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GTX 교통 공약

선거 때만 되면 온갖 공약이 난무한다. 얼마나 타당성·효용성이 있는지는 중요한 것 같지 않다. 당선이 관건인 후보들은 아니면 말고식으로 쏟아낸다. 지키지 않았다고 패널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유권자를 유혹할만한 ‘먹이’를 던진다. 제일 많은 단골 공약이 ‘교통’ 관련이다. 지하철이나 전철 노선 연장, IC 확충, 역 신설, 우회도로 건설, 버스노선 신설 등 교통 공약은 후보자들마다 빠지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100개가 넘는 굵직한 교통 공약을 발표했다. 6·1 지방선거를 앞두고 경기지사 후보들도 교통공약으로 민심잡기에 나섰다. 역시 수도권 주민의 관심이 지대한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가 핵심이다. 민주당 김동연 후보는 ‘GTX 플러스 프로젝트’를 공개했다. 서울에 가로막힌 경기도의 동서남북을 직선으로 뚫는다는 계획이다. GTX A·B·C 노선을 연장하고 D·E·F 노선 신설을 약속했다. GTX A+는 동탄에서 평택까지, GTX B+는 마석에서 가평, GTX C+의 북부 구간은 동두천까지, 남부 구간은 오산·평택까지 연장 계획이다. GTX D는 김포∼강남∼하남∼팔당 구간으로 정상화하고, GTX E는 인천∼광명·시흥신도시∼서울∼포천을 잇는다는 복안이다. GTX F는 파주에서 삼송∼서울∼위례∼광주∼이천∼여주를 잇는 노선이다. 국민의힘 김은혜 후보는 집권당이라는데 초점을 맞춰 조기완공에 무게를 뒀다. 노선 연장과 신설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을 그대로 반영했다. 앞서 윤 대통령은 GTX D·E·F 노선 신설과 기존 GTX A·C 노선의 평택 연결을 약속했다. GTX E 노선은 인천 검암에서 김포공항∼정릉∼구리∼남양주로 이어지도록 구상했고, GTX F 노선은 수도권 전체를 하나의 메가시티로 묶는 순환선으로 만들 방침이다. 교통시설 확충 공약은 집값·땅값을 들썩이게 한다. GTX는 정차역만 언급돼도 순식간에 아파트값이 오른다. 재원 마련이나 구체적 계획없이 쏟아낸 공약은 자칫 ‘매표행위’가 될 수 있다. 유권자를 현혹하는 공약(空約)이 될 수도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어린이 빗댄 ‘○린이’

이번 100주년 어린이날에는 마스크 없이 웃는 아이들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얼마나 맑고 밝은 표정인지, 정말 오랜만이었다.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할 때는 학교까지 문을 닫으면서 아이들을 좀처럼 만나기 어려웠다. 그래서일까, 길에서 마주치는 아이들이 반가웠다. 흔히 어린이는 나라의 희망이고 기둥이고 보배라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부모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가 하면, 아동학대나 혐오도 크게 늘었다. ‘잼민이’라는 말이 있다. 초등학생을 비하하는 의미로 흔히 쓰이는 표현이다. 아이들은 이 용어를 기분 나빠하고 싫어한다. 일종의 혐오표현 같은 것인데, 온오프라인에서 어른들이 여과없이 쓰는 사례가 있다. 교육방송 EBS가 지난해 7월 트위터 게시물에 ‘잼민좌’ 단어를 사용해 논란이 됐다. EBS는 “잼민이가 재미있는 어린아이를 부르는 유행어라고 생각했다”고 사과했다. 최근엔 초보를 뜻하는 ‘○린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초보 주식투자자를 ‘주린이(주식+어린이)’, 초보 부동산투자자를 ‘부린이’, 요리 초보자를 ‘요린이’, 골프 입문자를 ‘골린이’, 헬스 초보자를 ‘헬린이’ 등으로 부른다. ‘○린이’ 표현은 어린이의 낮은 연령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서툴고 미숙한 사람에게 붙이는 호칭처럼 여겨진다. 이런 식의 표현은 어린이를 비하하는 것으로, 편견을 고착화하고 차별로 이어질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린이’ 표현은 아동이 권리의 주체이자 독립된 인격체가 아니라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에 기반한 것”이라며 “아동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을 조장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린이’란 표현이 공문서와 방송, 인터넷 등에서 사용되지 않도록 홍보와 교육 등 개선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린이’란 표현의 무분별한 사용을 자제하고, ‘어린이가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좀 더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풀 메탈 자켓’

한 병사가 물었다. “(이 소총 탄환의) 파괴력은 어느 정도일까?”. 그러자 명사형의 짧은 대답이 되돌아왔다. “풀 메탈 자켓(Full Metal Jacket)”. 굳이 풀이하자면, 구리로 코팅한 탄두가 목표물을 정확하게 꿰뚫을 수 있다는 뜻이다. ▶고(故)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 감독의 영화 ‘풀 메탈 자켓’의 한 장면이다.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 제목이 툭 튀어 나온다. 관객들은 당혹스럽다. 후반부로 들어갈수록 그 황당함은 계속 된다. 적들은 몰려 오는데 방아쇠는 당겨지지 않고, 소대 병력은 전멸당한다. 세계 최정예인 미국 해병대가 말이다. 병사이기 전에 그저 나약한 사내들일 뿐이다. ▶끝 모를 패배감까지 엄습한다. 전쟁을 위해 준비된 병사들이 아니다. 그저 패배를 위해 예정된 군상(群像)일 뿐이다. 영웅심에 우쭐했던 소대장도 마찬가지다. 겁먹은 소대원들보다 먼저 비겁해진다. 관객들은 그래도 끝까지 뭔가 시원하고 의례적인 결말을 예상한다.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막연한 기대는 그러나 여지 없이 무너진다. 엔딩 자막이 나오면서는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무릎까지 시려온다. ▶영화 속으로 더 들어가 보자. 초반부 배경은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州 파리스 아일랜드 신병훈련소다. 고교를 갓 졸업한 젊은이들이 살인 기계가 되기 위해 8주일 동안 훈련을 받는다. 인정사정 없는 교관에게 온갖 욕지거리를 들으면서 찰 지게 단련된다. 이 와중에 한 훈련병이 교관을 사살하고, 자신도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다. 실로 어처구니 없는 반전이다. ▶그의 작품들은 늘 낯설고, 까칠하다. 그 중에서도 ‘풀 메탈 자켓’은 역대급이다. 해병대 정훈병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소설가 구스타프 하스포드의 원작을 더 뒤틀었다. 반전(反戰)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정작 전쟁의 광기와 부조리에 초점이 맞춰졌다. 순진했던 젊은이들이 잔인하게 변해가는 과정이 치밀하게 묘사된다. ▶국내 개봉 시기는 1990년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현실은 영화 속의 비정함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논픽션이 픽션 보다 더 처참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공인으로 산다는 것은

