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억류 위로금

조국은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났다. 하지만 국토는 남북으로 두 동강 났다. A씨는 북녘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남녘으로 내려와 군에 입대했다. 6·25전쟁이 터졌다. 그의 부친은 국군으로 참전했다. 그리고 북한군의 포로가 된 뒤 북한에서 사망했다. A씨는 2005년 탈북해 한국으로 왔다. 그에게 억류지 출신 포로 가족과 북한이탈주민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이 나왔다. ▶A씨는 부친이 북한에서 억류됐던 기간 동안 보수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국방부에 보수를 신청했다. 국방부는 이를 거부했다. 국방부는 거부 이유에 대해 ‘등록 포로에게 억류 기간에 대한 보수를 지급한다’고 규정한 국군포로송환법 조항을 들었다. A씨의 부친은 등록된 포로가 아니어서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A씨는 해당 법이 미귀환 포로를 차별한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5 대 4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소원은 가능하지만 법 조항에는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합헌 의견 재판관들은 “보수 지급 대상자의 신원, 귀환 동기, 억류 기간 중의 행적 등을 확인해 등록·등급을 부여하는 건 국군 포로가 국가를 위해 겪은 희생을 위로한다는 법 취지에 비춰 볼 때 보수 지급 전에 선행될 필수 절차”라고 판단했다. ▶반대 의견들도 팽팽했다. 헌법소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다. 국군 포로의 보수 청구권은 ‘등록된 포로’ 본인의 전속 권리인 만큼 당사자가 사망한 경우 상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녀인 A씨에게는 침해당할 권리가 없다는 취지다. 물론 국군포로송환법을 바라보는 법률적인 시각의 차이겠지만 말이다. ▶이 땅에는 A씨와 비슷한 처지의 새터민 수만명이 있다. 결코 그만의 개인적인 송사가 아니라는 얘기다. 70여년 전에 벌어진 전쟁의 상처는 깊다. 생채기는 하나도 아물지 않았다. 6·25전쟁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는 반증이다.

[지지대] 경기지역화폐

수원페이, 안양사랑페이, 과천화폐 과천토리, 양평통보, 오산화폐 오색전, 용인와이페이, 의정부사랑카드.... 경기도내 각 시·군에서 통용되는 지역화폐 이름들이다.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에서 자체적으로 발행해 특정 지역 내에서만 소비되는 화폐다. 국가가 발행하는 법정화폐와 달리 지자체가 발행하고 관리를 맡고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유흥업소에서는 사용이 불가능하고, 동네 상점이나 골목상권, 전통시장 등 소상공인 매장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일명 ‘지역사랑 상품권’으로 불린다. 경기지역화폐는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가 성남시장 시절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입한 성남지역화폐의 경기버전 확장판이다. 서울, 부산, 인천, 대전 등에서도 벤치마킹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12월 현재 도내 19개 지자체에서 경기지역화폐를 쓰고 있다. 지자체에 따라 월 20만~100만원을 충전식 카드에 넣을 수 있다. 주민들은 지자체가 10% 인센티브를 제공해 22만~110만원을 쓸 수 있다. 가맹점 업주들의 경우 신용카드보다 저렴한 카드 수수료와 지자체 홈페이지를 통한 홍보효과에 호응도가 높다. 문제는 소비자와 가맹점주에 돌아가는 인센티브가 국가와 지자체 예산으로 운영, 예산이 소진되면 충전이 줄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당장 내년도 예산에 차질이 생겼다. 정부의 지역화폐 지원이 올해 절반 규모인 3천525억원으로 줄었다. 지역화폐 예산을 ‘이재명표 예산’으로 생각한 탓인지, 당초 정부는 6천억원 규모의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 다행히 민주당이 “소비진작 차원의 정책인데 정부 지원이 없으면 그 효과가 미미해진다”고 주장해 절반을 살려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국회의 예산 심의와 관련, “부끄럽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합의이며 예산이냐”고 비판했다. “지역화폐 예산의 경우 금년 대비 절반이나 깎였다”며 “이는 한파와 같은 매서운 경제의 어려움 속에 있는 서민, 소상공인, 자영업자들이 입고 있는 방한복을 벗기는 일”이라고 했다. 경기도는 내년에도 올해와 같은 규모로 지역화폐 사업을 추진한다. 하지만 국비가 줄고 시·군 예산이 감소된 곳도 있어 10% 인센티브가 축소될 것으로 보인다. 안타까운 일이다.

