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백신 지식재산권 면제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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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이 6월 첫 주에 미국으로 40일간 트레킹을 간다. 코로나 시국이라 많은 이들이 걱정을 하니, 미국 앵커리지 공항에서 관광객 모두에게 무료로 백신 접종을 해준단다. 알래스카주는 지난 4월 “이미 모든 주민이 맞을 백신을 확보하고 있다”면서 나머지 여유분은 관광객에게 제공해 침체됐던 여행업을 살릴 것이라고 밝혔다. 일부에선 ‘백신관광’이 시작됐다.

미국에선 코로나 백신이 넘쳐 각 주(州)에서 더 이상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 또 다른 국가에선 백신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신 개발과 확보, 접종에 국가간 기술과 힘이 작용하면서 ‘백신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하다. 포스트 코로나19를 대비하고 선도하기 위한 국가간 기싸움도 치열하다.

화이자와 모더나, 얀센, 노바백스 등 코로나19 주요 백신 개발과 생산을 주도하는 미국이 ‘백신 지식재산권’을 풀겠다고 한다. 지재권을 주장하지 않을테니 알아서 개발하라는 식이다. 백신 특허를 공개하고 복제 생산을 허용하면 세계 곳곳에서 백신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미국의 지재권 면제 이면에는 백신이 남아 도는데다, 인도의 심각한 상황 등 글로벌 압박이 있었다. 중국·러시아가 개발도상국 등에서 ‘백신외교’를 펼치는 상황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백신 지재권 면제’를 발표했으나 넘어야 할 장벽이 높다. 백신 개발과 접종에 기술력과 돈, 안정적 수급과 배송, 의료기술 등의 능력이 갖춰져야 한다. 백신 레시피를 줘도 못 만드는 나라가 많다. 때문에 지재권 면제보다 백신 수출 제한을 푸는게 더 현실적이란 지적이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특허권 제공이 더 많은 사람이 백신을 사용할 수 있는 해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수출과 생산을 늘리는 것이 위기를 해결하는 해법”이라고 했다.

코로나 재앙을 빨리 끝내려면 백신 지재권도 면제하고 생산·수출도 늘려야 한다. 자국민만의 백신 접종으로는 코로나 종식이 어렵다. 변이 바이러스도 번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처럼 ‘백신의 보편적 접근권과 지재권의 한시적 유예’가 필요하다. 미국과 EU가 백신 증산과 공평한 배분을 위한 최적의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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