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 탄트는 필자의 어린 시절 유엔 사무총장 이름이었다. 1960년대 초반 아시아 최초 유엔 사무총장이었다. 전임 사무총장들보다 5년 정도 더 자리를 지켰었다. 버마라는 나라 이름도 그때 처음 들었다.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그는 전임 사무총장의 사고사(事故死)로 현재까지 최장기 사무총장으로 남아 있다. 처음으로 3선 제의를 받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를 고사하고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낯선 나라였던 버마에 대한 인상은 초등학생이었던 필자에게도 나쁘진 않았다.
▶그로부터 20여년 정도 지난 뒤 이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바뀌었다. 이 나라 독립영웅 이름을 딴 아웅 산 국립묘지에서 발생한 폭발사건 때문이었다. 1983년 10월9일이었다. 북한 공작원 3명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해 미리 설치한 폭탄을 터뜨렸다. 이로 인해 서석준 부총리를 포함한 한국인 17명과 미얀마인 4명 등 21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을 당했다.
▶30여년이 흐른 뒤 미얀마로 국호를 바꾼 이 나라에선 민주화가 이뤄졌다. 아웅 산 수치가 이끌던 민주진영의 총선 승리로 군부독재를 종식시켰다. 53년만이었다. 세계가 환영했고 열광했었다. 민주화열기가 동남아로 이어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공교롭게도 아웅 산 수치는 이 나라 독립영웅 아웅 산의 딸이다.
▶그랬던 나라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또다시 민주주의가 위기에 봉착했다. 외신은 미얀마 군부가 지난 1일 새벽 전격적으로 쿠데타를 일으켜 아웅 산 수치 국가고문 등 정부 고위 인사들을 구금하고, 1년 동안 비상사태를 선포했다고 전했다. 아웅 산 수치 고문은 국민에게 쿠데타를 거부하고 항의 시위에 나설 것을 촉구하면서 미얀마 정국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미얀마 군부는 권력이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에게 이양됐다고 발표했다. 쿠데타는 미얀마 의회가 개회하는 날 새벽에 감행됐다. 국영 TV·라디오 방송은 ‘기술적 문제’로 방송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페이스북을 통해 발표했다. 수도인 네피도는 물론 최대 도시 양곤 등지에서 인터넷과 전화선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한다. 미얀마의 민주주의가 하루 빨리 회복돼야 하겠다. 꼭 남의 나라만의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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