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역 정치권이 ‘정조대왕능행차’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작업에 착수했다. 지역 정계 인물들과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정조대왕능행차를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시도하고 있는데 과연 이 표현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지역의 한 학자는 ‘정조대왕능행차’가 아니라 ‘정조대왕원행차’가 맞다고 주장했다. 이 학자는 일반인의 무덤은 묘라하고 왕족의 무덤은 원, 왕의 무덤은 능이라 부른다고 했다.
현재 화성시에 위치한 융릉은 조선 영조의 둘째 아들로 사후 왕으로 추존된 장조(1735~1762ㆍ사도세자)와 부인 헌경왕후 홍씨를 합장한 무덤이다. 1762년(영조 38) 5월21일 뒤주 속에서 죽은 사도세자는 7월23일 배봉산 아래 언덕에 예장됐으며 묘호를 수은묘(垂恩墓)라 했다. 1776년(정조 즉위) 3월 수은묘를 영우원(永祐園)으로 개칭하고 존호도 사도에서 장헌(莊獻)으로 개칭했다. 1789년(정조 13) 영우원은 다시 현융원(顯隆園)으로 바뀌었고 같은 해 10월7일 현 위치로 이장됐다. 정조가 죽은 후 1899년 11월 장종(莊宗)으로 추존되고 무덤도 융릉(隆陵)이라는 능호를 받았으며 그해 12월에는 장종에서 장조(莊祖)로 묘호가 다시 바뀌었다.
지역 정치권이 추진하는 ‘정조대왕능행차’는 조선의 제22대 왕인 정조(1752~1800)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을묘년(1795년)에 진행한 대규모 행차를 말한다. 정조대왕은 24년의 재위기간 동안 친아버지인 장조(사도세자)의 묘소를 양주 배봉산에서 화성 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옮긴 후 11년간 총 13번의 원행을 했다. 그 중에서도 즉위 20년 해인 1795년 윤 2월9일부터 16일까지 8일간 혜경궁 홍씨의 회갑을 맞아 행했던 대규모 행차가 ‘을묘년 화성행차’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하려면 정조대왕 능행차보다는 ‘정조대왕원행차’나 ‘정조대왕 화성행차’가 적합한 표현이 아닌가 싶다. 역사의 기록도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라고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정조대왕능행차’는 역사의 기록 어디에도 없다.
최원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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