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안재홍 선생의 ‘다사리 민족주의’

들녘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면도날처럼 날카로웠다. 동장군의 심술이 잔뜩 묻어 있었다. 평택시 고덕면 두릉리 646번지 게루지 마을. 이곳을 찾은 건 2006년 1월 하순이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을 헤쳐간 민세 안재홍(民世 安在鴻·1891~1965) 선생의 생가를 찾는 발길이었다. 필자는 그때 “가슴이 설렜다”고 썼다. 지난한 독립투쟁을 거쳐 광복을 맞았지만 6·25전쟁 때 납북된 뒤 북녘에서 별세했다. 해방정국에선 미군정 민정장관, 제2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하며 중도우파적 입장에서 근대국가 수립을 주창했다. 언론인, 민족사학자, 독립운동가, 정치인 등 여러 호칭이 따라붙었다. 민세 선생은 독립운동가였지만 각별히 우리말을 사랑한 지식인이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우리말을 아꼈다. 특히 그가 애지중지하던 단어는 ‘다사리’였다. 그는 생전에 “‘다사리’는 우주의 엄정한 질서와 운행법칙을 모델로 하는 인간사회의 정치이념이자 단군 이래 우리 민족의 정치적 이상”이라고 강조했다. ‘다사리’는 ‘모두 다 말(씀)하게 하여’나 ‘다 사리운다’와 같은 뿌리에서 ‘진백’(盡白)이나 ‘진생’(盡生) 등을 뜻한다. 진백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민주주의, 진생은 공동체 모두를 골고루 잘살게 해주는 사회복지로 서양 정치사상의 두 가지 흐름인 자유주의와 평등주의 등으로 귀결된다. 모두가 골고루 자유롭고 넉넉한 개념을 담고 있는 어휘인 셈이었다. 민세 선생이 평생 펼쳤던 사상은 다사리 민족주의였다. 그래서 그가 건국하려던 나라도 반쪽 독립이 아닌 완전한 독립이었다. 공교롭게도 그의 고향인 평택의 한자 ‘平澤’을 순수한 우리말로 표현하면 다사리가 된다. 만약 그가 납북되지 않고 계속 활동했다면 ‘仁川’의 옛 지명 ‘미추홀’이나 ‘大田’의 우리말 ‘한밭’ 등처럼 ‘平澤’이란 지명도 ‘다사리’로 바뀌지 않았을까.

[지지대] 총선 최대 변수 이재명, 상수 한동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대장동·위례신도시 개발 특혜 의혹’ 수사가 급물살을 탄다. 이 대표는 오는 28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에 이어 두 번째 소환이다.  박성준 대변인은 “검찰이 설 명절 밥상에 이재명 대표 소환이 이야깃거리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며 언론플레이로 규탄했다. 이 대표도 ‘하나 된 힘으로 야당 탄압에 결연히 맞서겠다’며 물러섬 없는 결의를 밝혔다. 권리당원에게 보낸 설 인사 문자메시지를 통해 단일대오를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친명·비명 간에 파열음만 커지고 있다. 친문계는 정책포럼 ‘사의재’를 지난 18일 발족했고 비명계는 오는 31일 ‘민주당의 길’을 출범한다. 당 대표 사법리스크를 염두에 둔 포석이자 세력화다.  국민의 시선도 따갑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 ‘적법한 검찰권 행사’(48.6%)가 ‘표적수사’(39.9%)보다 10%포인트 정도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의 ‘야당탄압’ 프레임 공세에도 민심은 정치와 법의 영역을 별개로 생각함을 알 수 있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가 구체화할수록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그는 지난해 10월24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법무장관직을 포함한 앞으로 있을 모든 자리를 다 걸겠다”고 했다. 평소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말투가 아니다. 두 눈 부릅뜨고 흥분한 목소리로 작심한 듯 언성을 높였다. 민주당 김의겸 의원의 이른바 ‘윤-한 청담동 술자리 의혹’ 폭로에 대한 분노였다. 대통령에 대한 무례, 그리고 장관 자신이 느꼈을 치욕스러움의 표출이다. 이날 그의 그답지 않은 언어는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된다. 법무부 국감에서 민주당 권칠승 의원의 (총선) 출마 계획에 답한다. “그런 생각이 없다는 말씀을 드린다. 제가 지금 여기서 왜 그런 말씀을 드려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현재 그런 생각이 없다.” 굳이 ‘현재’라는 단어를 콕 집었다. ‘현재’란 미래를 위한 계획이자 행동이며 결단이다. 여야가 내년 총선을 향해 계파 간 모임으로 저마다 진용을 갖추고 있다. 이러저러해도 총선의 가장 큰 변수는 이재명 대표 검찰 재판 결과와 한동훈 장관이다.

