주는 물론 주류 판매도 할 수 없다. 축구 팬들은 경기장 주변에서 맥주를 구할 수도, 마실 수도 없다. 국제축구연맹(FIFA)과 카타르 당국은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 기간에는 경기 입장권 소지자에게 경기장 외부 지정 구역에서 맥주 판매를 허용했다.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실 수는 없어도 경기 시작 3시간 전부터 정해진 장소에서 마시고 들어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개막 이틀을 앞둔 지난 18일 이를 철회했다. 잔니 인판티노 FIFA 회장은 “3시간 동안 맥주를 마시지 않아도 사람은 살 수 있다”며 판매금지 결정이 문제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번 대회뿐만 아니라 프랑스나 스페인, 포르투갈 경기장에서도 맥주 판매가 금지되고 있다”고 했다. FIFA의 이번 조치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때와는 정반대다. 당시 브라질은 FIFA의 압력으로 경기장에서 술을 팔 수 없다는 법령을 수정해야 했다. 제롬 발크 당시 사무총장이 “술은 월드컵의 일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FIFA가 개최국의 눈치를 봤다. FIFA와 카타르 당국의 경기장 맥주 판매 금지 결정에 불만이 쏟아졌다. 판매 금지 날벼락을 맞은 월드컵 후원사 버드와이저는 공식 트위터를 통해 “어, 이러면 곤란한데(Well, this is awkward)”라는 글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다음 날에는 캔이 쌓여있는 창고 사진을 올리면서 “우승하는 나라가 버드와이저를 갖는다. 누가 갖게 될까?”라고 썼다. 남은 맥주를 우승국에 주겠다는 것이다. 월드컵 기간 중 맥주는 카타르 도하 시내 ‘팬 구역’과 일부 외국인 대상 호텔에서만 음주가 가능하다. 팬 구역에서 500㎖ 맥주 한 잔에 50리얄(약 1만8천원)에 팔고 있다. 축구 볼 때 맥주 한잔 없으면 서운하긴 하다. 집에서 ‘치맥’ 하면서 월드컵을 관람하는 즐거움을 기대하는 국민이 많다. 월드컵과 맥주를 즐기되 과음은 금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세계인구 80억명 시대

아르메니아는 아제르바이잔­·조지아와 함께 코카서스 3국 중 하나다. 지리적으로 서아시아에 속하지만 정치·경제·문화 등 측면에서 유럽에 가깝다. 이곳에서 지난 15일 ‘지구상 80억번째 인물’이 태어났다. 여자아이 아르피(Arpi)가 그 주인공이다. 세계 인구가 80억명을 돌파했다. 1974년 40억명에서 48년 만에 두 배로 늘었다. 유엔인구국(UNPD)은 2037년 90억명, 2080년 100억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공중보건과 영양, 의학 등의 발전으로 평균수명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80억명 가운데 동아시아·동남아시아 인구가 23억명(29%), 중앙아시아·남아시아가 21억명(26%)으로 아시아 인구가 세계의 절반을 넘었다. 국가별로는 중국과 인도가 나란히 14억명으로 가장 많았다. 인도는 내년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인구 80억명 시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수십년간의 인구 증가가 기후변화 대응을 방해하고 대규모 이주나 국가 간 물리적 충돌을 일으키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빈국인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가 인구 증가를 이끌 것으로 예측, 식량·물·에너지 등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영양실조 및 기아 문제를 부추길 수 있다. 7월 발표된 유엔 ‘세계 인구의 날’ 보고서에 따르면 인구 증가율은 1960년대 초 정점을 찍은 뒤 급격히 떨어져 2020년 1% 아래로 하락했다. ‘나라가 잘살수록 아이를 안 낳는’ 고성장 저출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유엔은 선진국 상당수가 고령화사회로 접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고령화율은 2010년 7.7%에서 올해 9.8%를 기록했다. 한국은 65세 이상 비율이 올해 17.49%에서 2025년 20.35%로 늘어나 초고령사회에 접어든다. 세계 인구 80억명 시대에 한국은 세계 최저의 저출산 국가다. 엄청난 예산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은 떨어진다. 저출산 대책 방향이 잘못됐다. 보다 현실적이고 근본적인 해법을 찾아야 한다. 국가 존망이 걸린 문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흰개미의 습격

