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빌바오 효과와 신기루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jjy84@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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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대표적 조선 공업 도시였던 빌바오는 20세기 후반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에 바스크 주 정부가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을 애써 유치했다. 쇠락하던 빌바오는 세계적인 관광 도시로 살아났다. ‘미술관 신화’다. 구겐하임의 소장품과 독특한 건축미가 큰 몫을 했다. 이후 빌바오 효과(Bilbao effect)는 문화가 한 도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뜻하는 용어가 됐다.

▶대한민국 곳곳에서 빌바오 효과가 유행가처럼 들린다. 이건희 미술관 얘기다. 한 달 넘도록 지자체가 서로 건립 당위성을 말한다. 삼성그룹 창업주의 고향부터 시작해 삼성 본사와 이건희 회장 묘소가 자리한 곳 등 절절한 사연이 나온다. 수도권 분산과 문화 향유 기회 확대 등의 이유도 줄줄이 붙는다.

▶ 코로나19 속 더더욱 뒤편으로 밀려났던 문화예술이다. 모처럼 받는 주목이다. 그런데 정작 문화는 보이지 않는다. 고미술부터 현대미술, 각종 문화재가 포함된 예술품을 어떻게 관리하고 보존할지 고민이 없다. 예술을 존중하는 자세도 계획도 눈에 띄지 않는다. 지자체의 경제, 정치논리만 가득하다. 이건희 미술관 유치에 한창인 지자체에 거주하는 한 작가가 말했다. “지역 미술관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관심도 없지 않았느냐. 자기 자식도 보살피지 못하면서 이건희 미술관이 웬 말이냐.”

▶빌바오 시청의 도시계획국장이 말했다. “구겐하임 미술관은 빌바오를 국제화하는 데 역할을 한 것뿐이다. 빌바오의 도시재생은 수많은 프로젝트의 상호작용으로 이뤄졌다.” 실제 빌바오의 부흥은 구겐하임 미술관만으로 불러온 게 아니다. 미술관 근처 주민들이 사색하고 걷고 뛰는 네르비온 강변의 산책로와 그 속에서 빚어진 풍부한 문화적 소양, 예술도시로 거듭나기 위한 지자체의 깊은 고민이 한몫했다. 빌바오 효과를 거저 바라기만 한다면 그건 신기루에 불과하다.

정자연 문화체육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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