지난 3일 프로야구 NC 다이노스의 코치간 술자리 폭행이 전면 관중 입장과 치열한 순위경쟁으로 인기를 되찾아가던 프로야구계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난해 주축 선수 3명이 코로나19 방역지침을 위반하며 술판을 벌여 구단과 KBO로 부터 중징계를 받은 뒤 같은 구단에서 또다시 발생한 악재다. ▶최근 국내 스포츠계는 선수들의 과거 학교폭력 문제와 음주운전, 성추행, SNS 상의 부적절한 표현으로 인한 파장이 끊이질 않으면서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다. 일부 체육인들은 ‘옛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로 치부하지만, 세상이 변하고 그만큼 사회적인 시각과 잣대가 엄격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통해 부와 영화를 누리는 연예인과 더불어 스포츠스타 역시 팬의 관심과 사랑을 먹고 사는 직업군이다. 특히 요즘에는 많은 운동선수 출신들이 준수한 외모와 빼어난 피지컬, 대중적 인기도를 바탕으로 은퇴후 연예계 생활을 하고 있다. 일부 현역 스타들은 훈련과 경기에 지장이 없는 범주 내에서 시즌 중에도 방송활동을 한다. ▶우리는 흔히 공적인 자격을 갖추고 국가와 사회에 관계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공인(公人)’이라 칭한다. 넓은 의미로 공인은 사회적으로 알려져 그 사람의 언행이 일반 대중에게 크게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공직자는 물론 성직자, 기업가, 언론인, 연예인, 운동선수도 일상생활 속에서 일반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에 포함된다. ▶하지만 공인의 신분을 망각하면서 일탈하는 사람들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한다. 혈기 왕성한 운동선수들에게 장기간 리그를 뛰면서 절제와 금욕의 생활을 하는 것은 큰 고통일 수 밖에 없다. 그렇기에 각 구단들은 코칭스태프는 물론 선수들의 리그 중 간헐적인 음주 등을 묵인한다. 스트레스 해소와 컨디션 관리 차원의 배려다. 문제는 그들이 공인이라는 사실이다. 공인의 삶은 그만큼 힘들고도 어렵다. 보통사람보다 높은 도덕성과 노력, 자제력을 요구한다. 언행의 절제가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공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힘든 가시밭길을 걷고 있는 것과 같다. 황선학 문화체육부 부국장

[지지대] 어린이날, 또 다른 독립운동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에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윤극영 선생의 동요 ‘반달’ 노랫말은 애닯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이원수 선생의 ‘고향의 봄’은 더 그렇다. 읊으면 읊을수록 코끝이 시큰해진다. ▶동요를 소환한 까닭은 이 작품들이 태어날 수 있었던 플랫폼 얘기를 하기 위해서다. ‘소년(少年)’이란 한자어는 투박하다.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사내아이란 뜻이다. ‘어린이’라는 순수한 우리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하면서 그 투박함은 사라졌다. 같은 이름의 잡지가 창간됐기 때문이다. 1923년 3월이었다. 일제강점기였다. 그 암울했던 시기에 소년들을 대상으로 매월 발간되는 잡지는 한줄기 빛이었다. 아동문학가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 덕분이었다. ▶창간된 뒤 9년 만인 1934년 7월 통권 122호로 폐간됐다. 이 잡지를 통해 우리 문학에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다. 동요·동화다. 최초로 우리 민족의 정서가 오롯이 담긴 동요·동화들이 실렸다. 한국 아동문학의 본격적인 출발선을 그었다. 1925년을 전후해 동요 황금시대도 열렸다. ▶잡지 ‘어린이’가 단순한 아동문학 동인지를 넘어 소년인권운동을 펼쳤다는 평가도 나온다. 식민지배 저항운동 성격을 띠었다는 분석도 그렇다. 최미선 경상국립대 교수의 논문을 통해서다. 최 교수는 ‘어린이’와 당시 조선총독부가 매월 검열 내용을 수록한 ‘조선출판경찰월보(월보)’를 분석, 이처럼 결론을 내렸다.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 창간호 발행일자를 3·1절 기미독립선언 기념일에 맞추려고 했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검열로 1923년 3월20일 첫 발행이 이뤄질 수 있었다. 지속된 일본 경찰의 검열 흔적은 사고(社告)란을 통해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도대체 잡지에 어떤 내용이 담겼길래 그랬을까. 1926년 9월 발행된 사고란에는 잡지의 모회사인 ‘개벽’이 발행금지를 당했다는 내용도 실렸다. 1928년 3월에는 총독부 경무국으로부터 압수명령을 받아 전국의 서점 350여곳에서 모두 몰수당했다. ▶소파 선생은 아동문학가 정도로만 알려졌지만, 사실은 잡지 ‘어린이’를 통해 독립운동을 펼쳤다. 어린이날은 그래서 무릇 또 다른 이름의 독립운동이었다. 그런 어린이날이 올해로 100주년을 맞는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실외 ‘노 마스크’

