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이번엔 ‘신촌 모녀’ 비극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정책을 보완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또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수원 세 모녀’ 사건 석달여 만에 서울에서 ‘신촌 모녀’ 사건이 발생했다. 서대문구의 한 다세대주택 원룸에서 36세 딸과 65세 어머니가 생활고에 몰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이다. ‘세입자가 사망한 것 같다’는 집주인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사망한 사실이 지난 23일 밝혀졌다.

모녀의 집 현관문에는 5개월 치 전기료 9만2천여원의 연체를 알리는 9월자 독촉 고지서가 붙어 있었다. 월세가 밀렸다며 퇴거를 요청하는 집주인 편지도 붙었다. 지난해 11월 집 임차계약을 한 뒤 10개월 치 월세가 밀려 보증금도 모두 공제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건강보험료는 14개월 치(약 96만원), 통신비는 5개월 치(약 15만원) 밀려 있었고, 금융 채무 상환도 7개월째 연체됐다.

숨진 모녀는 올해 두 차례 위기가구로 확인돼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상자에 포함됐다. 하지만 광진구에서 서대문구로 이사하면서 전입신고를 하지 않아 사는 곳이 주민등록상 주소지와 달라 정부 도움을 받지 못했다. 올해 8월 “월세가 늦어져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떠난 ‘수원 세 모녀’ 비극과 판박이다.

복지부가 경제적 위기에 처한 가구 소재가 파악되지 않아 지원을 못받는 사례를 막는다며 복지 사각지대 발굴·지원체계 개선 대책을 내놨지만 이들은 혜택을 받지 못했다. 위기가구 발굴에 활용하는 정보를 34종에서 44종으로 늘린다는데 시행 시점이 내년 하반기다. 너무 굼뜬 행정이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정부가 복지 사각지대 발굴 대책을 강화해 왔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비슷한 참극이 계속된다. 이럴 때마다 국가와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물음이 생긴다.

경제 상황이 계속 나빠지면서 위기가구들이 더 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취약계층이 급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빚 독촉장만 남기고 외로운 죽음을 선택하는 빈곤약자가 없게 섬세하고 촘촘한 정책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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