[지지대] 정치후원금 전쟁

연말이면 여의도는 정치후원금 모금 열기가 뜨겁다. 밀린 법안, 예산안 처리 등 민생과 나라살림 챙기기보다 후원금을 모으는 ‘쩐(錢)의 전쟁’에 더 몰두하는 모습이다. 국회의원들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다. 올해는 지역구가 있는 국회의원은 3억원의 모금이 가능하다. 평년에는 후원금 한도가 1억5천만원이지만, 올해처럼 대통령선거나 지방선거가 있는 해에는 2배 더 많은 모금이 가능하다. 올해 후원금은 내년부터 본격적인 총선 채비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국회의원 300명이 사활을 걸고 뛰고 있다. 일찍 목표를 달성한 의원도 있고, 실적이 저조해 비상이 걸린 의원도 있다. 정치자금이 힘 있는 곳에 몰리다 보니 ‘빈익빈 부익부’가 나타난다. 국회의원 연봉은 1억5천만원이 넘는다. 많은 국민이 높은 연봉에 특혜도 많은데, 왜 후원금까지 거둬 들이는지 못마땅해한다. 정치인에 대한 불만, 정치에 대한 불신이 높아 후원금 모금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국민의 생각일뿐, 국회의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후원금 모금에 여념이 없다. 지역구 의원들은 많은 후원금이 필요하긴 하다. 지역주민에게 의정활동 보고를 하는 데만 연간 문자메시지 비용으로 수백만원에서 몇천만원이 쓰인다. 지역구 사무실 운영과 인건비, 현수막 제작 등에도 상당한 예산이 들어간다. 한국의 정치문화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구조다. 후원금 모금을 위한 국회의원들의 행태는 다양하다. 가장 많은 것은 홍보형이다. 국정감사 우수의원 선정, 공약 실현 등 의정활동 성과를 세일즈하는 것이다. 읍소형도 있다. “통장이 텅 비어 있으니 마음마저 쓸쓸하다. 한 푼 줍쇼”(정청래 의원), “군자금이 부족해 보좌관들과 매일 김밥만 먹고 있다”(김용민 의원) 등 노골적으로 호소한다. 진영 논리에 편승해 강성 지지층에 호소하는 사례도 있다. 정치인의 후원금 사용은 예전에 비해 투명해졌다. 하지만 시민·연구단체 등에서는 정치자금 공개 범위 확대 및 인터넷 상시 공개를 주장하며 관련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응답이 없다. 정치, 정당, 국회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 정치자금에 대한 투명성과 개방성 확대가 필요하다. 그래야 후원금도 늘어날 것이다.

[지지대] 도척저수지 단상

물에 내려앉은 선경(仙境)이 곱다. 하늘을 품은 산자락도 빼어나다. 광주 도척저수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풍광이다. ▶이곳은 용인 태화산에서 발원하는 노곡천을 댐으로 막아 만들어졌다. 위치는 태화산 기슭이다. 아래쪽에 있는 논으로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가뭄 때는 물이 많이 빠진다. 주변의 길은 용인으로 넘어가는 98번 지방도가 유일하다. 첩첩산중 같은 분위기가 짙은 까닭이다. ▶서울 지척에 이런 근사한 곳이 있다는 사실이 미덥다. 낚시도 즐길 수 있다. 마니아들에겐 제법 유명하다. 굳이 강원도 깊은 산골을 찾지 않아도 공기가 상큼하다. 사과를 한 입 베어 먹었을 때처럼 말이다. 그런데 단점이 있다. 광주 토박이들도 잘 모를 정도로 외졌다는 점이다. ▶이런 곳에 산책로가 조성된다. 광주시는 도척면 도척저수지 일원에 사업비 12억원을 들여 내년 상반기까지 수려한 경관을 즐길 수 있는 산책로 조성을 추진(경기일보 22일자 11면)한다. 물을 따라 걸을 수 있으니 수변 산책로겠다. 아름다운 풍광을 즐길 수 있으니 명품 산책로가 될 터이다. 앞서 시는 올해 8월 기본계획과 타당성 조사 등을 완료했다. ▶1단계 수변 산책로 조성은 저수지 둘레 2.5㎞ 구간을 순환형 덱(deck)로드로 연결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산책로 중간 전망대와 포토존 등도 설치해 자연을 느끼고 즐기며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시는 1단계 수변 산책로 조성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최근 한국농어촌공사와 위·수탁 협약을 맺고 양 기관이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얼룩진 세상사를 털어내는 데는 산책만큼 탁월한 특효약도 없다. 자연이 주는 선물이어서다. 그게 얼마나 소중한 행복인가. 악성(樂聖) 베토벤의 명곡들도 산책의 산물이었다. 도척저수지가 그렇게 우리 곁으로 성큼 다가오고 있다.

[지지대] 금배지의 무게

도둑을 잡아야 할 사람이 도둑과 한패가 되면 어떨까?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니 사회는 신뢰가 깨져 불신이 판치고 나라는 부정과 부패로 망국의 길을 걷게 된다. ‘고양이와 쥐가 함께 산다’는 뜻의 묘서동처(猫鼠同處)는 중국 당(唐)나라의 정사(正史)를 담은 구당서(舊唐書)와 신당서(新唐書)에 나오는 말이다.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법을 위반한 사람의 잘못을 용인하거나 덮어주는 것, 또는 같은 편이 돼 함께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을 비유한다. 지난해 대학교수들은 이 사자성어로 한 해를 정리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의 칼날이 날카롭다. 대장동·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관련 이재명 대표의 최측근을 구속하고 쌍방울 대북 송금 의혹을 넘어 변호사비 대납 의혹도 재수사에 착수했다. 이 대표 사법리스크가 점점 더 현실화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탈북어민 강제 북송사건 등 전 정부에 일어났던 사건도 집요하게 파고든다. 통계청의 국가 통계 조작 의혹도 조만간 수사가 예상된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검찰 수사의 끝이 문재인 전 대통령, 이재명 대표를 향한다며 공세를 멈추지 않는다. 정치검찰의 보복 수사라고 단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질세라 여당은 적폐 청산 수사라고 맞선다. 검찰 수사 결과, 사실이라면 국기문란이요 국정농단이다. 아니라면 정권을 내놓을 만한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것이다. 진실은 법에 맡기고 민생에 집중해야 한다. 내년 예산안이 법정처리 시한(2일)과 정기국회(9일)를 넘겼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중재안과 ‘데드라인(15일) 선언도 묵살했다. 민생은 없고 정쟁만이 판치면서 이래저래 국민만 고단하고 힘들다. 올해 사자성어로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의 ‘과이불개(過而不改)’가 꼽혔다. 남 탓하는 소인배·후진적 정치를 빗댄 듯하다. 이념의 갈등으로 나뉜 진영은 어느덧 팬덤정치에 파묻혀 무조건 우기는 풍조가 만연하다. 잘못하면 뉘우치고 사과하고 책임지면 된다. 올 한 해 국내외 경제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교란, 높은 인플레이션, 긴축적 통화정책 기조, 코로나19 재확산 위기 등으로 한겨울 한파만큼 견디기 어려웠다. 내년에도 호재보다 악재로 인한 경기 하방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국민을 위한 정치, 책임의 정치가 힘들면 금배지를 내려놓아야 한다. 김창학 정치부 국장