이달 2일부터 공원 등 실외에서 마스크 없이 산책할 수 있게 됐다. 야외에서 이뤄지는 체육 수업과 결혼식, 지하철 야외 승강장, 놀이공원, 등산로 등에서도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 드디어 야외에서 만큼은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니, 감회가 새롭다. 마스크 없이 숨쉬며 활보할 수 있는 자유가 이렇게 소중한 줄 미처 몰랐다. 정부의 마스크 착용 의무화는 2020년 10월13일부터 시작됐다. 야외로 한정됐지만, 마스크 의무화 조치가 해제된 것은 566일 만이다. 코로나19 감염을 막기 위해 국민 스스로 마스크를 썼던 기간까지 포함하면 2년 넘게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심지어 집안에서도 썼으니 얼마나 답답한 시간이었나. 마스크를 생각하면, 저마다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을 것이다. 마스크를 한장이라도 더 구하려고 몇시간씩 줄을 섰던 일이 엊그제 같다. 코로나19 사태 초기였던 2020년 2월부터 마스크 품귀 현상이 빚어졌다. 마스크 가격이 폭등했고, 온·오프라인에서 품절 사태가 이어지면서 마스크 대란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한시적으로 마스크 수출을 제한하고 공적 마스크 제도를 도입했다. 출생연도에 따라 지정된 요일에만 1인당 주 2매씩 살 수 있는 ‘마스크 5부제’를 시행하는 수급 대책을 마련했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사라지면서 일상회복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됐다. 코로나19 유행이 뚜렷한 감소세를 보이고, 방역·의료 대응 상황이 안정기에 접어들어 방역 관리를 ‘자율 실천’ 체계로 이행해간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세계보건기구(WHO), 유럽질병통제예방센터(ECDC) 등도 실외에선 감염 전파 가능성이 낮다며, 실외 마스크 착용은 물리적 간격을 고려하는 수준에서 권고하고 있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됐다고 방심하면 안된다. 공연·스포츠 경기 등 밀집도가 높은 장소에선 실외라도 마스크를 계속 써야 한다. 고령층이나 코로나19 고위험군도 마찬가지다. 실외 마스크 해제가 바이러스로부터의 해방은 아니다. 경각심을 잃지말고 개인 위생과 방역을 계속 철저히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풀브라이트 장학금

풀브라이트(Fulbright·1905~1995)는 미국의 정치가다. 아칸소대학교 총장을 지내고 하원·상원 의원을 거쳐 15년간 상원 외교위원장을 맡아 미국 대외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미 정부의 잉여농산물을 외국에 판매해 얻은 수입을 현지 국가에 적립해 뒀다가 그 나라의 문화·교육 교류에 사용하도록 하는 풀브라이트법을 제안했다. 그 법에 근거해 1946년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만들었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은 미국 대학원 학위 과정이나 교수 등의 강의·연구를 지원하는 국무부의 프로그램이다. 풀브라이트재단에서 장학금을 받고 유학한 전세계 지식인이 160여개국에 이른다. 장학생 중에서 노벨상 수상자 61명, 퓰리처상 수상자 89명, 총리 혹은 대통령 40명이 배출됐다. 우리나라도 이현재·한승수·조순·김동연 등 1천여명이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장학생 선발은 한미교육위원단에서 한다. 미 국무부가 관여하는 것은, 미국에 대한 이해와 호감을 높이는 외교 프로그램 성격도 있어서다. 수혜자에겐 연간 최대 4만달러(5천만원) 학비와 월 1천300∼2천410달러(163만∼302만원)의 생활비가 지급된다.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 가족 4명 모두가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고 미국 대학에서 일하거나 공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후보자는 존스홉킨스대 초빙교수 시절인 1996년에 이 장학금을 받았다. 부인은 2004년에 이 장학금으로 템플대에서 교환교수를 했다. 딸은 2014년 코넬대 석사 과정을, 아들은 2016년 컬럼비아대 석사 과정을 다녔다. 자녀가 선발될 당시 김 후보자는 한국풀브라이트 동문회장이었다. ‘풀브라이트’가 갑자기 소환된 것은, ‘아빠 찬스’ 특혜 때문이다. ‘아빠 찬스’가 아니라해도, 수혜자가 소수인 장학금을 일가족 4명이 받은 것은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반칙이나 특권이 없었다는 김 후보자의 항변에도 이해충돌과 특혜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끼리끼리 나눠 먹기식 ‘장학금 대물림’에 어떤 가난한 젊은이의 유학 꿈이 좌절됐을 수도 있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이곳은 지구입니다”

어느 한적한 마을에 우주선이 착륙한다. 외계인들은 지구의 각종 표본들을 채취한다. 그러던 중 인간들이 나타나자 지구를 떠난다. 뒤쳐진 외계인 한명만 남는다. 방황하던 외계인은 한 가정집에 숨어들고, 그 집 꼬마와 조우한다. ▶꼬마는 외계인에게 ET(Extra-Terrestrial)란 칭호를 붙여준다. 그리고 형과 여동생 등에게 ET의 존재를 알려준다. 1984년 개봉된 ‘ ET’라는 영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영화에서 외계인은 머리가 무거운 괴물 같은 존재로 그려졌다. 그 이후 ET는 외계인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됐다. 외계인은 과연 존재할까. ▶고래 소리와 천둥 소리, 55개 언어로 된 인사말, 척 베리의 음악.... 태양계를 비행 중인 우주탐사선 보이저 1·2호에 실린 것들이다. 미항공우주국(NASA)이 우주로 발사했었다. 1977년이었다. 벌써 47년이 흘렀다. 세월은 빠르다. ▶우주에 보내는 메시지는 명쾌하다. “이곳은 지구라는 행성입니다”. 외계인이 있다면 지구에서 보낸 메시지를 받을 수 있을까. 받는다면 인류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과학자들은 외계인에게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려고 하고 있다. 어제 오늘 얘기는 아니다. ▶외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외계생명체 탐사연구소를 비롯해 세계 각국 과학자들이 외계인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향후 인간이 거주할 가능성이 있는 행성의 외계인에게 인류를 소개하기 위해서다. 이들이 준비한 문서에는 지구의 위치를 알려주는 우주지도 등도 담긴다. 언어나 감각기관이 인류와 달라도 읽을 수 있도록 이진법 형태로 작성된다. 인간의 형체, DNA 구조 등도 우주로 보낸다.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외계인이 되레 인류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다. 외계인에 메시지를 보내려는 시도가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故) 스티븐 호킹 박사도 생전에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그는 지난 2010년 인터뷰를 통해 “(인류보다 문명이) 발달한 외계인들은 그들이 갈 수 있는 모든 행성을 정복하고 식민지화하려고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태양계 밖에 있을지도 모를 외계 생명체에게 지구와 인류의 존재를 알리려는 작업은 수십년 전부터 시도되고 있다. 이 시도는 과연 결실을 맺을 수 있을까. 그 시기는 언제쯤일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격전지