[지지대] 일본의 교전권 부활

나라끼리 갈등을 겪다 전쟁으로 이어졌다. 지금도 우크라이나에선 참화로 숱한 인명이 희생되고 있다. 평화적인 수단 대신 전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리가 교전권(交戰權)이다. 일본은 이 같은 권리가 헌법으로 금지된 유일한 국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군의 무장해제와 재군비 방지를 시사하는 조항이 헌법에 포함됐다. 포츠담 선언을 통해서다. 교전권의 포기였다. 설연휴에 반갑지 않은 외신이 보도됐다. 일본 방위성이 신형 이지스함 2척에 실시간 목표물 정보공유 시스템인 공동교전능력(CEC) 시스템을 탑재한다는 소식이다. 신형 이지스함인 이지스 시스템 탑재함에 공동교전능력을 갖춰 방공망을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공동교전능력은 이지스함 여러 척과 경계기 등이 탐지한 적의 미사일과 전투기 관련 정보를 동시에 공유한다.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이지스함이 자체 레이더에 포착되지 않은 미사일을 요격하는 ‘인게이지 온 리모트’(EOR) 작전도 수행이 가능하다. 일본 방위성은 해당 시스템을 통해 미군 함정과 협력해 미사일을 요격하는 것도 이론상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지난해 11월 하와이 인근 해상에서 진행된 미사일 요격훈련을 통해 해당 시스템도 시험했다. 지난해는 3대 안보 문서를 개정해 적 미사일 기지 등을 공격할 수 있는 종합방공미사일방어(IAMD) 체계 구축 방침도 정했다. 신형 이지스함에 공동교전능력 시스템을 탑재하면 미국과 일본의 정보공유체계가 강화된다. 하지만 미군이 일본 측 정보를 이용해 무력행사에 나서면 자위대가 교전권을 행사한 것으로 비쳐진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교전권이 알게 모르게 부활하고 있다. 동북아의 긴장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 못지않게 심화하고 있는 일본의 군사 도발 우려도 경계해야 하는 까닭이다.

[지지대] 까치 설날은 왜 어저께일까

잔혹했다. 압제(壓制)가 한반도를 덮쳤다. 설도 없앴다. 양력으로 설을 쇠라고 강요했다. 음력은 비과학적이라는 궤변도 동원됐다. 일제가 그랬다. 이후 마지못해 양력으로 설을 쇠긴 했지만 음력 설 쇠기를 결코 포기하진 않았다. 그러자 설을 두 번 쇠는 ‘이중과세’( 二重過歲)는 비효율적이라고 윽박질했다. 음력으로 설 쇠는 건 비합리적이고 양력으로 설 쇠는 건 합리적이라는 음모론도 펼쳤다. 일제의 포악한 통치였다. 그때 한 청년이 아이들에게 일제의 허위를 제대로 알려야겠다고 마음을 다지고 행동으로 옮겼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들려줄 동요의 노랫말을 썼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윤극영 선생(1903~1988)의 동요 ‘설날’은 그렇게 탄생했다. 20세기 버전의 ‘서동요(薯童謠)’였다. 1924년이었다. 그 노랫말의 메시지는 양력으로 설 쇠기 거부였다. 조용하면서도 꾸준했던 풍유(諷諭)였고 저항이었다. 이 대목에서 합리적인 의문이 든다. 윤극영 선생은 왜 까치의 설날을 어저께라고 했을까. 고 서정범 교수는 작다는 뜻의 ‘아치’가 접두사로 붙여졌다가 음(音)이 ‘까치’로 바뀌었다고 주장했었다. ‘삼국유사’가 전하는 에피소드도 설득력이 있다. 신라 소지왕 때 일이었다. 왕후가 한 스님과 모의해 왕을 없애려고 했다. 이때 까치와 쥐, 돼지와 용 등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소지왕은 이후 동물들의 공을 인정해 십이지신(十二支神)에 모두 넣어줬다. 하지만 까치를 넣을 자리가 없었다. 그래서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로 정해 까치설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음력설이 부활한 건 60여년이 지난 1985년이었다. 하지만 명칭은 ‘민속의 날’이었다. 그러다 1989년 ‘설’이란 이름이 복권됐다. 광복 이후에도 음력은 비과학적이라는 논리가 한동안 식자층에서 득세했었다. 역사의 아이러니인가.

[지지대] 경기 침체 극복에 정치권 힘 모아야

코로나19가 처음 국내에 상륙한 2020년 1월20일부터 만 3년이 지났다. 코로나19는 전 세계를 뒤덮으며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를 낳으면서 시민들의 삶을 바꿔 놓았다. 18일 기준 코로나19는 모두 7차례의 대유행을 지나 확진자는 인천이 173만9천140명, 경기도는 809만3천759명이다. 중복 감염을 제외하고 단순 계산으로 인천시민의 58.6%, 경기도민의 59.5%가 감염자인 셈이다. 비록 최근 안정세에 접어들며 시민들의 일상도 점점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영업제한이 2년 만에 끝나면서 소상공인들의 고통은 줄어들고 있다. 곧 실내마스크 착용 의무까지 사라지면 사실상 코로나19의 종식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경기 침체라는 또 다른 터널을 통과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무역수지는 2008년 글로벌 경기 침체 이후 14년 만에 연간 적자를 기록했다. 경제성장률은 1%대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 같은 경기 침체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산업이 한 단계 성장하며 발전해야 하고, 이는 정치권에서 충분히 뒷받침해줘야 할 것이다. 인천시도 ‘제물포 르네상스’로 이름 붙은 원도심 재생 프로젝트를 가동했고 반도체 특화단지 유치에 나선다. 이는 인천의 미래 먹거리 중 하나인 만큼 인천시와 지역 정치권, 시민까지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우려스러운 부분은 정치권이 내년 총선에만 집중할 뿐 이 같은 인천의 현안은 외면한 채 정치적 다툼에만 몰두하는 것이다. 최근 여야 인천시당에 지도부가 모였지만 ‘이재명 검찰 출석 공방’만 벌이는 모습은 이 같은 우려를 더욱 키운다. 잠시라도 정치권이 시민의 삶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길 기대해본다.

