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정보산업고 한효석 선생님

“진짜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자유로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일선 학교의 평범한 교사로 이미 언론인을 꿈꾸는 이들의 바이블이 된 ‘이렇게 해야 바로 쓴다 1·2’와 수험생들의 입시책자이자 올바른 글쓰기를 위한 ‘너무나도 쉬운 논술’등의 저자로 더 유명한 부천정보산업고의 한효석 선생(41). 그가 오는 9월1일자로 명퇴를 신청했다. 지난 77년 스물두살때 여주종고에서 처음 교편을 잡은 이후 부천고를 거쳐 부천정보산업고까지 23년동안 사춘기에 접어든 제자들이 과학적이고 자유로운 학습을 통해 열린 마음으로 삶과 사회와 인간을 바라볼 수 있도록 눈과 귀를 맑게 하는데 열정을 쏟아왔던 정든 교단. 그러나 그는 안정된 삶의 터전이자 존경받아온 스승의 길보다 본능적으로 글쟁이의 욕망을 접을 수가 없었다. 출발점은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한선생은 명퇴후 6개월동안 국내외를 여행하면서 충분히 몸과 마음을 충전한 뒤 사회복지관이나 장애인 협회 등에서 참다운 자원봉사를 하고 싶다. 또 최근 작고하신 아버지를 통해 격정의 시대를 살아온 서민들의 생활사와 가족사를 조명할 계획이다. 여기에 교실붕괴로 나타나고 있는 교육현안과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pipls.co.kr)를 개설했다. 여기에는 부모자격시험문제, 사람과 사람들, 열린 수업법 등 14개 코너를 마련해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교육을 마치 인터넷속으로 옮겨놓은 듯한 착각이 들도록 만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사람입니다” ‘한사람의 열걸음보다 열사람의 한걸음’을 준비하는 그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라며 담담해한다. /부천=조정호기자 jhcho@kgib.co.kr