총알과 포탄이 터진다. 총격전에 육탄전까지 벌어지고 싸우던 전우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전진이다. 고지가 코앞이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고지를 점령하고 승리의 깃발을 꽂아야 한다. 고지를 점령하기까지 희생이 따르지만 치열하게 싸워 승리한다는 스토리. 영화 속 흔히 보는 격전지 전투 장면이다. 선거를 전쟁에 비유하곤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남기 위해선 경쟁자를 제쳐야 한다. 선거공약과 사람이라는 무기가 있어야 하고 때로는 룰에서 벗어나 경쟁자의 약점을 파고들 부비트랩을 설치하고 스파이를 심어 놓기도 한다. 선거 전략을 잘 짜야 전투를 수월하게 치를 수 있다. 여차하면 끝이다. 선거는 1등만이 모든 것을 가져가기 때문이다. 6·1지방선거가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각 정당에서 공천 작업을 벌여 후보를 선정 중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선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하다시피 했지만 이번엔 국민의힘이 대선 승리 기세를 이어받아 탈환을 노리고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경기도에 유독 격전지가 많은 이유다. 치열한 승부가 예상되면서 각 정당은 후보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위기다. 참신한 정치 신인이냐, 관록의 기성 정치인이냐. 무엇보다 다양한 경기지역 지자체의 특성상 승리 가능성과 경쟁력이 있는지 판단이 쉽지 않다. 최근 정당 공천 컷오프를 놓고 반발도 이어지고 있다. 중앙당 앞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을 배제한 중앙당을 공개 비난하기도 한다. 경기도 내 현역 시장·군수 4명은 이른바 현역 프리미엄이 무색하게 경선 대상자에도 오르지 못하고 컷오프되는 수모를 당했다. 죽기 살기로 했는데 경선조차 치르지 못하고 떨어지다니 당사자 입장에선 믿고 싶지 않은 냉혹한 정치 현실이다. 선거에서 가장 큰 무기는 무엇보다 시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요즘 사람들은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변화를 원한다. 결국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얻는 자가 격전지에서 승리의 깃발을 올릴 수 있다. 이선호 지역사회부장

[지지대] 美中 충돌 속의 한반도

‘오랑캐’가 대륙을 유린했다. 이 족속에게 연전연패하던 나라의 황제가 파병을 요청해왔다. 신생 국가의 우두머리는 집요하게 선택을 강요했다. 약소국 군주는 어느 나라에 줄을 설까 고민하다 오랑캐에 맞설 군사를 파병했다. ▶군주는 장수에게 이렇게 일렀다. “짐짓 지는 척해라”. 파병을 요청한 나라에게도, 새로 일어서는 족속에게도 명분을 줬다. 한 나라는 일어서고 있었고, 어떤 국가는 무너지고 있었다. 약소국 군주가 택할 수 있었던 최선이었다. 200여년 전 역사다. ▶당시 대륙에선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패권을 잡기 위해서였다. 죽어나는 계층은 백성들이었다. 비공식적 집계로 당시 20여년 동안 대륙에선 1천만명 이상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한반도에선 전쟁 관련 영향은 받지 않았다. ▶한반도는 대륙과 불가분의 관계다. 정치학에선 ‘지정학(地政學)적 관점’이라 부른다. 당시 흥(興)하던 나라는 국호를 청(淸)으로 바꾼 후금(後金)이었다. 멸(滅)하던 국가는 명(明)이었다. 인조의 쿠데타로 역사의 소용돌이 뒤편으로 사라진 약소국의 군주는 광해군이었다. ▶인조는 즉위 후 망해가는 명나라를 살려야 한다며 후금과 맞섰다. 그러자 이 나라는 조선을 2차례나 짓밟았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었다. 인조는 오랑캐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항복하는 치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숱한 백성들이 스러졌다. ▶그로부터 200여년이 흐른 동북아 상황도 그때와 데칼코마니다.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과 미국의 SS라인이 충돌하고 있어서다. 일대일로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유럽 등을 연결하려는 육상·해상 실크로드다. SS라인은 태평양을 ‘미국의 호수’로 만들려 했던 19세기 후반 윌리엄 수어드 국무장관과 조선 개항 목표를 실현한 로버트 슈펠트 함장의 성에서 딴 신조어다. 그 중간에 한반도가 있다. 이 두 전략이 한국에 또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변수는 늘 중국이다. ‘포스트 미국 시대’를 주도할 이념과 체제를 갖고 있느냐가 관건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중국 위상은 위축되고 있다. 미국과의 동맹은 우리의 생존과 번영에는 여전히 상수(常數)다. 과연 지금은 어느 나라가 흥하고 어느 국가가 망하고 있는 걸까.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코로나19 ‘2급 감염병’ 하향