[지지대] 수중드론 ‘포세이돈’

꼭 모기가 날아다니며 내는 소리 같다. 미간을 좁혀 보지 않으면 식별하기도 어렵다. 드론 얘기다. 조종사 없이 무선 전파로 비행이 가능한 장비의 총칭이다. 크게 표적용, 정찰용 또는 감시용, 다목적용 등으로 나뉜다. 표적용이 최초다. 1940년대 후반 제작됐다. 당시 라이언 파이어비(Ryan Firebee)로 불렸다. 감시용은 1998년 도입된 글로벌호크가 대표적이다. 핵무기 사찰용이다. 정찰과 공격이 가능한 드론으로는 중형급인 프레데터와 대형급인 리퍼 등이 있다.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다. 낡은 유인 항공기를 공중 표적용 무인기로 재활용하는 데서 비롯됐다. 냉전시대에는 정찰 및 정보수집 임무도 수행했다. 원격탐지장치와 위성제어장치 등을 갖추고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이나 위험지역 등에 투입됐다. 공격용 무기를 장착해 지상군 대신 적을 공격하는 기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맹활약 중이다. 물론 민간 분야에서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의 무인택배 서비스용이 대표적이다. 무인택배 서비스의 경우 인공위성을 이용해 위치를 확인하는 위성항법장치(GPS) 기술을 활용해 서류나 책, 피자 등을 배달한다. 농업용도 있다. 모든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 드론은 하늘을 날아왔다. 그런데 바다를 운행하는 드론이 나왔다. 러시아 핵추진 잠수함인 ‘벨고로트’에 탑재된다. ‘포세이돈’이 명칭이다. 외신은 포세이돈이 조만간 벨고로트에 실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핵탄두를 장착하고 잠수함이나 최신 어뢰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무제한의 거리를 이동해 적의 해안 시설이나 항공모함 등을 타격할 수 있다. 인류를 무참하게 살해할 가공할 무기가 또 만들어졌다. 살상력이 큰 병기가 개발될수록 공멸은 가까워진다.

[지지대] 의정부시장의 기업인 업어주기

누군가 좋은 일을 했을 때, 예쁜 행동을 했을 때 “업어주고 싶다”는 말을 한다. 얼마 전 김동근 의정부시장이 한 기업 대표를 업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페이스북에 올라왔다. 김 시장은 “새해들어 기쁜 소식 전합니다. 기업유치 1호, 해냈습니다.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기업 대표님을 업어드렸습니다”라는 글도 올렸다. 이를 정치적인 제스처로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얼마나 좋았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정부시는 인마크자산운용사와 3천252억원 규모의 클라우드데이터센터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데이터센터는 2026년까지 지하 4층, 지상 6층에 연면적 2만6천498㎡ 규모로 용현산업단지에 건립된다. 기대되는 생산유발효과가 3천663억원, 부가가치유발효과가 1천274억원, 취업유발효과가 1천561명이다. 산학연 연계를 통한 전문인재 육성 및 취업도 기대된다. 이번 기업유치는 의정부시에 의미가 크다. 의정부의 1인당 지역내 총생산(GRDP)은 경기도내 최하위권이다. 다른 지역으로 통근하는 비율이 53%에 이른다. 의정부의 경제·복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업유치’가 절실하다. 도시의 미래는 일자리에 있고, 양질의 일자리를 위해서는 첨단기업이 입지해야 한다. 좋은 기업의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야 청년들이 찾아들고, 활력이 넘치는 지역이 된다. 김동근 시장은 지난해 민선 8기 임기 시작 후 기업유치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기업유치팀을 신설했다. 시의 핵심과제를 기업유치에 두고 전문가와 공무원으로 구성된 기업유치 워킹그룹을 운영해 가용부지, 입주가능 업종 등에 대한 검토작업을 했다. 의정부 맞춤형 기업유치 전략을 수립해 가는 중에 1호 기업을 유치했으니 얼마나 기뻤을까. 좋은 일자리는 좋은 기업에서 나온다. 정부 주도의 공공일자리는 청년들에게 매력적이지 않다. 지속가능성에도 한계가 있다. 경제와 일자리는 민간기업이 주도하는 게 맞다. 정부와 지자체는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지원 역할을 해야 한다. 기업유치 2호, 3호 소식도 기대된다.

[지지대] "출가자 모십니다"

특정 분야에서 상급자가 되는 것이 ‘출세’라고 생각하세요? 남에게 칭송받고 높은 직책을 누리는 것이 ‘명예’라고 생각하세요? 마음대로 쓸 만큼 재산을 모으는 것이 ‘재물’이 풍족하다고 생각하세요? 이런 물음에 ‘그럼, 물론이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고개를 갸우뚱하며 ‘아닌 것 같다,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 문구는 해인사가 ‘진정한 출세(出世)’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며 고시 준비생을 위한 잡지 ‘고시계’ 2023년 1월호에 낸 광고다. ‘가야산 해인사’라고 적힌 일주문 사진을 배경으로 한 글에는 ‘생로병사를 겪는 인생의 본질과 의미를 알고 세상사의 부질 없는 탐욕을 벗어나 자유와 자비의 삶을 사는 출가인이 진정한 출세입니다’라고 적혀 있다. ‘가야산 해인사로 오십시오’라는 문장이 적힌 이 광고는 해인사가 출가를 권유하기 위한 것이다. 고시계란 잡지에 낸 것은, 고시생과 사찰의 인연이 깊기 때문이다. 예전엔 고시 준비를 위해 속세의 유혹을 끊고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 절에 머물렀던 고시생들이 많았다. 해인사가 출가자 모집 광고를 낼 정도로 출가자가 급감했다. 지난해 조계종 출가자는 61명이다. 1999년 532명에 이르렀으나 급격히 줄고 있다. 요즘은 사찰에서 ‘행자는 천연기념물’이란 말이 나올 정도다. 승가대학에선 학생 구하기가 어려워졌다. 조계종은 2017년 12월 처음으로 ‘출가자 구인 광고’를 낸 바 있다. 한 해 출가자가 100명 이하로 줄어들지 모르는 위기감에 내놓은 응급처방인데 이미 두 자릿수가 됐다. 당시 조계종은 ‘내 생에 가장 빛나는 선택, 출가’라는 포스터를 제작해 홍보에 나섰고, 주거나 의료, 교육과 함께 국민연금, 건강보험 등도 제공한다고 했다. 저출산 고령화 여파는 불교계에도 불고 있다. 오전 3시에 눈을 떠 4시 예불을 시작으로 정진하고 또 정진해야 하는 엄격한 수행 생활을 받아들일 사람도 거의 없다. 불교계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주목된다. 해인사의 출가자 모집 광고를 보면서, 세상에 태어난 ‘출세(出世)’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지지대] 아돌포 카민스키, 1만명을 구하다