[지지대] 여주 삼합리 이야기

삼합리(三合里). 여주시 점동면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동네다. 문맥상으로는 마을 3곳이 만난다는 뜻이다. 이름이 예사롭지 않다. 전국적으로 그런 곳이 흔하진 않아서다. ▶여주 한복판으로는 남한강이 흐른다. 하지만 이곳 주민들은 남한강을 굳이 ‘여강(驪江)’이라 부른다. 여주의 가람이란 의미에서다. 그 강을 끼고 경기도와 강원도, 충북 등이 만났다. 아주 오래전부터다. 강 건너편은 강원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다. 그 남쪽은 충북 충주시 앙성면 단암리다. ▶경기 여주시 강천면과 강원 원주시 부론면 앞으로는 예의 섬강(蟾江)이 흐른다. 남한강의 지류다. 송강 정철 선생의 ‘관동별곡’ 첫 부분에 언급된 강이다. 여주에선 남녘이고, 충주에선 북녘이며, 원주에선 서녘이다. 애주가들은 통금이 있던 시절 자정 무렵 다리 하나 건너 술자리를 이어갔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충북에만 통금이 없어서다. 이들은 강원도 주민도 아니고, 충청도 주민도 아니고, 그렇다고 경기도 주민도 아니다. 남한강변 주민일 뿐이다. ▶여주시가 환경부·산림청과 공동으로 남한강에 한글을 테마로 ‘물의 정원’ 조성을 추진(본보 13일자 10면)한다. ‘관동별곡’이 시작되는 신륵사 맞은편부터 세종대왕 한글을 주제로 펼쳐진다. 여주시는 최근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열어 기본구상안, 개발여건, 개발방향, 사업비, 실현방안 등을 중간 점검했다. 기본구상안에는 남한강변에 30여만㎡ 규모의 국가정원급으로 조성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여주시는 ‘물의 정원’이 조성되면 신륵사관광지, 금은모래 관광지구 등과 연계된 최고의 관광지로 거듭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삼합리 이야기도 보태자. 진영으로 갈려 으르렁거리는 민심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다. 정겨운 이웃사촌들의 얘기가 녹여질 테니 말이다. 뚱딴지 같은 어리석은 의견일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L의 공포

국내외 산업계에 감원 바람이 불고 있다. 내년 경기 침체가 깊어질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해외에서 먼저 테크, 자동차, 금융, 유통, 미디어를 포함한 거의 전 업종에서 선제적 감원에 들어갔다. 미국 인력관리 전문기업 ‘챌린저, 그레이 앤드 크리스마스’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기업들은 총 7만6천835명의 해고를 발표했다. 1년 전(1만4천875명)의 5배가 넘는 대량 해고다. 보고서는 “올 들어 11월까지 미국 기업은 32만명 이상을 해고했다”고 밝혔다. ‘R(Recession·경기 침체)의 공포’가 커지면서 이른바 ‘L(Layoff·해고)의 공포’로 확산하는 조짐이다. 메타(옛 페이스북)는 지난달 전체 직원의 13%인 1만1천명을 해고했다. 아마존도 역대 최대 규모인 1만명에 달하는 정리 해고를 시작했다. 모건스탠리는 1천600명을, 골드만삭스는 최소 400명을 해고할 예정이다. 자동차 업계에선 포드가 지난 8월 3천여명에게 해고 통보를 했다. 중국 알리바바는 상반기에 1만3천여명을 정리 해고했고, 틱톡의 모회사 바이트댄스는 지난해 7월 이후 1만여명을 감원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에 처한 기업들이 명예퇴직(희망퇴직)을 늘리고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다. 금융권에선 구조조정이 진행 중이다. KB증권은 1982년생 이상 정규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40세가 넘는 직원을 대상으로 감원에 나선 것이다. 하이투자증권은 1967년생까지, 20년 근속 및 2급 부장을 대상으로 최근 희망퇴직을 받았다. 이는 전체 정규직의 50%가량이다. 기업이 몸집을 줄이는 이유는 업종별로 다르다. 증권 회사나 자산 운용사 등 투자 업계는 영업이익이 급감해 인력 감축이 불가피해 보인다. 자금 조달이 어려워진 벤처 회사들도 인력을 줄이고 있다. 은행은 고금리로 영업 실적은 향상됐지만, 디지털 전환으로 인력 수요가 줄었다. 근로자들은 감원 칼날이 자신을 향하지 않을까 불안해한다. 해고만이 능사는 아니다. 정부와 기업은,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을 적극 모색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전세사기꾼 ‘빌라왕’

