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도 꼬집어 보고 다리도 꼬집었다. 눈앞으로 펼쳐진 광경이 꿈인지 생시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붉은 벽돌의 장대와 금빛 처마를 올려다보면서 주눅이 들었다. 조선의 선비가 목격한 자금성(紫禁城)의 위용이었다. 1780년이었다. 연암 박지원 선생 얘기다. 당시 청나라를 보고 쓴 ‘열하일기(熱河日記)’의 한 대목이다.
▶연암 선생은 이 책을 통해 경고했다. 청나라를 북벌 대상으로만 여기지 말라고 말이다. 서양문물을 배워야 한다고 말이다. 당연히 금서로 분류됐다. 몰래몰래 읽혔다. 베스트셀러였다. 없어서 못 구할 판이었다. 18세기판 ‘전환시대의 논리’였다. 금서에서 풀린 건 그로부터 100년이 지난 뒤였다.
▶조선 사신이 자금성을 처음 봤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축구장 72개(72만㎡)가 들어갈 정도로 압도적이기 때문이었다. 자금성(紫禁城)이 올해로 600살이다. 20만명이 넘는 인력이 동원돼 15년에 걸쳐 완성됐다.
▶중국이 요즘 ‘자금성 띄우기’에 열심이다. 세계를 주름잡았던 과거 명·청시대를 재연하겠다는 포석이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의 열망이 고스란히 녹여졌다. 기념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물론 코로나19로 하루 입장인원이 오전과 오후 각각 1만5천명으로 제한됐다. 그 끝은 분명히 정해져 있다. 지구촌 한복판에 다시 우뚝 서겠다는 것이다.
▶모택동은 항일투쟁 기간 자금성을 봉건주의 잔재라며 애써 깎아내렸었다. 그랬던 그도 1949년 10월1일 자금성에서 건국행사를 열었다. 건축물 70여개와 방 9천999개가 있었지만 많이 소실됐다. 하지만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중국 공산당이 자금성 띄우기에 올인하는 까닭은 명쾌하다. 한국전쟁을 미국에 저항하고 북한을 돕는(抗美援朝) 전쟁이라는 논리에서 더 나아가 미국이 침략한 전쟁이라고 우기는 그들이다. 분명한 역사 왜곡이다. 1세기 정도 수난의 역사가 있었지만 자신들이 세계의 중심임을 지구촌에 선포하겠다는 그 음흉한 의도를 경계해야 한다. 연암 선생의 200여년 전 경고는 그래서 아직도 유효하다.
허행윤 지역사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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