징그럽다. 번데기 과정이 없다. 알에서 직접 애벌레로 자란다. 죽은 나무도 갉아먹는다. ▶흰개미 얘기다. 다리가 짧고 허리는 굵다. 몸 색깔은 투명한 흰색이다. 개미와 다른 점이다. 개미는 여왕이 사회를 이끈다. 하지만 흰개미는 여왕과 왕이 함께 통솔한다. 썩은 식물을 빨리 분해해 자연의 순환을 도와야 해서다. ▶언뜻 보면 큰 문제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목조 건축물이나 문화재 등에 대입하면 경우가 달라진다. 한번 침투하거나 습격하면 안쪽부터 목재를 갉아먹어 큰 피해로 이어진다. 최근 학계가 심각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국립문화재연구원은 ‘문화재’ 최신호를 통해 국내 목조건축 문화재 상당수가 이 녀석들의 피해를 입었다고 밝혔다. ▶국보·보물급을 비롯해 국가지정 목조건축 문화재 362건(건물 기준 1천104동)을 대상으로 2016~2019년 조사한 결과다. 317건(87.6%)에서 흰개미 피해가 확인됐다. 185건(51.1%)에선 맨눈으로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탐지견 반응과 육안 조사 등 어느 하나라도 피해가 확인된 대상은 324건(89.5%)에 이른다. 목조건축 문화재 10건 중 9건에서 흰개미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거나 진행 중이다. 문화재청은 2011년부터 목조문화재를 대상으로 흰개미 피해를 전수 조사 중이다. ▶이 중에는 경기도내 목조문화재도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는 종합방제대책을 마련했다. 목조문화재에 특화된 방제 약제를 평가하고 기준을 정한 ‘흰개미 약제 인증기준’도 2024년 내놓을 예정이다. ▶문화재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흰개미 서식지부터 제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목조문화재 주변 환경 정비도 강화해야 한다. 적시에 방제가 이뤄질 수 있도록 방충사업 범위도 확대해야 한다. 그래야 후손에게 문화재를 온전하게 물려줄 수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인천시장의 역사적 책임과 소임

과거를 돌이켜보며 잘못을 반성하고 현재에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일. 그리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 미래를 예측하고 현재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 이는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하는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과거의 잘못을 되돌아보지 못한다면 현재도 같은 잘못을 반복할 것은 뻔하고, 그러면 미래도 잘못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모두가 알 테지만, 일본은 이 같은 과거의 반성이 없기에 지금의 행태를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인천시도 마찬가지로 과거를 돌이켜봐야 한다. 당시엔 고심 끝에 내린 최고의 결정이었다 하더라도, 지금 현재의 시점에서 봤을 때 과거 부적절한 결정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0년 전 인천시가 신세계백화점이 있던 인천종합버스터미널을 통째로 롯데에 매각한 결정은, 이후 롯데백화점의 지역 독과점 문제를 불러일으키더니 수년째 구월동 옛 롯데백화점 부지는 흉물로 방치 중이다. 이로 인해 인근 상권은 무너졌고 뒤늦게 다시 개발을 추진했지만 경찰의 반대에 막혀 지지부진하다. 10년 전 인천시의 결정으로 인한 후폭풍인 셈이다. 또 최근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천의 한 도시개발 사업지구의 고속도로 지하화 문제. 이것도 수년 전 인천시가 미래를 전혀 내다보지 못하고 내린 인허가 결정 탓에 이제야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인천시는 이 같은 잘못을 이제라도 반성하고, 조금이라도 인천시민을 위한 방향으로 바로잡아야 하는 의무가 있다. 유정복 인천시장이 최근 간부회의 등에서 인천시장으로서의 역사적 책임과 앞으로의 소임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고 한다. 시장은 정치인이자 고위공무원이다. 인천시만 생각하고, 인천시민들을 위한 일만 하는 공무원으로서 잘못은 바로잡고 앞으로의 미래를 밝히기 위한 역할에 나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민우 인천본사 정치부장

[지지대] “끝의 시작”