40대 임대업자 김모씨는 2020년부터 올해까지 수도권 빌라와 오피스텔을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갭 투자’ 방식으로 사들였다. 6월 기준 소유 주택이 1천139채에 달했다. ‘빌라왕’ 김씨는 지난 10월 서울의 한 호텔에 장기 투숙 중 숨진 채 발견됐다. 김씨의 갑작스러운 사망에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1천채 넘는 빌라·오피스텔을 소유한 김씨는 교묘한 수법으로 세입자들을 농락했다. 피해자 상당수는 전세 계약 당시 임대인이 다른 사람이었는데, 계약 후 집이 김씨에게 팔렸다. 임대인이 전세 사기꾼으로 바뀌는 과정에서 세입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김씨는 돈이 없다며 보증금 반환을 거부했고, 60억원 넘는 종부세 체납으로 집에 압류까지 걸리면서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날릴 처지가 됐다.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이 지난 4월 온라인에서 피해자 모임을 만들었다. 피해가 확인된 가입자만 400명이 넘는다. 김씨는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사망했다. 세입자들은 보증금을 받아내기가 더 막막해졌다. 전세금 보증보험에 가입한 사람도 “구상권을 청구할 집주인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보상을 못 받고 있다. 2019년 빌라 594채의 보증금을 갖고 잠적한 진모씨 사건, 확인된 피해자만 335명에 달하는 ‘세 모녀 전세 사기’에 이어 또 역대급 전세 사기가 터졌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는데 정부는 뭘하고 있느냐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피해자 중엔 20, 30대 세입자가 상당수다. 전세 사기범 때문에 청년들의 생활 터전이 파괴되고 있다. 빌라를 100채 이상 가진 사람이 수도권에 30명이 넘는다고 한다. 집값이 하락하면서 빌라의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전국 평균 82% 정도다. 집을 팔아도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깡통 전세’가 늘고 있다. 언제 또 전세 사기 폭탄이 터질지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거 약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전세 사기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엄벌, 확실한 재발방지책이 절실하다. 피해자 구제책도 강구돼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붕어빵 서사

북풍한설이 몰아치면 붕어빵이 생각난다. 겨울철 국민 간식이다. 그런데 갈수록 사라지고 있다.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는 경제 불황 탓인가. ▶MZ세대 사이에선 요즘 ‘붕세권’이 인기다. ‘역세권’을 본뜬 붕어빵 노점 현황도다. 대부분 전철역 주변에 있다. 전국 붕어빵 노점 위치를 담은 ‘대동풀빵여지도’도 만들어졌다. 최근까지 1천55곳이 등록된 것으로 집계됐다. 맛, 가격, 팥소의 양, 개점시간 등에 주인 친절도까지 꼼꼼하게 적혀 있다. ▶붕어빵의 기원은 1950년대로 추정된다. 미국 밀가루 대량 수입 시기와 맞물린다. 앙금이 거의 없다가 팥을 넣기 시작했다. 1988년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잠시 사라졌다. 길거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였다. 그러다 1998년 IMF 사태 무렵 다시 돌아왔다. 일자리를 잃은 이들이 길에 나와 붕어빵을 구웠다. 서민들은 식사 대용으로 사 먹었다. ▶붕어빵은 쇠틀에 밀가루 등으로 만든 반죽과 단팥소를 넣어 만든다. 찹쌀도 들어간다. 근래에는 피자, 고구마, 슈크림 등 여러 종류를 넣기도 한다. ▶붕어빵 값이 5년 전보다 두 배 이상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당국의 분석이다. 붕어빵 2마리 값이 기본 1천원 수준이다. 지역에 따라선 1마리에 1천원인 곳도 있다. 1천원으로 3, 4개들이 한 봉지를 구매해 배불리 먹을 수 있었던 건 옛말이다. 원재료 가격 상승의 영향이 크다. 붕어빵에 들어가는 주재료 5가지 가격을 조사한 결과 5년 전보다 평균 49.2%, 지난해보다는 18.4% 올랐다. ▶서민들의 주머니가 얇아질수록 붕어빵을 찾는 이들이 많아진다. 그래서 붕어빵 판매량은 불황의 지표로도 여겨진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른다는데 뭐 붕어빵인들 오르지 않겠는가. 그런데 붕어빵 노점들이 가게를 접고 있다. 애달픈 반전이다. 붕어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빵의 서사(敍事)가 그래서 안타깝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민선 2기 체육회장선거의 소중함

전국 체육계가 향후 4년간 체육행정을 이끌 민선 2기 체육회장 선거 열기로 뜨겁다. 경기도와 인천시 등 광역체육회는 15일 치러지고, 시·군·구는 22일에 일제히 치른다. 정치로부터 체육의 분리와 체육의 전문성을 살린다는 취지로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에 따라 지난 2020년 1월 민선 1기 선거 후 두 번째로, 2기부터는 4년 임기다. ▶2파전의 민선 2기 경기도체육회장 선거는 투표만을 남겨 놓았고, 31개 시·군 체육회는 후보등록을 마치고 본격 선거전에 돌입했다. 이미 11명이 단수 후보로 무투표 당선이 확정됐다. 20곳은 복수 후보가 치열한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후보들의 득표를 위한 열정과는 달리 정작 체육인들은 우려가 앞선다. ▶민선제도 도입 취지와는 달리 민선 1기를 경험한 지방체육은 지난 6월 지방선거 후 정치 지형이 바뀌면서 오히려 더 정치 예속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방정부의 지원에 예산을 의존해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이는 경기도의 경우 현역 회장 17명의 불출마와 지역마다 공공연하게 누가 지자체장 사람이라는 소문이 뒷받침되면서 무투표 당선자가 대거 나온 것에서 알 수 있다. ▶체육인들은 선거로 인해 지역 체육계가 분열되고, 민선화로 점점 예산 확보가 어렵다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부도덕하거나 행정능력이 부족한 일부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여기에 체육회장 선거가 정치인 대리전으로 변질되고, 정치권의 이전투구식 선거 행태를 답습하는 것도 문제다. ▶체육계에서는 ‘민선제도 무용론’과 ‘지자체장 겸직 회귀’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어차피 정해진 선거는 치를 수밖에 없다. 앞으로 4년 동안 지방체육의 발전이냐, 퇴보냐는 선거인단의 손에 달려 있다. 진정으로 체육을 위하고 걱정한다면 학연·지연 등 친분관계나 정치적 고려보다는 사심 없이 체육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인물을 뽑아야 한다. 대의원 선거인들의 선택에 지방체육의 명운이 걸려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화석정‚ 율곡 학문의 요람”