초등학교만 졸업했다. 염색공장 직공이었고 불과 열아홉 살이었다. 청년은 일터를 세탁소로 옮겼다. 그때 바깥 세상에선 전쟁이 터졌다. 이따금 포성이 들려왔다. 그래도 묵묵히 일에만 전념했다. 세탁소에서 근무하면서 틈틈이 익힌 게 있었다. 잉크 제거 기술이었다. 고객들이 맡긴 옷가지에 스며든 잉크 자국 등을 말끔하게 제거하면서 자연스럽게 손에 밴 노하우였다. 얼룩이 진 외투들이 유난히 많았던 시절이었다. 뭔 뚱딴지 같은 얘기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시기는 1940년대다. 장소는 나치가 점령했던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이었다. 유럽을 휩쓴 제2차 세계대전의 광풍은 청년이 살고 있던 외딴 마을에도 불어닥쳤다. 소년은 프랑스 정부가 발급해준 신분증에서 ‘이삭’이나 ‘아브라함’처럼 유대계 프랑스인이 즐겨 사용하는 이름을 지웠다. 그 대신 그 자리에 프랑스인 느낌이 나는 새 이름을 입력했다. 신분증에 새로운 이름을 새기는 과정에선 초등학교 재학 시절 학교 신문을 편집할 때 배운 기술을 이용했다. 가짜 문서도 제작했다. 고무를 이용해 관공서 직인과 문서 상단 레터헤드와 워터마크까지 만들었다. 프랑스 비밀 유대인 지원 조직에도 알려졌다. 각종 주문이 잇따랐다. 유대인 어린이를 위해 출생증명서 900장과 식량배급카드 300장을 사흘 안에 위조해 달라는 주문도 받았다. 유대 어린이들은 밤을 새워 만든 위조 문서로 스위스나 스페인 등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1시간에 문서 30장을 위조할 수 있지만 1시간 동안 잠을 자면 소중한 생명 30명이 목숨을 잃는다.” 그가 하루에도 수십 번 되뇌던 주문이었다. 외신에 따르면 이처럼 문서 위조 기술로 유대인 1만여명을 구했던 프랑스인이 최근 세상을 떴다. 아돌포 카민스키. 역사는 그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지지대] 맞불의 시간

중국이 한국 국민에 대한 중국행 단기비자 발급을 중단했다. 각국의 중국발(發) 입국자 방역 강화 조치에 대한 첫 보복 조치다. 방문, 상업무역, 관광, 의료 및 일반 개인 사정을 포함한 한국 국민의 중국 방문 단기비자 발급이 막힌 셈이다. 그런데 재밌는 사실은 주한 중국대사관이 이러한 보복 조치를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개했다는 것이다. 엄연히 한국과 중국은 국제 외교 무대에서 수교국이기에, 엄중한 상황에 대해서는 문서 및 방문 등을 통해 공식 입장을 전달해야 하는데 위챗 공식 계정으로 일방적인 통보를 해버린 것이다. 아직도 ‘중국=대국, 한국=소국’이라는 사대주의 발상에 함몰돼 있음에 틀림없다. ▶역사적으로 멀리 볼 필요도 없다. ‘동북공정(東北工程)’. 지난 2002년 중국이 ‘동북부 만주지역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국가사업’으로 추진한 연구 계획이다. 그런데 이 사업은 고조선사, 고구려사, 발해사 등을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이른바 역사 왜곡이 핵심이다.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은 크게 반발했지만 허공을 향한 메아리인 양 중국은 무시로 일관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2020년부터 중국은 ‘김치는 중국의 파오차이를 한국이 훔쳐 이름만 바꾼 것’이라는 ‘김치공정’에 혈안이 돼 있다. 또 동계올림픽에서 중국 소수민족을 소개하며 한복을 입힌 ‘한복공정’의 만행까지 자행하고 있다. ▶국제 무대에서 힘의 논리는 중요하다. 중국의 단기비자 발급 중단과 맞물려 ‘세계에서 유일하게 중국과 맞짱을 뜨는’ 리투아니아의 배짱이 부럽다. 중국의 안하무인식 정치적 요구는 그들이 원하던 세상이 아니라며, 유럽의 변방 소국이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아픈 손가락’인 대만 대표부를 수도 빌뉴스에 정식 출범시킨 나라. 한국 정부의 유감 표명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고구려 역사를 무서워하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이 더 이상 ‘소국’도 ‘속국’도 아님을 보여 주기 위해서라도 강경하게 맞불을 놓을 시간이 오고 있다.