전쟁이 터졌다. 사흘 만에 도시의 일부분이 점령 당했다. 보름 정도 지나자 완전히 포위됐다. 그렇게 도시는 무너졌다. 올해 3월2일이었다. ▶우크라이나 남부 헤르손이 그랬다. 흑해와 드니프로강을 낀 중요한 항구 도시다. 러시아는 이곳을 자국령 헤르손주(州)의 주도(州都)로 접수했다. 러시아에 오랫동안 무릎을 꿇을 것으로 보였다. ▶이 도시의 지정학적 위치도 예사롭지 않다. 동부 돈바스(도네츠크와 루한스크)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와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곳이 바로 동부 돈바스다. 그래서일까. 질곡(桎梏)의 현대사가 이 도시의 자화상이다. ▶러시아는 군민정청(軍民政廳)도 설치했다. 다른 점령지와 함께 자신들의 영토로 편입했다. 그렇게 봄과 여름, 가을이 지나갔다. 아무런 변화도 시도되지 않을 것 같았다. 암울했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점령군이 헤르손에서 철수하면서 실효지배 포기를 선언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15일 오전(한국시간) 이 도시를 찾았다. 8개월 만이었다. “우리는 평화를 찾을 준비가 돼 있다.” 외신이 전하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전쟁의 대가는 크고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숨졌지만 강한 군대가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꾸준히 되찾고 있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비롯한 동맹국들의 지원에 대해서도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헤르손 시내에 게양된 우크라이나 국기 앞에서 오른손을 가슴에 댄 채 군인과 주민들과 함께 국가를 제창하기도 했다. ▶무릇 평화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역사가 이를 입증해준다. 세상의 모든 이치가 그렇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헤르손 수복의 의미에 대해 던진 첫 워딩이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이것은 끝의 시작입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안전한국훈련

이태원 압사 참사로 인한 사망자가 1명 더 늘었다. 20대 내국인 여성이다. 지난달 29일 대참사 이후 모두 158명의 목숨이 스러졌다. 희생자 장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내국인 130명은 발인이 완료됐으며, 2명은 장례 중이다. 외국인 희생자 26명 중 24명은 본국에 송환됐고, 2명은 송환 대기 중이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와 유사한 사고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번 주부터 ‘국가안전시스템 개편 범정부 TF’, ‘경찰 대혁신 TF’ 등을 통해 주요 개선 방안을 본격 논의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14일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정부 고위층은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이란 말을 되뇌며, TF를 구성한다. 물론 필요한 조치지만 달라진 게 없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해 끔찍한 참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나아지겠지, 달라지겠지 하지만 똑같다. 14일부터 25일까지 이태원 참사 같은 재난이 발생할 때 반복될 수 있는 부실 대응을 예방하기 위해 ‘2022년 안전한국훈련’이 실시된다. 재난안전관리기본법 제35조를 근거로 한 ‘재난대응 안전한국훈련’은 2005년 범정부적 재난대응 역량을 확대·강화하고 선진형 재난관리시스템을 구축한다며 도입됐다. 매년 중앙부처, 시도, 시군구, 공공기관·단체 등이 합동으로 실시하고 있다. 풍수해, 화재, 폭발, 테러 등 재난상황 발생시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정부 차원의 재난대응 훈련은 당연히 필요하다. 문제는 매년 합동훈련을 실시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겠다며 엄청난 예산을 들인 ‘세계 최초’ 재난안전통신망은 참사 현장에서 무용지물이었다. 대참사 이후 정부와 정치권 등에선 사후약방문식 처방을 쏟아낸다. 그나마의 처방도 말뿐이고 실행이 잘 안 된다. 올해 18년 차를 맞은 안전한국훈련은 철저히 제대로 실행해야 한다. 정부와 공직자는 대한민국 영토 내에서 발생한 모든 재난을 예방·관리할 책임이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지방소멸’에서 ‘지역소멸’로