장단반도가 아득하다. 밑으로는 임진강이 흐른다. 파주 ‘화석정(花石亭)’에 오르면 펼쳐지는 풍광이다. ▶꽃과 돌의 조합인 ‘화석정’이란 현액(懸額)은 애초 중국 당나라에서 비롯됐다. 당시도 북방 이민족은 늘 중원을 노렸다. 이런 와중에 무관 백민중(白敏中)이 지방 출신이라는 이유로 업신여김을 받았다. 그런 그를 한 재상이 장군으로 추천했다. ▶백민중은 전장에 나가 흉족을 무찔렀다. 이후 그는 물론 그의 됨됨이를 알아본 재상 이덕유(李德裕)도 존경받았다. 이덕유는 노후에 정자를 건립하고 현판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파주 화석정은 율곡 이이 선생의 증조인 이명신(李明晨) 선생이 조선 초기에 건립했다. 정면 3칸에 측면 2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었다. 율곡 선생은 이곳에서 시를 짓고 나랏일도 논했다. 화석정은 율곡 선생의 학문연구소였다. ▶그런 정자가 56년 만에 디지털 전시관으로 원형 복원(경기일보 11월29일자 10면)이 추진된다. 현재의 건축물은 6·25전쟁 때 소실된 뒤 1966년 파주 유림 등이 나서 재건했지만 엉터리 복원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시는 이에 내년 상반기까지 13억여원을 들여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조성한다. 앞서 시는 관련 용역을 발주했다. 그 결과 1920, 30년대 촬영된 사진자료를 기준으로 화석정 정면이 3칸, 측면은 2칸, 내부는 통칸이고 동쪽 2칸은 대청보다 한 단 높은 온돌방(혹은 마루)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우선 넓이 1천200여㎡에 길이 200m 규모의 조경이 조성된다. 디지털 전시관 건립은 그 다음이다. 관리사 건물이 3차원 디지털기술이 활용된 디지털 전시관으로 거듭난다. ▶진입로도 대형 이동수단의 교행이 가능하게 만든다. 주차장도 추가로 마련된다. 군부대와의 상생발전을 위해서다. 화석정 복원의 취지는 율곡 선생 학문의 요람 되살리기다. 역사의 준엄한 명령이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크리스마스 케이크

서양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최대 명절로 꼽는다. 예수 탄생을 축하하고 이를 기리기 위해 나라마다 특별한 음식을 나눠 먹는다. 이제 크리스마스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전 세계인이 즐기는 특별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족,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케이크를 먹으며 파티를 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다. 크리스마스의 대표 음식은 케이크다. 우리가 설이나 추석에 떡을 해먹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세계인들이 즐기는 크리스마스 먹거리는 다양하다. 특히 유럽 국가에는 저마다 고유한 유래와 흥미로운 스토리를 가진 특별한 크리스마스 빵과 케이크가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크리스마스에 ‘파네토네’라는 빵을 먹는다. 밀가루를 발효시켜 설탕에 절인 과일과 피스타치오, 아몬드, 호두 등을 넣어 만든다. 1600년경 밀라노에서 토니라는 제빵사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개발한 빵으로, 토니의 빵(Pan de Toni)에서 유래됐다. 독일에선 전통빵인 ‘슈톨렌’을 먹는다. 과일과 견과류를 넣어 만든 발효빵으로 슈거파우더를 듬뿍 뿌려 눈처럼 보이게 했다. 프랑스의 ‘뷔슈 드 노엘’은 재앙을 막아준다는 주술적 의미를 포함한 장작 모양의 케이크다. ‘구겔호프’는 마리 앙트와네트가 사랑한 알자스 지방의 명물이다. 영국에서는 ‘플럼 푸딩’을 먹는다. 한국과 일본, 미국은 보통 둥근 형태의 데커레이션 케이크를 즐긴다. 케이크 시트에 크림을 바르고 위에 과일이나 초콜릿, 쿠키 등으로 장식을 한다. 요즘은 케이크가 요란하고 화려해졌다. 그런 만큼 가격도 엄청 비싸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서 호텔·유통업계에선 케이크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신라호텔은 한정판 스페셜 케이크 3종을 선보였는데 25만원짜리도 있다. 1일 예약을 시작했는데 전화 연결이 어려워 100번 넘게 했다는 이도 있다. 다른 호텔도 상황은 비슷해 보통 10만~20만원 하는데 완판이란다. 반면 개성 있으면서 귀엽고 재밌는 1만원 정도의 편의점 케이크들도 인기다. 케이크 시장까지 극단적 소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우울해하기 보다, 그냥 내 식대로 즐기면 될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소비기한 표시제