[지지대] 국립박물관 클러스터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의 표현이 새삼스럽다.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다.” 파주시 문발동(文發洞)이 그렇다. 한강과 임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심학산 기슭 갈대밭에 파주출판단지가 들어섰다. 1997년 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된 후 2002년 상반기 1차 입주가 시작됐고 2013년 준공됐다. 출판 관련 기업 600여곳이 입주해 운영 중이다. 출판문화공동체 공간이자 성공한 클러스터(Cluster)다. 클러스터는 우리말로 ‘협의체’ 또는 ‘산학협력지구’다. 1990년 마이클 포터에 의해 처음 제안됐다. 서양에선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전략적 도구로 관심 받기 시작한 개념이다. 도시개발전략상 공공영역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공공기관에서 공공공간으로의 전환을 뜻하기도 한다. 파주시가 탄현면을 국내 최대 규모의 국립박물관 클러스터로 조성(본보 1월4·6일 10면)한다는 구상이다. 이곳에 개관해 운영 중이거나 앞으로 들어설 국립박물관은 모두 5곳이다. 국립민속박물관 개방형 수장고가 대표적이다. 전통건축부재보존센터도 운영 중이다. 2027년 개관할 예정인 국립한글박물관도 있다. 대한민국 역사박물관도 기본계획을 수립 중이다. 올해 개관할 예정인 국립무대공연예술종합아트센터도 빼놓을 수 없다. 박물관 전문가들은 파주출판단지와 미국 ‘내셔널몰’ 벤치마킹을 권한다. 국립박물관들로 이뤄져서다. 파주출판단지는 입주 기업들이 토지이용계획을 짜고 건물 설계부터 자연환경 활용까지 친환경을 표방했다. 미국 워싱턴 중심부의 내셔널몰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미국의 앞마당’이라는 별명도 가졌다. 독일 베를린에는 무제움스인젤이라는 박물관섬이 있다. 파주시는 국립박물관과 헤이리마을, CJENM 콘텐츠월드 등을 합쳐 역사문화관광 클러스터 구축도 구상 중이다. 더 큰 그림을 그리겠다는 것이다. 파주시 탄현면의 국립박물관 클러스터는 결코 꿈이 아니다.

[지지대] 주휴수당과 ‘쪼개기 알바’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지인은 요즘 고민이 많다. 올해 최저임금이 지난해보다 5.0% 늘어 시간당 9천620원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생 4명을 고용해 한 달 인건비로 600만~700만원 정도 썼는데 새해부터 부담이 더 커졌다.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주휴수당을 포함해 201만580원이다. 근로기준법상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일주일에 평균 1회 이상의 유급휴일을 보장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시간제 근로자는 하루 소정 근무시간을 기준으로 계산한 휴일수당을 받을 수 있다. 단, 일주일에 15시간 미만 일하는 근로자는 예외다. 최저임금이 2018, 2019년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며 오른 이후, 매년 이에 연동된 주휴수당으로 사용자들이 부담을 호소한다.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시급이 1만1천544원에 이른다”며 주휴수당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노동계는 주휴수당을 폐지하면 최저임금을 받는 취약계층 근로자의 생계에 타격을 줄 수 있다며 반대 입장이다. 알바연대는 “최저임금 월 환산액이 201만580원인데 주휴수당을 빼면 167만3천880원으로 줄어든다”며 “물가상승으로 실질임금이 줄었는데 주휴수당까지 폐지하면 최저임금 노동자들의 생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라고 했다. 주휴수당 논란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주휴수당을 주지 않으려는 편법으로 ‘쪼개기 알바’가 등장했다. 주 15시간 미만 일하면 주휴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알바를 여러 명 쓰면 인력 관리 등 어려움이 있지만 이를 감수하면서 시행하는 것이다. 주휴수당은 알바 쪼개기 등 초단기 근로자가 증가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경영계 주장대로 주휴수당을 폐지하기는 어렵다. 주휴수당을 법으로 의무화한 국가는 튀르키예, 멕시코, 브라질, 콜롬비아 등 대부분 우리보다 임금수준이 상당히 낮고 생산성도 떨어지는 나라들이라고 강조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주휴수당 개선이 필요하지만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의 임금 손실에 대한 우려를 덜어주는 게 중요하다. 주휴수당을 기본임금에 포함하는 등 취약계층 노동자의 임금이 줄지 않도록 보완책을 병행해야 한다. 영세 자영업자 부담이 너무 커진다면 정부가 지원하는 방안 등도 고민해 봐야 한다.

[지지대] 소아과 오픈런

얼마 전 이마트에서 펼친 위스키 행사가 폭발적 관심을 끌었다. 위스키를 사기 위해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가 하면, 번호표를 나눠주는 곳도 있었다.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위스키 열풍이 거세지면서 발베니 같은 위스키를 구하기 위해 ‘오픈런’이 벌어진 것이다. 오픈런은 ‘Open’과 ‘Run’의 합성어다. ‘매장이 오픈하면 바로 달려간다’라는 뜻으로 원하는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매장 개점 시간을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면 달려가 구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오픈런은 뭔가 간절히 원할 때, 때로는 절박할 때 행해진다. 요즘 소아과에서도 오픈런이 벌어지고 있다. 동네의원부터 종합병원까지 소아청소년을 진료하는 의사가 급격히 감소, 아이가 아파도 갈 수 있는 병원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병원이 있어도 2~3시간 대기는 기본이다. 2017년 2천229개였던 소아청소년 의원은 지난해 2천111개로 118개 감소했다. 상급종합병원인 인천 가천대길병원은 소아청소년과 입원 진료를 당분간 중단하기로 했다. 서울의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이대목동병원, 한양대병원 등은 야간진료나 소아환자 응급실 진료를 전면 중단 또는 축소했다. 전공의 지원율에서도 소아청소년과의 하락이 급격하다. 2018년 지원율은 101.0%로 정원 대비 지원자가 많았으나 2019년 80%로 미달했고, 2020년 74%, 2022년 27.5%로 떨어지더니, 2023년도 지원율은 15.9%에 그쳤다. 급감한 원인은 저출산에 따른 의료 수요 감소, 부실한 수익 구조, 고된 업무 강도 등 복합적이다. 국내 소아과 평균 진료비는 중국, 캄보디아보다 낮은 10달러 수준이다. 의료수가 체계상 소아과는 비급여 항목이 거의 없는 데다, 환자가 아이들이다 보니 진찰 외에 추가로 할 수 있는 처치와 시술이 많지 않다. 출생률이 자꾸 낮아지면서 상황은 더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 소아과 부족 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온종일 아이를 치료하는 것보다 쌍꺼풀 수술 2명 하는 게 수익이 낫다”는 말까지 나온다. 소아과가 붕괴되면 아동 건강안전망이 무너져 내린다. 미래를 짊어질 아이들 건강은 누가 지키나? 근본적인 대책 논의가 없으니 안타깝고 답답하다.

