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중장년이라면 참외 서리 한번쯤 해봤을 것이다. 친구들과 재미로 몰래 한 두개 따서 풀잎이나 옷에 쓱쓱 문질러 먹던 그 맛과 추억은 어른이 돼서도 잊을 수 없다. 남의 과일을 훔쳐 먹었던 장난은, 지금 생각하면 일종의 절도다. 하지만 서리와 절도는 다르다. 서리는 추억이 있다. 서리꾼은 동네 아이들이고, 몇몇이 모여 과일을 몰래 따는 정도였다. 이런 서리를 뭐라 하는 동네 농사꾼은 별로 없었다. 아이들의 호기심의 발로였고 먹을 게 부족한 원인도 있었지만 이렇다 할 놀이문화가 없는 탓이기도 했다.
이제 아이들에 의한 서리는 없다. 대신 어른들이 계획적이고 상습적으로 농작물 도둑질을 일삼고 있다. 농민들이 낮에 들에 나가 일하기 때문에 집을 비우는 경우가 많은데, 주인 없는 틈을 이용해 고추, 마늘, 콩, 참깨 등 수확해 놓은 각종 농산물을 대량으로 훔쳐 가고 있다. 이에 농촌의 한 경찰서는 경찰서 앞마당에 고추를 건조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봄부터 시작해 무더운 여름을 견디고 가을 뙤약볕 아래 고생한 농부들은 이맘때면 수확의 즐거움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 그런데 농작물 절도가 해마다 늘고 있으니 농민들 입장에서 얼마나 허탈하고 황당할까. 특히 올해는 긴 장마와 태풍에 따른 농작물 피해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농산물 절도가 더욱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창고에 둔 농산물을 훔치는 ‘곳간 털이’와 논밭에 재배 중인 농작물을 가져가는 ‘들걷이’, 축산물 절도 등 유형도 다양하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농산물 절도 사건은 2016년 554건, 2017년 540건, 2018년 507건에 이어 지난해 847건으로 늘었다. 지난해 절도 건수 중 560건이 경기도에서 발생했다. 검거율은 4년 평균 45% 정도다. 농산물 절도범 검거율이 낮은 것은 농촌지역의 CCTV와 경찰 인력 부족 등으로 신고가 들어와도 제대로 된 수사나 범인 검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은 농산물 보관장소 등 도난 우려가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정기순찰을 강화하고, 검거율을 높일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도 농촌지역 CCTV 설치를 늘리는 등 방범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농민들이 피땀 흘려 수확한 결실을 도둑맞아 눈물짓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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