‘지방소멸위험지수’는 한 지역에 65세 이상 인구 대비 20∼39세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을 나타낸다. 지수가 0.5 미만이면 소멸위험지역으로 분류된다. 지수 수치가 낮으면 인구 유출·유입 등 다른 변수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 경우 약 30년 뒤 해당지역이 없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일본 도쿄대 마스다 히로야 교수가 자국 내 지방이 쇠퇴해 가는 현상을 분석하기 위해 내놓은 기법에 기초해 개발됐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올해 3월 전국 228개 시·군·구를 대상으로 소멸위험지수를 조사한 결과, 113곳(49.6%)이 ‘소멸위험’ 지역으로 분석됐다. 2020년 조사보다 11곳 늘었다. 강원·경북·전남에 편중됐던 소멸위험지역은 비수도권 전체로 확산됐다. 최근엔 경기도와 인천시 등 수도권 농촌지역도 포함됐다. 산업연구원(KIET)도 지역 간 인구이동 특성을 고려해 개발한 ‘K-지방소멸지수’를 13일 발표했다. 228개 시·군·구 가운데 ‘소멸위기’에 빠진 곳은 59곳(소멸우려 50곳, 소멸위험 9곳)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비수도권 인구가 감소하는 ‘지방소멸’에서 수도권과 광역시의 인구까지 줄어드는 ‘지역소멸’ 시대에 진입했다고 분석했다. 산업연구원의 분석은, 지방소멸은 인구의 지역 간 이동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인구의 유출입은 지역경제 선순환 메커니즘과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는 것을 바탕으로 했다. 이런 식의 지방소멸지수 개발은 처음이다. 고용정보원이나 산업연구원의 소멸지역 수치가 다른 것은 조사방법의 차이 때문이다. 그러나 결론은, 비수도권을 넘어 수도권 지역까지 소멸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난해 역대 출산율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인 0.81%였다. 국가 발전은 고사하고 대한민국 존재 자체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다. 지방소멸, 지역소멸을 방치해선 안된다. 정부는 가칭 ‘인구청’을 신설해 비상한 각오로 인구 문제 해결에 국가역량을 집중해야 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현실로 닥친 트윈데믹

‘트윈데믹’(Twindemic). 쌍둥이란 뜻의 트윈(Twin)과 세계적 유행병을 의미하는 팬데믹(Pandemic)의 합성어다. 두 감염병이 동시에 유행하는 현상이다. ▶2020년 겨울부터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가 주춤했다. 그러다 지난해부터 가능성이 다시 높아졌다. 독감에 대한 면역력이 낮아져서다. 그해 겨울 미국과 영국에서도 확인됐다. 올해 1월 이스라엘, 미국, 브라질 등지에서 다시 보고됐다. ▶그 당시에도 트윈데믹은 본격화되진 않았다. 감염 비율도 낮았다. 두 감염병이 동시에 발생하면 의료체계에 혼란과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 제때 치료받지 못하면 고위험군은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최근 코로나19가 재유행하면서 독감 환자도 다시 늘고 있다. 주간 일평균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6만명대로 올라섰다. 감염재생산지수도 확산 기준점인 ‘1’을 계속 넘어서면서 겨울철 재유행 초입에 들어섰다. 최근 일주일간 독감 의심 환자는 외래환자 1천명당 7.6명으로, 전주의 6.2명에서 22.6% 늘었다. 지난 겨울의 4.9명을 훌쩍 넘었다. ▶트윈데믹의 위기는 물론 우리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도 코로나19 유행에 지쳐 가면서 백신 접종률이 6%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낮은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고령층 등 건강 취약계층에겐 여전히 큰 위험 요인이라는 점이다. ▶최근 방역당국이 발표한 코로나19 항체 양성률 조사에 따르면 70대와 80대 자연감염 항체 양성률은 각각 43.11%, 32.19%였다. 전체 평균 57.65%보다 낮다. 이 연령대는 그 대신 백신 접종을 통해 98~99%의 항체 양성률을 보였다. 보건 전문가들은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백신 접종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이태원 참사의 트라우마까지 겹쳐 이래저래 ‘삼중고(三重苦)’의 우울한 겨울이 시작되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11월11일은 무슨 데이?