법정감염병은 질병의 위험도 등에 따라 1급부터 4급까지로 분류된다. 최고 단계인 1급은 ‘치명률이 높거나 집단발생의 우려가 커서 발생 또는 유행 즉시 신고해야 하고, 음압격리와 같은 높은 수준의 격리가 필요한 감염병’이다. 에볼라바이러스, 사스, 메르스, 신종플루 등 17종이 해당한다. 2급은 결핵, 수두, 홍역, 콜레라, 장티푸스 등 20종이다. 정부가 25일부터 코로나19 감염병 등급을 1급에서 2급으로 하향 조정했다. 국내에서 코로나19 첫 환자가 발생한 2020년 1월 이후 약 2년 3개월 만이다. 1급 감염병에서 제외되면 격리의무가 사라지는 등 코로나19 관리체계의 많은 부분이 바뀌는데, 실질적인 변화는 다음 달 하순쯤 시행될 예정이다. 의료현장이 충분히 준비할 수 있도록 4주간을 ‘이행기’로 정했기 때문이다. 이행기가 끝나고 유행 상황이 안정되면 내달 23일쯤 ‘안착기’로 넘어가 2급 수준의 방역체계로 전환된다. 2급으로 하향 조정돼 격리의무가 사라지면 생활비·유급휴가비·치료비 등의 정부 지원은 없다. 독감 같은 일반 감염병처럼 일반 의료기관에 가서 진료받고,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해 치료받게 된다. 코로나19의 감염병 등급 하향으로 25일부터 영화관에서 팝콘을 먹거나 마트에서 시식을 즐길 수 있다. 정부는 이번 주에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 해제 논의도 착수할 방침이다. 현재는 모든 실내, 실외에서 다른 사람과 2m 거리 유지가 안되는 경우, 집회·공연·행사 등 다중이 모이는 경우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 새정부 인수위는 섣부른 실외 마스크 해제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고위험군 보호를 위해 사람이 붐비는 시간·공간에서는 실외에서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민 모두가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빨리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맘대로 여행하고, 맘대로 먹고 마시며 즐기고 싶어한다. 하지만 아직은 위험하다. 간헐적인 재유행이나 새로운 변이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포켓몬 빵 열풍

‘포켓몬 빵’이 인기폭발이다. 사려는 사람은 많은데 빵이 없어 품절대란을 겪고 있다. 편의점에선 이 빵 때문에 곤혹을 치루고 있다. 출입문에 “포켓몬 빵 없습니다”라고 써붙여도 소용없다. 혹시나 하는 소비자들은 문을 밀치고, “포켓몬 빵 있어요?”라고 묻는다. 판매원들은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포켓몬 빵을 찾아 여기까지 왔구나. 자, 그럼 다음 편의점으로 이동하렴”, “아쉬운대로 쿠키런 친구들을 데려가는 건 어떻겠니?”, “하루에 빵 0~3개 들어옵니다. 하루에 150명이 물어봅니다. (포켓몬 빵) 판매하지 않습니다”. 어떤 편의점에는 품절을 알리는 이런 안내문도 붙여놨다. 포켓몬 빵은 빵을 먹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다. 봉지 안의 스티커를 모으려는 것이다. 빵 봉지에는 159종의 포켓몬 캐릭터 그림이 랜덤으로 들어있다. 뗐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스티커라는 뜻에서 ‘띠부띠부씰’이라고도 한다. 띠부씰이 들어있는 포켓몬 빵은 1998년 처음 등장해 2006년에 단종됐다가 얼마 전 다시 출시된 것이다. 당시에도 매월 5백만개씩 팔릴 정도로 큰 인기였다. 그때 어린이였던 고객들이 지금 성인이 됐다. 20~30대가 포켓몬 빵 열광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전쟁하듯, 미친듯이 띠부씰을 모은다. 띠부씰을 구하려고 마트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가는 ‘오픈런’이 유행이고, 일부 마트에선 1인당 구매 한도를 정해 놓고 번호표까지 나눠준다. 편의점 물류배송 트럭을 따라다니며 갓 들어온 빵을 싹쓸이하는 ‘트럭 추격전’도 벌어진다. 희귀 띠부씰은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비싼 값에 팔려 ‘빵테크’라는 말까지 나왔다. 1천500원짜리 빵을 몇 배로 올려 되파는가 하면 스티커 전 종을 모은 씰 북을 100만원 넘는 가격에 파는 사람도 등장했다. 여러 논란이 있다. 예전에도 그랬듯 스티커만 얻고 빵을 버리는 문제가 재현되고 있다. 빈 봉지를 아무데나 버려 환경오염 문제도 야기된다. 포켓몬 빵 열풍이 코로나로 답답한 세상에 재밌는 일일 수 있지만, 단순한 추억팔이로 가볍게 생각할 일만은 아닌것 같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잔인한 애그플레이션