식품을 구입할 때 유통기한을 살핀다. 이왕이면 길게 남아있는 것을 고른다. 냉장고에 들어간 식품은 유통기한을 넘기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고민을 한다. 먹어도 괜찮을까? 아까운데, 버려야 하나? 그래서 버린 것들이 많다. 언제부턴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이 다르기 때문에 먹어도 된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소비기한은 유통기한보다 길게 나온다. 이후부터 우유나 요구르트, 두부, 계란 등은 며칠 지나도 먹고는 했다. 약간 찜찜함은 있었지만 탈은 없었다. 새해부터 식품에 표기되는 ‘유통기한’이 ‘소비기한’으로 바뀐다. 식품의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인 유통기한제가 1985년 도입된 이후 38년 만에 변경되는 것이다. 영업자 중심의 유통기한(Sell-by Date)은 소비자에게 판매가 허용되는 기한을 의미한다. 이 기한이 지나도 일정 기간 섭취가 가능한데 소비자 대부분이 이를 식품 폐기 시점으로 인식해 식품 폐기 비용 증가 및 환경오염 문제가 지적돼 왔다. 우리나라의 식품 폐기량은 연간 548만t, 처리 비용은 1조960억원에 달한다. 유통기간을 소비기한으로 바꾸는 제도가 시행되면 식품 폐기량 감소에 도움이 될 것이다. 식품을 적절하게 보관하면 계란은 25일, 우유는 45일, 냉동만두는 25일, 식용유는 5년을 더 소비할 수 있다는 식약당국의 조사 결과가 있다. 식품안전정보원은 소비기한 표시제로 소비자와 산업체에 연간 각각 8천860억원, 260억원의 편익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했다. 여기에 음식물 쓰레기 처리 비용 감소까지 고려하면 편익은 연간 약 1조원에 이른다. 우리나라의 소비기한 도입은 세계적 추세에 비춰 보면 늦은 편이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에서는 지난 2018년 식품 표시 규정에서 유통기한 표시를 삭제하고 소비기한 표시를 권고했다. 유럽연합(EU)은 식품 특성에 따라 소비기한, 품질유지기한, 냉동기한을 구분해 사용한다. ‘안전하게 섭취 가능한 기한을 명확하게 알리는’ 소비기한 도입은 여러 면에서 바람직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거북섬의 의미 있는 변신

섬은 주위가 수역(水域)으로 둘러싸인 육지의 일부다. 국어사전의 풀이다. 그런데 육지 끄트머리에 붙어 있어도 섬일까. 시흥의 거북섬 얘기다. ▶정왕동 육지에서 시화호 방향으로 툭 튀어나와 있다. 옛 행정지명으로는 정왕동 2726번지로 시화호 북쪽이다. 넓이는 110만7천㎡ 정도다. 바다를 막아 간척지를 조성하면서 인공적으로 만들어졌다. 시흥시의 마스코트가 거북이어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꼭 거북이 엎드려 있는 모양새다. ▶거북은 바다에 서식한다. 하지만 어류는 아니다. 파충류에 속한다. 몸은 단단한 등딱지 안에 갇혀 있다. 척추 신경인 배갑(背甲)이 연결돼 겉으로는 상자 같은 인상을 준다. ‘능청’과 ‘부지런’ 등이 이 녀석의 키워드다. 동서고금을 통해 그런 뉘앙스로 읽혀 왔다. ▶전국에는 시흥을 제외하고 거북섬이 모두 5곳이다. 부산 서구, 전남 여수시와 신안군 및 고흥군, 경남 사천시.... 부산과 경상도, 전라도 등 남녘에 거북섬들이 산재해 있다. 숫자상으로는 단연코 1위다. 물론 지명도 거북을 닮아 그렇게 지어졌겠다. ▶다시 시흥의 거북섬으로 돌아가 보자. 이곳을 에워싸고 주변에 시화멀티테크노밸리가 조성된다. 첨단·벤처업종을 중심으로 연구개발, 유통 등의 지원 기능과 관광·휴양·여가 기능이 조화된 미래지향적인 첨단복합단지다. 제2외곽순환도로가 개통되면 인천항, 인천국제공항 등으로의 접근성도 뛰어나다. 개발이익은 시화지역 환경개선 사업비로 활용된다. ▶시흥시는 해양수산부와 함께 거북섬에서 해양레저관광거점 조성사업에 착수했다. 총사업비로 370억원이 들어간다. 2024년까지 90선석의 계류시설과 연장 300m가량의 경관 브리지, 3층 규모의 클럽하우스를 갖춘 마리나 항만시설 등도 구축된다. 해양생태과학관과 아쿠아 펫랜드 등도 들어선다. 거북섬의 변신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기회 없는 경기도

“경기도지사가 바뀌어도 여전히 경기도에서는 기회가 없다.” 경기도내 살처분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지난해 봄 집중취재반을 구성해 도내 살처분 현장을 집중 취재했다. 구제역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하면 급하게 동물을 살처분해야 해 모든 시·군이 수의계약으로 살처분 업체를 선정하고 있다. 이러한 계약 과정에서 경기도내 업체들이 철저히 배제된 채 충청지역 업체가 도내 살처분 현장을 독식하고 있었고, 살처분 업체와 시·군 공무원들 사이의 부적정한 거래도 제보가 쏟아졌다. 이와 관련된 내용이 보도된 후 당시 민선 7기 이재명 경기지사의 경기도는 즉각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했다. 종합대책에는 살처분 업체 선정과 관련해 도내 업체와 우선 계약하도록 각 시·군에 권고하고 생산자 단체 등이 참여하는 ‘살처분 용역업체 선정위원회’를 구성해 공무원이 임의로 살처분 업체를 선정하지 못하도록 해 더 이상 살처분 업체와 공무원 사이의 불필요한 오해를 방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1년8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민선 8기 김동연 지사가 취임했고 ‘기회의 경기’를 외치고 있다. 도내 곳곳에서 AI가 발생하면서 살처분이 이뤄지고 있는데, 도내 살처분 업체들은 공정한 기회를 얻고 있을까. 현장을 확인해 본 결과 바뀐 것은 전혀 없었다. 여전히 공무원이 살처분 업체를 수의계약으로 선정하고 도내 현장을 충청도 업체가 독식하고 있다. 이러니 도내 살처분 업체들은 여전히 ‘경기도지사가 바뀌어도 경기도에서는 기회조차 없다’고 하소연이다. 경기도 공무원들이 살처분 업체 선정에서의 문제점을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고치지 않는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개선하지 않는다면 도지사와 시장이 나서야 한다. 그런 일을 하라고 우리가 선거를 하는 거 아닌가. 이호준 경제부장