11월11일은 빼빼로데이, 농업인의 날(가래떡데이), 보행자의 날, 유엔참전용사 국제추모식 등의 기념일이다. ‘빼빼로데이’는 친구나 연인 등 지인들끼리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는다는 11월11일을 가리킨다. 이는 원래 숫자 ‘1’을 닮은 가늘고 길쭉한 과자 ‘빼빼로’처럼 날씬해지라는 뜻에서 친구들끼리 빼빼로 과자를 주고받던 데서 시작됐다. 지난 1983년 빼빼로 출시 이후 영남지역의 여학생들 사이에서 ‘빼빼로처럼 빼빼(날씬)하게 되길 바란다’는 의미로 빼빼로를 주고받는 것이 유행이 되고 있다는 내용이 해당 지역신문에 기사화된 것이 빼빼로데이의 시초로 여겨진다. 또 이날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다. 농업인의 날은 1996년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에 의해 우리 농업 및 농촌의 소중함을 국민에게 알리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려는 취지에서 법정기념일로 지정됐다. 농업이 국민경제의 근간임을 국민들에게 인식시키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우며 노고를 위로하는 행사를 한다. 이와 함께 보행자의 날은 지난 2010년 ‘지속가능 교통물류 발전법’ 및 같은 법 시행령에 의해 산업화에 따른 미세먼지 증가, 제한적인 에너지의 위기 도래, 환경보호 요구에 대응하고 국민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걷기의 중요성을 확산하고자 국가기념일로 지정된 날이다. 보행자의 날이 11월11일로 지정된 이유는 숫자 11이 사람의 두 다리를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날은 6·25전쟁에 참전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유엔 참전용사의 희생과 공헌을 기념하고 이들을 유엔 참전국과 함께 추모하기 위해 지정한 날이다. 11월11일을 하루 앞두고 많은 기념일의 의미 중 어떤 날로 하루를 보낼지 생각해 보자. 최원재 정치부장

[지지대] 임진강거북선Ⅱ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처음 만들었다는 명제(命題)는 더 이상 팩트가 아니다. 여러 문헌이 입증해주고 있다. ▶그동안 거북선 제작 시기는 16세기 후반에 맞춰졌었다. 임진왜란 발발 시점이 1592년이어서다. 전쟁 와중에 남해안에서 벌어진 해전에서 맹활약한 철갑선(鐵甲船)이라는 게 그동안의 정설이었다. ‘거북선=이순신 장군’ 등식이 성립된 지점이었다. ▶경기일보가 의문을 제기하고 나선 지 벌써 5년이 지났다. 단초(端初)는 ‘조선왕조실록’ 등의 기록이었다. “태종 13년(1413년) 2월5일 임금이 임진나루를 지나다 거북선과 왜선이 서로 싸우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보다 180년 앞섰다. ▶임진나루는 조선 초기 거북선이 정박했던 곳이다. 파주시가 닻을 올렸다.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실물 크기 건조를 내년 3월 시작해 2024년 말까지 완료키로 했다. 역사문화 콘텐츠로서 ‘원 소스 멀티 유즈’(원형 콘텐츠를 다양하게 활용) 방식으로 펼쳐진다. 임진강거북선 활용방향에 대한 관심도 그래서 뜨겁다. ▶앞서 파주시는 국내 거북선 설계 일인자인 중소조선연구원에 실시설계를 의뢰했다. 이후 조선 최초 임진강거북선 전장이 이순신 장군의 거북선보다 약 6m 작은 61자(약 19m)에 용두가 설치된 중맹선(조선 군선·60명 승선)임을 최초로 재현했다. 실물 크기의 15분의 1 축소 모형도 제작해 임진각 내 한반도 평화생태관광센터에 공개 전시했다. ▶경기일보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으로 지상 좌담회를 마련해 각계 전문가의 견해를 들었다. 여기서 나온 의견들의 종착점(終着點)은 조선 최초 임진강 거북선의 브랜드 특정화·콘텐츠 방향이다. 김경일 파주시장은 “임진각에 임진강거북선을 복원·설치해 조선 최초 거북선의 상징성을 널리 알리겠다”고 밝혔다. 임진강거북선의 늠름한 역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사라지는 어린이집