애그플레이션(Agflation). 농업(Agriculture)과 인플레이션(Inflation)의 합성어다. 농산물 값 오름세가 일반물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뜻하는 신조어(新造語)다. 메릴린치(Merrill Lynch)가 지난 2007년 처음 사용했다. ‘세계 농업과 애그플레이션 보고서’를 통해서다. ▶농경문화가 인류역사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킨 건 팩트다. 농산물 값은 물가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공산품 값은 농산물에 의해 좌우되기 마련이다. 물가를 잡으려면 농산물부터 손을 대야 하는 이유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밀·옥수수 값이 뛰고 있다. 일반 물가도 덩달아 오르고 있다. 애그플레이션의 본격화다. 우크라이나는 세계적인 밀·옥수수 농사 지역이지만 전쟁 중이다. 이들 농산물 생산이나 수확 등이 이뤄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 예고됐던 상황이다. ▶지난달 수입 밀 값이 t당 400달러를 넘었다. 밀 수입 단가가 400달러를 돌파한 건 지난 2008년 12월 이후 처음이다. 지난달 밀 수입량은 42만9천t, 금액으로는 1억7천245만달러다. 수입 밀 값 인상의 주범은 뭐니 뭐니 해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다. ▶밀 값 상승으로 외식 물가 부담도 커지고 있다. 수도권 칼국수 평균 값은 8천113원으로 1년 전보다 8.7%, 냉면도 9천962원으로 1년 전보다 9.7%, 자장면은 5천846원으로 9.4% 뛰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더 상승할 조짐이다. ▶옥수수도 마찬가지다. 옥수수 선물은 25.4㎏당 2.6% 오른 8.04달러다. 지난 2012년 9월 이후 처음으로 8달러 선을 넘었다. 가뭄과 이상 고온 등이 미국 중서부를 덮쳤던 지난 2012년 최고가인 25.4㎏당 8.49달러에도 근접한 수치다. 올해 2월 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수직으로 올랐다. ▶두 나라는 세계 옥수수 수출량의 5분의 1을 차지한다. 문제는 전쟁의 장기화다. 올해 초까지만 해도 25.4㎏당 6달러였던 옥수수 값이 넉 달 만에 30% 이상 치솟았다. 농산물 값의 끝없는 고공 행진이 예고된다. 농산물 값이 오르면 이래저래 어려워지는 건 서민들의 가계다. 그래서 뒷맛이 씁쓸하다. 잔인한 애그플레이션은 바야흐로 현재 진행형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권력기관 개혁... 국민과 함께, 글쎄요

짙은 자줏빛에 향기로운 자두가 고고한 선비를 유혹할 만큼 강렬했을까. 자두의 순 우리말은 오얏이다. 옛말에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고쳐 매지 마라’고 했다. 남에게 오해받지 않도록 행동을 조심하라는 뜻으로 자주 인용한다. 설사 갓을 고쳐 쓴다 해도 그 모습은 멀찍이 떨어진 사람의 눈에 자두를 따는 행동으로 보일 수 있다. 괜한 시빗거리를 만들지 말라는 선비 정신의 가르침이다. 더불어민주당이 검찰개혁 법안인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에 당력을 쏟고 있다. 윤호중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검수완박 법안을 이달 내 국회서 통과시켜 다음 달 3일 국무회의에서 공포하는 일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좌고우면 없이 앞 만 보고 폭주할 뿐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위를 소집, 차수 변경하면서 심사를 강행하고 있다. 원내대표실 백드롭(뒷걸개)도 ‘권력기관 개혁, 흔들림없이 국민과 함께’라고 적었다. 하지만, 왜, 지금? 국민이 의아해한다. 공교롭게도 대선 후 검찰이 권력비리형 사건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때문에 검수완박의 속내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권력형 비리의혹 수사를 원천 차단하는 방탄법으로 오해받고 있다. 리얼미터가 지난 14일 검수완박과 관련한 여론조사를 보면 반대 52%, 찬성 38%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 검찰개혁을 지지해온 대표적인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뿐만이 아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등도 입장문을 내고 “서둘러 추진할 사안이 아니다”, “여러 검토가 필요하다”며 속도 조절을 촉구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김오수 검찰총장과의 면담에서 “국민은 검찰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다...입법도 국민을 위해 해야 한다”고 밝혔다. 찬성도 반대도 아닌 모호한 언어로 보수·진보 진영에 따라 해석도 다르다. 백조는 호수에서 고고하고 우아하지만, 이동할 땐 수면 아래에서 물갈퀴를 젓는다. 청와대와 민주당의 모습이 그렇게 보인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선 1호기 경제성 조작, 대장동 및 성남 FC 후원금 뇌물 의혹 등이 차기 정권의 검찰 수사를 기다린다. 그럴 리야 없겠지만, 검찰 수사 결과에 따라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정치 기반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위기감인가? 6·1 지방선거에 지더라도 나아가 총선에 패배하더라도 검수완박해야하는 절실함이 아닐까. 국민의 의심이 커지는 이유다. 국회 180석을 밀어준 국민을 신뢰한다면 심사숙고하며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김창학 정치부 국장

[지지대] 프랑스 결선투표Ⅱ

샤를르 드 골, 프랑수아 미테랑, 자크 시라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수아 올랑드, 에마뉘엘 마크롱.... 1958년 이후 현재까지의 프랑스 대통령들이다. 이 나라에선 단 한 차례도 왼쪽으로나, 오른쪽으로나 어느 한 방향으로 기울어진 정당의 집권은 없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공화국 전선’ 덕분이다. ▶‘공화국 전선’은 특정 정파의 이름이 아니라, 일련의 정치적인 움직임을 뜻한다. 해당 사안에 대해 좀 더 들여다 보려면 공화국 얘기부터 꺼내야 한다. 공화국은 지구촌 상당수 국가들의 정치 시스템이다. 국민들의 직·간접선거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임기 동안 정부를 운영한다. 중국과 북한 등도 명목상 국가 통치 시스템은 공화국이다. ▶공화국의 산파(産婆)는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다. 공화국 체제가 활성화된 건 지난 1958년 샤를르 드 골 대통령의 제5공화국 체제가 출범하면서다. ‘공화국 전선’은 제4공화국에서도 극우세력 집권 저지를 목표로 정치 세력을 하나로 묶어줬다. 이어 출범한 제5공화국 시스템에서도 계속 민주주의를 지켜주고 있다. ▶그런데 요즘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를 앞두고 극우세력 집권이 우려되고 있어서다. 좌파는 물론 우파도 걱정이 태산 같다. 주말 파리와 마르세유 등에서 열린 시위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연임 지지 구호가 없었다. 물론 극우성향의 마린 르펜 후보 선출 저지 목소리가 주를 이루긴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여론이 마크롱의 표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호재도 터졌다. 마린 르펜 후보가 유럽의회 의원 시절 공적자금 13만7천유로(1억8천만원)를 전용했다는 보도다. 르펜은 2004~2017년 유럽의회 의원으로 재임했었다. 르펜과 그의 아버지 장 마리 르펜 등 4명은 개인 경비와 소속 정당과 가까운 기업 등에 혜택을 주는 서비스 등에 61만7천유로(약 8억2천만원)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극우세력 집권 우려를 걱정했던 프랑스 정계는 일단 가슴을 쓸어 내리는 모양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결선 투표가 아직 닷새나 남아 있어서다. 이 기간 동안 또 어떤 복선이나 변수가 숨어 있는지 알 수 없다. 이번에도 ‘공화국 전선’이 프랑스 민주주의를 유지해 줄지 지구촌이 지켜보고 있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지지대] 만 나이