[지지대] ‘경기맨’ LH 사장, 눈여겨보자

우리나라 주택·토지개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새해 조직개편을 단행하며 대대적인 ‘체질 개선’에 돌입했다. 지난해 11월 이한준 사장이 취임한 후 2개월 만에 추진된 이번 조직개편을 보면 층간소음 제로 아파트, 임대주택 품질개선, 선(先)교통-후(後)입주체계 실현을 위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국민주거혁신실’을 신설해 사장 직속으로 배치했다. 대국민 서비스를 중심으로 본부 직제 순서도 조정했다. 특히 이번 조직개편의 핵심은 경기남부 지역본부 강화·북부 지역본부 신설이다. 그동안 LH는 경기도 31개 시·군 중 경기 남부권 15개 지자체 관련 사업은 경기본부가, 경기 서부권 6개 지자체 관련 사업은 인천본부가, 경기 북부권 10개 지자체 관련 사업은 서울본부가 나눠 관리했다. 언뜻 보기에도 기형적인 이 구조가 경기남·북부본부로 재편되는 것이다. 이러한 본부 재편에는 당연히 이한준 사장의 철학과 소신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살고 있고, 어느 지역보다 발전 가능성이 큰 경기도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 사장이다. 이 사장은 민선 4기 경기도지사 인수위원 활동을 거쳐 경기도지사 정책특보를 맡은 뒤 경기도시공사 사장까지 지냈다. 특히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를 최초로 제안, 당시 경기도청에는 철도 관련 실·국도 없던 시절이었지만 뚝심 있게 밀어붙여 GTX 노선의 초안을 그렸다. 또 수원특례시 광교신도시도 초기부터 이끌어 지금의 ‘광교’를 만들어낸 당사자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대가 된다. 단순히 경기 북부지역을 서울본부에서 독립시키는 데서, 경기 서부지역을 인천본부에서 빼내 오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 말이다. 경기도민이라면 ‘경기맨’ 이한준 사장의 행보를 눈여겨볼 만할 것 같다.

[지지대] 상병 만기전역 병장 특별진급

병장(兵長)은 병사 가운데 가장 높은 계급이다.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병장은 준장, 소장, 중장, 대장 등과 함께 5대 장성이다.” 물론 우스갯소리다. ▶광복 직후 한국군은 미군 계급에 큰 영향을 받아 이등병-일등병-하사-이등중사 계급체계였다. 하사까지가 병에 속해 병사들의 계급은 3개였다. 이후 육군은 1957년 원사가 없는 것을 제외하면 현재와 동일하게 바뀌었다. 해군도 1962년 육군과 같아져 병장 계급이 생겼다. ▶최근 상병으로 만기 전역한 1천767명이 병장으로 특별 진급했다. 상병 만기 전역자 특별진급제도 관련법 시행에 따른 조치다. 이전에는 퇴역 군인 진급에 대한 법적인 근거가 없었다. 과거 상병 이하 전역자들은 장기간 성실하게 병역을 이행했는데도 이력서 등에 ‘상병 만기제대’ 대신 ‘35개월 만기제대’와 같이 기재하는 등 설움을 겪어야만 했다. ▶앞서 국방부는 상병 만기 전역자 병장 특별진급 근거를 담은 입법을 2018년부터 추진해 2021년 10월 ‘30개월 이상 복무한 상등병 만기 전역자의 특별진급을 위한 특별법’을 시행할 수 있었다. 법에 따른 특별진급 대상은 1957~2001년 30개월 이상 현역병으로 복무했으나 병 진급 제도로 병장으로 진급하지 못한 상병 만기 전역자들이다. 육군은 상병 국가유공자 명단(2만2천명)과 국립묘지 안장 신청자 중 특별승진 대상자를 파악해 당사자에게 안내하는 등 적극적인 행정을 펼쳐 14개월 만에 병장계급을 달아주는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특진 요건을 모두 충족하는 상병 만기 전역자가 아직도 40만명가량 남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병장 월급이 지난해 67만6천원에서 올해 100만원으로 오른다. 뒤이어 인상 계획에 따라 내년 125만원, 내후년 150만원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병장에 대한 대우는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담당하는 청년에 대해 국가가 마땅히 배려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다.