회사 주변의 웨딩홀이 몇년 전 노인요양병원으로 바뀌었다. 결혼하는 젊은이들이 자꾸 들어드니 운영이 힘들었을 것이다. 결혼하는 사람이 줄고, 결혼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많으니 출산율이 자꾸 떨어진다. 저출산이 심각해지면서 어린이집이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보육 최전선을 담당하는 어린이집이 매년 1천900여곳씩 사라지고 있다.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2017년 4만238곳이던 어린이집이 올해 8월 현재 3만1천99곳으로 4년8개월 동안 9천139곳 줄었다. 민간 운영 어린이집이나 아파트 단지 내 20명 규모의 가정 어린이집의 폐원이 많다. 국내 영유아(6세 미만 취학 전 아동)는 2017년 145만243명에서 올해 8월 기준 105만4천928명으로 줄었다. 5년 새 39만5천315명(27.3%)이 감소한 것이다. 어린이집이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경기도다. 2017년 1만1천825곳에서 2022년 8월 9천495곳으로 5년여간 2천330곳(19.7%)이 사라졌다. 경기도내 영유아는 같은 기간 39만4천882명에서 31만9천88명으로 7만5천794명(19.1%) 줄었다. 수도권이 어린이집 수가 가장 많고 문닫는 곳도 가장 많다. 특히 경기도는 신혼부부의 첫 주거지인 경우가 많아 영유아 보육 수요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도 어린이집 감소에 한몫했다. 정부가 코로나 때 만 0~5세 아이를 둔 가정에 월 10만~20만원의 가정양육수당을 지원하면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는 가정이 많아진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 한 해 총 3천237곳의 어린이집이 폐원했다. 어린이집의 내리막길은 20년 전 예고됐다. 한국은 2002년 합계출산율 1.18명으로 초(超)저출산 국가가 됐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8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규모가 큰 민간 어린이집은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등 노인 돌봄시설로 바뀌고 있다. 정부가 공공 어린이집을 확충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아이들이 줄어 걱정이라면서, 아이를 보낼 어린이집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니 아이러니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커피믹스

우리 국민의 인기있는 기호식품 중 하나가 ‘커피믹스’다. 사무실이나 집에서는 물론 나들이 갈 때도 필수다. 경치 좋은 산이나 들, 바닷가에서 마시면 그 맛이 배가 된다. 커피믹스는 1976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한 포장 안에 커피, 프림, 설탕이 모두 들어있는 커피믹스는 한국식 ‘빨리빨리’ 문화의 산물이다. 처음에는 직사각형이었다가, 1987년께 스틱형으로 바뀌었고 1996년에는 설탕도 조절할 수 있게 했다. 커피믹스가 국민적 유행이 된 것은 외환위기 때와 구조조정 바람이 불던 1990년대 말이다. ‘커피 타 줄 여직원’이 사라지는 바람에 일정한 커피맛을 보장하는 믹스가 직장을 중심으로 퍼졌다. 골목까지 커피전문점이 생기면서 원두커피를 선호하는 사람이 크게 늘었지만 커피믹스의 인기는 여전하다. 커피믹스는 외국인들한테도 인기다. 커피믹스 맛에 반한 외국인들은 스타벅스 커피보다 낫다고 한다. 때문에 한국 방문기념 선물로 많이 쓰인다. 미국 LPGA 프로선수들이 한국 선수들에게 커피믹스를 사다달라고 부탁한다는 보도도 있었다. 대회 때 커피를 많이 마시는 선수들에게 쉽게 타먹을 수 있는 믹스가 ‘딱’이기 때문이다. 달달한 커피믹스가 갱도에 갇힌 사람도 살렸다. 경북 봉화군 아연광산에 매몰된 광부 2명이 4일 오후 221시간 만에 극적 구조됐는데 커피믹스가 이들의 생존에 기여했다. 지하 190m 지점에 고립됐던 두 사람은 작업 전 챙겨갔던 믹스커피 30봉지를 밥 대신 먹으며 버텼다. 비상식량 역할을 한 믹스커피는 칼로리가 높고 여러 영양소가 포함돼 있다. 맥심 모카골드 마일드 1개는 50kcal다. 나트륨 5mg, 지방 1.6g, 탄수화물 9g, 당류 6g, 포화지방 1.6g도 들어있다. 극한 상황에서 체온을 유지시킬 수 있는 칼로리와 영양소가 들어있던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생환한 광부들에 대해 ‘커피 광고 모델하면 대박일 듯’ ‘꼭 TV에서 광고하는 모습 볼 수 있길’ 하며 믹스커피 광고 모델로 써야 한다는 반응도 있다. 매몰된 광부의 생환에 믹스커피가 도움이 됐겠지만, 더 큰 이유는 삶에 대한 의지였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훈맹정음