한국의 나이 셈법은 좀 복잡하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1살이 된다. 12월31일에 태어났다면 다음날 해가 바뀌면서 2살이 된다. 출생 때 1세, 연도가 바뀔 때마다 한 살씩 더하는 것을 ‘세는 나이’라 한다. 출생 때를 0세로 하고 1년이 지나 생일이 돼 한 살씩 더하는 것은 ‘만(滿) 나이’다. 출생 때를 0세로 하되 해가 바뀌면 한 살씩 더하는 것은 ‘연 나이’다. 한국과 일본은 태어난 날을 1세로 하는 ‘세는 나이’가 표준이다. 다른 나라들은 태어난 날을 0세로 하는 나이를 쓴다. 소위 한국식 나이(코리안 에이지·K-Age)인 ‘세는 나이’, 국제 통용 기준인 ‘만 나이’, 현재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연 나이’가 모두 통용돼 곳곳에서 불편과 혼란을 빚곤 한다. 남양유업은 임금피크제 적용 연령으로 단체협약에 규정된 ‘56세’가 세는 나이 기준인지, 만 나이 기준인지를 두고 6년 넘게 법적 분쟁을 겪었다. 대법원은 이 회사의 나이 계산방식을 둘러싼 분쟁에서 임금피크제를 만 55세부터 도입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1심 재판부는 만 55세, 2심 재판부는 만 56세라고 했는데 대법원이 항소심 판단을 뒤집었다. 한국식 나이에 법원 판단도 엎치락뒤치락 했던 사례다. 최근엔 코로나19 백신 예방접종과 청소년 방역패스의 기준 나이가 혼선을 빚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우리 국민의 나이를 ‘만 나이’로 통일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법적·사회적 나이 계산법이 통일되지 않아 국민이 사회복지서비스 등 행정서비스를 받거나, 각종 계약을 체결 또는 해석할 때 나이 계산에 대한 혼선과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며 “만 나이로 통일하면 사회·경제적 비용을 없애고 국민 생활의 혼란과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만 나이’로 통일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개별 법령상 정비도 해야 하고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바꾸는 과정에 혼란이나 손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섬세하게 처리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러시아 엑소더스

올가 스미르노바(30)는 러시아 예술의 자존심인 볼쇼이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난 2월, 그녀는 볼쇼이를 떠났다. 자신의 텔레그램에 “조국 러시아가 부끄러워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는 메시지를 남겼고, 지난달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사실상 망명한 것이다. 볼쇼이의 예술감독 출신이자 세계적인 안무가인 알렉세이 라트만스키도 3월에 준비 중이던 모스크바 공연을 뒤로하고 뉴욕으로 떠났다. 우크라이나 키이우 지역에서 자란 라트만스키는 “푸틴이 대통령인 이상 러시아에 돌아가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국적의 예술인들도 러시아를 떠나고 있다. 모스크바 네미로비치 단첸코 발레단의 예술감독이던 프랑스인 로랑 일레어는 러시아의 침공 후 사표를 냈다. 영국 출신 무용수 잰더 패리시와 이탈리아 출신 자코포 티시도 러시아에 등을 돌렸다. 다양한 분야의 인력이 러시아를 빠져 나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 비영리단체 ‘오케이 러시안즈’가 약 30만명의 인력이 러시아를 떠난 것으로 추정했다. 정보기술, 과학, 금융, 의료 종사자 등 이른바 ‘고급인력’들로 비자없이 갈 수 있는 인접국인 조지아, 아르메니아, 터키, UAE 등으로 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러시아의 젊고 똑똑한 IT 인재들이 빠져나가는 것은 심각한 두뇌유출(brain drain)이다. IT 인재들은 대부분 애플, 인텔 등 글로벌 기업 소속 개발자이거나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 스타트업 창업자와 직원들이다. 우크라이나 침공 후 서방세계의 강력 제재로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고, 주요 글로벌 기업이 러시아에서 철수하면서 경제적 기반이 흔들리게 된 것이 엑소더스의 주된 이유다. 푸틴은 과거 구소련의 영광을 되찾고 싶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그는 지금까지 뭘 얻었을까. 국가든 기업이든 인재가 빠져나가면 망한다. 인재를 키우는데 수십년이 걸리지만, 잃는 것은 순간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지지대] 소를 잃어도 외양간은 고쳐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이 있다.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과 같은 뜻을 지닌 이 속담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속담 중 하나다. 그런데 정말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건 아무 소용이 없을까. 소를 잃었다면 외양간을 고쳐야 다음부터는 또 소를 잃을 일이 생기지 않는 건 아닐까. 요즘 전 국민의 관심이 한 남녀에게 쏠려 있다. 보험금을 노리고 전 남편을 여러 차례에 걸쳐 살해하려 하고, 끝내 살해한 혐의의 이은해와 조현수다. 2019년 6월30일 가평군 용소계곡에서 발생한 살인사건. 인천검찰청은 사건을 넘겨받고 2개월여가 지난 지난해 2월부터 전면 재수사를 했다. 12월13일 이은해와 조현수를 소환해 조사하기까지 10개월간 추가 범행들도 밝혀냈다. 그런데, 2차 조사를 앞둔 다음날 이은해와 조현수는 사라졌다. 인천지검은 부랴부랴 사라진 이들을 쫓기 시작했다. 그러나 추적 수사 경험이 부족한, 소위 비전문가인 검찰이 맘먹고 숨어버린 이들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상한 건 범인을 쫓고 잡는데 전문가인 경찰과 전혀 공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인천지검은 경찰이 밝히지 못한 추가 혐의까지 밝혀냈으니, 어떻게든 본인들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3개월이 더 흘렀다. 인천지검은 지난 3월30일에서야 이은해와 조현수를 언론을 통해 공개수배했다. 이때도 경찰에 도움을 청하진 않았다. 수사권 조정 이후 생긴 미묘한 자존심 싸움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이 걸린 사건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검찰은 이은해와 조현수를 통해 망가진 외양간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들이 망가지면 잃는 건 소 정도가 아니다. 그깟 검경의 자존심 싸움이 국민의 생명보다 중할 리 없다. 그러니 고쳐라.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지지대] 일상으로의 회귀

