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64년지기 112 친구에게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gaeng2da@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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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64년지기 친구가 있다.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사고를 당했을 때, 뭔가 큰일이 생겼을 때 새벽이고 늦은 밤이고 언제든 전화할 수 있는 친구. 전화 한 통이면 쏜살같이 달려와 무엇이든 해결해줄 것 같은 친구. 1957년 도입돼 올해로 64년을 맞은 경찰청 긴급전화 112 얘기다.

112는 ‘일일이 알린다’는 뜻에서 유래해 만들어졌다. 1957년 서울과 부산에 최초로 112 비상통화기를 설치했다. 1958년에는 112 비상통화기가 전국으로 확대·설치됐다. 하지만, 1980년대에는 112 신고전화의 98.5%가 가짜 신고였다. 지금처럼 버튼식 전화기가 아닌 기계식 전화기를 쓰고 있었던 게 이유다. 기계식 전화기는 후크를 누르면 ‘1’을 누른 것과 같은 효과가 나 112로 잘못 연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112는 ‘912’로 바뀔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112에 허위신고가 줄어든 건 버튼식 전화로의 변화와 함께 위치추적시스템 도입을 꼽는다. 2004년에는 순찰차 내비게이션에 전자지도를 더해 신속한 출동이 가능해졌고, 2013년에는 112 통합시스템이 구축됐다. 전국 어디서나 균일한 112 치안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렇게 112 신고전화는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비상벨이자 든든한 친구로 64년을 우리 곁에 있어왔다.

최근 인천에서 발생한 노래주점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죽기 전 112에 신고전화를 했다. 하지만, 상황실 경찰은 출동지령을 내리지도, 위치추적을 하지도 않았다. 급해 보이지 않아서란다. 지난해엔 남성 승객에게 입이 막힌 채 성추행 당하면서도 신고전화를 건 여성 택시기사에게 ‘똑바로 말하라’는 얘기만 반복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전화를 받은 경찰 개인의 잘못이라 할 수 없다. 개인의 판단에 국민의 안전을 맡긴 시스템의 잘못이다. 64년간 112는 분명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번호로 자리했다. 이제 그 믿음에 부흥할 통렬한 반성이 필요하다. 다시는 64년지기 친구의 배신을 보고 싶지 않다.

김경희 인천본사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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