[지지대] 일본의 음흉스러운 속내

일본의 집권당은 자민당이다. 1945년 패전 이후부터다. 우리의 정치 체질과는 다르다. ▶더 오른편에 공명당이란 정당이 있다. 일본 정치권에선 여권으로 분류된다. 자민당 그늘에 가려져 있지만 명목상으로는 중도우익을 표방한다. 1999~2009년 자민당과의 연정에도 참여했다. 그때부터 보수 성향이 강화됐다. 자민당 의원들보다 극우적인 측면에선 한 술 더 뜬다. ▶일본의 특정 정당을 거론한 까닭은 명쾌하다. 해당 정당이 최근 발표한 견해 탓이다. 공명당은 “한반도 유사시 ‘반격능력’ 행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위험한 워딩이다. 물론 ‘미국의 요청이 있다면’이란 전제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뭔가 음흉스러운 속내가 읽힌다. ▶당사자는 하마치 마사카즈(浜地雅一) 공명당 중의원이다. 일본 정가에서 극우 성향이 강한 정치인이다. 그런 그가 자민당과의 실무자 회의를 통해 반격능력 보유에 합의한 후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이처럼 말했다. 하마치 의원은 방위력 강화를 위한 자민·공명당 실무자 회의의 공명당 측 사무국장이다. ▶(북한이나 중국 등) 적 미사일 발사 거점 등을 공격할 수 있는 반격능력에 대해 한반도 유사시에도 발동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논리비약이다. ▶공명당은 앞서 열린 안보 3대 문서 개정 문제 협의회의에서도 반격능력 보유에 합의했다. 일본과 밀접한 국가에 무력공격 발생 시 반격능력 행사도 배제하지 않기로 했다. 일본 정부는 연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안보 3대 문서 개정을 결정한다. 반격능력 보유가 결정되면 일본 정부는 원거리 타격 무기 확보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때마침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방위력 강화를 위해 5년간 방위비 약 43조엔(약 412조원) 확보를 지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일본의 무력 사용 문제는 이래저래 동아시아의 ‘뜨거운 감자’다. 이웃 나라를 좀처럼 배려하지 않는 DNA 때문일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中 백지시위

2020년 7월6일 홍콩 중심가 IFC몰에 모인 시민들이 흰 종이를 꺼내 들었다. 시민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지켜보는 이들은 그 의미를 알았다. 홍콩보안법이 발효되면서 반중 구호가 적힌 피켓만 들어도 처벌받게 되자 표현의 자유를 빼앗긴 홍콩 시민들이 저항의 수단으로 ‘백지시위’를 선택한 것이다. 2년이 넘은 현재, 이번에는 중국 전역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백지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발단은 11월24일 신장위구르의 성도 우루무치에서 아파트 화재가 발생해 10명이 목숨을 잃은 사고였다. 시민들은 정부의 코로나 방역 강화로 인명 피해가 컸다고 주장했다. 화재가 발생한 아파트는 외출이 금지돼 수많은 차량이 주차돼 있었고, 당국이 봉쇄를 위해 설치한 장애물들로 소방차 현장 진입이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사실은 SNS를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제로 코로나’에 중국인들은 심한 피로감을 느끼면서 우루무치 화재 사건에 크게 동요했다. 상하이의 위구르인 거주지에선 26일 밤부터 수천명이 봉쇄 정책 반대 시위를 벌였다. ‘제로 코로나 해제’를 외치는 반코로나 시위는 베이징을 비롯해 우한, 청두, 광저우, 난징 등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열려 중국 전역이 들끓고 있다. 대학생과 시민들은 백지를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백지시위는 시위 참가자들이 검열과 통제에 저항한다는 의미로 아무런 구호를 적지 않은 종이를 든 데서 붙여졌다. ‘무엇이든 쓸 수 있는 백지에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상하이에선 ‘시진핑과 공산당 퇴진’을 외치는 구호가 등장했다. 중국당국은 이번 시위를 적대 세력에 의한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시위 가담자에 대한 강경 진압에 나섰다. 외신은 백지시위 확산으로 장기 집권에 돌입한 시진핑 체제가 전례 없는 도전에 직면했다며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가장 큰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의 백지시위가 국제 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우리도 차이나 리스크로 인한 한·중관계 영향 등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에너지 다이어트