[지지대] 노작로Ⅰ

어른 주먹만 한 돌멩이 천지였다. 여태껏 ‘돌모루’라고 불리는 연유다. ▶화성시 석우동 64번지. 이곳의 옛 풍광이 그랬다. 아궁이에 생기는 그을음처럼 숲이 짙다는 뜻의 ‘먹실’이라는 언덕도 있었다. 지금의 반석산이다. ‘현랑개’라는 실개천도 흘렀다. 걸출한 인물이 많이 배출돼서다. ▶그랬던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을씨년스러워졌다. 살갗을 스치는 바람이 면도날보다 더 날카로웠다. 중장비 굉음이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도랑 주변에 빼곡했던 자작나무 위로는 흙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하늘 위로 솔개 한 마리가 나지막하게 날고 있었다. 그런 창공으로 먹구름이 모여 들었다. 그렇게 그해 겨울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원래 일제강점기 민족 시인 홍사용 선생(1900~1947)의 고향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가 선생의 작품이다. 필자가 토목공사가 한창이던 이곳을 찾았던 때가 2003년 겨울이었으니 20년 전 얘기다. 강산이 두 차례 바뀌는 동안 이곳은 동탄신도시로 변모했다. ▶예당고교~화성동탄신도시 홍보관 1.5㎞는 ‘노작로(露雀路)’다. 시인의 호(露雀)에서 따왔다. 어른 걸음으로 20분 남짓 걸린다. 까치발을 하고 엉거주춤 서 있는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 등도 반갑다.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노작홍사용문학관도 들어섰다. 노작공원도 있다. ▶신도시는 세련됐다. 하지만 높이와 길이 등을 자로 잰 듯 반듯하게 맞춰 올라간 아파트나 빌딩 등이 눈에 거슬린다. ▶이를 담보로 잃어 버리거나 없어지거나 심지어 훼손되고 있는 소중한 것들도 많겠다. 외형적인 발전도 중요하지만 내적인 진화도 이에 못지않아야 한다는 지적에 무게가 실리는 까닭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날렵한 공간에 문학이나 음악, 미술 등과 접목된 소프트웨어를 입힐 수 있다면 어떨까.” 이 거리에선 이 처럼 부질없는 상상이 차근차근 구현되고 있다.

[지지대] 고향사랑기부제

올해 1월1일부터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되고 있다. 인구 감소와 노령화로 소멸 위기에 처한 데다 재정까지 열악한 지방을 살리기 위한 자구책이다. 개인이 본인 주소지가 아닌 다른 지자체에 기부하고, 해당 지자체는 그 기금을 사용해 각종 주민복리 증진을 위한 사업을 하는 방식이다. 고향을 떠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애향심을 이끌어내 지역발전의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취지다. 이 제도는 일본의 ‘고향납세제’를 벤치마킹했다. 2006년 후쿠이현 니시키와 잇세 지사가 처음 제안한 고향기부금 공제가 고향납세제의 모태다. 도시와 지방의 재정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시민이 지방자치단체에 기부하고, 기부금의 상당액을 소득세와 주민세에서 공제한다는 개념이다. 일본은 2008년 ‘고향납세제’ 시행 후 13년 만에 기부액이 82배 증가해 열악한 지방재정에 기여하고 있다. 우리의 고향사랑기부제는 개인이 연간 500만원 한도 내에서 지자체 기부가 가능하다. 기부자에게는 10만원까지 전액, 초과분은 16.5%의 세액공제와 기부금액의 30% 이내에서 관할지역 생산 특산품, 지역사랑상품권 등을 답례품으로 받는다. 예를 들어 수원시민은 경기도와 수원시를 제외한 지자체에 기부할 수 있다. 10만원을 기부하면 세액공제 10만원, 답례품 3만원을 합해 13만원의 혜택을 받는다. 100만원을 기부하면 54만8천500원(세액공제 24만8천500원, 답례품 30만원)의 혜택을 받는다. 지자체들은 농축수산물, 지역 상품권 등 2천여종의 답례품을 선정했다. 제주는 감귤·갈치·오메기떡 등을 준비했고, 충남은 호두과자·알밤·어리굴젓 등을 마련했다. 홍삼절편(인천), 홍삼(경기), 강화섬쌀(인천), 백옥쌀(경기) 등 홍삼이나 쌀을 준비한 곳도 많다. 일부 지자체는 남한산성행궁 입장권(경기), 야구관람권(인천 미추홀구), 수원호스텔 숙박권(수원시) 등 관광서비스 이용 쿠폰을 준비했고, 경기 포천 등 몇몇 지자체는 벌초대행 서비스를 포함시켰다. 고향사랑기부제에 지자체와 농업인이 거는 기대가 크다. 고향사랑 기부의 손길이 이어져 지역활력을 높이고 지방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지지대] 올해 내 나이는?

2023년 새해가 밝았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었다. 그런데 올해는 6월에 나이가 1~2세 줄어든다. ‘만(滿) 나이 통일법’이 6월28일부터 시행되기 때문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생일이 지났으면 1세, 안 지났으면 2세 줄어든다. 1964년 11월이 생일인 사람의 예를 들어본다. 그는 올해 나이가 세 번 바뀐다. 새해가 돼 세는 나이로 60세다. 6월에는 만 나이가 적용돼 58세로 줄어든다. 11월에 생일이 지나면 59세가 된다. 같은 해에 태어났어도 생일에 따라 1세의 나이 차가 생긴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나이 계산법은 ‘세는 나이’, ‘만 나이’, ‘연 나이’ 등 3종류다.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세는 나이’는 출생일부터 1세로 친다. 이어 다음 해 1월1일부터 해가 바뀔 때마다 1세씩 늘어난다. 12월31일에 태어난 사람은 다음 날 해가 바뀌면 2세가 된다. ‘연 나이’는 일상에선 거의 쓰지 않는다. 행정 서비스의 효율성을 위해 일부 법령에서 적용하는 개념이다. 단순히 현재 연도에서 태어난 연도를 빼서 계산한다. ‘만 나이’는 출생일을 기점으로 실제 산 날짜를 집계한다. 태어난 시점부터 생후 100일, 6개월 식으로 따지다가 다시 생일이 도래해 1년(돌)이 됐을 때 비로소 1세가 된다. 만 나이는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방식이다. 만 나이 통일은 여러 가지 나이 계산법이 뒤섞여 쓰이면서 생기는 혼선과 각종 법적·행정적 분쟁을 해소하기 위해 추진됐다. 다만 모든 법령이 만 나이를 기준으로 돼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법령은 연 나이를 준용한다. 법제처가 파악한 연 나이 규정 법령은 62개다. 술·담배 허용 등이 담긴 ‘청소년 보호법’ 관련, 군 입대 등과 연관있는 ‘병역법’ 관련, 시험응시 나이와 교육 관련 등 3대 범주가 해당된다.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시간이 주어진다. 똑같이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기회를 만날 수도 있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흘려보낼 수도 있다. 나이와 상관없이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살도록 노력해 보자. 모두 파이팅!!이다.