돌고 도는 형국이다. 델타 변이, 오미크론 변이 등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날 때마다 코로나19 지형도는 계속 바뀌고 있다. ▶오미크론 변이가 유행하기 전 하루 확진자가 수백명에 불과했던 시절, 코로나 확진자는 ‘죄인 아닌 죄인’ 취급을 받았다. 밀접접촉자를 확인하기 위한 역학조사가 이뤄졌고, 이를 통해 확진자의 동선은 사실상 공개될 수밖에 없었다. 주변에서는 이러니 저러니 뒷말이 무성한 것은 당연지사다. 지금은 어떤가. 어디서 어떻게, 누구로부터 걸렸는지는 중요치 않아졌다. 상태가 어떤지, 후유증은 없는지가 관심사다. 최근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한번씩은 나오는 이야기가 ‘아직도 코로나 안 걸렸어?’라는 농담아닌 농담이다. 코로나 확진자들이 오히려 눈치 안보고 큰 소리 내는 형국이다. ▶K방역 얘기가 나오면서 대응을 잘했느니, 제대로 된 대처를 못했느니 등의 갑론을박은 계속되고 있다. 오미크론 확산 이후 하루에만 최대 40만명이 넘은 확진자가 나오기까지 했다. 델타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까지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이 같은 확진자 수가 나오리라 상상도 못했다. 이제는 10만명 이하로 떨어졌다는 사실이 희소식이 됐다. ▶확진자 수뿐 아니라 위중증 환자나 사망자 발생 추이도 안정적으로 이어지면서 정부의 일상회복 추진 계획도 명분을 얻고 있다. 정부는 오는 15일 새로운 방역 조치를 발표할 예정인데, 실내 마스크 착용을 제외한 대부분의 거리두기 조치를 해제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감염병 등급 하향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중요하다. 또 확진자 격리 기간을 기존 7일에서 5일로 단축하는 안에도 무게가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변화 속에 최근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한국이 팬데믹이 아닌 엔데믹(풍토병)으로 가는 최초의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후 엔데믹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엔데믹으로의 전환은 코로나로부터 해방된다는 의미다. 코로나가 독감과 같은 질병으로 취급된다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시 여겼던 일상생활에 대한 고마움을 가슴에 아로새기면서 누릴 수 있는 ‘일상의로의 회귀’. 결코 멀지 않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명관 경제부장

[지지대] 프랑스 대선 결선투표

27.84% vs 23.15%. 프랑스 대선 1차 투표 득표율이다. 앙 마르슈(‘전진’이라는 뜻) 소속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국민연합 소속 마린 르펜 후보의 성적표다. 4.69%p 차이다. 남성과 여성, 중도신당과 극우성향 정당 간의 대결이다. 윤석열 후보와 이재명 후보의 1개월여 전 48.56%대 47.83%와 비교된다. 그땐 0.73%p 차이였다. ▶이런 가운데, 좌·우·중도파 정치연대인 ‘공화국 전선’에 관심이 쏠린다. 해당 정치연대는 프랑스에서 전통적으로 극우 세력 집권을 막아 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작동될까. 극우 세력 후보인 마린 르펜의 집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 대선은 결선제다. 1차 투표에서 과반을 득표한 후보가 없으면 1~2위 후보끼리 2차 투표에서 맞붙는다. 당선자 국정 운영에 힘을 보태주기 위해서다. 기계적인 균형을 맞춰 주겠다는 의미도 담겼다. 오는 24일이 결선 투표일이다. ▶이 나라가 지금 갈림길에 서있다. 현직 대통령 연임이 가능할까. 극우 성향 대통령이 첫 배출될까. 이들의 대결은 지난 2017년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마크롱 후보는 66% 득표로 33%를 확보한 르펜 후보를 압도했었다. 같은 상황이 재연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당시 여론조사 결과 마크롱 후보가 오차범위에서 신승(辛勝)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었다. ▶프랑스 언론들은 이번 결선 투표에서도 마크롱 대통령이 51%로 힘겹게 이긴다고 예측했다. 마크롱 대통령이 결선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약간 우세하다. 이러한 판세 속에서 결선 투표 우위를 점하려면 1차 투표에서 탈락한 후보들에게 투표한 유권자들과 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관건이다. 나치 지배를 경험한 프랑스가 극우 성향 대통령만큼은 배출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뭉치는, 이른바 ‘공화국 전선’ 구축 가능성도 높다. ▶민심의 무게 추가 마크롱 대통령 쪽으로 기운다면 지난 2002년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다. 올해로 세 번째 대선에 도전하는 르펜 후보가 설욕전에 성공한다면 프랑스 첫 여성 대통령에, 극우성향 대통령이 된다. 1세기 전 ‘정의는 꼭 승리한다’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인류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나라의 요즘 얘기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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