인천교육청 교육행정직 합격자 명단

◇교육행정직 ▲1001 정연섭 ▲1003황희선 ▲1010 황미라 ▲1011 우효민 ▲1017 이태균 ▲1019 정재승 ▲1028 박영옥 ▲1031 전혜정 ▲1044 윤영진 ▲1048 허진 ▲1055 권오연 ▲1066 김상인 ▲1076 정은경 ▲1088 이송희 ▲1101 김근호 ▲1116 신현정 ▲1129 전진영 ▲1130 강수정 ▲1138 박신애 ▲1139 신지인 ▲1145 박주연 ▲1154 이정숙 ▲1156 엄주현 ▲ 1162 이화선 ▲1164 김희정 ▲1167 이승경 ▲1174 임현택 ▲1185 정은정 ▲1191 최경호 ▲1194 임경성 ▲1202 하정희 ▲1205 이혜경 ▲1213 김숙현 ▲1214 이대호 ▲1220 박상경 ▲1224 강주성 ▲1232 유은숙 ▲1233 김현아 ▲1255 주은희 ▲1271 한의석 ▲1283 강병무 ▲1293 곽현주 ▲1296 김현숙 ▲1300 황성혜 ▲1312 이정렬 ▲1323 이국희 ▲1329 나선수 ▲1331 김정희 ▲1341 조성은 ▲1344 이향미 ▲1348 이효심 ▲1350 임대혁 ▲1359 김지정 ▲1361 김미성 ▲1367 박금순 ▲1373 민성기 ▲1374 김은선 ▲1378 김지영 ▲1391 장은경 ▲1392 박문선 ▲1399 박순희 ▲1400 김진선 ▲1401 이현정 ▲1417 남지혜▲1423 한현정 ▲1424 김영진 ▲1428 김은하 ▲1430 박선화 ▲1433 이정모 ▲1448 박송화 ▲1451 이봉주 ▲1458 왕준미 ▲1466 정은희 ▲1480 양희영 ▲1481 석정혜 ▲1482 신영주 ▲1527 성혜란 ▲1530 문지선 ▲1533 최혜미 ▲1541 정은영 ▲1542 이기정 ▲1548 이양식 ▲1568 신원선 ▲1592 이현숙 ▲1604 조민경 ▲1613 오광택 ▲1634 김성천 ▲1639 안미연 ▲1652 김소영 ▲1686 신완이 ▲1709 조선경 ▲1771 현지혜 ▲1784 윤영준 ▲1794 권윤희 ▲1806 강근복 ▲1823 제정순 ▲1840 최경심 ▲1864 이오현 ▲1866 박희대 ▲1868 이은주 ▲1909 조세영 ▲1919 유주형 ▲1925 강주희 ▲1934 김한나 ▲1938 황보경 ▲1943 민상철 ▲1965 이남희 ▲1971 김정애 ▲1983 박형문 ▲1985 황미애 ▲2025 김응수 ▲2040 이인숙 ▲2043 오근정 ▲2079 박현정 ◇사무보조직 ▲5507 유신애 ▲5510 노선 ▲5513 김민준 ▲6014 장현숙 ▲6016 황미영 ▲6031 최수연 ▲6048 김주영 ▲6050 이선희 ▲6053 복정자 ▲6054 김선주 ▲6059 채경국 ▲6073 심미섭 ▲6076 신영희 ▲6081 권현지 ▲6087 서진옥 ▲6091 최경희 ▲6100 최영희 ▲6109 신광식 ▲6115 김지연 ▲6126 양경자 ▲6130 유정순 ▲6133 이필성 ▲6135 양성호 ▲6138 최주윤 ▲6142 이연주 ▲6144 이성미 ▲6160 김순화 ▲6165 홍혜경 ▲6166 금경아 ▲6175 임희정 ▲6186 이정옥 ▲6212 이은주 ▲6213 서정임 ▲6214 윤홍미 ▲6215 박혜경 ▲6223 이미정 ▲6228 이희정 ▲6232 한영미 ▲6236 유지현 ▲6241 정난이 ▲6243 김신애 ▲6265 장희영 ▲6266 김경란 ▲6268 권영미 ▲6281 박정미 ▲6290 최정애 ▲6291 이지연 ▲6303 이선영 ▲6307 최은정 ▲6332 김동훈 ▲6334 김순복 ▲6338 구혜진 ▲6343 이희은 ▲6363 천진혜 ▲6372 김영 ▲6380 윤성자 ▲6396 이태화 ▲6402 정지영 ▲6435 장영선 ▲6438 위상진

화성군 매송면 사랑의 집 박영우씨

생활보호대상자가 정신박약아 등 불우 어린이를 돌보고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화성군 매송면 야목리 372-3 사랑의 집을 운영하는 박영우씨(41). 박씨는 현재 정신박약아 4명과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 5명 등 모두 9명의 어린이를 돌보고 있다.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15년전 자동차 부품 제조회사를 다니다 기계에 손을 다쳐 왼쪽 네개 손가락을 절단한 박씨는 회사를 그만둔 뒤 지난 85년부터 장애인의 몸으로 도내 고아원과 재활원을 방문하며 봉사활동에 전념해 왔다. 박씨는 봉사활동을 하면서 가족과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아이들이 냉대와 엄격한 규율속에 통제 당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이에 지난 96년 매송면 야목리에 사랑의 집을 마련하고 불쌍한 어린이를 데려다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고 있다. 그러나 생활보호대상자인 박씨가 매월 정부로부터 지급받는 보조금으로 이들을 돌보기에는 역부족이다. 특히 부인 박영순씨(39)가 몸 전체가 굳어지는 선천성진행성근긴장이상증(신경전달 근육물질인 도파민 미분비)이란 병에 걸려 약으로 살다시피해 어려움을 더해주고 있다. 그러나 박씨는 이처럼 어려운 형편아래서도 얼굴에 늘 미소를 잃지 않는다. 도움을 주고자 하는 분은 박영순씨 계좌(농협 207102-52-054371)로 성금을 보내면 된다. /화성=강인묵기자 imkang@.kgib.co.kr