[지지대] 따오기 문학공원

울음소리가 처량하다. 얼핏 들으면 까마귀의 그것과도 비슷하다. 천연기념물 제198호다.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따오기의 이력서는 이 처럼 조촐하다. 부리의 감각을 이용해 진흙이나 수초 등을 휘저으며 숨어 있는 벌레와 물고기 등을 찾아 먹는다. 사냥 본능은 왜가리 등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주로 파괴되지 않은 논과 습지, 늪지 등지에서 서식하는 까닭이다. 그곳에 잡아먹을 벌레들이 많아서다. ▶‘따옥 따옥 따옥 소리 처량한 소리/떠나가면 가는 곳이 어디메이뇨/내 어머니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일제강점기 아동문학가 백민 한정동(白民 韓晶東·1894~1976) 선생의 동요 ‘따오기’ 노랫말이다. ‘따옥’이란 의성어가 애틋하다. 성함은 낯설다. 하지만 그 엄혹한 시기에도 아름다운 모국어로 정겨운 노랫말을 만들었다. 동요를 통해 독립운동을 하신 셈이다. ▶시흥에 백민 선생을 기리는 ‘따오기 문학공원’이 내년 6월까지 건립(본보 11월21일자 11면)된다. 사업비는 19억여원(토지보상비 포함)이다. 주소는 산현동 1609번지로 4천793㎡ 규모다. 잔디마당과 화장실 등을 비롯해 인근에 이미 건립된 ‘따오기 아동문학관’과 연결하는 길이 38m의 목재 덱(deck)도 조성된다. ▶백민 선생은 시흥에서 출생했거나 활동하진 않았다. 하지만 이곳 천주공원에 잠들어 계신다. 앞서 시흥시는 올해 3월 산현동에 백민 선생을 기리기 위해 동서로 902-20번지 물왕저수지 옆에 ‘따오기 아동문학관’을 건립한 바 있다. 야외에는 어린이 암벽등반 체험존과 따오기캐릭터 포토존 등도 있다. ▶시흥시는 백민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매년 ‘따오기 아동문화제’도 열고 있다. 따오기 아동문화진흥회가 한정동아동문학상도 운영 중이다. ‘따오기 문학공원’과 ‘따오기 아동문학관’이 이 고을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지지대] 제로킬드론

제로킬드론은 전쟁에서 사상자를 내지 않는, 즉 ‘아군에게 인적 희생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신종 전쟁개념이다. 탈냉전 이후 서방 강대국들이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보낼 때 국민적 합의를 얻기 위해 최소한의 기본 전제가 되는 것이 아군의 전력상 절대적 우위를 필수조건으로 한다. 걸프전 당시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에 의해 실증된 개념으로 서방 측의 對유고 대응의 기본 전략으로 적용됐다. 제로킬드론을 선도적으로 제기한 학자는 프랑스의 클로드 르 보르뉴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에도 드론과 무인기 등이 맹활약(?)하고 있다. 전쟁에서 활용되는 드론은 소형 배회탄에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는 대형 공격 드론까지 그 스펙트럼 사이에 다양한 종류가 있다. 주로 감시와 정찰기능을 수행하는 드론은 중형에 속한다. 러시아는 드론을 개발하고 시리아, 우크라이나 등 전장에서 전술적으로 활용한 경험을 축적한 드론 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는 2014년 크림전쟁이 종료된 후 드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드론전쟁에서 우크라이나가 우세했으나 러시아가 만회를 시도하고 있는 형국이다. 대드론 방어에 있어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보다 우월한 것으로 평가된다. 총체적 드론 전력보다는 드론 사용에 대한 적극성과 드론에 대항하는 방어능력이 드론전쟁에 영향을 미친다. 최근 북한 무인기 5대가 파주, 김포, 강화를 비롯해 서울 상공 진입까지 성공하는 등 우리나라 국방력을 무력화했다. 심지어 북한 무인기 5대 가격의 수십배가 넘는 공군 KA-1 경공격기 1대가 대응 출격하다가 추락했다. 군 당국은 ‘2023~2027 국방중기계획’에 북한 무인기 위협에 대응한 탐지 자산과 ‘소프트킬’, ‘하드킬’ 무기체계 사업 총 4건에 5천6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제로킬드론은 아군의 인적 희생에 초점을 맞춘 압도적 군사력이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민간인 희생을 제로화하는 데 있다. 군 당국은 우리 국민 단 한 사람도 희생시키지 않는 강력하고 압도적인 국방력으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오피니언 연재

지난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