점자(點字)는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문자다. 지면에 돌기한 점을 일정한 방식으로 맞추고 손가락으로 만져 스스로 읽고 쓸 수 있다. ▶점자를 사용하기 전에는 파라핀 서판(書板)에 글자를 음각하고 목판에 글자를 새겼다. 조선시대에도 있었다.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대나무를 이용한 점자인 죽력(竹曆)을 사용했다. ▶물론 한자가 기반이었다. 아직 한글을 기반으로 한 점자가 탄생하기 전이었다. 한자를 모르면 점자 사용은 소용이 없었다. 무용지물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어를 바탕으로 했던 점자도 나왔다. ▶서울 한복판에 있던 의료기관인 제생원의 맹아부 교사가 이 부분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결심했다. 한글을 바탕으로 하는 점자를 만들겠다고 말이다.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극복하겠다는 결의도 다졌다. ▶제자 8명과 조선어 점자연구위원회를 꾸렸다. 본격적으로 한글 점자를 창안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갖은 고생이 뒤따랐다. 일제의 감시도 심했다. 한글 사용도 일일이 통제받던 시절이었다. 3년 후 마침내 한글을 기반으로 하는 점자가 만들어졌다. 훈맹점음(訓盲正音)이다. 1926년이었다. ▶세로 3개에 가로 2개 등으로 구성된 점자를 조합해 63개 점자를 창안했다. 송암(松庵) 박두성(朴斗星) 선생이 창시자였다. “실명한 이들에게 조선말까지 빼앗는다면 눈 먼 데다 벙어리까지 되란 말인가”. 송암 선생의 의미 있는 말씀이었다. ▶훈맹정음은 자음과 모음뿐만 아니라 약자, 문장부호와 숫자 등까지 점자로 나타냈다. 그해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한 11월4일 훈맹정음을 반포했다. 오늘이 바로 훈맹점음이 이 땅에 나온 지 96년째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자식 잃은 부모 마음을 안다면...

‘내 아들아. 이 세상에 네가 없다니 그게 정말이냐? 하느님도 너무하십니다. 그 아이는 이 세상에 태어난 지 25년5개월밖에 안 됐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시다니요’. 대한민국 대표 여류 작가 박완서씨는 아들의 죽음에 대성통곡하며 ‘어머니의 일기’를 눈물로 썼다. 그는 ‘큰 딸네 집에서 마음 놓고 통곡할 수 없었기에 글을 쓴다’고 했다. 자신의 지옥 같은 고통을 자녀가 알까 두려운 마음으로.... 자식이 부모보다 먼저 죽는 것을 ‘참척지변(慘慽之變)’이라고 한다. 비통함이 너무 처절하고 참담해서 가늠조차 안 되는 참혹한 슬픔이라는 뜻이다. 오죽하면 ‘부모는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했을까.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단장지애(斷腸之哀)라고 한다. 말 그대로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다. 핼러원데이를 하루 앞두고 서울 이태원에서 153명이 압사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다.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될, 참담하고 불행한 일이다. 날이 지나면서 희생자는 156명으로 늘었고 국민의 슬픔은 커졌다. 경기 청년 38명도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대부분 2030세대인 데다 중학생까지 희생돼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사연도 가슴 먹먹하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업한 사회 초년생, 매일 아버지에게 톡으로 사진을 보내주던 친구 같은 막둥이 딸은 직장 동료들과 참변을 당했다. 생일을 앞둔 아들, 가장 역할을 한 딸, 군에서 휴가 나온 막내, 취업에 성공해 상경한 딸 등 20대 꽃다운 청춘들이 숨도 못 쉬는 고통 속에 숨을 거뒀다. 이들은 부모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아들, 딸이며 누군가에겐 소중한 친구이자 연인, 동료다. 정부는 오는 5일까지를 국가애도기간으로 정하고 시도 합동분향소에는 어이없게 세상을 떠난 젊은 청춘을 추도하는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참사 현장 주변에도 흰 국화꽃 헌화와 묵념으로 또래 친구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다.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누가 헤아리고 이해할 수 있을까.. 국가애도기간 동안 우리 사회는 그 어떤 혐오성 발언이나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된다. 정치권도 정쟁을 멈추고 초당적 협력과 추모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슬픔에 잠긴 국민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김창학 정치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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