31년 공직생활 마감 김정일 의정부우체국장

‘소리나는 우체국’ ‘고향이 따로 없는 우체국장’이라는 별칭을 달고다니며 부임지마다 기발한 아이디어로 화제를 뿌렸던 김정일 의정부우체국장(60)이 오는 31일 35년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공로연수 생활에 들어간다. 지난 98년 9월 의정부에 부임한 김국장은 여주·강릉 우체국장 재직 당시 여주 도자기아가씨 축제와 강릉8경 등을 체신업무와 기발하게 연결시켜 지역홍보에 열올렸던 관록을 과시하듯 의정부에서도 숱한 화제와 지역이미지 쇄신에 앞장섰다. 김국장은 먼저 ‘의정부’라는 지명이 조선초 3정승 6조판서가 모여 국사를 논의한 국정 최고기관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착안, 정승이 머리에 쓴 사모를 로고로 제작해 우체국의 각종 상품에 부착하는등 그동안 ‘부대찌게’와 ‘미군부대’에 뺏긴 도시 이미지를 되찾기 시작했다. 또 우체국을 단순한 우편업무를 취급하는 곳으로만 알고있던 지역주민들에게 우체국예금과 보험 등을 적극 홍보하는 영업맨으로서의 노력 또한 탁월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김국장은 이외에도 우체국 친절 3정승을 뽑아 직원들의 사기는 물론 고객서비스에도 진정한 프로정신을 불어넣는가 하면, 시의 전통성과 뿌리를 찾기위한 왕실행차 등 각종 행사의 참여와 재소자들을 대상으로 한 편지쓰기를 실시, 지역홍보와 함께 우체국 기능의 위상을 높이는데 앞장섰다. “오는 6월말 정년퇴임때까지 그동안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회고록과 체신업무 전반에 걸친 기사화보집을 제작하겠다”는 김국장은 “너무 튄다는 오해의 여지속에 지금까지 많은 활동을 해왔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나의 신념과 정체성을 끊임없이 찾기위한 노력이 현재의 나를 있게 해준 셈”이라고 말했다./의정부=조한민기자 hmcho@kgib.co.kr

부평구 축구연합회 선수 격려만찬

“수십년만에 만난 친우들과의 만남이 이토록 짧을 줄이야….” 재미 LA 부평동호인회가 인천 부평구 축구연합회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만찬장에서 한인수 초대회장의 축사가 이어지는 순간,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이어졌다. 수십년동안 고국에 두고온 친지와 친구들을 그리며 살아오다 지난 17일 고국으로 부터 날아온 동포들을 만나니 그동안의 애환이 눈물로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이들은 몇번이고 서로의 손을 잡고 부둥켜 안으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들 대부분은 지난 78년부터 80년대 초까지 청운의 꿈을 안고 이억만리 미국 LA로 이민온 1세대. 이민 초기 낮설은 이국땅에서 어떻게든 정착하기 위해 유색인종이라는 온갖 수모와 멸시·고초와 시련을 감내해야만 했던 이들은 백발이 성성해진 지금 이국땅에서 나름대로 터전을 잡았으나 고국에 대한 향수를 잊을 수 없었다. 때문에 이들은 지난 90년초 같은 시기에 이민와 지척에 살면서도 만나지 못하고 있는 부평사람들을 모아 ‘부평동호인회’를 결성했다. 특히 부평동호인들이 주축이 돼 창단한 ‘봉화축구단’은 LA 사우스벨리 등 16개 지역에 조기축구팀을 탄생시켰고 매년 3.1절 정신을 기념하는 친선 축구대회를 개최해오다 이번에 고국의 축구팀을 초청, 친선경기를 갖는등 LA지역 한인사회에서 중추적 역할을 해오고 있다. 한인수 회장(65)은 “이억만리에서 내나라 내고향의 눈부신 발전을 지켜 보며 우리도 일등국민이 될 수 있다는 자긍심을 항상 잊지않고 살아왔다”고 말했다. /김창수기자 cskim@kgib.co.kr