연말이면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독일, 오스트리아, 체코, 프랑스 등에서 한 달여간 열리는 마켓에는 전 세계 관광객들이 넘쳐난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코로나19로 2년여간 열리지 않다가 올해는 문을 열었다. 독일만 해도 1천개 넘는 곳에서 축제가 열린다. 대표적인 곳이 뉘른베르크와 드레스덴이다. 러시아발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릴 수 있겠냐는 우려가 있었다. 전쟁 여파로 가스 공급이 부족해 혹독한 겨울을 보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독일은 크리스마스 마켓은 열었지만 전등 장식이나 부대시설 사용은 제한하고 있다. 시청과 같은 관광명소 장식 조명을 켜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사용되는 등은 발광다이오드(LED)를 사용했다. 마켓의 야외 식사시설은 난방을 하지 않았다. 오후 10시 이후 가로등의 개수나 밝기를 줄였다. 에너지전쟁 여파로 유럽은 추운 겨울, 추운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밖에 없다. 프랑스는 파리의 상징인 에펠탑의 야간조명 소등을 새벽 1시에서 오후 11시45분으로 앞당겼다. 대다수의 유럽 국가가 가정과 사업체, 공공건물에서 실내온도를 19도 이상으로 올리지 말 것을 독려하며 절전 모드에 들어갔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 절약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에너지시민연대는 ‘슬기로운 겨울나기 꼬꼬에(꼬리에 꼬리를 무는 에너지 절약)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하루에 한 개 에너지 절약 행동에 동참하자는 ‘1일 1 에너지 다이어트 챌린지’도 펼치고 있다. 전 세계가 에너지 위기로 고통을 겪고 있다. 한국도 에너지 수입이 급증하면서 고물가의 주범이 되고 무역수지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한국의 에너지 사용량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80%를 넘는 현실을 생각하면 에너지 다이어트가 절실하다. 전기 사용량을 10% 감축하고 실내 온도를 18도로 낮추자는 ‘에너지 다이어트 1018’ 캠페인, 내복과 터틀넥, 목도리 등 방한용품을 착용하는 ‘온(溫)맵시’ 실천 등 전 국민의 동참이 필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황새들도 우크라 영향

뱁새도 이 새를 따라가려다 가랑이가 찢어진다. 황새를 두고 하는 말이다. 겨울에 한반도를 찾는 철새 중 우두머리다. ▶검은 부리와 첫째 날개깃, 붉은 다리 등이 특징이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다. 세계자연보전연맹 멸종위기 동식물 목록인 적색목록에도 멸종위기 등급으로 지정됐다. 지구촌에 1천~2천500마리 남았다. 녀석들은 매년 10월부터 한반도로 내려와 겨울을 지낸다. 체류 기간은 석 달 남짓이다. ▶요즘 이 녀석들의 보존사업에 비상이 걸렸다. 러시아와 공동으로 추진해 오던 서식지 보존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어서다. 국립생태원에 따르면 러시아와 황새 서식지 보존을 위해 인공 둥지탑을 짓고 이동 경로 등을 공동 연구하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 2019년 11월이었다. ▶인공 둥지탑 만들기는 통상 높이 5~20m 나무에 둥지를 짓고 매년 같은 둥지를 재사용하는 황새 습성을 고려한 서식지 보존사업이다. 양국 연구진은 2020~2021년 러시아에 황새가 도래하기 전인 2~3월 인공 둥지탑을 번식지인 연해주에 10곳, 중간 기착지인 두만강 유역에 6곳 설치했다. 국립생태원은 이 사업을 올해까지 시행하려고 했다. ▶그런데 올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목을 잡았다. 정부는 코로나19로 러시아를 포함한 전 국가와 지역에 특별여행주의보를 적용하고 있었는데, 연구진 입장에선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터진 상황이어서 현장 방문을 자제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연구진은 올해도 인공 둥지탑 8곳을 조성하고 이소(離巢·새끼 새가 자라 둥지를 떠남)를 앞둔 어린 새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해 이동 경로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국 연구진이 러시아를 방문할 수 없게 되면서 내년으로 미뤄졌다. 일정 자체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폐해가 어디 이것뿐이겠는가.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기적

‘기적’은 어릴 때 바라던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처럼 뜻하지 않게 일어나기에 설렘을 배가시킨다. 겨울에 열리는 사상 최초의 월드컵, 2022 카타르 월드컵 얘기다. 월드컵을 보기 시작한 이후 정말로 듣기 싫은 말이 바로 ‘경우의 수’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제외한 대회에서 대한민국 축구는 항상 ‘경우의 수’와 ‘징크스’라는 단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다. 지긋지긋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도 2차전 무승 징크스는 이어졌고, 그 패배로 실낱 같은 희망을 안은 채 경우의 수는 여지 없이 따지게 됐다. 그 경우의 수를 위해 대한민국 축구는 또 한번의 기적을 만들어 내야 한다. 4년 전 당시 피파(FIFA) 랭킹 1위였던 독일을 2 대 0으로 제압했던 ‘카잔의 기적’처럼 말이다. ▶사실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카타르 도하는 긍정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곳이다. 대한민국은 도하에서 치러진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막판에 일본을 제치고 극적으로 본선 진출 티켓을 거머쥐었고, 이는 ‘도하의 기적’으로 불려 왔다. 기적이 일어났던 곳에서 다시 한번 제2의 도하의 기적이 일어나길 온 국민이 바라고 있다. 그런데 그 대상이 바로 호날두가 이끄는 포르투갈이다. ▶‘평행이론’과 ‘노쇼(No-Show)’.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은 한 조에 배치됐고, 이번 대회와 같이 예선 3차전 경기를 치렀다. 당시 포르투갈은 루이스 피구 등 월드클래스 멤버들을 앞세운 세계 축구의 강호였다. 하지만 박지성의 골로 대한민국이 신승, 포르투갈은 짐을 싸고 떠났다. 그리고 김태영 선수의 마스크는 캡틴 손흥민 선수로 이어지기에 20년의 평행이론이 진행되길 많은 이들이 꿈꾸고 있다. 그리고 노쇼. 복수의 시간. 지난 2019년 유벤투스 친선 경기 때 보여준 호날두의 ‘노쇼 파문’은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이제 기적의 명분은 충분하다. 태극 전사들이여. 고개 들고 당당히 싸우자. 당신들은 침체된 대한민국의 활력소이자, 기적의 서사시를 쓰는 주인공이니까 말이다. 김규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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